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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지원조직 활동가로 산다는 건(윤요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2-29 15:23
조회
519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중간지원조직’이다. 춘천시에서 조례를 통해 출자출연기관의 형태로 설립한 재단법인 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이하 춘천마자센터)이다. 작년 7월 1일 문을 열였고 나는 6월 15일 홀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49년을 야생이라 할 수 있는 시민단체와 농촌에서 농부로 마을활동가로 살아온 내게 춘천마자센터는 약간의 설레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흔쾌히 동의되지 않는 머뭇거려지는 기관이었다.


 이제 1년 6개월밖에 안 되는 미천한 경험과 소회를 가지고 전국의 수많은 중간지원조직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오만일 수도 있겠다. 다만, 요즘 서울시를 보면서 또 이번 시의회에 출석해 한 시의원님으로부터 들은 한마디가 이야기하게 된 자극이 되었다. “마을자치지원센터가 정치색을 띠는 것처럼 비춰지면 안되잖아요. 그래야 혹시 정권(지방자치단체)이 바뀌어도 계속 유지될 수 있죠” 비아냥은 아니었길. 우려였고 걱정이었고 휘둘리지 말고 제 역할을 하라는 조언이었을 거라고 애써 맘먹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국의 수많은 분야 – 마을만들기, 공동체, 주민자치,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상권활성화, 문화, 기후위기, 생태, 환경, 사회혁신 등등 – 에서 일하고 있는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이 정치색에 의해 좌우되는 또는 개인의 입신양명만을 위해 현장을 떠나 자칫 양쪽(행정과 현장)에서 욕 들어 먹기 딱 좋은 곳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오랫동안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채득한 경험과 가치를 도모하기 위해 뛰어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믿고 싶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서 행정만이었다면 어려웠을 유의미한 결과물들을 내고 있음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현장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경험, 혁신적인 상상력과 실천력 등 민간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새싹들이 풀뿌리처럼 골목마다 마을마다 전국에서 서서히 움트고 돋아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먼 것 같다. 행정의 민간, 시민들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도 극복해야 하고 현장의 이해 부족으로 인한 우격다짐에도 평화롭게 응대해야 한다. 법과 제도, 규정에 가로막혀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모순을 보며 답답함도 좌절감도 경험하게 된다. 전국 방방곡곡을 자유롭게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배우던 활동가들은 새장 속에 갇힌 파랑새처럼 자유를 속박당하기도 한다. 서글퍼지는 활동가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안락함과 매너리즘에 잡아먹히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야생성과 신념은 마음속에 굳건히 품고 현실에서는 유연함과 여유로움으로 활동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자칫하면 현장성은 잃고 행정에 익숙해지면서 중간꼰대 혹은 중간갑질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pngtree


 대부분 중간지원조직은 민간위탁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구조적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행정으로부터 요구받는 성과, 실적에 허탈해지고 용역회사 취급하는 갑질에 울분을 삭이기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언제든지 위탁취소가 되거나 예산이 깎여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는 불안정성이 늘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야기하다 보니 하소연이고 푸념만 늘어놓은 것 같기도 하지만 나름 애를 쓰고 맘을 쓰며 운동성을 잃지 않으며 살고있는 활동가들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어렸을 때 즐겨 불렀던 노래가 떠오른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 우리들은 청년이다”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이여 힘내시라 그리고 언제든 자유로울 용기를 잃지 않기를 간절한 맘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