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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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동우/ 변호사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어가고 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체감상으로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마도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재명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인 검찰개혁도 추석 전 중요입법을 완료하겠다는 목표 아래 거듭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 그 과정에서 개혁의 대상인 검찰을 비롯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이견을 표출하면서 개혁의 내용을 확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검찰개혁은 우리 사회를 검찰공화국에서 정상적인 민주공화국으로 되돌려놓는 가장 중요한 과제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저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100명이 논의하면 100가지 안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로의 생각과 관점,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검찰개혁에 절대로 빠지거나 후퇴해서는 안 되는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검찰의 직접수사 폐지와 수사지휘 금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필자의 주관적인 입장이지만, 적어도 과거 검찰의 폐해를 해결하겠다면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내용이고 검찰개혁의 성공을 바라는 많은 국민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유지하거나 수사지휘권을 통해 사실상 수사에 관여하려는 첫 번째 시도는 미진한 수사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보완수사유지라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1차 수사기관인 경찰이나 (신설예정인) 중수청에서 수사를 끝냈는데 기소하려고 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경우에 검찰이 이를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주된 논리다. 현재는 보완수사를 직접 하지 않고 보완수사를 요구하는데, 보완수사를 요구하고 다시 수사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걸려서 국민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검찰이 직접수사를 하거나 수사의 내용에 관여하는 지휘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수사 기간의 문제는 법이나 내부규정을 통해 수사 기간을 정하고 인력을 보강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기간이 아니라 보완수사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3의 기관을 통해 의도적인 봐주기인지 아니면 정말 보완수사가 필요 없는 사안인지를 검토해 의도적인 봐주기 수사일 경우 담당자와 지휘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으면 된다. 즉 어떤 경우에도 검찰이 직접수사를 해야 하거나 수사지휘권을 행사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따라서 국민의 불편을 이유로 검찰이 보완수사를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사실상 검찰공화국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영상 갈무리 출처   검찰의 수사권을 유지하기 위한 두 번째 시도는 1차 수사기관의 부실수사를 통제하기 위해 검찰의 직접수사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부실수사 통제는 앞선 보완수사와 비슷하나, 이 경우에는 의도적인 봐주기 수사나 전문성 부족에 따른 결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즉, 보완수사 주장이 수사기관의 의도나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기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라면 부실수사 통제 주장은 ‘경찰을 믿을 수 없으니 검찰이 나서야 한다’라는 속내를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어김없이 따라오는 명분은 국민의 권리보호다. 경찰의 부실수사로 피해를 보는 건 선량한 일반 국민인데 정치적 사건 몇 개 때문에 검찰의 직접수사나 수사지휘를 완전히 없애면 경찰의 부패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이 내용이다. 얼핏 들으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적지 않은 법조인들도 이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사실 검찰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사실상 국민을 속이는 사기에 가까운 주장이다. 검찰의 수사권이 변화된 건 문재인 정부 시절이다. 즉, 검찰의 수사권이 조금이나마 변화한 건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유전무죄’라는 말은 검찰이 수사권이나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던 과거부터 늘 있던 말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도 10년 전부터 갑자기 생기지 않았다. 다시 말해 검찰의 수사권이 약해지거나 사라졌기 때문에 과거에 없던 부실수사가 생긴 게 아니라는 말이다. 검찰은 자신들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을 때도 관심 있는 대형사건이나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만 적극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했지, 일반 국민의 평범한 수사 사건에 대해서는 대부분 경찰의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심 있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랬던 검찰이 지금 수사권을 뺏길 위기에 처하니 갑자기 국민을 위한 기관인 것처럼 국민의 보호를 위해 수사권이나 수사지휘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국민을 속이는 행위에 가깝다. 검찰이 정말 국민을 위해 경찰의 부실수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 가지고 통제했다면,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이렇게 커질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과거 행태에는 눈을 감고, 말뿐인 국민보호를 핑계로 수사권이나 수사지휘권을 유지하려는 검찰의 시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간혹 일부 법조인의 경우에는 검찰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국민을 위해서 이러한 주장을 하기도 하나, 그 의도와 무관하게 해당 주장의 결론이 결국 검찰 권력의 유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실수사 통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안은 2차 수사만을 전담하는 별도의 수사기구를 두는 방법이다. 앞서 부실수사란 의도적인 봐주기 수사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미흡한 수사라고 했던 만큼 동일한 수사부서에 다시 수사를 맡긴다고 새로운 결론이 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관의 신설이 가장 좋은 방안이지만 가까운 기간 내에 현실화하기 어렵다면 차선책은 1차 수사기관 내에 2차 수사를 담당하는 별도의 부서를 운용하는 방안이 있다. 이 경우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충분히 부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식적으로는 별도 부서가 담당하나 실질적으론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최초 수사부서에 다시 사건을 넘기는 편법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선 방법들 말고도 검찰이 직접 나서지 않고 부실수사를 통제해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다른 모든 방안은 뒤로하고 검찰에게 수사와 관련한 권한을 남기려는 주장은 결국 검찰공화국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결코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모든 정책에는 찬성과 반대가 있다. 특히 국가기관의 권한을 변경하는 개혁은 많은 반대에 직면한다. 그러나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내란범죄를 저지르는 초유의 상황은 결코 그냥 발생하지 않았다. 바로 검찰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이라는 조직적 권력이 존재했기에 상상할 수 있었고, 현실적인 시도까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게다. 따라서 검찰권력의 해체 없이 정상적인 대한민국을 기대할 순 없다. 직접수사 폐지와 수사지휘 금지는 이러한 검찰개혁의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이자 최소한이다.  
2025-08-25 | hrights | 조회: 54 | 추천: 6
장은주/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인수위 없이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드디어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를 통해 국정운영 5개년 계획과 123대 국정과제 등을 발표했다. 검찰개혁을 포함한 많은 과제가 발표되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1번 국정과제로 제시된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개헌’이다. 비록 구체적인 개헌 방향과 시점 같은 건 아직 불투명하지만, 12.3 내란 이후 우리 헌정 체제를 다시는 내란 시도 같은 게 가능하지 않도록 정비해야 한다는 역사적 정언명령에 비추어 볼 때 개헌만큼 중요한 이재명 정부의 과제는 없지 않을까 한다. 다른 현안들에 밀려 아직은 이 개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제 서서히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 4년 연임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권) 제한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을 공약했는데, 이 공약부터 검토해 보면 좋겠다. 나는 이 공약을 보면서, ‘지금 계엄을 제멋대로 선포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제왕적 대통령이 문젠데 4년 연임제로 하자는 건 제왕적 대통령의 임기를 5년에서 8년으로 연장하는 결과를 낳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더랬다. 물론 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은 기본적으로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이제부터라도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과 성찰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사진 출처   많은 학자는 대통령제가 행정부에 너무 많은 권력을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에 적합한 통치 형식일지 의문을 제기한다. 대통령제에서는 막강한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의 자의적 운용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강호프(S. Ganghof)라는 독일 정치학자는 이런 사정을 ‘행정 권력 인격주의(executive personalism)’라고 규정했는데, 쉽게 말해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국가통치의 양식이나 질적 수준이 전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재명 대통령은 너무도 훌륭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다음 대통령이 또 다른 윤석열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대통령은, 설사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임기를 제한하더라도, 그가 어떤 역량과 성향을 지녔는가에 따라 나라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종의 ‘대체군주’일 뿐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는 독재적 대통령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하는 데만 초점을 두었을 뿐, 이런 대통령제의 근본 문제를 제대로 검토해 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오랜 군부 독재 체제의 영향 때문인지, 대통령이 많은 권력을 독점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행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군통수권자이자 국가 원수이기까지 한 대통령은 거의 모든 국가기관에 인사권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구성에도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물론 국회와 사법부의 견제가 일정하게 가능하도록 제도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 권력의 과도함과 자의성 앞에 무력하기 일쑤였다. 윤석열 정부는 입법이 필요한 많은 정책적 지향이 여소야대 국회에 막히자 이른바 ‘시행령 통치’를 통해 우회했는데, 우리 헌법은 궁극적으로 이를 막지 못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제왕적’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권력은 정치 과정 전반을 결정적으로 지배할 수밖에 없다. 의회제(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국가들에서 정당들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한다. 대통령제 나라들에서 정당들은 ‘대통령(제)화(presidentialization)’된다. 다시 말해, 대통령 중심의 정당이 된다. 그러니까 대통령제에서 정당은 대통령이나 후보에게 선거나 통치 전략과 관련해서 너무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면서 그들에게 종속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는 이념과 정치적 지향에 따라 발전하고 운용되는 의회제 국가들의 정당과는 다른 모습인데,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거의 모든 정치 과정은 승자가 독식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대통령 권력의 획득과 유지에 초점을 두고 진행됐으며, 정당들은 정책과 정치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천보다는 적대적 권력투쟁에만 몰두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특정 대통령의 당선은 정당이 아닌 대통령 개인의 집권이었다. ‘민주당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였고, ‘국민의 힘 정부’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였다. 우리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정당보다는 대통령 후보의 선거 캠프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국정 방향이 결정되는 걸 보아 왔다. 정당은 이 과정을 주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기에 종속되었다. 정당은 후보로 선출한 대통령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며, 그저 대통령을 뒷받침하고 지키는 일에만 몰두해 왔다.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 시기, 심지어 그가 탄핵당하고 구속된 지금도, 국민의 힘이라는 주류 보수 정당이 어떻게 윤석열 개인의 사당으로 전락했는지를 너무도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 직선제 쟁취와 함께 시작된 우리 민주주의의 경험 때문에라도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제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12.3 내란을 거치며 대통령제가 자칫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걸 분명하게 확인했다. 개헌을 위한 절호의 역사적 시기라고 평가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모두의 지혜를 모아 ‘K-민주주의’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통치구조를 고안해 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적합한 대통령제의 형태가 어떤 것일지에 대해 깊은 사회적 숙의가 필요한 때다.    
2025-08-19 | hrights | 조회: 179 | 추천: 4
강대중/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이번에도 교육부 장관이었다. 윤석열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내각도 교육부 장관 퍼즐을 한 번에 맞추지 못했다. 거점 국립대 첫 여성 총장이었던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논문 표절 논란과 자녀의 미국 유학이 국민 정서와 괴리되어 있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인사청문회 자리에 섰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후보자가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위원장’을 지낸 이력, 그리고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민주당 공약집의 국가균형발전 파트에 7번째로 제시된 점에 주목했던 사람들의 기대도 거기에서 멈췄다.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답변에 실망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결국 기본 자격 미달이라는 냉정한 평가와 함께 인사 검증이 부실하다는 비판까지 이어졌다. 저출생으로 직격탄을 맞은 유아·초·중등교육 분야나, 고령화로 정책적 중요성이 커진 평생교육 분야의 전문성을 공대 교수 출신 후보자에게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가 지방 소멸 문제 해결을 지역 대학 활로 찾기로 접근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의 적임자라는 점만이라도 인사청문회에서 확인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후보자가 그 공약의 제안자라는 보도도 있었지만,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처음 명명하고 제안한 사람은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이다. 그는 동명의 책을 2021년 12월 ‘한국 교육의 근본을 바꾸다’라는 부제를 달아 출판했다. 출판 시점을 고려하면 2022년 대선 때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화두로 떠오르기를 바랐던 듯하다. 결국 이 구상은 2025년 대선에서 주요 공약으로 등장했다. 민주당 정책공약집 191쪽부터 192쪽에는 실린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국가균형발전을 이끌겠습니다. | 지역 거점 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 추진 - 수도권 중심의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에서도 서울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집중 투자 - 10년 내 세계 100대 대학에 거점 국립대 3개교 이상 진입 목표 -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한 어학 프로그램 및 해외 유학 지원 확대 - 신입생 대상 거주형 캠퍼스(Residential Campus) 도입으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과 동아리 활동 등 공동체 활동이 융합된 통합적 교육환경 제공 | 교육 경쟁력 제고 및 강력한 취업 지원 시스템 구축 - 재학생 및 졸업생 대상 맞춤형 취업 지원 프로그램 대폭 확대 - 취업 연계형 소단위 전공(나노·마이크로디그리) 운영 의무화 - 학과전공별 기초역량 교육 프로그램 도입, 장학금 및 생활비 지원 확대 | 세계적 연구대학 도약을 위한 발전 기반 조성 -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진 유치를 위한 제도 마련 - 대학 내 국가연구소 설치, 국책민간연구기관과의 협업 체계 구축 - 대학원 교육 활성화를 위한 장학제도 개선, 연구시설 및 실험실습 기자재 확충 - 거점 국립대 간 비교 평가지표 공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과관리 체계 마련 | 지역혁신성장의 중심, 국립대-사립대 간 자원공유를 통한 동반성장의 RISE 체계 구축 - 정부는 국립대를 지역혁신의 허브로 구축, 지자체는 RISE 체계에 기반해 지역 사립대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지원 협력 체계 구축 - 초광역권 단위 RISE센터 설치로 대학-지자체 연계를 지역 경제· 생활권 중심으로 재편 - 서울대·인천대(법인국립대) 외 거점 국립대 및 국가중심 국립대에 대한 재정지원 분배 강화, 지역혁신형 사립대학에 대한 집중 투자 및 구조개선 유도 - 대학의 지역경제 기여도를 반영하여 지자체의 재정지원 책임 강화, 지역산업과 연계한 협력 체계 활성화 재정 투입 없이 공약 실현은 불가능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거점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으로 예산을 전략적으로 투자해야 가능하다. 김종영 교수는 책에서 “서울대와 나머지 9개의 지방거점 국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은 평균 3,600억 원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각 대학마다 한 해 3,6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증액하자. 그렇다면 한 해 3조 2,400억 원(9개 대학×3,600억 원) 정도의 예산 증액이 요구된다”(262쪽)고 썼다. 그러나 서울대의 예산조차 세계 최고 대학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김 교수가 모델로 삼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연구중심대학 10곳의 2020년 예산은 49조 3,000억 원이었다. 같은 해 서울대를 포함한 10개 거점 국립대학의 예산은 5조 7,031억 원이었다. 여기에 9개 대학 몫으로 3조 2,400억 원을 더해도 캘리포니아 대학들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학부생 수는 양쪽 모두 약 22만 명으로 비슷하고, 대학원생 수는 캘리포니아 쪽이 8,000명 정도 많은 5만 9,000여 명이다. 학생 수는 비슷한데 예산 격차는 매년 3조 원이 넘게 더 투자해도 5배 이상 난다. 고등교육 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사진 출처   공약은 10년 내에 거점 국립대 3개교 이상을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김종영 교수는 상하이교통대학의 세계대학 학문순위를 주로 참고하는데, 이 순위에서 캘리포니아 대학들은 7개가 100위 내에 포진해 있다. 나머지 3개도 151-200위권, 201-300위권, 401-500위권에 있다. 우리나라 거점 국립대 중에는 서울대가 101-150위권에 있고, 경북대가 301-400위권, 부산대가 401-500위권에 있다. 김 교수의 분석을 감안하면, 이 공약은 서울대·경북대·부산대를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로 삼고 있는 셈이다. 100위 안에 들면 공약이 말하는 “세계적 연구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북대·부산대 외에도 세계적 연구대학에 근접해 있는 국내 대학이 꽤 여럿이라는 것이다. 201-300위 사이에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카이스트가, 301-400위 사이에 울산과기원이, 401-500위 사이에 경희대·포스텍이 있다. 카이스트와 울산과기원을 제외하면 모두 사립대이고 포스텍을 제외하곤 수도권에 몰려 있다. 국립인 카이스트는 약 700명, 울산과기원은 약 400명 수준의 학부생을 선발하는 비수도권 대학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 대학이 아니라 거점 국립대 3곳일까? 공약은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이었던 RISE를 이어받겠다고 못 박았다. 지방정부에 대학 지원 권한을 이양하는 정책인 RISE에서도 거점 국립대 및 국가중심 국립대에 대한 재정지원 분배를 강화하고, 지역혁신형 사립대학에 집중 투자하며 구조개선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이는 RISE 체계에서 사립대 몫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7월 23일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지역 사립대의 생존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요약하면, 새 정부의 고등교육 공약은 거점 국립대 투자 집중, 사립대 선별 지원, 사립대 퇴출 유도라는 골격에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이름을 덧씌운 것이다. 낙마한 이진숙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실현 방안을 만들 대략적인 방법이나 거친 수준의 로드맵 윤곽이라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끝내 새로울 것은 없었다. 후보자는 지명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거점 국립대뿐 아니라 국가중심 대학이나 지역 사립대와 동반 성장하겠다는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과 지역, 지자체 등 현장과의 의견 수렴 및 소통을 하면서 신중하게 방법론을 세우고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이는 김종영 교수의 책에서도 이미 예견할 수 있던 부분이다. 그는 자신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최소주의자 전략”이라고 부른다. 그는 “(매년 3,600억 원을 추가 지원받는) 정도로는 서울대 수준이 되는 데 부족하므로 거점 국립대 교수들은 산업체와 정부로부터 별도의 연구비(산학협력단 예산)를 자기 실력으로 받아 와야 한다. 이렇게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한다면 10여 년이 지나서는 적어도 연고대 수준의 대학이 된다. 지방대 9개가 서울대 수준이 되기 위해 각기 자율적으로 장기적인 발전 플랜을 작성하면 되지 여기서 구체적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262쪽)라고 적고 있다. 또한 그는 “국립대 개혁, 사립대 개혁, 전문대학 개혁, 대학입시, 학제, 법률, 제도 등 모든 것을 바꾸는”(260쪽) ‘최대주의자 전략’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국가는 3조 2,400억 원을 투입하고, 대학이 각자 계획을 세우며, 교수들은 연구비 따내는 노력을 하는 단순화한 원칙에 입각한 ‘서울대 10대 만들기’ 전략에서 교육부 장관이 할 일은 많지 않다. 공약은 이해관계자와의 협의를 거칠수록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두 개의 경쟁축을 전제한다. 하나는 서·연·고 혹은 SKY대 수준의 지역 연구중심대학 육성, 다른 하나는 지역 수험생이 수도권 소재 사립대보다 더 선호할 수 있는 지역 국립대 육성이다. 전자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이 수도권 대학의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연구중심대학의 기반인 연구비를 추가 확보해야 한다. 현재 연구비 수준을 그대로 둔 채 거점 국립대에 재분배하면, 세계적 수준에 근접한 수도권 사립대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논의는 다시 국가의 재정 투자 문제로 돌아 간다. 연구중심대학의 심장은 우수한 대학원생 확보와 탁월한 연구자 배출이다. 하지만 학령 인구 급감 속에서 우수 대학원생의 추가 확보는 갈수록 어려울 것이다. 서울대조차 대학원생 확보에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이 벽을 넘으려면, 재정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진 출처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또 다른 성공 조건은 수험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가이다. 결국 지역의 9개 대학이 입시에서 수도권 주요 대학보다 더 좋은 학생들을 유치해야 성공한 정책이라 평가받을 수 있다. 학벌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벌의 브랜드 가치를 두고 수도권 주요 사립대와 지역 국립대 간의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조사가 있다. 종로학원이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고1~3 학생과 N수생, 학부모 6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5.7%가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시행되면 진학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진학 후 해당 지역에 정착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47.0%가 ‘없다’고 답했다. 지역에 정착하거나 취업할 의사가 있다는 답변은 26.3%에 그쳤다. 진학 의사가 없는 이유로는 ‘지방으로 가고 싶지 않아서’(55.0%)가 ‘거점 국립대 경쟁력 향상이 불확실해서’(25.9%)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해 입시 경쟁이 완화될 것으로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아니다’(41.1%)가 ‘그렇다’(32.4%)보다 많았다. 이 조사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기간에 뚜렷한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정책이 과연 수도권 집중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오를 수 있을까. 민주당의 대선 정책공약집 271쪽에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확실히 줄이겠습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장학금과 학자금 확대를 다루고 있지만, 대상은 모든 대학생이다. 학벌과 상관없는 대학, 연구중심대학이 아닌 곳을 다니는 청년에게도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김종영 교수 역시 책에서 등록금 문제를 짚었다. 마지막에 그는 짧은 분량을 할애해 대학무상교육을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함께 “대학개혁의 원투펀치”로 제안한다. 그는 “모든 입학 가능 자원이 입학을 한다면 2022년에서 2025년까지 대학 재학 학생 수는 총 156만 명이 된다... 등록금을 사립대 기준으로 잡고 조금 느슨하게 계산한다면 예산은 11조 1,900억 원(7,176,000원×1,560,000명)이 소요된다”(316쪽)고 계산했다. 거점 국립대 집중 투자 3조 2,400억 원, 대학무상교육 11조 1,900억 원, 그리고 추가적인 연구비 예산을 수천억 원이라고 가정한다면 총 15조 원 안팎이다. 세밀하게 따지면 규모가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이 정도 고등교육 예산을 국민주권정부가 추가 확보할 수 있을까. 그 예산을 운용할 기회가 새로운 교육부 장관에게 주어질까. 이재명 정부의 첫 교육부 장관을 기다린다.  
2025-08-12 | hrights | 조회: 231 | 추천: 7
도재형/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정부는 산재 근절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헌법상 책무라는 점에서 일하는 시민의 목숨을 앗아가는 산재 사망사고에 관한 정부의 이런 태도는 마땅하다. 근로자는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산업 안전은 노동 인권과 괜찮은 일자리 확보의 관점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일부 기업은 산업 안전을 이윤과 효율성에 부수되는 요소로 취급하고, 쉽게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지난 SPC 사업장 방문에서 대통령의 일련의 질문들이 가리키는 지향점도 이것인 듯하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나마 우리나라 산업 안전의 질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2024년 임금근로자 1만 명당 사고 사망자 수를 뜻하는 ‘사고 사망 만인율’은 0.39‱로,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0.3명대로 진입하였다. 이 성과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2017년 이후 근로감독관의 증원 및 감독 행정 개선, 2021년 산업안전보건본부 신설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 수행의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경험한 건 산재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신기한 묘책이란 없다는 것이다. 단기간의 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단 오로지 정부의 꾸준한 정책 추진과 근로감독 강화, 산재 예방 캠페인의 집중과 지속 등을 통해 산업 안전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경험에 기반해서 산재 사망사고 감축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살필 몇 가지 사항을 논의하고자 한다.   사진 출처   먼저, 산업 안전은 사업주의 책임이란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1970년대 경제발전 시기 이후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산업 안전에 대해선 저규제 정책을 유지하였다. 산업 안전 규제는 최소한에 머물고 사업주의 재량을 넓게 인정했으며 산업 안전 시스템의 외주화를 늘리고, 제재는 관대했다. 산재 예방에 관한 기술적 접근에 집중하며 집행이 쉬운 백화점식 지원이 예방 정책의 중심이 되곤 했다. 이에 따라 산업 안전은 기업의 경영 상황에 맞춰 조절할 수 있고, 안전 시스템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거나 외주화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산업 현장에 퍼져 있었다. 사업주가 안전을 책임져야 할 범위 역시 근로계약 관계로 한정되다 보니, 이를 벗어난 노동자들의 안전은 방치되었다. 예컨대 최근의 질식 사고와 같이 통계상으론 중소기업 근로자의 사망사고로 집계되는 것 중 일부는 원청의 사업에서 일어남에도, 원청은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을 타개하고 경영주 책임을 부과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사업주에게 포괄적인 위험 예방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소홀히 한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함과 아울러 산업안전보건 법제의 보호 범위를 노무제공자 일반으로 확대하는 입법․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산업 안전은 국가의 헌법상 책무란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산재 사망사고의 예방을 위해선 정부의 각종 사업, 제도 개선 노력에 앞서 노사의 안전의식이 정착되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사업장에선 ‘안전 규정을 지키면 불편하고 손해다’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노사 교섭 과정에서도 임금․고용 문제가 주된 이슈이고 산업 안전 사항이 다뤄지는 빈도는 드물다. 산업 안전과 관련해선 정부가 노사의 요구에만 의존해선 안 되고, 노동 인권과 괜찮은 일자리의 보장이라는 시각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청년들의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 역시 임금뿐만 아니라 중소업체의 작업환경과 연결되어 있다. 지방 공단에 가보면 위험한 작업환경에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그보다 안전한 곳에선 내국인 청년들이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청년들이 서비스업에만 종사하려 한다고 지적하기 전에, 그들이 왜 그곳에서 일하려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청년 일자리 문제에서 산업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산업 안전의 정책 주체를 안정화하고 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2021년 고용노동부에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신설된 것 역시 이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이전까지 산업 안전 정책은 국(局) 단위에서 맡았으며 고용노동 정책 내 비중이 작고 고위직급 관료도 부족했다. 이렇게 고용노동부 조직 내에서 산업 안전 정책 주체의 입지가 열악하다 보니 정책 의제의 지속적 추진이 어려웠다. 단기적 정책이 남발되고 분산된 정책들이 추진되며, 핵심적 목표 달성에 집중하기보다 백화점식의 사업을 얼마나 많이 진행했는지가 정책 추진의 중심이 되곤 했다.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설치는 이러한 과거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그 본부의 설치 후에도 정책 수행에서 비슷한 문제점이 보인다면, 산업 안전 정책의 추진 주체를 강화할 추가적인 조직 개편을 검토해야 한다. 넷째, 근로감독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 안전 정책에서 흔히 간과되는 것이 근로감독관의 역량과 전문성이다. 근로감독관은 단순한 국가공무원이 아니라 노동법과 산업 안전 법제의 전문적 지식과 더불어 조사․수사 역량을 갖춰야 하는 전문직이다. 이 점에서 ILO 역시 근로감독관의 채용과 직무 수행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노동 정책에서 근로감독관의 채용과 직무 교육, 경력 관리는 낮은 순위에 머물러 있다. 단지 국가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감독관으로 배치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들이 근로감독 행정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실천지(實踐知)가 제대로 평가받으며 유능한 감독관이 보상받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산업 안전 캠페인도 중요하다. 우리가 음주 운전을 줄여간 과정을 되돌아보면 이것이 단속과 제재만큼 중요하단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정책 주체는 오랫동안 과도할 정도의 단속을 진행하면서 제재를 강화함과 아울러 ‘음주 음전은 살인과 같다’란 인식을 사회 일반에 심기 위한 캠페인을 계속 추진했다. 지속적인 캠페인은 시민들의 음주 운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고, 그것은 다시 단속 및 처벌에 대한 수용을 유도할 수 있었다. 산업 안전도 마찬가지다. 산업 안전과 관련해선 정말 많은 이슈가 있지만, 특히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핵심 목표를 정해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단속과 처벌을 병행해야 한다. 일하는 시민 1명의 목숨을 구하는 건 온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 노동자의 안전은 경제적 이익에 종속되어선 안 된다. 이 마음으로 끈기를 갖고 경험과 증거에 기반해 산재 사망사고 감축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25-08-06 | hrights | 조회: 97 | 추천: 8
윤동호/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   형사절차는 어떤 행위가 유죄인가, 무죄인가, 곧 범죄혐의의 유·무를 판단하는 절차이다. 이는 흔히 수사, 기소, 재판 3단계로 진행된다. 그런데 각 단계의 권한을 누가, 어떻게, 어느 정도로 행사할 것인지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특히 검사(檢事)의 탄생 배경과 권한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다만 수사와 재판을 연결하는 기능은 기본이다. 검사는 수사로 밝혀진 범죄혐의자의 처벌을 법원에 요구하는 역할을 한다. 공소제기는 각국 검사의 공통 업무이다. 우선 영국의 검사는 경찰에서 분리된 것이다. 경찰이 수사는 물론 기소 업무도 담당했는데, 강경한 범죄통제정책의 기조 아래 수사의 과도한 영향을 받아서 무리한 기소 등 기소권의 남용이 문제되자, 국가기소청을 신설하여 경찰이 수행하던 기소기능을 분리한다. 반면 독일의 검사는 법원에서 분리된 것이다. 프랑스와 달리 혁명의 산물이 아니고 자유주의적 법치국가 사고를 수용한 것도 아니다. 기소와 재판이 분리되지 않은 규문주의에서 법원의 지나친 업무부담으로 인한 사건 처리의 비효율성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또 검사를 재판에 관여하게 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쳐서 정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반영할 의도가 있었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공익의 대표자로서 공소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검사가 탄생할 때부터 과제였다. 독일이 기소법정주의를 채택한 이유이다.   사진 출처    한국의 검사는 많은 권한을 독점하면서 형사절차를 주도해 왔으나, 권한의 오남용이 심각하여, 특히 수사권의 통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청법을 개정하여 검찰청 검사의 수사권을 4가지 유형의 범죄, 곧 ①부패범죄, ②경제범죄, ③경찰공무원(특별사법경찰관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무원 포함)범죄, 이들 범죄 및 경찰이 송치한 범죄(본래범죄)와 ④관련 범죄로 제한하고, 이와 함께 자신이 수사를 개시한 범죄에 대하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기능적 분리에도 불구하고 검찰청 검사의 권한 남용의 폐해가 사라지지 않고, 검찰청 검사의 수사 대상 범죄 개념의 불명확성으로 인한 혼란이 발생하자,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회에서 검찰청법 폐지법률안과 함께 검찰청을 대신하는 기구를 신설하는 이른바 검찰개혁법안이 나왔다.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공소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국가수사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검찰청 검사가 위 4가지 유형의 범죄에 대해 행사하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조직적으로 분리하여, 수사권은 신설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기소권은 신설하는 공소청에 각각 부여하는 것이다. 이로써 검찰청은 중수청과 공소청으로 분리된다. 검찰개혁법안의 지향점은 옳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조직적으로 분리함으로써 권한 오남용을 강력하게 통제하여 인권보장 내지 적법절차라는 형사절차의 이념에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와 함께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형사절차의 효율성이다. 수사권 분산으로 인한 경합의 원인 개념인 관련 범죄의 의미는 어떻게 규정하든지 해석적 논란이 될 수 있으나 넓은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수청 법안은 중대범죄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것으로서 중대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인정되며 중대범죄자가 범한 것을 관련 범죄로 정의하고 있고, 공수처법도 이런 방식으로 관련 범죄를 정의하고 있다. 검찰청법은 이보다 넓게 본래 범죄의 수사과정에서 인지한 것으로서 이와 직접 관련성이 인정되는 것을 관련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넓게, 예컨대 중대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인정되는 범죄를 관련 범죄로 중수청 법안에 규정하는 것이 수사권 분산의 취지에 부합한다. 국수본은 수사 대상 범죄에 제한이 없고, 그중 일부의 범죄에 대해 중수청과 공수처가 수사권을 갖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수사권 경합은 공수처와 검찰청 사이에 주로 문제가 되었으나 관련 사건은 많지 않았다. 중수청과 공수처 사이의 수사권 경합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조정하기 위한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국가수사위원회(국수위)를 두는 것은 형사사법의 비효율이다. 수사권 경합은 수사기관간 자율적 협력으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타율적 조정은 수사의지를 꺾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의 불송치결정은 물론 공수처의 불기소결정도 이의신청의 대상으로 하고, 이런 사건에 대한 조사와 처리를 국수위에 설치되는 국가수사심의위원회의 권한으로 한 것도 매우 비효율적이다. 국가수사심의위원회의 기각 결정에 대해 바로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비효율적이고 신설되는 공소청을 의미 없게 한다. 국가수사심의위원회가 재수사를 요구하거나 검사에게 송치할 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수사기관이 이에 불응하는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대해 고소인이 이의신청을 하면 그 사건은 검찰청 검사에게 송치되도록 하고 있다. 중수청이나 공수처의 불송치결정에 대해 고소인의 이의신청이 있으면 공소청 검사에게 송치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국수본이나 중수청 또는 공수처가 공소청으로 송치한 사건에 대해 공소청이 해당 수사기관에 보완수사를 요구하지 않고 직접 보완수사를 하도록 할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으나 이를 인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보완수사의 대상은 송치한 사건 및 이와 관련 사건에 한정되므로 오남용의 여지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수사권과 기소권의 조직적 분리 원칙을 공수처에도 적용할지, 아니면 예외로서 현재처럼 유지할지, 유지한다면 현재처럼 기소권을 예외적으로 인정할지, 그 범위를 더욱 좁힐지, 아니면 그 범위를 확대하여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킬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마치 공소청의 기소유예권한처럼, 범죄혐의가 인정되지만 공소청에 송치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중수청이나 국수본에도 부여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나, 이를 인정하는 것이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산 취지와 피의자의 인권보장 내지 적법절차 이념에 부합한다. 검사의 불기소결정에 대한 통제장치, 특히 기소유예결정에 대한 피의자의 불복절차의 제도화 여부 및 어떤 형태로 할 것인지도 논의가 필요하다. 즉결절차, 약식절차, 정식절차, 배심절차 4가지로 형태로 운영되는 현행 기소와 재판절차가 형사절차의 이념을 반영하고 있는지, 또 효율적인지 검토 및 논의가 필요하다. 형사절차의 개혁 논의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배심제의 확대 내지 강화가 쉽게 거론된다. 그러나 미국의 형사사법과 배심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95% 이상 사건의 효율적 처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이다. 그런데 이는 지나치게 효율성만을 추구하면서 형사정의 이념은 포기한 제도이다.   ※ 검찰개혁법안은 형사절차 개혁의 시작에 불과 현행 형사절차 전반의 개선과 함께 세부 사항 면밀한 검토 필요 형사절차 개혁 논의에서 형사절차의 이념은 물론 효율성도 고려해야    
2025-07-29 | hrights | 조회: 245 | 추천: 6
이윤/ 경찰관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인간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계속 반복하곤 한다. 검찰개혁도 1991년 시작되어 30년 이상 계속되었는데, 항상 비슷한 모양새로 실패했다. 이번엔 좀 제대로 하면 좋겠다. 일부 정치인은 추석 전까지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고 한다. 그 속도감과 추진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용두사미였던 과거 기억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마다 반복해서 나오는 검찰의 전략은 경찰 붙잡고 늘어지기다. ①언론에 비리 경찰관 기사를 쏟아내고, ②일부 교수나 변호사가 경찰이 무능하고 부패하기 때문에 검사가 통제해야 한다고 기고문을 쓰고, ③이런 기사와 글을 근거로 결정 주체를 압박한 후, ④검사가 경찰을 통제하는 방안이 포함된 검찰개혁 방안을 의견으로 제시하여 자신들의 수사지휘권과 직접수사권을 유지한다. ‘검찰개혁을 하면 경찰 통제가 어려워지고, 그 결과 수사가 엉망이 되면 사회가 혼란해진다’라는 불안감을 조성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일종의 전 국민 가스라이팅 전략이다. 그런데 우리는 경찰 사법통제의 주체가 꼭 검사일 필요는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에는 검찰의 물귀신 전략에 넘어가지 않으면 좋겠다. 검찰개혁을 준비하는 분들은 검찰개혁이 필요했던 원래의 이유를 잊지 말고 개혁안을 마련하길 바란다.  ‘검찰의 힘을 빼면 경찰이 너무 강해진다’는 우려는 너무 이분법적인 사고다. 그렇게 경찰의 힘이 세질 것이 걱정된다면 제발 경찰이 하고 있는 수사들 좀 다른 곳에 나눠주면 좋겠다. 경찰은 지금 하고 있는 사건들만으로도 벅차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성폭력, 성매매 사건은 여성가족부로, 소년범과 학교폭력은 교육부로, 교통사고는 국토교통부로, 해킹범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가져가 수사하면 좋겠다. 수사를 꼭 경찰이나 검찰이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와 좀 다르긴 하지만 미국에는 수백 개의 법집행기관(Law Enforcement Agency)이 존재한다. 각설하고 추석 이후 구현될 개혁된 범죄수사 체계에 다음 사항도 포함되길 기대한다.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 이 주제는 워낙 강한 의지로 추진되고 법안도 발의되었으니, 또다시 적당히 검찰을 그대로 두면서 수사검사와 공소검사를 분리한다는 식의 하나마나한 개선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완전한 분리에는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의 소속 부처를 분리하는 것도 포함된다. 만일 법무부에 두 청을 함께 두면 법무부가 검사들에게 잠식되었을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다만 같은 의미에서 중대범죄수사청을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두어 거대 수사기관 두 개가 한 부처에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사진 출처   경·검 협력은 긴밀하게 2020년 형사소송법 개정 후 제정된 대통령령이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이다. 여기에 ‘상호협력’이 명시되어 있으나 현실에서는 거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전처럼 검사가 서면으로 보완수사요구나 재수사요청을 할 뿐인데, 이 두 가지는 오히려 경찰 수사가 장기화된 원인이 되었다.  공소청이 만들어지면 소속 검사의 역할은 기소여부 검토·결정과 공소유지가 될 터인데, 이에 필요한 각종 인적·물적 증거 제공은 결국 경찰이 하게 된다. 그러니 수사 초기부터 증거와 적법 절차 등에 대해 서로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므로, 영국처럼 경찰관서에 검사를 파견하여 수사관과 대면으로 상의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하루종일 상주하기 어려우면 하루 중 3~4시간 만이라도 경찰서에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법률전문가인 검사와 수사전문가인 경찰이 서로 도시락 까먹으면서 머리를 맞대고 사건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경찰서에 와서 체포·구속된 피의자를 유치장에서 바로 면담하여 불법 체포·구속에 의한 것이 아닌지 확인함으로써 유치인 인권도 직접 보호하게 한다면 일거양득이다.   사건 이첩은 양방향으로 경찰서, 시도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는 직접 수사하는 부서가 각각 따로 있다. 여기에 중대범죄수사청이 또 생길 예정이다. 이 수사부서 간 사건 관할이 정해질 것인데,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정해야 서로 ‘네 사건, 내 사건’ 하고 미루거나 다투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보통 상급기관 수사부서에서 하급기관 수사부서로 사건을 이첩하기는 했지만, 역으로 하급기관에서 상급기관으로 이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다만 여성청소년 기능은 시도청과 경찰서 간 사건 관할이 명확하여 서로 이첩하고 있다). 관할이 불명확하여 지금까지처럼 일방향으로만 사건을 이첩하게 하면 결국 가장 하부구조에 있는 경찰서 수사관만 죽어난다. 새로 설치될 국가수사위원회에 기관 간 사건 관할 관련 분쟁 조정 기능도 있으면 좋겠다.   피해자 보호는 경찰에게 범죄 피해자는 언제 있을지 모를 가해자의 보복이나 재범 위험 때문에 불안하다. 경찰은 112신고 등으로 가장 처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피해자를 만나고 상황을 파악하므로 피해자 보호조치, 즉 접근금지나 유치장 유치, 전자발찌 착용의 필요성을 잘 알 수 있다. 이런 피해자 보호조치는 수사가 아니므로 경찰과 법원 사이에 검사가 개입할 이유는 없다. 물론 행동의 자유를 억압하기에 강제적 조치이므로 인권보호 차원에서 검토자가 하나 더 있는 것이 좋겠지만, 시간이 촉박한 경우도 있고, 서면으로만 보호조치 필요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어 큰 의미가 없다. 앞으로 공소청과 중수청으로 조직이 분리되면 그나마 그 판단을 해 줄 검사도 없어진다. 그러므로 경찰이 법원에 직접 청구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되길 바란다. 범죄피해자구조금 등 피해자 지원 업무도 경찰이 주체가 되어 담당하면 좋겠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고 해서 경찰이 기소까지 하지는 않는다. 혹자들은 정치경찰 등장이 우려된다느니, 거대 경찰이 탄생한다느니 하면서 불안을 부추기지만, 경찰에게는 기소권도 없고, 강제수사는 법원의 사법통제를 받으며, 감사원의 행정통제도 받는다. 또한 공수처 등 견제할 다른 수사기관도 많으므로 지금 검찰과 비교하면 발목만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경찰 핑계를 대면서 검찰개혁을 유야무야 만들려는 것은 물귀신 작전일 뿐이다. 개혁 대상인 검찰과는 합의나 협의도 필요하지 않다. 검찰개혁은 대한민국이 한 걸음 도약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꿋꿋하게 밀고 나아가야 한다.  
2025-07-14 | hrights | 조회: 302 | 추천: 13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2024년 12월은 철저히 국회의 시간이었습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에서 신속하게 대응했기에 대한민국은 암흑 속 벼랑 끝 추락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대거 투표 불참으로 한 차례의 좌절을 겪긴 했지만, 12월 14일 결국 204명의 찬성으로 대통령 윤석열씨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습니다. K-민주주의의 시민들은 여의도에서 겨울 찬바람을 견디며 국회 앞을 지켰고 좌절과 환희의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내전에 준할 정도로 대통령경호처와 공수처, 경찰의 물리적 충돌 직전 상황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법원이 발부한 적법한 체포영장 집행에 저항하는 대통령실과 경호처를 두둔하며 법치주의를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또 희한한 셈법으로 대통령 윤석열씨를 석방해 준 판사와 기다렸다는 듯 즉시 항고를 포기한 검찰 탓에 말도 못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기도 했습니다. 4월 4일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석 달은 그야말로 조바심과 불안의 나날이었습니다. 이때까지는 법원과 헌법재판소 사법부의 시간이었습니다. 뭐 그 이후 한강에 개를 끌고 유유자적하거나 분당 어딘가에서 맛집 투어를 하는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씨의 모습이 언론 등에 공개되면서 국민의 복장이 터지기도 했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K-민주주의가 가진 역동적이면서도 웅숭깊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결국 사필귀정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차분하게 내란 특검 및 3대 특검의 수사를 지켜봐야겠지요. 이제는 다시 돌고 돌아 국회의 시간이 됐습니다. 7월 임시국회가 7일 시작했습니다. 지난 21대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여야가 바뀐 첫 번째 국회가 되겠습니다. 여러 장관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비롯해 시급한 입법 과제가 많습니다. 여야 공히 분주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이미 얼개가 잡힌 검찰개혁 관련 법안을 국민적 동의와 지지 속에서 잘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검찰개혁 4법은 ▲검찰청 폐지법 ▲공소청 설치법 ▲중수청 설치법 ▲국가수사위원회법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검사의 직무를 기소·공소 유지로 한정하고, 대검찰청과 지방검찰청을 폐지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수사 권한은 중수청·경찰 등으로 이관하고, 이들 수사기관을 총괄·감독할 국가수사위원회는 별도로 설치하게 될 것입니다. 시한을 정해놓고 서두르기보다는 빈틈없이 꼼꼼히 준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겪은 가슴 아픈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어설픈 검찰 개혁에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며 저항했던 검찰은 쉽게 제어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수사권을 갖게 된 경찰은 수사권을 버거워하며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내비쳤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됐죠. 물론 그렇다고 마냥 하세월 해서는 안 될 테고요. 제일 좋은 것은 ‘신속하게 제대로’ 하는 것이겠죠. 또한 그동안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이른바 법안 거부권 때문에 많은 민생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씨와 한덕수, 최상목 2명의 대통령 권한대행은 무려 42차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야당 대표와 대화 요구를 “피의자와 만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말로 거부하고, 국회 개원식에도 찾지 않은 윤석열 정부의 철저한 반(反)정치가 낳은 ‘괴물 정치’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최근 상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 소위를 통과했으니 이는 나쁘지 않은 신호입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등을 담은 이른바 ‘노란봉투법’도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법안입니다. 농업 개선과 농민 민생 과제를 담은 법안을 ‘농망법’이라고 부르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던 송미령 농림부 장관이 유임돼 농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긴 했습니다. 하지만 양곡관리법, 농수산물 유통·가격 안정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등 농업4법에 대한 농림부의 접근법이 윤석열 정부와 같지 않을 것임이 분명할 테니 국회에서 더욱 적극적인 모습으로 노력해 주기만을 바랍니다.   사진 출처   특히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은 국회, 특히 정부여당 민주당의 개혁 의지를 보여줄 좋은 기회입니다. 그간 야당일 때 강력히 요구하다 정권만 잡으면 언론을 제 편으로 삼으려 언론 개혁을 외면하거나 느슨해지는 모습이 무수히 반복됐습니다. 늘 권력을 내주고서야 비로소 언론 개혁을 외치니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민주당으로서는 그동안 21대와 22대 국회를 거치며 숱한 거부권 앞에서 좌절하며 무기력과 분노가 교차했겠지요. 이제 부디 그 과거에서 깔끔하게 벗어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같은 시간 동안 국민의힘은 내란을 옹호하고 동조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처절히 반성하고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씨를 여전히 두둔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확실한 평가가 필요할 것입니다. 향후 불가피하게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해병 특검 등 3대 특검의 수사를 받아야 하는 국민의힘 의원 또는 정치인들도 나올 수밖에 없겠지요. 그럴 때 관성적으로 비판하거나 그들을 감싸는 발언이나 행동들이 나온다면 당 전체가 ‘내란 옹호 정당’이라는 틀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단호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임시국회 활동 과정에서 정치적 셈법, 당리당략을 내려놓고 민생 개혁에 전념하는 모습으로 국민의 평가를 새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관성적인 정부 정책 비판이나 장관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아닌 흠집내기, 인신공격 등에만 머무른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겠지요. 부디 한동안 계속될 야당의 역할과 책무에 대해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의힘이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자리잡을 때 의회민주주의, 나아가 민주주의 자체가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돌아온 국회의 시간, 여당과 야당 모두 소중하고 알뜰하게 진짜 주권자 국민들과 함께 잘 보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2025-07-08 | hrights | 조회: 262 | 추천: 7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민주 대한의 신이 춤춘다. 목숨을 걸다시피 한 민주시민의 끈질긴 주권 행사의 결기로 3년 남짓의 절망적인 통치가 빚은 죽음의 어둠을 뚫고서 마침내 모두가 희망을 걸 수 있는 새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 어찌 덩실덩실 춤을 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던 철학자 니체는 발가벗고서 춤추는 신만은 찬양한다고 했다. 아마도 정치를 담당하는 신이 있다면, 그는 지금쯤 한반도 상공에서 발가벗고서 춤을 추면서 날아다니고 있음에 틀림이 없으리라. 신이란 모름지기 전(全) 우주적일 수밖에, 그러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승리를 기리는 저 발가벗은 신의 춤사위는 반민주 ‧ 반인권의 원한과 복수의 전쟁으로 얼룩진 지구촌 전체에 그 운율의 파장을 드리울 것이다.   2. 파시즘적인 집단의 광기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빛이 강렬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대대적인 살해의 폭력을 획책한 자들과 그 실패를 통탄하면서 못내 아쉬워하는 저 섬뜩한 반민주 ‧ 반헌법의 파시즘적 어둠의 세력은 여전하다. 저들은 민주시민의 승리를, 갑작스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돌풍과 소나기, 스콜과 같을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잠시 호흡을 고르는 듯 움츠리고서 잠행하면서 호시탐탐 재기의 기회를 노릴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저들은 파시즘적인 지배의 가학적 폭력과 피지배의 피학적 쾌감의 요철 결합으로 묶인 세력이며, 그래서 비판적 반성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들은 의식적으로는 불안해할지라도 무의식에서는 전혀 절망하지 않는다. 무지와 그에 따른 광기가 그들의 무의식을 장악하고서 끝내 승리하리라는 완전한 착각에 빠져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저들이 갖은 부정한 수단을 써서 그저 권력과 부를 추구한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바탕에 광기로 무장한 신앙이 작동하고 있다. ‘태극기 부대’니 ‘세이브코리아’니 하면서 윤석열 탄핵 반대에 수시로 수십만이 모여 집단적 광기를 뿜어내고, 급기야 ‘국민 저항권’이니 ‘순교’ 운운하면서 법원으로 쳐들어가 광포한 파괴적인 폭력을 일삼았지 않았던가. 불과 두 달 남짓 전쯤 윤석열이 관저에서 서초동 사저로 가면서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도착적 망상의 발언을 하고, 며칠 뒤 ‘세이브코리아’의 사이비 선동가 전한길이 “그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부활했듯, 윤 전 대통령도 파면 후 다시 부활했으며” 운운하지 않았던가. 망상이라거나 자기도취 또는 편집증적 도착과 같은 학술적인 용어를 쓸 것 없이, 그냥 한 마디로 정확하게 집단으로 미친 것이다.   사진 출처   흔히 말하듯 곱게 미치면 예술적인 천재성이라도 드러낼 수도 있지만, 이건 창조적인 광기가 아니라 철저히 파괴적인 그것도 집단적인 광기다. 코로나 사태 때 보았던 이만희의 신천지 집단이 대거 모여서 어떤 미친 짓을 하는지 다들 보았다. 주변에 자기처럼 미친 자들이 많으면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비판적으로 반성하면서 성찰하는 자가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결코 자기 비판적인 합리적 사유를 할 수 없다. 자기의 생각과 행동이 정당하고 옳다는 사실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이를 주변에서 확인하면서 더욱 강고하게 만들어 나갈 뿐이다. 그렇게 해서 얄팍은 앎은 신앙으로 굳어진다. 누가 더 신앙이 굳건한가를 가늠하게 되고, 결국에는 가장 강력한 신앙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자가 가장 양심적이고 가장 진실하며, 따라서 가장 위대한 자로서 숭배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지시 없이는 제대로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는 '미성숙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 뒤 숭배 대상인 자가 자신을 비인격적인 폭력으로 대하더라도 오히려 거기에서 피학적인 쾌감을 느끼며 즐기는 자가 된다. 한편으로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신앙을 조금이라도 비난하기라도 하면 그 누군가를 악마와 같은 적으로 여겨 폭력적으로 공격함으로써 가학적인 쾌감을 느끼며 즐기게 된다. 문제는 저들의 집단적 광기를 형성하는 구도가 복잡하다는 점이다.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서 보았듯이, 우선 집단의 규모가 크고 그 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있다. 배타적인 기독교 신앙의 틀이 중심에서 작동하는 가운데 주변에서 대중적인 무속이 결합해 있는가 하면, 그 안팎으로 자본주의적인 맹목적인 물신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그 위에 사이비 정치적인 진영 논리를 역용한 권력욕이 얹혀 뒤엉켜 있다. 게다가 진보-평등-빨갱이-반미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프레임과 자유-반공-반북-반중이라는 정확하지도 않은 뜻의 소위 가치 이념이 작동하고 심지어 뉴라이트-친일의 그림자마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집단적 광기의 실타래를 어디에서부터 접근해 어디로 치고 들어가 풀어내야 하는가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일 정도다. 알렉산더 대왕이 복잡하게 얽힌 고르디우스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렸을 때 썼던 그 칼을 찾을 수도 없다.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복잡미묘한 집단적 광기의 세력이 지난한 민주 투쟁 끝에 탄생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발목을 붙들고 비틀어 부러뜨리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힌 저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적 세력과 대대적인 일전을 벌일 수밖에 없고, 최고도로 현명한 통치술을 발휘하여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3. 이제 이재명 대통령이다. 자칭 제1 시민일 뿐이라는 새 대통령 이재명은 그동안 숱한 형태의 죽음들을 기적처럼 극복함으로써 위기 때마다 민주시민이 결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 위력을 이제 민주주의의 이념을 떠받쳐 실질적인 현실로 만드는 데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민생 경제의 대대적인 회복에 집중한다. 권력을 위임받은 자의 1시간이 5,000만 시간이라는 그의 놀라운 말대로 그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 권력을 전심전력으로 동시에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위력을 바탕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건만 그사이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정확한 착각이 일 정도다. 희망을 걸 수밖에 없음을 넘어서서 충분히 희망을 걸게끔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고마울 따름이다. 다들 느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표정은 좋은 의미에서 야누스적이다. 온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와 웃음을 가득 담는가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바로 엄격하고 신중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을 짓는다.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낙관적인 성품을 지녔는가 하면, 그와 동시에 공적인 일을 대함에 있어 최고도의 집중력으로 공정함과 정확성을 기하고 그 결과 최고의 실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태도를 지닌 것이다. 누구는 그가 어릴 때부터 워낙 극심한 난관들을 뚫고 나왔기 때문에 특히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동감을 지니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마치 맹자의 성선설을 입증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본래 그는 그런 사람이라고 진단한다. 천성적으로 낙관적이고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사람 자체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생각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반장처럼 마음대로 남을 때리고 벌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자신의 악성을 고백하듯 말하기도 하는 건 역설적으로 그가 워낙 그럴 수 없게끔 선성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낙관적이고 선함을 타고났다고 해서 고집이 없는 건 전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집이 세다. 얼마든지 함께 잘 살 수 있는데 무엇이 왜 이처럼 다들 나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 치게끔 하는가. 이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그 고집은 오히려 그의 선성에 따른 성실함에서 온다고 여겨진다. 그는 자신의 바람이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만인을 위한 것임을 확신하기에 그 자신의 바람에 더없이 자부심을 지닌 인물로 보인다. 그러한 자부심을 실질적인 자신감으로 바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위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했을 것이며, 이를 위해 그 누구 못지않게 최대한의 노력을 반복해서 기울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가 학습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고들 말한다. 그럴 것이다. 내면에서부터 길러온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이 워낙 강한 사람은 흔히 말하듯이 머리가 뛰어날 수밖에 없다. 집중하되 집착하지 않고, 두루 살피되 그 각각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머리가 좋은 사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면 실천적 지혜가 뛰어난 사람의 특징이다. 이런 인격의 소유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우리 민주대한의 국민은 이재명 대통령 자신이 “저는 국민 여러분의 집단지성을 믿습니다.”라고 숱하게 말한 것처럼, 얼마나 현명한가. 한 개인이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만인을 계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인에 대한 삶의 모델이 될 수는 있다. 대통령은 그가 어떻게 위임받은 권력을 지혜롭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심지어 국민 각자가 자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그걸 현실화할 수 있는 위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자극을 줄 수도 있고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국민 각자가 의지를 곧추세워 노력함으로써 이성을 기반으로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   사진 출처   이재명 대통령 그는 일찍이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지는 사회, 즉 ‘기본사회’라고 하는 국가 공동체 형성의 이념을 제시했고,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등의 실천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실제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 위원회’라고 하는 대통령 직속 국가기구의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 그가 ‘먹사니즘’에 이어 ‘잘사니즘’으로 나아가자고 한다거나 다소 부족하더라도 다함께 잘 사는 ‘대동사회’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은 그 바탕에서 보면 국민 각자가 자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실현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갖추는 데 필요한 국가 사회의 기본 골격을 세우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기대하건대 만약 이러한 ‘잘사니즘’을 바탕으로 한 기본사회가 확실하게 틀을 갖춘다면, 저 앞에서 말한 파시즘적 집단적 광기의 세력은 현저히 약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복잡하게 엉킨 저 광기의 실타래를 직접 일일이 푸는 게 아니라,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린 것처럼, 근본적인 문제를 치고 들어가 해결하는 셈이다. 부디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큰 바람이 성취될 수도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이재명 대통령의 현명함을 북돋워야 할 것이다.    
2025-07-01 | hrights | 조회: 486 | 추천: 11
이동우 / 변호사 대법관 증원을 매개로 법원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의견이든 그 바탕에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한 나름의 기본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계와 역할이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한 가장 큰 쟁점은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허용할 것인가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 공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단 하나,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질 당시 최고법원의 위상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 대법원이 이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설사 그 재판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해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대법관 증원 논란으로 시작된 사법개혁의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매우 첨예하게 대립한다. 사진 출처 원문 보러가기 찬성하는 측은 헌법재판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재판이란 가장 대표적인 국가의 공권력 행사이며 이러한 공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를 판단하는 제도가 헌법소원이기 때문에 재판도 당연히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합법이라는 미명하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재판을 바로잡지 않으면 헌법은 그저 허울 좋은 문구에 지나지 않아 현실적인 힘을 갖기 어렵다는 점도 이유로 든다. 이에 반해 반대하는 측은 재판이 사실상 4심제로 되기 때문에 재판의 최종 결론이 더욱 늦어지고 그에 따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보게 된다며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반대한다. 지금도 굳이 3심인 대법원까지 가지 않아도 될 사건들이 대법원까지 오기 때문에 재판이 오래 걸리는데,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허용되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하리라는 것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다. 찬성과 반대 모두 국민을 위한 논거를 들고 있고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재판 역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헌법재판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1920년 오스트리아에서 세계 최초로 생겼다. 정확히는 체코에서 몇 달 앞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별다른 활약이 없었기에 거의 모든 문헌은 오스트리아의 헌법재판소를 세계 최초라고 지칭한다. 오스트리아의 헌법재판소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흔히 법실증주의자로 알려진 한스켈젠이다. 우리나라에서 법학을 배운 사람들은 대부분 법실증주의와 한스켈젠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인상이 있지만, 사실 한스켈젠은 혼란스러운 오스트리아에서 헌법의 가치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한 학자였다. 그의 사상적 기반과 현실적인 노력을 통해 오스트리아는 세계에서 최초로 헌법이 현실적인 규범력, 즉 어떠한 행위가 헌법에 위반되느냐 되지 않느냐를 직접 심사하는 기관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바로 헌법재판소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제일 과제는 바로 국민의 기본권 보호다. 헌법재판소를 기본권 최후의 보루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표현도 바로 헌법재판소의 설립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어떤 행위든 그것이 헌법에 위반될 때는 그 행위를 무효로 만들 권한을 갖게 된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설립 원리에 따르면 국가의 행위 중 대표적인 재판에 대해서도 당연히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있는지를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 출처 원문 보러가기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도 허용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은 국회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는 나라에서는 대통령도 국회와 동등한 수준의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지만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기관의 가장 큰 권위는 국회에 부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헌법도 국민의 기본권이 가장 앞에 있고 그다음이 바로 국회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다. 국회가 가장 권위 있는 이유는 주권자인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곳이고 그곳에서 국가를 운영할 기본적인 규칙인 법률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국회에서 만들어진 법률조차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 효력을 정지하거나 무효로 만드는 기관이 바로 헌법재판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최고의 권위를 갖는 국회의 활동에 대해서도 심사를 할 수 있는 기관이 민주적 정당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심사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다. 헌법을 말 그대로 최고의 규칙으로 삼겠다는 선언이자 현실적인 노력이 헌법재판소인데 그 과정에서 법원만을 예외로 삼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찬성하면 반대 측이 우려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모든 재판이 사실상 4심제로 이루어진다면 분명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는 재판제도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결책이 존재한다. 현재와 같은 재판시스템에서 4심제는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1심부터 3심까지 평균 2년이 넘게 걸리는 지금의 재판속도를 높인다면 4심제가 그렇게 큰 부작용이 아닐 수 있다. 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배심제를 통해 사실관계에 관한 판단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바꿀 수 없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도 형식적으로는 3심인 대법원은 법률심이므로 사실인정을 이유로 하는 3심의 제기, 즉 대법원에 대한 재판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법원의 의지에 따라 사실인정 자체를 다르게 판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대부분의 재판이 3심제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배심제를 통해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다면 최종심이 3심이든 4심이든 실질적인 대부분의 재판은 2심에서 끝날 수 있기에 4심제로 인한 재판지연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계에 대해서는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의견이 있고 모두 나름의 합당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와 설립목적을 고려한다면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는지를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와 함께 대법원은 물론 헌법재판소의 구성과 운영에 대해서도 변화가 필요하나 이에 대한 논의는 그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번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2025-06-18 | hrights | 조회: 186 | 추천: 5
  장은주/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마침내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그가 선도해서 만들어 낼 ‘진짜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그런데 그 진짜 대한민국은 어떤 대한민국일까? 그는 선거 기간 중 민주당을 ‘중도 보수’로 위치 지우기도 하고 최근 들어서는 아주 자주 ‘실용주의’를 표방하기도 했는데, 이런 데서는 그가 꿈꾸는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 같은 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그리고 자신의 이념적 지향에 대한 예각화를 피하고자 했던 이번 선거 운동 과정에서도 가끔, ‘억강부약(抑强扶弱) 대동세상(大同世上)’을 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곤 했다. 아마도 이 표현이 그가 만들어 보려 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는 건 아닐까 싶다. 이를 좀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그가 말하는 ‘대동세상’은 그의 궁극적인 정치적 이상을 담고 있는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동세상 또는 ‘대동사회’는 사실 오랫동안 유교 전통이 추구해 왔던 정치적 이상을 담고 있다. 이런 전통적인 정치적 이상이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구호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이 대동 사회의 이상은 ‘천하위공(天下爲公)’, 곧 ‘세상은 모두의 것이다’라는 걸 기본 원리로 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유교적 평등주의의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원리는 현대적 맥락에서 볼 때 아주 강한 복지국가에 대한 지향을 담고 있다.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은 대동 세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람들은 자기 부모만을 친하지 않고 자기 아들만을 귀여워하지 않는다. 나이 든 사람들이 그 삶을 편안히 마치고, 젊은이들은 쓰이는 바가 있으며, 어린이들은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고, 홀아비·과부·고아, 자식 없는 노인, 병든 자들이 모두 부양되며, 남자는 모두 일정한 직분이 있고, 여자는 모두 시집갈 곳이 있도록 한다. 땅바닥에 떨어진 남의 재물을 반드시 자기가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들은 자기가 하려 하지만, 반드시 자기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간사한 모의가 끊어져 일어나지 않고 도둑이나 폭력배들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을 열어놓고 닫지 않는다.” 이 대동세상의 이상은 우리 인간의 본원적 취약성과 의존성을 직시하면서 이를 보듬어 돌보는 게 국가라는 정치적 질서가 해결해야 하는 최우선적인 과제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인간은 누구든 상처 입기 쉽고 아프고 외로울 때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데, 국가의 궁극적 목적은 누구든 그런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대동세상에서는,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생존할 수 없는 유아동기의 유약함과 생리적 노화 및 병듦, 그리고 홀아비나 과부가 되며 고아가 되거나 늙어 혼자가 되는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는 사회적 외로움에 이르기까지, 누구든 인간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불가피한 상처 또는 고통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아야 한다. 인간의 취약성이나 타인에 대한 의존성은 결코 어떤 사회적 악이나 병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사실이 지시하는 돌봄의 필요나 상호적 유대 및 호혜의 당위는 정치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도덕적 과제다. 우리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기본 사회’의 이상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진 출처: 원문 보러 가기     한편 ‘억강부약’, 곧 강자는 억누르고 약자는 힘을 북돋는 건 그와 같은 대동세상을 이루기 위한 실천적 방법론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을 ‘극단적 좌파’로 몰아가기 위해 일부에서 이해하듯이 강자의 자유와 지위를 공격하고 빼앗아 약자에게 나누어주자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날의 맥락에서 억강부약은 민주주의의 이상과 더불어 이해되어야 한다. 강자를 억누르자는 건, 무엇보다도 기득권 세력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 등에서 부적절하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가 권력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약자들을 북돋우자는 건, 곧 사회적 약자들이 기득권 세력의 노골적이거나 은밀한 ‘지배’의 시도에 맞서 존엄성과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다양한 보호 장치와 역능화(empowerment)를 위한 수단을 갖도록 하자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원칙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을 도출할 수 있는가는 반드시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대략적으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실업에 시달리는 청년 계층, 비정규직 노동자들, 청소부나 택배 노동자들 같은 저임금 육체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소상공인 등 구조적으로 사회적 강자들의 지배 욕구에 고통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재명 정부가 억강부약의 원리에 충실하려면 어떻게든 이 약자들의 상황을 개선하고 이들이 놓인 원천적인 구조적 취약성 관계를 혁파할 수 있는 개혁 로드맵 같은 걸 만들어 차근차근 실천해 가야 할 것이다. 반면 기득권 세력은 언론이나 인맥 등의 지원을 받으며 정치권과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많은 법과 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하여 가령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간접 고용 관계를 만들어 열악한 저임금 노동을 일반화하고 공권력의 비호 속에 공장 폐쇄나 부당 해고를 자행한다. 민주당 정부는 이런 상황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감시하며 기득권 세력의 권력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지배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필요한 ‘노란 봉투법’ 같은 법적 보호 장치들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을 실현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는 만무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5년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이 임기 동안 억강부약을 통한 대동세상의 실현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재명 정부가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다했는지는 엄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큰 기대가 저버려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2025-06-10 | hrights | 조회: 291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