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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없이 내란 청산이 가능할까?(장은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1-14 10:56
조회
386

장은주/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개헌을 제1호 국정과제로 설정한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지났다. 또 다른 반년 후에는 이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하기에 가장 적절한 계기일 수 있는 지방선거도 실시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정치권에서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개헌 관련 논의는 잠잠하기만 하다. 확고한 개헌론자인 우원식 국회의장과 제7공화국을 열겠다는 걸 당의 핵심 목표로 삼는 조국혁신당 정도만 개헌 이야기를 꺼내고 있지만, 반향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에 대해 민주당이 딴생각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은 물론 지지자들 대부분은 지금은 개헌이 아니라 내란 청산과 이를 뒷받침할 개혁 입법에 집중할 때라고 여기는 듯하다. “개헌론은 자칫 개혁의 전선을 흩트리고, 블랙홀처럼 모든 쟁점을 빨아들여, 성과는 못 내고 소용돌이만 크게 낼 공산도 크다”(한인섭, “2026, 개헌보다 개혁에 집중해야”, 한겨레, 2026. 01.02)는 게 기본 인식이다.

내 생각에 이런 인식의 바탕엔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에 대한 깊은 신뢰감이 깔려 있다. 대략 이런 식일 듯하다. 윤석열 같은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변태가 잠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우리의 지금 헌법은 기본적으로 잘 작동해 왔고 앞으로도 큰 문제 없이 작동할 거다. 이재명 정부는 그 생생한 증거다. 게다가 지금 국회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갖고 있어 이런저런 개혁 의제를 관철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쓸데없이 개헌 논의를 들쑤셔 국정 운영의 초점을 흐리고 개혁 입법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런 인식을 딱히 틀렸다고 하기는 힘들다. 개헌이 절실하고 제1의 국정과제라고는 해도 당장 개헌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지금 내란 청산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고 해서 이게 원천적으로 개헌에 반대한다는 것도 아닐 게다. 국민투표와 개헌에 따른 준비 시간을 고려할 때 올해 지방선거가 가장 적절한 계기라고는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법도 없다. 필요하다면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따로 할 수도 있고, 다음 총선이라는 기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인식이 내란 사태까지 빚어냈던 우리 민주주의의 구조적 결함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설사 여러 사정 때문에 개헌 논의를 당분간 접어둔다고 해도, 우리가 최소한 개헌이라는 과제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확실히 내란 청산의 과제가 가볍다고는 할 수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내란에 직접 가담했던 많은 이들이 버젓이 사회의 중책을 차지하고 있다. 내란을 측면에서 지원했던 제1야당 국민의 힘은 여전히 윤석열과의 단절을 완고하게 거부하면서 극우적 정체성을 강화해 가고 있다. 그러나 내란은 언제 어떻게 완전하게 청산할 수 있을까? 윤석열 재판이 끝나면?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면?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한 석도 얻지 못하게 되면? 아니, 지난 대선에서 김문수 후보를 찍었고 지금도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30, 40%의 국민이 다 지지를 철회하도록 만들어야 내란이 완전하게 청산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이게 가능할까?

내란 청산이라는 과제는 생각만큼 썩 분명하게 그 윤곽이 규정되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내란 청산이 정말 중요하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도대체 내란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제대로 성찰하고 다시는 내란이 반복될 수 없도록 하는 일일 터다. 윤석열과 내란 가담 및 방조 세력에 대한 단죄가 필요하나, 그 내란을 가능하게 했던 우리 헌정 질서의 근본적인 구조를 재점검하고, 혁신하는 일 없이는 내란 청산이 제대로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12.3 내란은 알코올 중독자 윤석열의 혼돈과 망상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게 틀림없지만, 1년이 넘도록 아직 내란에 대한 온전한 청산을 자신할 수 없게 한 우리 민주주의의 근본적 결함 문제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의 극한적 전쟁 정치다. 여기서는 반대하는 정치 세력을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여길 만큼 적대와 혐오가 기본적인 정치적 동력이다. 이 ‘치명적 (정치) 양극화’가 윤석열의 망상을 부추겨 내란을 일으키게 한 결정적 배경이었고, 지금도 그 내란의 완전한 종식을 가로막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 치명적 양극화는 무엇보다도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승자독식형 권력과 역시 승자독식형 원리를 내장하고 있고 단순다수결제에 따른 국회 구성 원리에서 비롯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리의 헌정 체제를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을 일정하게 공유하고 분산할 뿐만 아니라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게끔 새롭게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민주주의의 ‘공화화’가 절실한 때다.

그러니까 단순히 좁은 의미의 개헌만이 문제는 아니다. 선거제도와 함께 우리의 정치적 헌정 질서 전체를 개혁해야 한다. 이 일은 단순히 이재명 정부의 제1 국정 과제여서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일은 또한 우리의 민주적 헌정 질서가 다시는 극우 파시즘 세력 같은 적들에 의해 침탈당하여 무너지지 않도록 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격변하는 세계정세와 기후 위기 같은 새롭고도 근본적인 도전들에 맞서 우리 사회의 안녕을 지켜내기 위해서도 결코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다. 이 과제를 방기했을 때 우리가 미국에서 지켜보는 ‘트럼프 2.0 시대’의 스산한 야만적 풍경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