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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공동체 가치는 어디로 숨었을까(한국일보, 07060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02 19:06
조회
199
[민주화 20년] 공동체 가치는 어디로 숨었을까 사라진 권력의 자리엔 냉혹한 시장논리만 나부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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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상 신부에게 2007년 6월10일은 뜻 깊은 날이다. 75세의 사제는 오랫동안 민주화를 위해 때로 앞장서 싸웠고, 때로는 핍박 받는 젊은이들을 몸을 던져 지켰다. 그는 77년 박정희 정권에 맞서 기도회를 열고 유신헌법 철폐와 언론자유 보장을 외치다 구속됐다. 그리고 87년 5월 고 김승훈 신부 등과 함께 박종철씨 고문치사사건의 조작 사실을 폭로하고 시민혁명의 불을 지폈다.20년 전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비롯한 전국에서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범국민대회’가 시작됐던 6월10일. 이 날을 올해부터는 민주항쟁 기념일이라고 부르며 국경일로 경축한다. 대통령이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공무원들이 나서 정부예산으로 시민단체들의 행사를 돕고 있다.

하지만 김 몬시뇰(고위 성직자에 대한 경칭)은 화가 나고, 실망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화 20년을 상실의 시대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스스로 뽑고 권력을 비판할 자유를 얻었는데,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잃었다는 것일까.

김 몬시뇰은 명동성당에서 열린 민주항쟁 20년 기념미사 강론에서 가슴 속에 담아온 것들을 터뜨렸다. 먼저 분노는 청와대와 정부, 국회와 각종 사회단체에서 지도적 자리를 차지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향했다.

그는 이들을 제도권 민주주의 인사라고 불렀다. 이들은 도덕적 정당성을 잃었다. 과거의 희생과 경력들을 박물관의 전시품이나 박제품처럼 언제까지나 자랑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시민은 희망과 전망을 잃었다. 독재자의 억압에서 벗어났지만, 시장의 지배를 받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김 몬시뇰을 불안케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어깨를 걸고 서로를 돕던 연대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공동체가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틀을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것은 현행 헌법이 그 때 개정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 경제 일반 사회 및 노사관계의 기반이 그 해부터 88년에 걸쳐 큰 전환점을 맞았다. 진보진영은 6월 혁명을 타협에 의한 불완전한 민주화로 간주한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민주주의, 그리고 이념문제가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중심 의제가 돼 온 것도 사실이다.

정치권에서 87년 이후 지금까지 줄곧 한 방향으로 계속해온 논의는 대통령의 권력을 어떻게 약화시키느냐 문제였다. 6공화국부터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출범하면 으레 내놓는 조치가 청와대의 권한을 수술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정무수석실을 폐지해 덩치를 줄였다면, 노무현 정부는 정책실장이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을 강화해 이른바 투톱이나 트로이카 체제로 힘을 약화했다. 국가의 힘을 죄악시하고 칼질을 가하는 일은 습성처럼 되풀이됐다.

여기에다 정부에 들어간 일부 민주화 인사들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가 공권력의 효율성을 더욱 약화시켰다. ‘386세대’라는 말이 힐난으로 바뀌었듯이, 20년에 걸쳐 민주세력이라는 말은 ‘무능’이라는 함의를 갖게 됐다. 이제는 ‘과거사 업자’ ‘상이 용사’라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의정 모니터와 입법청원 운동을 계속해온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3김시대 운동권 출신 의원들은 공부하고 연구한다는 이미지가 뚜렷했고, 시민단체가 뽑는 의정활동 우수의원이나, 파급력이 있는 폭로도 모두 이들이 차지했다”면서 “그러나 요즘 386출신 의원들은 운동경력이 없는 전문직이나 직능단체 출신에 비해 대체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단체에선 여권의 이합집산을 보고 386의 주특기는 계보정치라는 말도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화 20년을 맞아 나오는 것은 이른바 ‘역(逆)편향’의 문제다. 국가와 정부 정당 등이 개인, 그리고 기업에 비해 너무 약해졌다는 것이다. 박찬욱 서울대 교수는 “한나라당은 물론, 여권에서조차 대선 주자들 가운데 아무도 ‘민주주의’를 얘기하지 않는다”라면서 “새 정부가 출범하는 2008년의 첫번째 화두는 국정의 효율성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나 “과연 민주주의는 비능률적인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안병진 경희대 사이버대 교수는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정부운영, 민주화 역사에 대한 강매성 과시에 질린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노스탤지어 등 독재에 대한 향수에 기대고 있다”면서 “이는 힘을 숭배하고, 새마을 운동처럼 공동체 우선 정책에 대한 일반인의 욕구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 리더십이 약해지는 동안 몇몇 기업은 괴물과 같은 힘을 키웠다. 노동자와 빈민이 어깨를 걸었던 6월 시민혁명의 가장 큰 성과물은 1인1표의 평등한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이었다. 그러나 철거된 독재자의 초상화를 대신한 것은 삼성의 푸른 로고, LG의 붉은 로고라는 평가가 나온다.

6월 항쟁 당시 부산대 총학생회장으로 박종철씨 사망조작 규탄 시위와 학원민주화 투쟁 등을 주도한 김종삼(당시 조선공학과 3년)씨. 한의대를 졸업하고 2002년 봄 면허증을 따 늦깎이 한의사가 됐다. 80년대 이른바 ‘계급적 자살’을 위해 너도 나도 졸업을 하면 노동현장에 취업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재벌기업에 취직한다는 것은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함께 시위를 주도한 총학 간부들도 교수, 학원운영, 당 지구당위원장, 복지사업, 요식업 등 각자 간 길이 다양했지만 아무도 대기업에 취직하지는 않았다.

지금 후배들은 대기업 취업을 위해 몇 년씩 준비를 한다. 복지와 학교의 발전은 물론 심지어 문화생활까지 재벌의 온정을 기대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1996년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참여연대 내부에 ‘경제민주화위원회’를 꾸렸다. 주식을 헐값에 장남인 이재용 상무에게 넘기는 삼성그룹의 편법상속을 형사 고발하는 등 재벌개혁에 앞장섰다. 재벌 계열사 CEO가 회사의 이익에 반해, 오너에게 유리하도록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는 등의 배임혐의에 대해서도 소액주주들을 모아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벌이 오너의 것이 아닌, 주주들의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은 한국에는 아직도 낯선 ‘명제’다. 계열사간 돌고 도는 순환출자로 가공의 자산을 만들어, 총수가 적은 지분만을 가지고도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기형적인 지배구조도 ‘수출성과’의 미명 아래 옹호되고 있다. 이재용 상무에게 상속세를 부과하도록 국세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윤종훈 회계사는 “이제는 권력도 재벌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장하성 교수는 “80년대를 넘어서면서 한국에서는 더 이상 창업신화라는 것이 없어졌다”며 “재벌들이 자리잡고 있는 시장에서 하나 둘 도전했던 기업들도 모두 사라져 갔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93년에 중소기업에 속했던 5만6,472개 업체 중 2003년까지 생존한 업체는 25.3%에 불과했다. 이들 가운데 300인 이상 업체로 성장한 중소기업은 0.13%(75개), 500인 이상 업체로 성장한 기업체는 0.01%(8개)에 머물렀다.

“대기업 유통업체가 새로 들어서면, 생활형편이 나빠져 학교를 나오지 않는 학생이 꼭 생긴다.” 김병배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방교사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다.

냉혹한 시장의 논리 때문에 이웃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려도 신경을 쓸 틈이 없는 게 요즘 우리다. 87년 이후 한국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공동체적 가치의 상실이다. 정치적 억압과 더불어 공동체로부터도 해방된 개인들이 시장이라는 정글로 내몰려 무한질주 하는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공동체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월드컵 같은 스포츠 이벤트뿐”이라는 한탄이 과장이 아니다.

87년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이었던 성유보 전 방송위원은 “민주화나 대의를 위한 희생 같은 우리 시대 가치를 지금 요구할 수는 없다”면서도 “더불어 사는 사회의 가치가 실종된 것은 오늘날 여러 가지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 광풍도 공동체의 몰락 탓으로 돌리는 전문가가 많다. 황폐한 학교에서 내 자녀만은 탈출해 살리겠다는 심리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공교육을 책임져야 할 관료나 정치인, 심지어 학교 교사들까지도 사교육 광풍에 몸을 맡기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학력간 소득격차가 사교육비 지출에 고스란히 반영돼, 과거 경제성장의 견인차이자 계층 상승의 통로였던 교육이 빈부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의 중심고리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의 실종은 연대의 정신을 잃고 동반침몰하고 있는 노동운동에서도 드러난다.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6월 항쟁 때는 사무직 넥타이 부대들이 거리로 나와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어깨 걸고 싸웠는데, 지금은 노동자끼리도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계급이 갈렸다”면서 “비정규직 보호에 앞장서야 할 민주노총이 정규직의 이해 관계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 같은 조직이 됐다”고 말했다.

6월 항쟁 당시 현대해상화재보험 노조 부위원장으로 ‘넥타이 부대’를 이끌었던 홍순계 현대해상 전략채널본부장은 “무조건 임금을 올리면 그 피해는 협력업체의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을 알면서도 내 몫만을 늘리려는 풍토가 서글프다”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과거에는 독재에 순응하는 삶이 정의는 아니라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적 공감대가 있어 그것이 진보세력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민주화 과정을 견인하는 힘을 발휘했다”면서 “공동체가 무너지면 경쟁의 패자는 물론, 승자도 설 자리가 없다는 연대의식의 회복이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규범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체의 회복, 더불어 사는 ‘공화(共和)주의’에 대한 관심이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높아지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똘레랑스(관용)의 전파자인 진보 논객 홍세화씨는 일찌감치 헌법에 담긴 공화주의 가치의 공유를 역설했고, 박세일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뉴라이트 진영은 이념적 지향인 ‘공동체 자유주의’의 구현태로 공화주의적 요소를 언급하고 나섰다. ‘중도 진보’를 표방하는 박명림 교수도 경제적, 이념적 양극화의 해법으로 ‘시민적 공화주의’의 구축을 내세운다.

처음부터 6월 민주항쟁의 정신은 이름없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걸고, 모두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6월 이후 모두가 어깨를 풀고, 서로 자기 이름을 내세우려고 나서면서 그런 생각을 잊었다. “6ㆍ29는 ‘속이구’, 그때부터 교회는 잠들기 시작했다”고 비판해온 호인수 신부. 한때 전체 사제의 3분의 1이상이 참가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작아지기 시작했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비판적 지지와 후보 단일화를 놓고 신부들이 연일 토론을 벌이던 명동성당 지하실. 대선을 며칠 앞두고 고 김승훈 신부가 갑자기 김대중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다른 사제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장유경씨는 중학교 2학년 때 광주에서 5ㆍ18을 겪은 뒤 이화여대에서 운동에 투신했다. 재야단체와 불교에 몸을 담다, 환경공동체 운영을 거쳐 농민이 되기까지 20년간 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힘 없는 사람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일” 한가지만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민주화 20년은 망각의 20년이었는지도 모른다. 군사독재정권을 붕괴시킨 그 엄청난 힘이 어디서 왔는지 잊어버리고, 개인주의를 민주주의로 착각해왔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강력한 리더십은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공할 수도 있다.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오래된 정원>의 한 장면. 1980년대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청춘을 감옥에 묻고 17년 만에 출소한 현우는, 행복했느냐는 딸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그때는 혼자만 행복하면 미안한 시대였어.” 딸은 무심히 대꾸한다. “바보 같은 시대였군요.”

거꾸로 물어보자. 지금,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소득격차와 교육격차, 자살률, 이혼율 등 눈 앞의 현실은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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