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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사십 대의 나, 그리고 사랑(한상봉의 세상 사는 이야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1:29
조회
486

한상봉/ 농부, 예술심리치료사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알지요. 사랑을 해보고 싶어서 밤새 몸 뒤척이던 사람은 알지요. 사랑은 항상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음을. 그게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뒤로 물러 나 앉는 게 사랑인 것을. 종교도 신앙도 그렇게 애달픔 뒤에서 속없이 삭이고 삭혀야 찾아오는 성취임을 알겠지요.


 내가 생에서 바라고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내 나이 사십이 되면 한번쯤 읽어보고 찾아보고 믿고 싶은 게 생기는 법이겠지요. 내 마음을 송두리째 바쳐야 찾아온다는 내 소명이 무엇인지, 하늘이 준 천명(天命)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게지요.



충분히 사랑한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


 젊은 날의 사랑처럼, 그 생각만으로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벌써 짐작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 길에서 아픔이 자욱이 흔적을 남기게 되더라도 아름다운 게 뭔지 이미 깨달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전에 해남 쪽에 있는 생가(生家)를 찾아가 본 적이 있었는데요. 그녀는 ‘고정희’란 시인입니다. 그녀는 사랑이 뭔지 알았던 사람이고, 하늘의 마음을 일찌감치 알았던 사람이고, 그래서 하늘이 훌쩍 불러들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짧은 생애를 남김없이 태우고 달아난 그 시인의 감수성은 따라갈 재간이 없습니다. 그 유명한 전혜린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전혀 다른 하늘을 이고 살았던 투사이며 시인이었던 사람, 그 사람이 뭔가를 울컥이며 사랑했던 거지요. ‘전보’라는 시는 그녀가 사랑한 것이 얼마나 가혹하면서 치열한 것이었는지 가슴을 젖게 만듭니다.



그대 이름 목젖에 아프게 걸린 날은
물 한 잔에도 어질머리 실리고
술 한 잔에도 토악질했다
먼 산 향하여, 으악으악
밤 깊도록 토악질했다


한 시골에 ‘고정희 생가’라는 팻말이 달린 그 집은, 지금 사람이 사는지 어쩌는지 참 쓸쓸해 보이는 시골집이었습니다. 사람은 가고 남은 것은 생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이 또 하나의 사람에게 남긴 흔적 뿐 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묻힐 곳은 지상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이란 걸 새삼 새록 깨닫게 합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한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은 사람 안에 새겨둔 어떤 잔상(殘像)입니다.


그녀는 사십대 초반에 어머니 산이라는 지리산에서 사고로 죽었는데요, 그녀가 남긴 ‘사십 대’라는 시가 있었답니다. 그녀의 사십 대는 우리의 사십 대이겠지요. 그 사십 대에는 더 큰 사랑의 자장(磁場)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녀가 시에서 말하였지요.


 “사십 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 대, 사십 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어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사십 대엔 더 큰 사랑의 자장으로 들어가야


 칼 융이라는 유명한 심층심리학자는 오직 중년에 와서야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알게 된다고 합니다. 중년기에 그걸 찾지 못하면 남은 생애가 절망적일 거라고 경고합니다. 생애를 살만큼 살았고, 인생을 알만큼 알게 되는 사십 대. 그래서 그 얼굴에 책임이 따라붙는 사십 대입니다. 이 나이가 되면, 먼저 주변을 둘러보고, 내 영혼이 정작 바닥에서 갈망하던 그 무엇을 발견해야 합니다. 밀려서 살지 않고 제 생애를 끌고 갈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하겠지요. 그래야 영혼마저 자유롭고, 주어진 생애를 고맙게 여기겠지요. 예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생기를 얻는 사십 대에게 갈채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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