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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노조위원장에서 술도가 대표로, 박성기 회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1:26
조회
500

여준민/ 인권연대 회원


“내가 그럴 줄 알았어요.”


4월의 회원을 고민하던 허창영 간사가 몇 사람의 기본 정보를 나에게 건네주더니 선택권까지 부여해주는데,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이 분!”이라고 낙찰하자, 그가 던진 말이다. 게다가 “당일 날 오긴 다 틀렸군”이라고 생각했다니, 자못 궁금하지 않으신가?


따스한 봄볕 좋은 4월의 회원은 노조위원장에서 술 공장 대표가 된 박성기(40세) 회원이다.


경기도 가평군 현리 운악산 끝자락에 위치한 (주)우리술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리 터미널에 내려 약 15분 정도 걸어가니 작은 야산 밑자락에 <운악산 술도가>란 정겨운 회사 간판이 걸려있다. ‘술독에 빠진 사람’이란 말을 종종 들어온 나로서는 ‘이제야 내가 꼭 와봐야 하는 곳에 왔구나’하는 기대와 설레임의 속내를 감추기 어려웠던 것 같다. 들어서면서 나도 모르게 삐죽삐죽 웃음이 흘러 나왔다.
공장 내 사무실에 들어서자 수십 종류의 술이 눈에 띈다. 특히 ‘강쇠, 벌떡주, 황진이, 오래오래…’ 다 술 이름이다. 거기에 막걸리는 잣, 조껍데기, 더덕, 찹쌀누룽지, 포도, 검은콩, 쌀, 한방 등 종류도 다양하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열중하고 있을 때 그가 들어왔다. “아, 많이 기다리셨죠? 이 먼 곳까지 오시고.” 노조위원장을 역임하고 빡센 투쟁 때문에 거의 해고에 가까운 퇴직을 했다고 해서 우락부락 거친 남성일꺼란 생각을 했는데, 그 편견은 여지없이 뭉개져버렸다. 아니 이렇게 순할 수 있다니, 싶을 정도로 수줍어하는 표정과 배려 깊은 말투는 일순간 사람에 대한 긴장을 풀어버리게 했다. 그래서 그의 과거가 더 궁금해졌다.


막차 시간이라는 것이 있어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음식점으로. 그는 알고 지내는 듯한 주인의 양해를 구해 (주)우리술에서 만든 복분자 한 박스를 풀어놓았다. “자 마음 놓고 드세요. 어? 진도가 빠르네? 그럼 각자가 몇 병씩 갖다놓고 마십시다.” 아무래도 그 맛있는 복분자를 양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는지 술도 술술, 이야기도 술술, 관계도 슬슬 늘어져갔다.


“93년 동부생명에 입사해 98년 IMF직후 노조를 설립했죠. 사측의 노조 방해 작전이 심했어요. 파업참가 노조원들에게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가면서 협박하고 회유하고. 인사고가에도 반영해 한 명씩 나가떨어지게 되었죠. 회사는 노조 사람들 몇 명만 그만두면 노조를 인정하고 요구안도 들어주겠다고 회유했어요. 결국 2000년도에 나올 수밖에 없었죠.”
장렬히 끝까지 간다 했지만 그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자발적 해고 노동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는 쉽게 메울 수 없고 다시 재건하기도 힘겨울 수밖에. 그 후 노조는 이름뿐인 휴면노조로 전락하고 말았단다.


그는 85년도에 대학에 들어가 사학을 전공했지만 졸업은 10년만에 이루어졌다. 당시 CA그룹에 속해 운동을 하다가 3학년 휴학을 하고 친구의 주민등록증을 훔쳐 1년 간 ‘양병관’이라는 이름으로 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가다, 용접공 등 ‘노동자화’ 되어 가는 과정을 실천한다. “CA냐 NL이냐 노선 투쟁이 한창이었는데, 약간의 또라이 기질이 있었나 봐요. 책 태우며 선배에게 협박하고. 암튼 맘고생이 많았죠. 그러다 공장에 들어갔어요.” 그는 당시 냉각기를 만드는 쿨링타워라는 곳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그 때 대기업과 작은 공장의 노동자들 문제, 즉 ‘노-노갈등’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기 삶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단다. “할 일이 없었어요. 실명으로 당당히 운동하겠다 싶어 지하철공사에 지원했는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신체검사 항목 중에 노동자로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색약’이 문제된다는 걸 알고 포기하고 말았다. 어이없는 신체검사제도의 피해자인 셈이다.


언제나 맨 앞에서 투쟁했던, 그래서 뒤에서 날아온 돌에 맞기도 했던 그는 “잡히는 사람이 이해가 안가요. 대통령 빽보다 강한 게 오리발이거든요”라며, 학생시절 돌 들고 학교 들어가다가 수위에게 잡혀 경찰서에서 조사받던 일화 하나를 떠올린다. 옆에 있던 후배들이 킥킥 웃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너무나 진지하게 시침 뚝 떼고 했던 일화는 이렇다. “돌을 들고 오라는 말도 안되는 택(집회 시 지침을 일컫는 말)이 있었는데, 여하튼 해봤죠. 경찰검문은 피했는데 수위에게 잡혔어요. 경찰서에서 수석이라고 우기다가 엄청 맞고, 안되겠다 싶어 중간에 작전을 바꿨죠. 군대를 가기 전 친구를 찾아가는 중인데, 검문을 하고 있어 심장이 떨렸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아서 되겠는가 싶어 담력 테스트를 하려고 돌을 넣었다고요.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끝까지 우기니까 그들도 별 수 없었죠. 잡혀도 우기면 되는데…. 그래서 전 잡힌 친구들 면회도 안 갔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건데, 1, 2학년 때 잡혀 감옥이나 가고.”


순한 모습과는 반대로 순간 빛나는 카리스마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과거의 일이라 말은 쉽게, 재미나게 할 수 있어도 ‘끝장내기’의 집요함이 엿보였다.


일명 ‘맹한 사람들’ 출신이라는 그는 ‘사무직은 전투적 노동운동을 할 수 없다’며 작금의 노동운동 현실에도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과거사를 듣다보니 어느새 막차 시간이 다가왔고, 서로가 벌개진 얼굴을 하고 나서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다.


학생 시절 ‘민중생활연구회’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해서인지 독주를 좋아하는 그였지만 이젠 막걸리 예찬론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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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막걸리 공장을 운영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작업복 차림에 몸에 좋은 우리 술을 만들고 있고, 당분간은 이 일에 매진하고 싶단다. 그는 “유통기한이 지나도 발효식품이라 식초로 쓰거나 먹어버리면 그만”이라며 버릴 것 하나 없는 막걸리의 팬이 되었고, 독주를 좋아했지만 막걸리만 마시게 되었단다. 언젠가 다시 막걸리 예찬론을 들으러, 맛있는 술을 마시러, 운동권 선배의 치열했던 그 시절을 간접 경험하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꼭 다시 가리라!


아니, 그이의 인품을 봐서는 인권연대 회원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커피 한잔이 아닌 걸쭉하고 시원한 막거리 한 사발 건네줄 것 같다. 오며가며 기회가 있다면, 인권연대를 매개로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시라. 그것은 사람 좋아하고 용기 있는 회원들의 몫이다.


* (주)우리술(http://www.maggulli.com)의 한방보건술은 롯데마트 전점, 삼성 홈플러스, 하나로 마트, 바이더웨이 전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평 공장 031-585-8525 / 서울사무실 02-929-3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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