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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대전발 영시 오십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1:45
조회
856

한상봉/ 농부, 예술심리치료사


 그 분을 보면, 그 천진한 눈매가 생각나고, 저으기 웃음이 자꾸 비어져 나옵니다. <만다라>라는 소설책으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어렵게 만들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분입니다. 김성동 님이지요. 세월은 참 묘합니다. 예전에 책 속에서만 만나 뵙고 마음속으로만 흠모하던 분을 옆자리에 모시고 턱없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몇 년 전 제가 잠시 편집장으로 있던 잡지 편집위원회에서 그 분을 뵈었고, 그분의 인간적 약점을 덮기에 충분한 천진함과 순수한 열정에 마음이 따뜻해진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쓴 소설이 많지만, 저는 수십 년 전에 썼던 <죽고 싶지 않았던 빼빼>라는 우화집(지금은 ‘염소’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더군요.)이나 <부치지 않은 편지>라는 산문 등 초기작에 속하는 것들이 더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얼마 전에 공선옥이라는 가까이 지내는 소설가집에 갔다가 김성동 님이 그 집에 보내주신 편지를 잠시 봤는데, 겉봉에 ‘공선옥 보살님’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도 ‘역시 이 양반답다’는 생각을 하며 웃은 적이 있습니다. 존경을 넘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최근에 <천자문>이란 책이 나왔길래, 읽다가 읽다가 또 한 번 기쁘게 웃었습니다. 쓴 웃음 지을 일이 많은 세상에서 기쁜 웃음을 선사해 주는 그분은 정말 보살(菩薩)입니다. 개신교에서 세운 고등공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이랍니다. 하루는 교장선생님이 성경을 가르치시던 시간이었다지요. 심판의 날이 오면 악인을 멸하고 의인을 구하러 천사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고 하셨답니다. 그러자 우리의 김성동 청소년은 대뜸 질문을 한 거지요.


 “저 거시기...운등치우(雲騰致雨)하고 노결위상(露結爲霜)이라구 헸넌듀.”


 “뭬야?”


 “땅 위의 짐이, 거시기 수증기가 하늘루 올러가서 이뤄진 게 구름이라구 헸넌듀.”


 “...........”


 말인 즉, 찬물이 증발해서 생긴 게 구름인데, 그 구름을 타고 내려오면 천사들이 고뿔에 걸리지 않을라나 모르겠다는 것이지요. 결국 교장의 고함소리가 터지고, 김성동 청소년의 볼따구니에 불이 났습니다. 독성죄(瀆聖罪)로 변소청소를 하다가 사흘만에 그만 두고 가출하였다 합니다. 그때 탄 기차가 목포로 향하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차’였다는 것이지요. 땅끝으로 가고 싶었답니다. 거기 가면 뭔가 있을 것만 같았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제 식대로 ‘상식’이라고 딱지를 붙여둔 모든 세상에 거슬러 걸어가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더 바닥으로, 더 근원의 세계로.... 그래서 제 식대로 제 맘대로 딱지를 붙이지 못하고, 깨달음의 바다로 이미 훌쩍 저도 모르게 넘어간 사람들만이 공감하는 세계를 엿보고 싶어집니다. 그곳은 종교도 없고, 석가세존 예수 알라도 없이, 사람들의 몸뚱이들이 그대로 와서 “그래 맞다!”하고 무릎을 치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그 나라로 가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은 은밀하고, 만나서 말 나누지도 못해도 “너는 내 식구”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살다 보면, 어느 세월에 만날 인연은 만나고, 헤어질 인연은 멀어집니다. 그 인연의 흔적 위에서 ‘희망적으로’ 걸어가야겠지요. 아직 만난지 못한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기대로 하여 나를 기쁘게 하고, 오늘 현실을 넘어 내일을 살게 하지요. 저는 며칠 있으면 경주로 이사를 갑니다. 경주에서 새로 맞은 새 인연을 기대하며 경주로 갑니다. 거기서 신라 사람을 만나고, 다니러 온 백제 사람도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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