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인권연대

home > 활동소식 > 월간 인권연대

[69호] 그의 모든 것은 ‘광주’로 통했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1:44
조회
550
   

여준민/ 인권연대 회원


  따사로운 봄볕에 내 몸 하나 맡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5월. 그래서인지 달력을 펼쳐들면, 5월은 노동절부터 시작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성년의 날 등 사람이 살면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기념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개의 양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수많은 민중의 피를 먼저 기억할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그 날’이 벌써 25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광주’는 광주만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를 찾았다.


광주에서 인권으로

 인권연대가 만난 5월의 인물, 홍세현(47세)씨.

그는 젊은 2-30대 청춘을 모두 ‘광주’에 투신했던 열혈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나이 50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인권’의 사각지대를 두루 살피고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갖고 서울로 올라왔다.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은 광주에 두고 혼자 때늦은 자취생활에 독수공방하면서까지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작년 10월부터 국가인권위 인권침해조사국 조사기획담당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광주’에서 ‘인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숨가팠던 87년

 “반갑습니다.” 전라도 사투리 옴팡지게 묻어나는 말투와 약간의 껄렁거림(?)이 처음 사람을 대할 때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광주…” 시작은 이렇게 했지만 그는 질문이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80년으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더니 하나하나 풀어놓았다.

 “78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 전기공학과에 들어갔죠.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가난, 나눔, 애덕의 정신을 실천한답시고 오자람회라는 가톨릭 봉사동아리를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광주민중항쟁을 경험하게 되면서 인생이 바뀐 거죠.”

 신앙인으로 살아가며 세상 그늘진 곳을 찾아 낮게 몸을 드리우려고 했던 그에게 ‘광주’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86년 광주대교구 산하 광주지역청년연합회를 조직하는 일이었다. “87년 회장을 맡았는데, 할일은 많았지만 재정과 조직 체계가 안정적이지 못했죠. 그래서 1월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사무실에 그냥 들어갔습니다. 책상 하나 달라고. 그랬더니 시내전화만 사용하는 조건으로 쓰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시대적 상황은 구분된 조직 활동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광주가 남긴 과제는 모두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9월부터 정의평화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지요. 그 해 2월 박종철 고문사건을 시작으로 4월 13에는 호헌철폐를 주장하며 신부님들이 단식을 단행했고, 5월에는 5․18 진상규명을 위한 물밑투쟁이 진행되었어요. 그 봇물이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12월 대선을 준비하며 ‘전두환, 너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죠.” 그가 대선에 희망을 걸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1년 동안 미친 듯이 ‘광주’에 매달리며 5월 사진전 준비와 9월 사진책 제작, 11월 비디오 제작을 하면서 5. 18의 실상이 알려지면 세상은 바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만큼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란 기대를 안고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그는 “그저 눈감고 자는 일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광주,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교과서


 그러나 정의의 강물은 거스를 수 없는 법. 드디어 YS는 5·18 광주묘역을 성지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지만, 관이 주도하는 사업은 거부한다며 광주 시민단체가 자체적으로 모여 94년 광주시민연대를 결성, 국제심포지엄을 비롯해 5. 18민중항쟁의 기본원칙을 다시 한 번 재천명하기에 이른다. “5·18 묘역은 민“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주화를 위해 싸우다 간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지금 기념탑을 보면 성지라는 느낌이 없지만, 과거에는 마음이 짠 할 때 소주 한 잔 걸치고 휘돌아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곳이었어요. 죽어서도 오려는 곳이었는데….”

 그는 그런 ‘광주’가 95-96년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전국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보상에 집중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이 많았다고 한다. 광주가 유족자나 부상자의 전유물로 전락하거나 광주만의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는데, 역사적 큰 흐름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18년간의 지난한 투쟁이 정리되는 모습은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광주가 아시아 민중들의 민주·인권·평화의 성지로, 국제적인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세계사의 한 축임을 알리고 싶었죠. 5월이 되면 다른 지역에서는 기념식을 갖지 않습니다. 광주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거죠.”그래서 그는 국지적 접근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제심포지엄을 여는 등 광주의 자리매김을 시도했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뤄 이제 광주는 동아시아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가 되었다.


광주의 힘

 이렇게 97년까지 10년 간 광주에만 천착한 그가 지난 해 10월 공채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로 활동의 근거지를 옮겨왔다. 현재 갖고 있는 직함은 인권침해조사국 조사기획담당관으로 별도의 작은 방도 갖고 있는 과장(급)이다. 별정직이기 때문에 과장이란 호칭은 없고 과장 ‘상당’의 대우를 받고 있다. 그가 인권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광주에 있을 때 5. 18 부상자들이 부랑자 시설에 감금, 사망까지 하는 상황을 지켜보았죠. 진상조사 하러 갔더니, 니가 뭔데? 하더라구요. 우리 같은 사람은 딱 보면 감이 오잖아요? 근데 민간인으로 수사권이나 강제력이 없으니 더 이상 밝혀내기 어려웠죠.” 그는 인권위가 사각지대에서 자기 목소리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든든한 빽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권위를 찾는 사람들은 그나마 힘 있는 사람들입니다.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인권위조차 모르고 있어요.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이주노동자들에게 폭행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달려가라고 합니다. 가서 듣고 힘이 되어주라고요.”

 주변에 기댈 그 무엇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인권위의 우선순위고 존재이유라고 말하는 그에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어 보인다. 다만 그는 무엇을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 하는 업무로 보자면 다수인보호시설 중 정신보건시설에 대한 조사기획을 담당하고 있어요. 가장 열악한 곳이 정신보건시설과 출입국관리소라고 생각되는데 지난 1기 인권위는 직권조사, 방문조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알아서 찾아가는 인권위가 되어야 하는데….” 대학시절 봉사동아리 활동 경험이 있어서인지, ‘격리’가 기본인 대규모시설의 근원적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사람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님도 알고 있었다.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요. 인권은 절대적 개념도 아니고 완전무결하지도 않죠. 세계인권선언문 16조항을 보면 다른 조항에서는 다 ‘모든 사람은~’으로 시작되는데, 유독 ‘성인남녀~’로 시작됩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갖는다는 내용인데, 성적소수자 입장에서 보면, 할 말이 있는 거죠. 상상력이 없으면 인권은 보장되기 어렵고 또 법의 잣대로 규정할 수도 없어요. 헌법소원을 당하더라도 그 상상력을 펼쳐 법과 싸워야죠.”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며, 법의 기본과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그를 보니, ‘가난한 자들의 외침이 항상 정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의가 무엇인지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라는 하워드 진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의 처지가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민간단체 활동의 경험과 축적된 인권감수성이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이 국가기관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하지 않을까. ‘광주’는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그를 통해 확인하고 싶다.
전체 2,172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59
[70호] 노가다는 사람이 아닌가.
hrights | 2017.08.18 | | 조회 412
hrights 2017.08.18 412
158
[69호] 인권연대에 도움 주신 분들 (4월)
hrights | 2017.08.18 | | 조회 377
hrights 2017.08.18 377
157
[69호] 인권연대 2005년 4월에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hrights | 2017.08.18 | | 조회 346
hrights 2017.08.18 346
156
[69호] '보안경찰 토론회’가 열립니다.
hrights | 2017.08.18 | | 조회 397
hrights 2017.08.18 397
155
[69호] 또 하나의 청산대상이 된 과거사법
hrights | 2017.08.18 | | 조회 389
hrights 2017.08.18 389
154
[69호] 대전발 영시 오십분
hrights | 2017.08.18 | | 조회 856
hrights 2017.08.18 856
153
[69호] 미래의 상상력이 현실을 보여준다.
hrights | 2017.08.18 | | 조회 627
hrights 2017.08.18 627
152
[69호] 그의 모든 것은 ‘광주’로 통했다.
hrights | 2017.08.18 | | 조회 550
hrights 2017.08.18 550
151
[69호] 집단행동하는 검사들의 사표부터 받고, 제대로 된 검찰개혁을
hrights | 2017.08.18 | | 조회 431
hrights 2017.08.18 431
150
[69호] 입시와 학벌로부터 아이들을 자유롭게 하라
hrights | 2017.08.18 | | 조회 369
hrights 2017.08.18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