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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이 사람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5:11
조회
313

허윤진/ 천주교 신부, 인권연대 운영위원


 성매매 종사자인 외국인 여성들이 있습니다. 사회 통념적으로 매춘행위는 지탄받는 일입니다. 성매매는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어려운 문제이기에 정부규제를 통해 효율적으로 ‘감독’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도 있지만, 윤리적으로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며,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죄악시 되는 일입니다.


대부분 인권유린 당해


 그런데, 이 여성들을 만나 상담하며 그 삶의 여정을 듣다보면 누구도 이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무용수나 연예인 등의 직업을 소개받아(예술흥행 비자 E-6) 우리나라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계약과는 달리 유흥업소에 넘겨져 매춘을 강요당하며 인권을 유린당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노동사목위원회는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벗들의 집’이라는 쉼터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30여 명이 넘는 외국 여성들이 매춘 소굴에서 탈출해 도움을 호소합니다. 이들은 쉼터에 머물면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잃어버린 꿈을 키우며 일자리를 찾아 노동자로 살아가거나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받은 육체적 학대와 정신적 상처가 크기에 의료지원 및 심리치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앞으로 희망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해 주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이들을 재활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나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거나 전무한 상태이고, 쉼터도 벗들의 집 한 곳뿐입니다.


가난이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벗들의 집에 입소한 외국인 여성의 국적을 보면 구소련과 필리핀 여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중국(조선족), 베트남, 태국, 페루,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피지, 루마니아, 몽골 등 다양합니다. 이들은 비록 매춘행위를 했지만 대부분 폭력과 협박에 의한 일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벗들의 집에 머물렀던 여성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 여성들은 전문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입니다. 자국에서 유치원이나 학교 교사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30~50달러(약 4~7만원) 정도 받는 급여도 6~7개월 체불되어 있는 상태에서 500달러(70만원)이상을 벌 수 있으니 한국으로 가자는 브로커(국내 포주들과 연계되어 있는 러시아 마피아)의 유혹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목소리로 들렸답니다. 거의 대부분은 이미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에서 성매매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가족이 굶주리고 병든 부모님을 살리려는 마음이 앞서기에 ‘내 몸가짐 바로하면 되지!’ 하는 의지를 가지고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열심히 일해서 잘살겠다는 희망과 기대가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유혹인지도 모르고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들 앞에 펼쳐진 삶은 협박과 감금이요 강요된 매춘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꿈도 희망도 사라집니다. 한 여성으로서 극심한 수치심에 시달리고, 몸과 마음이 황폐화되어 가는 속에서 수십 번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그 일이 몸에 익어서도 아닙니다. 자신은 어떻게 되든 단 10불이라도 가족에게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몸부림인지 모릅니다. 마치 일제시대 잘 살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하와이 집단 농장 등에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던 지난날 암울했던 우리네 여인들의 기막히고 가련한 삶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고 말이 다르지만 이들도 엄연히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가정의 심각한 가난 때문에 고생을 했었는데, 그 때 제 여동생이 중학교 과정도 마치지 못하고 16세에 공장생활을 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오빠 공부시키고 불편하신 어머니 봉양하기 위해서 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삶을 가족을 위해 희생한 동생이 대견하고 고마움에 머리 숙여집니다. 우리가 아직도 가난한 나라였다면 우리 여동생들도 가족의 생계와 부모봉양을 위해 이 여성들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난 때문에…….


인권과 권리 보호위한 장치 마련해야


 이제 다시 한 번 바라봅시다. 애정의 시선으로, 가족의 마음으로 그 여성들을 바라보면, 그 외국인 여성들이 다름 아닌 우리의 여동생이요, 우리의 딸이요, 우리의 손녀일 수 있습니다. 어찌 손가락질 하겠습니까!


 사회적 보호 장치가 부족한 현실이지만 많은 NGO단체와 종교단체들, 사회봉사자들이 이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분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의 상품화와 값어치를 따지는 세상에서도 ‘사람을 사람으로 볼 줄 아는 눈과 마음’을 지닌 성숙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손길을 잡으며 인간의 자기 존엄성조차 상실해 가고 있는 외국인 성매매 여성들이 희망을 가지고 죽음에서 삶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인식하고 그 봉사의 열정이 지속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국가는 성매매 근절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에 더욱 힘써야 하겠지만, 당장 시급히 요청되는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여성들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쉼터를 확충하고, 인력 및 시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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