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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같은 문화유산, 다른 느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5:00
조회
337

050615an.jpg


한상봉/ 예술심리치료사


 경주에 오니 사람이 밉지 않습니다. 웬일인지 사람들이 모두 고맙고 달라 보입니다. 때때로 장소의 공간적 이동이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그래서 머리가 복잡하다면 여행을 떠나라 하는 것일까요? 익숙한 시공간이 주는 일상적 압박과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말일까요? 관계란 결국 얽히고 섥혀서 제 맘대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의 관계일 텐데, 그 관계란 좋을 때도 있지만 그야말로 전라도 사투리로 ‘징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징한 생활이 오래 계속되다 보면 남는 게 상처뿐이


니, 떠날 수 있을 때 자리를 옮겨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네요. 그렇다고 제가 징한 곳을 벗어나자고 경주로, 이리로 이사왔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그저 멋진 말로 제 가족들에게 ‘무주의 시운(時運)이 다했기 때문에 새롭게 운이 열리는 경주로 옮아갔다’라는 정도로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좋습니다. 어제는 안압지에 갔답니다. 4월부터 10월까지 경주 안압지에서는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문화공연이 있답니다. 어제는 ‘색소폰의 혁명 혹은 진화’라는 제목으로 색소폰 부는 세 남정네와 한 여인이 무대에서 공연을 했는데, 커다란 연못을 뒷배경으로, 앞으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을 두고 앉아서 야밤에 듣는 색소폰 소리, 정말 거창하더군요. 덤으로 그날 초대받은 가수도 있었는데요, 소리새와 나무자전거라는 듀엣이더군요. 소리새는 ‘그대 그리고 나’라는 노래로 유명세를 올렸던 분들이지요. 참 멋진 밤을 아내와 딸아이와 보냈던 셈입니다. 그날 관중은 한 이백 여명 모였을까요? 어찌 보면 소박한 공연이라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더 멋진 것은 공연이 끝나고 나서였지요. 외래 관광객들이 안압지를 빠져나가는 동안, 경주 시민들은 사회자의 말 한 마디에 호응이라도 하듯, 기꺼이 방청석에 있는 의자를 포개서 무대 옆으로 모으고, 일부 시민들은 휴지를 줍더군요. 참 흐믓한 광경이 아닙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호의적인 태도 아니겠어요. 자기 고장을 사랑하고, 제 땅에 놓인 유적지를 아끼고, 그 곳에서 베풀어진 문화공연을 즐기고, 그 마무리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보며 참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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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에겐 1천원을 받고, 경주 시민들에겐 무료로 개방하는 안압지. 그곳엔 상술(商術)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더군요. 아름답더군요. 이것 역시 경주의 일부분이겠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며칠 전 석굴암에 갔을 때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고, 화가 치밀기도 했었습니다. 왜냐고요? 글쎄, 입장료를 4천원이나 받더라구요. 경주시민이라 해도 사적지는 무료지만 사찰에선 돈을 내야 한다지 뭡니까? 그러니 불국사와 석굴암에선 비싼 입장료를 물어야 조상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는 게지요.


그런데 그 비싼 돈을 받아가면서도 사찰에선 석굴암 주변을 관리하는 데는 영 공력을 들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토함산 능선 꼭대기에 달라붙은 석굴암 범종이 달려있는 누각은 산 아래 멀리서도 보이는 특별한 건축물인데, 정작 와보니 콘크리트로 대충 뭉개서 지어놓았고, 그마저도 물이 줄줄 새더군요,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누각을 보며 화가 나는 것은 결코 나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엉성한 ‘관광지’도 대한민국에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혹자 말로는 밤마다 불국사에서 석굴암에 올라와 수입금을 자동차로 실어 나른다는 데, 천년고도 신라의 도읍인 경주 망신은 불교 조계종이 다 시키는 모양입니다. 정녕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어두운 게 아닐까, 초보 경주시민의 마음이 상하고 맙니다. 경주 석굴암, 정말 마음에 안 듭니다. 유리벽에 갇혀 있는 부처님을 한 번 더 숨막히게 만드는 스님들이 미운 게지요. 그저 토함산 한 귀퉁이에서 ‘신라의 달밤’ 노래나 부르는 게 나을 법 합니다. 안압지와 석굴암, 그 첫 경험이 왜 이다지 다를까요?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지요.


* 한상봉 선생이 개인적인 이유로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한상봉 선생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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