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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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 간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4:55
조회
704

여준민/ 인권연대 회원


 동시에 두 사람을 만났다. 부부? 형제자매? 아니다. 10여 년 전, 사학재단이 얼마나 사악한가를 분명히 보여주었던 경기여상 정상화를 위한 싸움을 계기로 만나 지금까지 동지적 관계를 맺고 있는 염미숙, 전국완 회원이다.

밤새 꿍꿍이를 모색하던 그들의 옛 아지트 ‘비잔 호프’에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들어보았다.



비리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대학 다니던 5년 내내 학원자주화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나였기에, 웬만한 사학비리에 대해서는 좀 훤하다 싶었다. 그러나 솔직히 경기여상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언론마저도 가난한 학교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 않았어요.”


 그들은 경기여상 문제가 사학비리의 상징처럼 알려진 상문고등학교와 비슷한 해에 문제가 터졌지만, 언론은 가난하고 힘없는 주·야간이 동시에 있는 경기여상보다 강남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이며 보도했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사립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다 있었다고 보면 되지요. 전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김일윤 재단이사장의 월권, 횡령, 비리, 열악한 교육환경, 교사들의 충성요구…거의 공포분위기 속에서 교육이 진행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돈 벌고 싶은 사람 있으면 사회복지시설이나 사립학교를 운영하라는 말이 있다. 만들기만 하면 국가나 사회에서 인정도 해주고 돈도 주니, 사람 머릿수 자체가 돈이라는 얘기다. 대부분의 학원비리를 저지르는 설립자들이 배를 불려나갔던 것처럼, 이사장 김일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학교 설립으로 시작해 서울과 지역구인 경주에 대학까지 설립한 전형적인 교육장사꾼이었다. “경기여상은 주·야간이 함께 있어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꼬박꼬박 월 10만원씩을 받으면서도 겨울에는 조개탄을 피우고 유리창이 깨져 바람이 들어와도 한참 후에야 갈아줬지요. 잡부금도 많고 아이들의 적금도 횡령을 할 정도였어요. 부모의 관심 속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아니었죠. 진폐증에 걸린 아이들도 있었구요.”



학생 수 = 돈


 그러던 어느 날, 산업체 고등학교 같은 특성 때문에 결석을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면 학교는 여지없이 학생을 퇴학시켜버리기도 했는데, 문제의 발단은 한 학생이 교통사고로 못나온 것을 두고 일방적으로 퇴학시키면서 시작되었다. 학교는 입학정원보다 훨씬 많은 수의 학생을 뽑아놓고 핑계거리가 생기면 그 즉시 퇴학시키고 다른 학생을 입학 시켰던 것. 교육청에 정원 보고를 4월에 하게 되었는데 한 달 사이에 그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입학금을 받고 퇴학시키는 행위가 반복되자 교사들이 양심선언을 하고 일어선 것이다. 80명의 교사 중 40명이 서명을 하고 새로운 교장 선출을 요구하며 학교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돌입한다. 당황한 재단 측은 이내 교사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 했다.


 “이듬해 96년은 거의 해방구였어요. 하지만 재단의 본색은 드러나기 마련이죠.” 97년 새로운 교장이 오면서 학교 분위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5명이 업무방해로 고소당하기도 하고 징계위에 회부되었죠. 이번에는 학생들도 반발하며 동참했고, 수업거부를 하면서 100일 동안의 침묵시위와 철야농성으로까지 번졌던 겁니다.”



 투쟁은 즐겁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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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미숙 선생님


 결국 이 두 사람은 파면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99년 복직이 되지만, 결코 가볍거나 간단치 않은 투쟁의 과정과 경험이 있었다. 함께 투쟁했던 동료 교사가 어느 날 학교 측 증인으로 법정에 돌변해 나오기도 했고, 입장을 바꾸는 부모들도 있었으며, 몰래 대화를 녹음하는 동료도 있었단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지기 시작하자 점점 냉소적으로 변하는 거예요.”


그 전까지만 해도 서로 대화도중 “우리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건 어쩌면 행운인지도 몰라. 실제 겪지 않았으면 주변 교사들과 뭐가 달랐을까?” “오히려 그 때가 행복했지.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주며 배려라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때는 신났던 것 같아. 힘들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니까 두려움도 적었고.” 라고 말 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사람 때문에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염선생님이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갈 것이다. 그러는 거예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다시 힘을 냈죠.” 전국완 씨가 이렇게 말하자, 염미숙 씨는 “내가 그렇게 멋진 말도 했어?”라며 다시 회상에 젖는 듯 했다. 인권연대와의 인연도 그 때부터란다.



의리파 경기여상 해직 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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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완 선생님


 “실은 오창익 국장을 만나면서였어요. 천주교인권위에 계실 때 저희를 많이 도와주셨죠, 법률적인 문제, 전술 전략의 문제. 뭐 하나 밝혀내거나 잘 안 풀리는 일이 있어 우울해 하면, 이 사람들 참 깝깝하네, 그게 뭐 어때서요? 하는 표정이었어요. 혼나기만 했죠. 별 것도 아닌 거 갖고 그런다고.” 하지만 자신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밖에도 있다는 것은 천군만마를 얻은 기쁨이었다. 특히 경기여상을 위한 기도회를 열기도 했던 박기호 신부, 故 김승훈 신부 등에 대한 기억 또한 그들이 세상의 밝은 빛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인연으로 회상하고 있었다.


이 때 잠시, 오 국장에 대한 뒷담화인지 칭찬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오갔다. “오국장은 속을 다 들여다보는 것 같았어요.” “친필 연하장도 그 무뚝뚝한 말투가 묻어나 버리질 못하겠어.” “요즘 안부도 잘 전하지 못하는데, 오국장은 무서워요. 그래서 멀리서만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 늘 미안하죠. 길거리에서 머플러 노점을 하고, 온 식구가 나와 감자탕집 운영하다 망하기도 하고….” 다들 제 갈 길을 가는 것뿐이지만 단체활동가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남아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회원이라는 방법으로 동참하고 있고, 때때로 인권연대가 물품기증 같은 걸 공고하면 서로가 마련해주려고 한다. 지금 인권연대가 잘 활용하고 있는 캠코더도 염미숙 씨가 기증한 것이다.



쉼표의 의미


 1999년 9월 1일 199명의 해직교사가 복직되던 날, 드디어 그들도 5년 이내 공직에 복귀할 수 없다는 파면의 개념을, 사면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전에 무마하고 복직했다. 지금은 각각 공립중학교에서 ‘휘발유’라는 별명을 유지한 채 전교조 분회장을 맡으며 아이들과 친구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완 씨는 2002년 유방암수술을 받았다. “암과 투병하는 게 아니라 암과 타협하고 살고 있어요. 쉬니까 아이들도 예뻐 보이고 안쓰럽고 관계도 편안해졌죠.”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은 사랑과 이별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약간의 아픔, 질병, 장애가 지혜로운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는가 보다.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란 구호는 건강제일주의, 건강염려증을 부추길 뿐이라는 것을 그이를 통해 확인한다.




답답한 교육현장에서의 희망교육 찾기


 학교폭력, 교사들의 순응적 분위기, 돈 많고 학부모의 참여가 많은 학교일수록 오히려 교육환경은 더 열악할 수밖에 없는 현실, 1점에 목숨을 거는 아이들, 단순 노트검사를 통한 수행검사, 성적 때문에 골프채로 맞는 아이들, 80년대 출생이면서 임용고시 출신인 젊은 교사들의 개인주의….


 4시간동안 세 여자가 수다를 떨었지만 정작 중요했던 이야기를 다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수다는 유쾌했으나, 교육현장이라기 보다 학교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야기는 여전히 가슴을 짓누른다. 하지만, 그래도 교육희망을 이야기하며 웃는 그들이었다. 답답함은 나와 우리에서 찾아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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