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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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홍세화/ 회원 칼럼니스트  학교를 다니다보면 무리지어 다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곤 한다. 흔히 전자의 경우를 ‘인싸’, 후자의 경우를 ‘아싸’라고 부른다. 인싸는 ‘인사이더’의 줄임말로 어느 자리에서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친화력이 좋은 사람을 의미한다. 반대로 아싸는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모임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을 말한다.  몇 년 전부터 생겨난 이러한 신조어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아싸보다는 인싸가 되고 싶어 하고, 인싸의 잣대가 되는 언어, 행동 등을 다룬 매뉴얼까지 만들어냈다. 사진 출처 - 브런치  예를 들어 인싸는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려는 화법을 쓰고, 아싸는 대화의 흐름보단 정답을 말하려는 화법을 쓰려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잣대를 만들어가며 사람들은 인싸와 아싸를 구분 짓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아싸로서 ‘도태’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레 인싸의 기준에 맞지 않는 아싸들은 소외되고, 인싸들 중에서도 친화력이 매우 좋은 사람을 ‘핵인싸’라는 새로운 범주 안에 집어넣으며 또 하나의 구분 짓기를 시도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인싸와 아싸의 구분 짓기는 주로 성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는데, 성격이 외향적인 사람들은 인싸로, 내향적인 사람들은 아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인싸와 아싸를 구분 짓는 기준에는 개개인의 성향에 대한 고려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도 없는 그들만의 기준에 맞추어 가야 한다는 군중심리마저 생겨난다.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할 때 발생하는 역차별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가 생각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러한 신조어를 접하거나 사용할 때 이 말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언어와 구분 짓기가 우리 삶을 옥죄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홍세화 : 한창 놀고싶은 대학교 3학년 홍세화입니다.
2019-11-05 | hrights | 조회: 1227 | 추천: 8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아이들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떤 시대적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과 청소년의 자율권을 호소하며 서명 부스를 운영하던 아이들을 낯설고 어색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녹아들지 못하고 무르춤히 서 있는 나를, 아이들이 ‘선생님’ 하고 불렀다. 나는 그대로 얼어버린다.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 상상해보지 못한 탓이다. 좀 오버 같지만 나는 정말 그랬다. 어렸을 때 나는 꼴통으로 불렸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데 자기주장은 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공부와 거리가 멀어진 건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좋지 못한 교우관계 때문이었다고, 자기주장이 강해진 건 반복된 폭력에 억압된 마음의 해소를 위한 사소한 저항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개인의 사정까지 알 바 없는 어른들은 그저 날 ‘꼴통’이나 ‘구제불능’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나는 그렇게 불리었다. 나는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소리 듣다 보면 정말 나 자신이 그런가 생각하게 됐으니까. 반복된 의심은 확신을 부르니까. 나조차도 꼴통 소리를 듣는 내가 꼴통인 것 같았고, 꼴통인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날 아이들은 처음 보는 나를 당연한 듯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이 ‘선생님’ 이라고 부르면 목덜미까지 붉어진 채로, 그 모습을 숨기려고 노력하며 짐짓 대수롭지 않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은 맥이 다 빠질 만큼 힘들었다. 고졸 출신에 청바지, 나이키 운동화, 편한 점퍼 차림을 한 선생님은 교단에서 본 적 없었고, 내 스스로가 인격적으로 그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명의 화음이 화랑유원지에서 울려 퍼지던 행사가 있던 날, 리더인 아이를 곁에 앉혀두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부담스러우니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아줘.” 내 말에 아이가 외려 웃으면서 물었다. “그럼 선생님을 선생님 말고 뭐라고 불러야 해요?” 생각해본 적 없던 질문이 난감하기만 했다. 해맑게 웃으면서 선생님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니 어쩐지 더 저항할 수 없어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말했지만 계속 속으로 끙끙 앓았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그런 사람 아니니까, 그런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나는 그 뒤로도 아이들을 만나서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게 늘 힘들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말을 하겠지만 정말 그랬다. 선생님이라는 한 단어가 특별한 노력 없이 그저 얻을 수 있는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나 자신의 어딜 들여다봐도 자격 미달이었다. 옷차림만 봐도, 학벌만 봐도, 장난기 많은 성격만 봐도. 덕택에 괴리감이 날로 깊어졌다. 한편 그것들을 그다지 바꾸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바꾸기 싫다며 떼를 쓰는 아이와 뭐가 다를까.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참다 못한 나는 말했다. 평가회의 내내 ‘쌤쌤쌤’하고 나를 장난스럽게 부르던 아이들에게. “부탁이니까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아줘.” 행사 소감을 간단히 나누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 어떤 설명도 없이. 무안함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들릴랑 말랑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아니라 부끄럽게도 몹시 진지하게. 뜬금없는 내 말에 떡볶이를 먹던 아이들은 나보다 배는 당황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이들은 난처하게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그다음 모임부터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대신 내 눈치를 봐가면서 ‘저기’라고 부르거나 손짓하며 ‘여기요’라고 불렀다. “저기 건의할 게 있는데요. 여기요, 할 말 있대요.” 그 역시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나는 자격 미달의 선생님보다는 그 호칭이 낫다고 생각했고, 왠지 눈치 없이 상심한 마음을 품고 있는 스스로에게는 ‘내게는 이 정도가 딱 맞아’라는 위안을 건넸는데……. 그렇게 다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아이들에게 문자 몇 통을 받았다. 아이들이 보낸 문자의 내용은 간단했다. “선생님이 ‘내가 진정한 쌤이 아닌데 무슨 쌤이냐’고 말해도 선생님은 선생님이예요.” 그러면서 이상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포함해 네트워크 친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연대에 어떤 활동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자기들을 보필하는데 어째서 선생님이 아니냐고. 왜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냐고. 선생님은 모든 일을 열심히 하고, 또 어떤 의견이든 자기보다 우리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걸 아는데. 왜 우리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냐고. 너무 이상하다고. 눈치 보게 된다고. 우리들 생각엔 내게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것 같으니, 우리들이 내 자존감을 높여주겠다고.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쌤은 생각이 너무 많다고. 자신들을 그대로 바라보는 선생님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자신들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선생님이야 말로 진정한 선생님이라고. 집으로 돌아와 많은 것을 생각했다. 아이들의 문자는 내 생각과 삶을 전반적으로 되짚어보게 했다. 연대의 활동가가 되고 싶어 했던 이유와 청소년 사업에 자꾸 욕심을 내고 열정을 가지는 이유까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청소년기에 내게 생겨났던 결여를 메우고 싶었던 거였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아름답게 꽃 피웠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이없는 모순에 웃음이 픽 나왔다. 아이들의 말이 맞았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미달’과 ‘자격지심’은 꼴통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 이후 스스로가 내게 짊어지운 맹신이었다. 아이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듣고 싶어 하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그런 사람 아니라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다니.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있다니. 어쩐지 눈물이 나와서. 나는 그날 밤 맥주를 몇 캔 마시며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아이들은 나를 ‘은성쌤’이나 ‘쌤’이라고 부른다. 연대에 상근한 지 7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그 호칭이 부담스럽고 낯설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아이들이 나를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 너무 좋다. 마치 진짜 선생님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들이랑 있으면 내가 마치 선생님이 된 것 같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다시 말한다. 오글거린다고. 앞으로도 신세질 테니까 미리 고맙다고. 그때 마다 나는 낯이 뜨거워져 그저 웃고 말았지만……사실. 사진 출처 - 필자 사실 꼭 말하고 싶었다. 나야말로 너희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청소년 참정권을 위해서 피켓을 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너희들을 보면서. 이제는 지겹다며 마주해야 할 사회적 참사를 불행이라 부르며 회피하는 어른들과 시대 사이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팔찌를 차는 너희들을 보면서. 나이와 학업 성적,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거친 비난 없이 포옹하는 자세로 경청하는 너희들을 보면서. 더 나은 내일을 꽃피우기 위해서 시험 기간에도, 주말에도 시간을 내는 너희들을 보면서. 이 못난 사회 초년생을 믿고 의지하며 좋은 사람이라고,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너희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너희들 덕분에 내가 더 나은 사람이,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나야말로 고맙다고. 선생님이 고맙다는 너희에게 외려 선생님이 고맙다고. 내가 너희의 선생님이 아니라, 너희들이야말로 나의 참된 스승이자 선생님이라고. 그 옛날 나를 무심히 상처주던 그들이 선생님이 아니라. 너희야말로 내 참된 스승이라고. 그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황은성 : 동시대인이 되고 싶은 불효자입니다.
2019-10-25 | hrights | 조회: 760 | 추천: 4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지난 8월, 한낮에 휴게실에서 잠들었던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숨졌다. 폭염경보가 내린 무더운 날이었다. 계단 아래 공간에 만든 한 평 남짓한 방에는 창문도 에어컨도 없었다.  폭염은 자연재해다. 적어도 단기간 내에 치솟는 온도를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피해는 사회적이다. 그날,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었지만 쾌적한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존 머터는 『재난 불평등』의 서문에서, 자연과학자인 자신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에서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 지점을 ‘파인만 경계(Feynman line)’라고 명명한다. 자연재해를 단순히 자연현상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과학적으로도 접근할 때, 예방과 복구 과정에서 야기되는 불평등을 간파하고 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지진, 홍수, 가뭄 등 엄청난 수의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영향을 끼치는 일들을 사례로 들지만, 재난 상황에서 파인만 경계에 서게 하는 일이 비단 그런 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비극으로 새삼 확인하게 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존에는 돈으로 거래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사회적 재화에까지 시장논리가 개입하며 그 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만큼, 가난한 사람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일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관계없이 그가 누릴 수 있는 편익을 일률적으로 평준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가장 열악한 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기본권의 경계 밖으로 내모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것은 가진 정도에 관계없이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돈이 없어서, 배운 게 없어서, 인맥이 없어서 겪는 불이익이, 그 창고 같은 공간에서만 쉴 수 있고, 쉬다가 너무 더워 숨지는 정도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 사람은 서울대학교 구성원들만이 아니다.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지만,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그것의 존재를 망각하는”, 조지 오웰이 말한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어떤 의미에서는 역시나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당사자인 동시에, 그런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해 잊고 사는.  그렇기에 이번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재난과 불평등의 원인을 돌이켜 생각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반성해야 할 대상에 꼭 포함시켜야 할 것 또한 ‘나’다. “당신이 땀 흘리며 닦은 바닥을 무심히 밟고 다닌” 그 캠퍼스의 학생처럼, 나 역시 누군가의 노동에 힘입어 그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또 그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잊어버려 부끄럽지만, 그들은 모두 나의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9-10-10 | hrights | 조회: 677 | 추천: 8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추석 전에 태풍이 들이닥쳤다. 뉴스에서는 매일 ‘초대형 태풍이 몰려온다’, ‘농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유리가 깨지고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고 했다. 언론이 태풍 경로까지 전부 예측해서 보도한 덕인지 인명과 시설 피해는 예상보다 적었다. 하지만 크든 작든 누군가는 피해를 봤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언론과 세상은 태풍으로 사망한 분에게 슬픔과 조의를 표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 죽음은 기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건물 외벽이 떨어지고 사람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생계 때문에 억지로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알고 기억해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동네 중국집 사장님에게 들은 말이 있다. 이번 태풍에 억지로 배달을 내보냈는데 배달원 세 사람 모두 오토바이가 쓰러져 일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험한 날씨에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놀랐지만, 억지로 태워 내보냈다는 말이 더 놀라웠다. 대체 뭘 위해서, 사람이 죽든 말든 억지로 오토바이를 태워 내보냈을까, 정말 서글퍼지는 일이었다. 오토바이를 타야하는 사람들은 태풍 속 배달을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로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지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결국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억지로 떠밀려서 일을 했을 거다. 이에 대해 아마 누군가는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 미련하다’고 하겠지만, 속 편한 소리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을 거부할 경우 고용주로부터 온갖 불이익과 차별, 압박에 놓이게 된다. 노동자에게는 거부권이 없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무엇보다 이런 일이 터졌을 때 국가와 사회가 방관한다는 것이 문제다.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죽어 나갔지만 그들의 뒤를 지켜줄 제도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다. 비단 배달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회의 3D 직업들, 특히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비극은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다. 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했었는지 주변에 이야기를 안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다. 필자가 하는 일을 안 좋게 보는 시선, 동정하는 시선, 혹은 돈은 많이 벌지 않느냐는 부러움 섞인 시선들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등허리가 휘어지고 아프다는 소리는 아무리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산재 사고가 나도 시설 개선은 없다. 산재를 인정받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원청의 갑질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도 하청업체는 대책 없이 그저 보고 있을 뿐이다. 숙련 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을 견디지 않는다. 숙련된 노동자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65세 이상의 노인과 초보자들이 대신한다. 손이 부족하니 작업은 매일 점점 늦어진다. 급여도 최저수준에 견준다. 가뭄에 콩 나듯 이런 현실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현실에 누구 하나 그들을 돕지 않는다. 결국 나선 사람들만 손해를 보거나 욕먹고 회사를 그만두기 십상이다. 언론과 세상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비극은 이미 너무 흔한 이야기인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다. 몇 명은 노동부에 신고를 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누가 죽어야지 바뀐다’는 위기감도 느꼈지만 반대로, ‘누가 죽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절망과 무기력으로 귀결된다. 알고 보니 이 분야와 관련한 작업장 전체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고, 내가 일하는 현장은 유독 심각한 편이었다. 가슴이 조여 왔다. 그리고 늘 있었던 문제임에도 관심이 없어 인지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이현종 회원은 현재 금형 분야에 재직 중입니다.
2019-10-04 | hrights | 조회: 644 | 추천: 5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사람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동양사상가 맹자는 인간의 성품이 본래 선하다고 보았다. 반면 순자의 경우, 인간은 악한 존재지만 교육을 통하여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정신분석학의 권위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런 질문에 대해 뭐라고 답했을까? 사람의 성격은 유아기에 형성되어 변할 수 없다고 답하지 않을까? 수형자를 상대하는 교도관들이 프로이트의 답을 듣는다면 아마 대부분 무릎을 칠 것이다. 반면, 범죄자들이라도 습관과 행동양식을 고쳐주면 미세하게나마 변화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잘못된 습관과 나쁜 행동 양식 때문에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라면, 일상 속 훈련을 통해 범죄자가 되는 것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를 반복해 수차례 교도소에 드나든 수형자가 교화되거나 변화를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릴 때부터 인권교육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어린 시절부터 주도권을 잡으려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주도권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어른들을 통해 나쁜 사회성을 습득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감내할 수준의 농담이나 장난이라면 쉽게 용인 받지만, 간혹 이러한 현상은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농담이나 장난이 오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학교와 직장 등의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때로는 상식적인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자녀의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 주다보니 자녀가 사회 생활하는 방법을 모르는 지경에 이르고, 심지어 직장생활까지도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학습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인권교육이 필요하다. 타자의 입장과 마음에 대한 상상력을 길러주는 인권교육은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영화 “패치 아담스”의 주인공 패치 아담스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경험을 계기로 환자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유머나 놀이를 통하여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의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결국 환자들의 아픔에 주목하는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영화  "패치 아담스" 사진 출처 - 구글  타자의 아픔에 주목하는 것,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이해하고 공감능력을 갖는 것이 인권인식의 출발점이다. 인권의식을 갖춘다는 것은,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패치 아담스는 환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삶의 굴레를 돌아보며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범죄예방도 이러한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장난이라고 해도 상황에 맞게 절제해야 하고,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음을 아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자세가 필요하다.  교정시설에서의 범죄예방은,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지혜롭게 이겨내도록 교정당국과 수용자들이 함께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아름다운 인생후반전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중입니다.
2019-09-25 | hrights | 조회: 646 | 추천: 5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다리를 다쳤다. 무릎 뼈 복합골절에 전치8주 상해였다.  빗길에 미끄러진 것 치고는 큰 불운이었다. 곧장 병원에 입원한 다음 관절 경으로 연골 안에 부서진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의사는 수술경과가 좋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한 달 동안 걷지 못할 것이고 그 이후에도 몇 달 정도 목발을 짚고 다녀야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의사에게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알았다’고 말했다. 불편해봐야 얼마나 불편하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걷지 못한다는 사실은 내 생각보다 불편했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불편한 것을 넘어서 ‘다리 다친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는 걸까?’ 라는 회의적인 생각까지 더해졌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다치기 전 까지는 당연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았다. 먼저 병원의 문부터 그랬다. 흡연 장소에 가려면 병원의 후문 쪽을 이용했는데 지나치는 문은 안으로 당겨야 하는 여닫이 문이었고,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게 계단 옆으로 난 언덕은 경사는 너무나 가파르고 바로 앞이 도로였다. 도로에 차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성한 발에 온 힘을 지지해 언덕을 내려왔고 내려 온 다음에는 흡연실로 향하기 위해 다시 죽을힘을 다해서 주차장 옆 흡연실로 들어가는 경사 높은 길을 타고 들어갔다. 그렇게 흡연장에 가다 체중을 이기지 못해 휠체어가 뒤집어질 뻔 한 적도 몇 번 이었기에 나중에는 ‘담배 피러 나갈 때 마다 이런 고생을 해야 할까. 그냥 나가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다는 것과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판이했다. 병문안을 오신 어머니나 친구와 산책을 한 번 나가려면 무수히 많은 방지턱을 넘어야했다. 발이 성할 때는 아무생각 없이 넘어 다니던 대부분의 방지턱은 너무 높아서 휠체어 앞바퀴를 끌어다 놓아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또 그렇게 올라갔다 하더라도 인도가 너무 울퉁불퉁해서 휠체어가 잘 구르지 않았다. 난데없이 심어진 가로수들도 길을 막았다. 자주 이용하는 편의점이나 슈퍼의 문도 대부분이 여닫이 문이었다. 내부 공간도 무척 협소해서 휠체어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카페도 식당도 마찬가지였으며 생리현상이 찾아와도 장애인 화장실이 아닌 일반 화장실을 이용하면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일반적인 자동차엔 휠체어를 실을 수 없어 병원 인근의 시설물만 이용해야했다. 그렇게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소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모든 것들이 불편해졌다. 사진 출처 - 필자  인도보다 도로가 편해졌다. 외출보다는 그저 병실에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 친구들은 말했다. “나가면 같이 고생하니까 그냥 참아. 아픈데 무슨 외출이야? 그냥 병실 안에 가만히 있어.” 상태가 호전되어 통증은 없다는 말에도, 병실에 갇혀 있기 갑갑하다는 말에도 “요양이나 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병실 밖 세상’을 나갈 수 없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지만 별 다른 수가 없었기에 ‘아픈 내가 죄인이지, 얼른 나아야지’ 생각했다.  그러다 병실에서 노트북으로 어떤 기사를 보게되었다. 부산 영도구에서 벌어진 어떤 장애인 모자 중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루고 있던 그 기사가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남 일 같지 않았다. 내가 더 크게 다쳤더라면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의 일면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그 날 모자에게 벌어진 그 비극을 상상해보았다.  내게 그 이야기의 시작은 그저 효심(孝心)이었다. 밤늦게까지 일한 몸 불편한 엄마를 마중 나가는 몸 불편한 아들의 효심. 아들은 어머니를 얼른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동 휠체어를 몰았을 것이고 그 전동휠체어가 다니는 길은 다만 인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도에 느닷없이 자리한 저 가로수가 그의 앞을 막았으니까. 또 소화전이. 또 횡단보도 너머로 보이는 다음 인도의 방지턱이. 또 너무 울퉁불퉁한 탓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휠체어를 휘청이게 보도블록이 그를 막아 세웠으니까. 그렇게 인도를 포기한 채 차가 다니는 차도로 전동휠체어를 몰고 간 그는 그의 엄마를 만났고. 그들은 보지 못하고 이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버스 안의 출퇴근 풍경을, 훌쩍 여행을 떠난 다음 바라본 바닷가와 산 정상 국내 어디, 외국 어딘가의 풍경. 커피 한잔을 먹을 수 있는 카페, 배가 고프면 들어서는 식당, 생필품을 사기위해 들려야만 하는 마켓. 몸이 불편한 그들을 위한 ‘전용시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또 몸이 불편한 그들이 이용해야할 도로와 교통이 그들에게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어느 봄 날.  깊은 밤 퇴근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수고했다고 말하며 듬뿍 사랑을 나눠주던 아들과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담고 환하게 웃던 어머니.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손 꼭 잡고 그토록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은 결코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울퉁불퉁한 보도를 놔두고 도로를 통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들에게 찾아올 죽음을. 그것은 라이트 불빛의 의지해 왕복 2차선 도로를 내달리던 택시기사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난 다음 나는 가만히 소리 내었다. “아.” 라고.  그 다음 속절없이 탄식이 흘러나온 까닭을 가만히 생각했다.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몸으로 체험했으니까. 살 수 있는 방법들이 정비되지 못한 탓에, 죽을 수도 있는 길로 내몰린다는 것. 그것이 몸이 불편한 채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일상이었다. 나는 아프기 전에는 몰랐다. 나는 아프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아프기 전에는 그들에게서 등 돌린 채 살았다. 내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그 사실이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다. 황은성: 동시대인이 되고 싶은 불효자입니다.
2019-08-26 | hrights | 조회: 852 | 추천: 8
홍세화/ 회원 칼럼니스트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한 것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대학교 3학년이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해 취업에 대한 뚜렷한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수업 중 교수님들께서 넌지시 던지시는 취업 이야기나, 필수 교양 과목에 진로·취업과 관련된 수업이 커리큘럼으로 등록돼 있는 틈바구니에서 마냥 모른척하고 지나갈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업과 같이 안정적이고, 주변에서 좋다고 여기는 직업을 떠밀리듯 결정하여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그 직업을 택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할 수 있는지 고민할 겨를 없이 진로를 설정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지, 그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을 하며 살아갈지 매번 고민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쪽에 마음이 더욱 기울어 있었다.  하루는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고등학생 친구들이 학교를 벗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배우며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삶’에 대해 말하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 속에서 학생들은 좋은 삶에 대해 ‘나를 돌볼 수 있는 삶’, ‘복잡한 생각이 들지 않는 평온한 삶’, ‘목표가 있는 삶’ 등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학교 밖에서 경험하고 얻은 배움을 토대로 각자 자신만의 길을 생각해두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영상을 보고 난 후 이른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앞서 이 친구들이 말한 좋은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년에는 휴학을 하기로. 예전의 나였다면 다른 친구들과 같이 안정적인 직장으로의 취업을 목표로 대학생활과 자격증 학원 등에 옭매여 정신없이 달려갔겠지만, 생각이 바뀐 지금의 나는 한 해 간의 휴학을 통해 반년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벌고, 나머지 반년은 내가 번 돈으로 해외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어쩌면 현재 내가 목표하는 직장으로의 취업에는 영양가가 없을 수도 있는 경험을 하러 떠나리라 다짐한 것이다.  이런 나의 선택을 두고 어떤 사람은 죽기 살기로 더욱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속 편한 소리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기업에 합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나, 훌쩍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나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은 피차일반이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여행을 통한 경험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그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청년실업이 10%대에 도달한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른 청년들 역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故 유재하의 노래 ‘가리워진 길’을 가만히 불러본다. 나, 그리고 그 청년들을 응원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어떤 길을 가든. 홍세화 : 한창 놀고싶은 대학교 3학년 홍세화입니다.
2019-08-14 | hrights | 조회: 829 | 추천: 6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일본 아베 정권은 2018년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의 소송권은 살아있고 청구가 가능하다”고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하여 크게 반발을 하며 여러 차례 항의를 하다 2019년 7월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을 감행했다.  아베 정권의 속이 뻔히 보이는 얄팍한 수작에 많은 국민과 한국, 일본 기업들이 황당해하고 무역 보복을 중지할 것을 촉구하며 성명을 내고 걱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본인들의 선거 승리와 대내 결속을 위해 그 어떤 짓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을 외부에 공표하였다.  그들의 논리는 ‘한일 기본조약 체결로 이미 모든 분쟁은 합의가 끝났다. 배상은 완료되었고 그렇기에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무효이며 이로 인해 일본 기업들에게 피해가 된다면 그것은 부당하다. 그 이후 일본의 대응 조치는 매우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한국 정부의 잘못이며 판결은 무효이고 한국 정부에 철회를 요구한다’는 거다.  여기서 일본의 논리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로 한국은 민주주의를 근본으로 한 삼권분립의 국가이며 사법부, 행정부, 입법부로 나뉘어 있다. 사법부는 법과 양심에 따라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고 원칙에 따라 판결을 내림이 기본 상식인데 일본은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간섭해서 무효로 돌리라’고 하는 것이기에 이는 내정간섭이며 비상식적이다.  삼권분립이라는 개념은 각 기관의 감시와 견제를 위해서 만들어졌고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간섭하거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일본은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이 이뤄진 국가라고 하면서 정작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상황이 민주주의나 삼권분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일당 독재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사실로 보이게끔 하는 발언이다.  두 번째로 한일 기본조약은 일본의 주장대로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일본은 당시 합의한 금액 안에 배상금이 다 들어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 또한 굴욕적이고 억울하지만 사실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을 위해 징용 피해자들과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당시 일본 GDP에 비교해서도 막대한 양의 배상금을 받았다.  일본의 두 가지 주장 중 첫 번째는 억지지만 두 번째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국민정서와 피해자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국가 간에 밀실협약을 맺은 것이기에 문제가 있다. 일본의 말대로라면 국가 간의 문제는 그 당시 다 끝났다. 하지만 당시 조약 내용을 보면 개인 청구권에 대한 발언은 정확히 명시가 되어있지 않으며,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은 이에 근거한다.  일본은 배상금을 다 지불했다고 하는데 개인의 배상 청구와 보상금에 대한 행방은 어떻고 왜 피해자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기가 힘들다. 그 막대한 돈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 자금으로 썼다고 한다만 그마저도 전부는 아니고 정치자금으로도 흘러 들어갔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그 돈을 기반으로 경부고속도로, 제철소를 비롯한 국가 경제 기반을 일으켜 세웠고 포스코 박태준 회장은 ‘(경부고속도로는) 조상들의 핏값으로 세운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논리가 지배적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피해자들이 거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2019년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도 사과도 없다. 출처 - 뉴시스  이는 비유하자면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밀린 월급 받아서 집으로 가져가는데 사장이 갑자기 가던 길을 막아서고 ‘지금 그 돈이면 기계랑 땅 사서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나중에 다 같이 잘살고 성공할 뿐만 아니라 돈도 갚고 이자도 줄 테니 빌려 달라.’고 해서 어쩔 수없이 준 후 사정이 좋아져 돈을 돌려 달라고 하자 ‘배 째’ 라고 하는 격이다.  하지만 이제는 피와 한이 맺힌 돈을 기반으로 성장한 국가와 기업이 일제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보상을 할 때도 되었다. 이는 지금 일본의 보복성 수출 규제 등 외부 상황이 해결되고 나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전처럼 조용히 넘어갈 것이 아니라 당시 그 돈을 쓴 기업들이 피해자들이 살아있을 때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이현종 회원은 현재 금형 분야에 재직 중입니다.
2019-08-05 | hrights | 조회: 749 | 추천: 7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몇 달 전 한 정치인이 불교 행사에 참석하면서 합장과 반배 등의 불교 예법을 따르지 않아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자면, 나는 손을 모으고 절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가치를 대변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또 그의 사회적 위치와 행사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배타적이고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다소 불편했다. 그러나 혹자는 자신의 종교적 지향을 밝히기를 몹시 원하며 이와 같은 행위가 자기 신념을 드러내는 절대적인 행동이 된다고 여길 수 있기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할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얼마 후,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하는 기사를 접했다. 같은 정치인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이 형평에 어긋나므로 당 차원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조정하는 입법에 나서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모국에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납득하기 힘든 차별을 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여러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으로 주장하고자 했던 ‘기독교인’ 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해졌다.  나는 성경도 잘 모르고, 나의 신학적 지식으로는 전도사라는 그분을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상식 수준에서 성경을 떠올려보면 함께 생각나는 단어가 우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 단어가 들어간 성경 구절을 찾아보니 여기에 다 적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신명기 10:18),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신명기14:29),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고…(스가랴 7:10),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나그네를 지켜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시편 146:8,9) …’  나그네―외국인에 정확하게 대응한다―와 고아와 과부. 스스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의 대명사다. 성경이 누구에게 마음을 쏟으며, 누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또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마태복음 22:39)’ 예수의 가르침은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아 이웃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는 경지의 Com-Passion을 요구하고 있다. 더 직접적으로, 1세기 로마와 유대인 사회에서의 분리와 차별이 예수 안에서 극복되었음을 선포한 구절도 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 출처 - Daniel W. Erlander  불교 예식 참여를 거부한 그의 행동을 두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라는 설명이 따라붙은 글을 여럿 보았다. 불교 예법을 거부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동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공인임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특정 집단을 향한 존중과 예의의 표현을 거부할 정도로 ‘기독교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면, 응당 그 정체성의 실체도 보였어야 수긍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신자, 그리스도인 등으로 표현되는,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들의 정체성을 지칭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성경에 260번 이상 언급된 ‘제자’라고 한다. 제자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그를 따르는 사람이 아닌가. 신의 가르침인 성경에서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처지를 애달파하며 그들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차별하지 말라는데, 그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기만 해도 자신의 종교적인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9-07-29 | hrights | 조회: 1078 | 추천: 14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사회는 공동체 합의를 통하여 바람직한 질서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공동체는 심각한 위협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범법자에게 사회는 법적인 여러 과정을 거친 후 이들을 격리된 공간으로 보낸다. 이들을 격리된 공간으로 보내는 기간 동안 사회 공동체는 평화를 누린다고 착각한다. 오늘은 그 착각으로 생기는 일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어느 사회이든 범죄가 있다. 범죄에 대한 사회방어의 수단은 형벌이었다. 고대에는 사형 등 신체형을 부과하였다. 형벌은 행위에 대한 하나의 응보의 수단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들의 얼굴에 수(囚)라는 글자를 새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사형을 포함한 신체형은 많은 나라에서 사라졌지만 범죄에 대한 응보감정과 그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것은 여전하다. 근대시대에 이르러 종교에 대한 처벌이 일반형사법 체계에서 분리되고 국가에 대한 모반범죄는 제한적 상황에만 적용되고 있다. 범죄를 처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범죄인의 처벌만 중심이 되고 있고, 범죄인의 사회복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유감이다.  형벌제도에서 대세를 이루는 것은 징역형이다. 징역형은 구금기간 동안 교도소 안에서 근로를 하는 벌이다. 형기를 마치면 사회로 나올 수 있다. 범죄인이 싫다고 하여 영원히 격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일정기간 이후 사회로 돌아오는 현실을 감안하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구금기간 동안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교도소 작업과 직업훈련을 통하여 사회생활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범죄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심리치료에 집중하고 있으며, 집중인성교육을 통하여 사회에 적응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출처- 필자  하지만 언론보도나 사회관계망을 살펴보면 범죄인에 대하여 혐오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미국 등지에서 시행하는 종신형을 구형하기를 바란다. 과거에 장기형을 받는 경우는 살인죄나 강도죄 등 사람에 대한 참혹한 범죄가 발생한 경우였다. 현재는 조두순 사건으로 인하여 성폭력 범죄도 장기형을 받고 있으며, 현재 윤창호 법이 발의됨으로 인하여 교통범죄의 형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도소 수용자들이 입고, 먹는 것은 모두 국세로 지출된다. 장기수들이 많아질수록, 이러한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나 교도소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범죄예방교육이다. 교도소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육 중 ‘생각 바꾸기 교육’이라는 게 있다. 생각을 바꿈으로서 범죄에 대한 욕망을 방지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육이다. 국가나 사회는 범죄에 대해 어떠한 적을 대처하는 것보다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죄를 반성하고, 사회에 나아가 기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 인권적이지 않을까.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중입니다.
2019-07-24 | hrights | 조회: 668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