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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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김지혜/ 회원 칼럼니스트  나는 과거에 휠체어와 목발로 생활한 경험이 있다.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종종 삐던 왼쪽 발목이 19살 무렵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으나 석 달의 기간 동안 19년 인생에서 몰랐던 불편함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멀리 떨어진 휠체어를 두 팔로 뻗어 내게로 당겨 앉아 그것을 화장실까지 밀어줄 사람을 필요로 했으며, 그것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다시 침실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사람의 손길을 요구했다. 처음 겪어 보던 그 과정은 나에게 있어 매우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겪을지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다.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에서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순간부터 다시 들어가는 순간까지 크고 작은 불편함을 겪는다. 그렇기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를 이기적인 집단의 모습으로만 받아들이는 시선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의 절규는 평범한 삶에 대한 외침이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바라는 간절함이다.  전장연은 지난해 말부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파가 가장 집중되는 곳에서의 투쟁은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시민들의 의견은 갈린다. ‘권리도 좋지만,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해서야 되겠냐’‘어차피 일반 시민으로서 도울 방법이 없다’라며 외면하는 이들. 반면에 ‘장애인도 기본권인 이동권을 당연히 누려야 한다.’‘얼마나 절박했으면…’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대다수 시민들은 지하철 시위에 불편함을 토로한다. 본래 ‘지옥철’이라 불릴 만큼 인구가 밀집된 공간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시위는 어쩔 수 없이 열차 지연 등 불편함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그동안 장애인들이 싸워서 생겨난 편의시설이 전체 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지하철 승강장의 엘리베이터의 주 이용자는 노약자와 일반 승객들이다. 경사로 역시 리어카와 캐리어를 끄는 승객들이 이용한다, 저상버스의 도입은 승하차 시 사고율을 감소시켰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노란점자블록은 신호등을 기다릴 때 서야 할 위치를 알려주는 등 비장애인의 안전망 역할을 수행한다. 즉 장애인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 우리 모두의 편의를 위한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 에이블뉴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요구는 최근 몇 년 사이 일이 아니다. 어느덧 20년째 이어지는 문제다. 그럼에도 전국 모든 지하철 역사에 대한 엘리베이터 설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점차 늘어나고는 있어도 저상버스 도입률도 전국 평균 27.8%에 그친다. 장애인 콜택시의 운행 대수는 초기보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상버스, 장애인 콜택시가 그들의 불편함을 모두 해소할 수 있을까. 사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장애인의 이동권과 그것을 위한 시설의 도입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그들로 인해 본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현재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관심이 들끓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장애인들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방해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비장애인이 다수라는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은 단순히 불완전한 시설의 확보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린 ‘빨리빨리 문화’에 기인한 사회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길 찾기 어플에 제시된 시간 안에 도착해야만 하는 사회의 시간에 장애인의 시간은 고려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으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마침내 수면 위로 올랐다.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하기 위해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방식의 시위는 서울 시민을 볼모 잡는 행위”이며“비문명적인 시위”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금 불편한 것을 그들은 평생 겪었다는 것”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게 시위”라는 말에 좀 더 힘을 싣고 싶다.  그 누구도 장애를 갖고 싶어 갖게 된 것이 아니다. 더불어 스스로를 배려의 대상으로만 낙인 받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모든 권리 중 기본이다. 이동을 하지 못하면 교육을 받는 것도, 일하는 것도, 문화를 누리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숨 쉴 권리이다. 장애인의 사회참여가 온전히 보장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2022-04-27 | hrights | 조회: 653 | 추천: 11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또렷이 생각난다. 피 끓는 애송이들이 한 방에 삼삼오오 모여 음란물을 감상하던 순간이었다. 방 안에 모인 모두가 침을 꿀덕, 꿀덕 삼키면서 여성의 나체를 탐닉했다. 이름도, 나이도, 삶도.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의 나체였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기사 하나를 읽었다. ‘n번방 사건’이라는 이름의 기사였다. 사건을 정독해보았다. 개요에 따르면 2018년 9월경 어느 경찰서로 ‘경찰 사칭 성폭행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신고 하나가 접수됐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담당 수사관은 사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건은 그대로 묻힌다. 후에 시간이 흐르고 그 사건은 n번방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소나기가 쏟아진다.  ‘반문명적 범죄’, ‘한국의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인성교육 대실패’, ‘추정 가해자 30만’, ‘엄중한 법의 처벌’,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심판’ 등의 이름을 가진 수백 개의 기사들이 쏟아진다. 유명인사나 저명한 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정치하는 누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행동해야 하는 때’라는 말을 힘있게 외치고 사람들은 그를 지지한다. 정부의 청원도 올라온다. n번방 가해자들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그 청원은 수많은 독려를 받고, 눈을 감고 일어나면 몇천 개의 서명 혹은 몇만 개의 서명이 늘어나 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입을 모은다.  가해자들을 욕한다. “그들은 욕먹을만한 짓을 했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할만한 몰염치하고도 천인공노할 짓이었다. 윤리성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 비난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말한다. “자신은 호기심에 그랬고, 시청만 했을 뿐이고,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는데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고. 그들은 괴물이 맞다. 그렇다. 그들은 괴물이 맞다.  보안이 철저한 가상화폐를 이용해 경찰의 추적망을 피했고, 미성년자와 여성들의 성을 착취했고, 협박했고, 인생을 망쳐 놓았고, 돈을 벌었다. 겉으로는 사회의 일원이라며 한 행동들이다. 2018년도 당시에는 학생으로, 오늘의 평범한 38살의 회사원으로, 사회의 공익을 위한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하며 뒤에서는 살인까지 교사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n번방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한 클럽에서 성폭행이 이루어졌다. 그때도 지금처럼 똑같이 목소리를 내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성의 인권과 존엄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입에 오르내리고, 남자들은 잠재적인 가해자가 되고, 반증하듯 역시나 새로운 성범죄의 가해자가 되었는데 바뀐 것은 없었다. 반성을 논하는 칼럼들이 쏟아져 내렸는데, 안이한 처벌과 뒷배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는데, 청원 역시 이루어졌는데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성을 착취하는 괴물들과 그것을 소비하는 괴물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건네고 싶다. 도대체 우리는 왜 바뀌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했다. 멀리 찾을 것도 없었다. 남자들은 불쾌해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자신들이 어째서 소수의 괴물 때문에 잠재적 가해자가 되느냐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엔 진정한 반성도 없고 진정한 고민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래서이다. 거기엔 진정한 반성도 없고 진정한 고민도 없었기에 사회와 우리는 바뀌지 못했다. 남자들은 여성들이 주장하는 “2020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깔린 저변의 강간 문화”라는 말에 매우 민감하게 눈살을 찌푸리곤 한다. “강간 문화까지는 아니다.” “비약이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남성들은 알게 모르게 여자들을 수없이 강간해왔다. 모니터 속에서 그랬으며 현실에서 그랬다. 그러자 누군가 말한다. “나는 한 번도 여성의 성을 학대하지 않았으며 음란물을 시청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왜 잠재적인 가해자로 몰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거기에 대한 대답 또한 매우 간단하다. 침묵은 때로 부정이 될 수 있지만, 긍정도 될 수 있다. 나는 한 가지를 고해하고자 한다.  나는 n번방 사건을 처음 접하고 피 끓는 애송이들이 한 방에 삼삼오오 모여 음란물을 감상하고 난 이후의 일을 생각했다. 감상을 끝내고 난 다음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비밀로 하자는 말도 감상평도 없었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삶도 모르는 여성의 나체를 탐닉한 채 그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우리가 그날 본 것을 우리는 우리의 가슴에 묻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렇게 나는 침묵을 택하고 괴물이 되었다.  그렇게 괴물이 된 나는 이제 말하고자 한다. 진정한 반성과 고민이 있어야만 변화가 생겨난다. 관망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잠재적인 성폭력 가해자가 되어 분노하는 것도 이제는 지겨워해야 할 때다. 이 사건 앞에서 결코 결백이란 있을 수 없다.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지 괴물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지 괴물이 아니다. 사진 출처 -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을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죽음과 착취로 이어지는 폭력적인 소비를 근절해야 한다. 이유는 필요 없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말을 구태여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누군가는 나는 결백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누군가는 그저 음란물을 시청했을 뿐인데 왜 이런 처우를 받아야 하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괴물로 살고 싶지 않다. 이미 현실에서 한 줌의 재가 된 후에도 모니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여성의 나체를 탐닉하고, 또 누군가를 죽이고 소비해가며 추악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나의 고해이자 결심이고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나는 괴물로 사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괴물로 살고 싶은가? 아니면 인간으로 살고 싶은가? 황은성: 황은성입니다.
2020-05-13 | hrights | 조회: 1072 | 추천: 7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아파트나 주택에서는 반려동물을 많이 키운다. 물론 1960년대나 1970년대에도 가정집에서 동물들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주로 개와 소, 닭 등의 가축이었다. 개는 집을 지키기 위하여, 소는 농사를 쉽게 하려고, 닭은 계란을 얻거나 큰 잔칫날 잡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물은 가족과 같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에는 가족 간 끈끈함도 있었다. 왜 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할까? 가족의 해체와 각자의 공간에서 개별화된 삶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과거 사람들의 관계는 끈끈하고 웃음이 넘쳤다. 동물은 방 밖에 줄을 묶어 키웠다. 그들의 복지를 신경 써준답시고 고작 작은 집 하나 지어줬다. 출처 - 크라우드 픽 사람들은 사람에게 실망해 반대심리로 다양한 종의 반려동물들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동물이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맞이할 때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들이 병이 들게 되면 버리려 한다. 인간은 그들을 가족처럼 여기지만 정작 동물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은 채 일방적 사랑으로 동물권을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개는 원래 늑대과로 구분되는 동물로서 야생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에게 옷을 입히고 치장해주고 인위적으로 가공된 음식을 제공한다. 그들을 방 안에 가두어 키우며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게 하는 건 그들의 본성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수세기에 걸쳐 논의되었다. 하지만 동물 권은 동물 복지라는 용어로 최근에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잘 생각하여 보면 그들에게 옷을 입히고, 목욕을 시키고, 사람의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만족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자행된다고 본다. 우리가 한 번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 그들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을 훈련시키는 장면도 보게 된다. 그들을 훈련시키는 사람들은 올바로 이해하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동물도 익숙하게 다루는 것을 본다. 하지만 우리가 동물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을까? 반려 견, 반려 묘 등 다양하지만 인간의 만족을 위하여 키우는 측면이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동물권이라는 법률상 규정은 없지만 생태계를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요소다. 동물 권은 동물이 동물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뛰어놀게 하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주택구조가 아파트이고 예전처럼 마당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중입니다.
2020-04-23 | hrights | 조회: 969 | 추천: 2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지난 1월 30일, 성전환 수술 뒤 법원에서 성별정정 허가를 받은 A씨가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2020년 신입생으로 합격하였다. 그 후 학내외에서는 지지와 반대 양측의 의견이 들끓었고, 2월 7일, A씨는 “입학 반대 움직임에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며 입학을 포기하였다.  이 과정에서 6개 여자대학의 21개에 달하는 소위 페미니스트 단체가 ‘여자들만의 공간과 기회는 여자의 것이어야 한다.’, ’여대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차별받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라며 A씨의 입학을 반대하였고, 법원의 성별변경신청 기각 및 관련법 제정을 촉구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 인터넷 기사를 보았을 때, 스크롤을 올려 다시 읽었다. ‘페미니즘 단체’에서 ‘반대’하다니? 혹시 기사가 잘못되었는지 몇 번이나 더 읽고 다른 정보도 찾아보았지만, 잘못 쓴 것도 잘못 읽은 것도 아니었다.  페미니즘(여성주의)을 정의하는 다양한 말을 찾아보았다. 여기서 그 많은 정의들을 포괄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성별로 인한 차별과 억압을 없애려는 생각과 움직임이라고 하면 넓게 보아 대다수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차별과 불평등을 겪는 쪽이 여성인 경우가 대다수였으므로,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과 이익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 그런데 여기서 ‘여성’은 특정 조건에 부합하는 집단을 가리키는 절대적인 말이 아니라, 상대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또 내가 알고 있던 것처럼 페미니즘의 핵심 가치가 비주류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이라면 말이다. 다만 세상 사람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했을 때 상대적으로 여성이 불리한 입장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부당함에 공감했기 때문에, 흔히 성별로 인한 불이익과 억압을 문제 삼는 경우 여성의 권익 보장을 촉구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 중에서도 유색 인종 여성, 장애가 있는 여성, 빈민 여성, 여자 어린이 등 보다 열악한 상황에 처해 더 많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남성’과 비교했을 때는 ‘여성’이 약자이지만, 한국에서 한국인 여성과 비교하면 일부 외국인 여성은 더 많은 차별을 겪는다. 이 관계는 생물학적 성과 자신의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들과, 트렌스젠더 혹은 어떤 성별이라고 규정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빗댈 수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의 입장문도 이 같은 근거로, “여자대학의 창립 이념은 … 교육의 장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왔던 소수자들에게 교육권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라며 A씨의 입학을 지지하였다. ‘여성’의 의미를 위와 같이 상대적인 것으로 본다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단체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이토록 격렬하게 반대한다는 사실은 의아하다. 남성 위주의 불평등한 기존 질서와 구조는 그대로 두고, 심지어 현재의 불평등을 잘 알 뿐 아니라 이에 대해 누구보다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성별만을 여성으로 바꾸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면, 이것이 이익집단의 운동과 무엇이 다를까. 사진 출처 - 한겨레  더구나 일각에서는 A씨의 입학을 막기 위한 인터넷 단체 대화방을 만들면서, A씨를 배제하기 위해 목소리, 얼굴 및 손 전체 사진 등으로 여성임을 인정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주로 여성을 억압하는 성별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중요한 이슈라고 알고 있던 나는, 그들이 ‘여성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싶어 더욱 혼란스러웠다.  소수자로서 겪은 부당한 일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자신이 속한 집단에 적용하는 데만 그치면 악습은 끊어지지 않는다. 물론 익숙한 것을 수용하고 낯선 것은 배척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집단의 동질성을 해치는 사람에게는 일단 날을 세우고, 더 다르고 더 낯설수록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하고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건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입학을 반대하는 이들이, 성전환 수술 후 다시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경우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염려한다는 이야기에는 섣불리 답을 달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걱정스럽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는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수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잠재적인 우려 때문에, 아직 충분히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사람들의 권리를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닐 거다.  함께 지내기 위해, 지금까지의 안정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과, 새로 합류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 고쳐야 할 제도는 무엇인지 학교와 학생들이 먼저 묻고 시행하면 어떨까. 성적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에 가장 민감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에 열려 있는 여성들이 더욱 앞장서서 그를 지지하고 있다는 소식도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A씨는 2020학년도 숙명여자대학교 신입생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을 지켜보며 아직 성 소수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과,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였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가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는 사람들, 나아가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지만 마땅한 권리를 찾기 시작한 선례로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20-03-04 | hrights | 조회: 1255 | 추천: 14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요즘 들어 부모님께 이 말을 정말 지겹도록 듣고 있다. 실직 이후 사회를 알고 싶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시위 현장에 돌아다니는 아들이 걱정되니 매일 잔소리로 하시는 말씀이다. 일은 안 하고 시위나 하면서 돌아다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타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그래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시위 현장을 계속 돌아다닌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죄송할 따름이다. ‘데모하면 교도소 가고 경찰한테 얻어맞을 수도 있을 텐데 너 정말 어쩌려고 그러냐?’고 하시기에 ‘옛날이랑 다르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차라리 그럴 거면 집에서 놀라’고 하신다. 대학 때도 이런 집회를 돌아다닌 적이 없는데 늦게 시작한 게 더 무섭다고 어른들 말씀 하나도 틀린 게 없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확실히 어른들 말씀 들어보면 전에 비해 요즘의 시위·집회는 안전하고 할 만하다. 얻어맞을 걱정도 없고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평화적이니 경찰도 그저 지켜보다 시간이 되면 알아서 물러나고 끝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집회나 시위를 항의가 아닌 일종의 축제고 놀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시위에 참가해 왔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 문제가 있었다. 출처 - 한겨레 요즘엔 토요일에 고 문중원 열사 추모 문화제에 많이 참가하고 있는데 어딜 가나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방해했다. 집회 준비 도중에 난입해 술 취해 행패를 부리며 욕설하고 폭력을 행사해 급기야 경찰까지 배치됐다. 청와대로 행진하던 중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 더 가면 물리적 충돌이 날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중지하고 거기서 농성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리고 툭하면 우리에게 ‘빨갱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니 종북이 날뛴다’고 했다. 앞장서던 필자를 밀치던 기억도 난다. 이게 부모님이 말한 큰일인가 싶기도 했다. 어떠한 정치적 발언도 없었음에도 그런 일이 생기는 걸 보면 아직도 ‘나서면 큰일 나는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왜 (사람들은) 나서서 손해를 볼까’ 생각했다. 이거 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돈 나갈 일만 생기는 일인데도 말이다. 내 나름대로는 ‘사람이 자살할 죽을 정도로 억울하니까, 해결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으니 결국 손해 볼 걸 알면서도 다들 나서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고 문중원 열사의 장례가 아직도 치러지지 않고 계속 운구차에 실린 채로 유족들이 힘겹게 싸워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해결되었으면 하고 정말 간절히 소망하고 기원한다. 이현종 회원은 금형 분야에서 활동중입니다.
2020-02-06 | hrights | 조회: 895 | 추천: 6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우리 인간은 조물주에게 이성과 감정을 선물받았다. 고전을 읽다보면 이를 통찰한 뛰어난 식견에 놀라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인간의 감정을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으로 보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로 통제할 수 있다고 본 반면, 서양의 프로이드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인 이드(id)에서 바람직한 슈퍼에고(super ego)로 나아가기 위하여 이성(ego)을 통해 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출처 - ac 밀란 공식 홈페이지  합리적 생각보다 감정이 앞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는 긍정적 감정보다 주로 부정적 감정이다. 사소하게는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상대의 말을 듣기 보다는 자신의 얘기를 하고 크게는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유럽과 중동 간 벌어졌던 십자군 전쟁과 종교로 인한 종교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이 그 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과거의 부정적 감정은 그대로 남아, 유럽과 이슬람이 지금까지 반목하기도 한다.  긍정적 감정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가령 사람들이 특정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나쁜 감정이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을 지나치게 표현하는 소위 ‘사생팬’들은 연예인을 괴롭게 한다. 사람들이 연예인을 싫어하는 감정도 마찬가지여서, 악성 댓글과 무차별적인 근거 없는 주장으로 당사자를 힘들게 만들고 심지어 목숨까지 끊게 만드는 비극을 연출한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하는 행위도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어색하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분쟁을 해결할 방법으로 비폭력대화를 제안한다. 요점은 ‘대화’다. 우리는 바쁘게 살고, 책을 적게 읽고 스스로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이는 결국 상대방도 존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내기에, 어려서부터 존중을 배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미디어만 접하는 사회에서 비폭력 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중입니다.
2020-01-30 | hrights | 조회: 986 | 추천: 2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1994년 5월. 내가 태어나기 두 달 전 엄마는 만삭의 몸으로 아빠에게 뺨을 맞았다. 엄마는 말했다. “그날 왼쪽 고막이 터졌는데 피가 고였다. 기절하고 깨어나니 굳은 피가 뺨에서 후드득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는 왼쪽에서 나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그 뒤로부터 매일같이. 새벽 4시까지 나와 형, 엄마는 잠들지 못했다. 억센 손끝에서 벌어진, 무참한 폭력이었다. 칼등으로 맞고 발목을 붙잡혀 옥상에 젖은 빨래처럼 널어졌다. 아빠의 송곳니에 손톱이 깨지기도 했다. 백과사전을 5권씩 올린 의자를 들고 한 시간 동안 벌을 받은 날도 있었다. 아빠가 죽었으면 했다. 온통 피멍이 든 몸으로, 어두운 방 안에서 아이는 자신의 형을 끌어안고 그런 생각을 했다. 또 그 뒤로부터, 중학교 교복을 개켜 넣어두기 전까지. 가정폭력에 시달려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란, 가난하고 왜소한 아이는 학교에서도 환대받지 못했다.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로 끌려가 이유 없이 맞았고 이유 없이 대걸레를 빤 구정물 세례를 받았다. 이 또한 이유는 없었다. 누구도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 사이. 철이 일찍 든 탓에 모든 괴로움을 안으로 꾹꾹 삼키던 아이는 “가서 용돈 좀 받고, 가족들 좀 만나고 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너머 여주로 향했다. 아이의 친가 가족들이 말했다. “늬 에미가 너희 아빠 망쳐 놓은 거야.”, “벼락 맞아 죽을 년.”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그렇게 살아오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아이는 독하게 변했다. 세상의 모진 멸시에 지쳐 스스로 서기로 했다. 그러나 비행을 일삼았다. 옥상에 올라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누군가에게 똑같이 상처를 주었다. 그러다 교복을 개켜놓고 나니. 아이는 세상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구제불능 소리를 늘 듣고 살았으므로 그저 구제불능이었다. 목표도, 목적도 없었다. 아이는 자신의 실패를 깨달았다. 사는 것이 괴로워 매일 목구멍 너머로 알코올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마신 술이 일 년이면 오백 병이 훌쩍 넘었다. 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넌 우리 가족이랑 연 끊고 살래? 여주 안 오냐?” 아이는 더 잃는 것이 무서워 여주로 향했고 사람들은 태연했다. “왜 그러고 사냐.” “사지 멀쩡한데 좀 생활력 있게 독하게 살아라, 좋은데 좀 취업하려고 하고.” 하여 지금 그 아이는. 황은성이라는 이름으로 정신병원을 다닌다. 얼마 전이다. 우울은 삶의 전반을 차지했고 떠나지 못했다. 자신이 상처가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상처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아이는 억울했다. 아이는 누군가를 상처주기 싫어 병원에 다니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살아간다는 게. 하여 아이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에 9개의 알약과 저녁에 12개의 알약을 입 안에 털어넣는다는 사실을 고했다. 아버지는 심한 욕설을 내뱉었다. “너희 엄마 탓이야.” 그리곤 ‘꺼지라’며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는 그 무참한 상처들에 속죄를 하라는 아이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글을 써 말하고 싶었다. “인간 내면의 상처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고.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말이다. 아이의 형 말마따나 “털어내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든, “과거에 발목 잡혀 현재를 피폐하게 사는 인간”이 되든, 그런 것을 원하든 원치 않든 관계없이. 내면 깊숙이 각인된 폭력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그 사실을 아는 아이는, 그러므로 자신과 같이 슬픔 속에 사는 인간들이 더 생기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자신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고 엉켜버려서 도저히 풀 수 없다 해도 말이다. 아이는 그저 말하고 싶었다. 인간은 평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만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반드시 겸허히 받아들이고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반드시 속죄하고 고두(叩頭)하며 살아가아 한다고.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일에는 이유도 순서도 필요하지 않다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파괴하고 죽이며 살아가게 될 거라고. 잘못했을 때는 반드시 용서를 빌라고. 더 곪아 터지기 전에, 더 썩어 슬프고 우울한 늪을 만들기 전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그것은 어떤 이유도, 변명도, 사정도, 배경도 필요하지 않은, 너무도 당연히 그저 그래야만 하는 일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황은성: 저는 황은성입니다.
2019-12-23 | hrights | 조회: 1005 | 추천: 9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라는 그림책이 있다. 책에서는 온갖 별을 조사하고 다니는 우주비행사가 세 개의 눈으로 앞뒤를 동시에 보는 사람들의 별에 간다. 이 별에는 지구에서처럼, 태어날 때부터 모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지구에서는 당연하지만 그 별에서는 특별한, 두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을 만나면서 우주비행사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하얀색을 좋아하는 사람과 까만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르고,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이 다르다. 그런데 좋아하는 색이 다른 것은 대체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차이인 반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보이는 사람을 기준으로 비교 대상이 된다.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주류를 기본값으로 상정해 두고 그와 다른 사람들을 ‘다르다’고 한다.  범주화는 일상의 사고와 업무를 돕고, 배려가 필요한 집단이 은폐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분하는 행위 자체가 편견과 낙인, 차별의 출발이 된다. 굳이 다른 이름을 붙이면서 일반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한부모/다문화/조손/재혼/입양가정… 과 같은 이름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녀가 처음 결혼하여 출산으로 자녀를 얻고 부부 모두 가정을 떠나지 않은 상태를 ‘일반적인’ 가정으로 여기는 데서 등장한 단어다. 부부가 동갑이라거나 자녀가 쌍둥이라는 특성처럼 부모 중 한쪽이 없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였대도 구태여 ‘한부모가정’이라는 명칭이 필요했을까. 한글 프로그램에서 남교수라고 타이핑했을 때와 달리 여교수라는 말에는 빨간 줄이 그어지지 않는 것도, 사전에 기혼모라는 단어가 없지만 미혼모라는 단어는 나오는 것도, 은둔형외톨이의 반대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주인공은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고, 그리고 모든 사람은 원래 조금씩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다수의, 혹은 강자의 특징이 당연한 게 아니라,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당연하다. 주류집단에 속했을 때는 당연했던 자신의 특성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고 오히려 희귀하게 여겨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화자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당연한 것으로, 또 좋아하는 색깔이 제각기 다른 것과 같은 의미에서 서로 다른 것으로 표현한다.  타인과 나는 어떤 점에서는 같지만, 어떤 점에서는 다르다. 같은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다른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주류가 되고, 또 다른 면에서는 소수자가 된다.  지구인, 눈이 세 개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 몸이 흐물흐물한 사람, 하늘을 나는 사람. 이 넷이 모여 있는 장면에서, 한 명은 연어알이 우주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고, 몇몇은 아직 이불에 쉬를 하고, 또 다른 몇몇은 베개 없이는 못 잔다고 한다. 그리고 넷 모두 배고프면 짜증이 나고, 엄마가 꼭 안아주면 좋단다. 전 세계의 사람들은 네 명보다 훨씬 많은 70억 이상이고, 나이대도 훨씬 다양하지 않은가. 사람은 한두 개의 범주만으로 설명하고 구분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특성이 교차하고, 무수히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존재다. ‘다르다’라는 말이, ‘안 보이는 사람’ 같은, 단 하나의 특징으로 규정되는 집단을 의미할 수 없는 이유다. 사진 출처 - 토토북  “우아―!”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다른 사람의 특징이나 생각을 알게 되었을 때 이렇게 외친다. 저 사람이 나와 같은 ‘당연한’ 특성을 지녔는가, 나는 끼지 못하는 주류집단에 속한 사람은 아닌가, 내가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가 따위의 생각으로 타인을 향해 경계를 긋고 우열을 따지지 않을 수 있다면, 참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건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삶의 활력이 될 수 있는 즐거운 일일 것이다.  화자는 몸의 특징과 겉모습을 ‘탈것’에 비유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꽤 편리한 탈것을 타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한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다른 탈것에 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탈것만으로 그를 어떤 범주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타고 있는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알아가는 기쁨을 의미하는 말, “우아―!”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하는 내가, 그리고 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9-12-18 | hrights | 조회: 1012 | 추천: 8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 오후 5시쯤 지하철에 탔다. 시간대도 그렇고, 2호선은 사람이 붐비는 노선이기도 해서, 그야말로 ‘지옥철’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숨 쉴 구멍 정도는 있었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1호선 환승을 하려고 내릴 때 ‘그 광경’을 보았다. 바로 옆 칸에서 싸움이 났는지, 누군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자세히 보니 휠체어 때문이었다. 사실상 만선인 지하철에 휠체어 탄 장애인이 들어가려 하니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장애인에게 자리가 없으니 다음 차를 타라거나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욕을 하고 있었다. 그 장애인은 ‘이미 40분 동안 몇 대나 양보해서 보냈다, 이제는 타겠다’고 했다. 휠체어 전용 석도 마련된 지하철에 왜 자신이 타서는 안 되느냐는 거였다. 그는 전동 휠체어를 억지로 밀어 넣었고, 결국 객차 안 다른 사람의 발을 휠체어 바퀴가 뭉갰다. 발을 다친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휠체어를 발로 찼다. 발길질에 뒤로 밀려난 휠체어가 전철 출입문에 걸린 탓에 출발이 지연되고서야 사람들은 어렵게 자리를 만들었고, 그 장애인은 겨우 전철을 탈 수 있었다. 그 광경을 5분 가까이 지켜보면서 온갖 생각이 들었다. 왜, 휠체어로 이동하는 장애인들은 지하철 이용에 제약을 받는 걸까, 누구나 누려야 할 공공 서비스이고 전용석도 있는 전철에 왜 그들은 탈 수 없을까, 이런 난리가 벌어지는데 역사 직원은 왜 안 보이는 걸까, 저 사람은 어떤 사고를 겪고 장애인이 된 걸까. 이런 질문들 끝에 나를 불쾌하게 하는 앙금으로 남은 것은 ‘이동 방해 요소’인 그 장애인을 향한 사람들의 폭언과 경멸의 언사, 그리고 행동들이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40분 넘게 지하철을 타지 못한다는, 제발 좀 같이 타자는 울먹거림 앞에서 누구 하나 도와주거나 다 같이 뒤로 좀 물러서서 공간을 만들자고 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휠체어를 향해 욕을 하고, 알 바 아니라고 소리 지르거나 다음 차를 타라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심지어 ‘몸이 그러면 택시를 타던가, 밖에 나오지 말아야지 뭐하러 나와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냐’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 장애인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처럼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했을 뿐이었다. 단지 그런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욕을 듣고, ‘민폐’라는 딱지가 붙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장애인의 나이라든가, 장애를 안고 살게 된 사연이라든가, 저 사람이 가려는 곳이 어떤 곳이며 왜 가야하기에 저렇게 절실할까라든가 하는 것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 무서워졌다. 운수가 지독히 나쁜 어느 날 내가 큰 사고를 겪는다는 상상을 하니 그랬다. 조금 전 보게 된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상상했다. 저 사람이 겪은 잔인한 대우를 나라고 겪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휠체어에 앉은 그가 나였다. 사회에 적응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쓸모를 증명할 기회를 잃은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고 인권이 있다. 아니,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도 각자의 가치와 인권이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들과 함께할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이현종 회원은 금형분야에 재직중입니다.
2019-12-09 | hrights | 조회: 845 | 추천: 7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만일 당신이 취미로 글을 쓰겠다면 권장하겠지만 직업적으로 글을 쓴다면 말리고 싶다, 당신이 원고를 청탁받는다면 써야 할 기간이 촉박할 것이고, 그 기간이 짧다면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자명하다. 내가 글 쓰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등사기로 만든 교회 학생부 연간지에 글을 실린 글을 보고 나서다. 그리고 문학의 밤에 시와 수필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낭독될 때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때에는 글에 대한 관심만 가졌다. 나의 본격적인 글쓰기는 고등학교 때 시작되었다. 시화전에 출품할 시를 쓰게 되었는데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와 오마주한 ‘잉태’라는 시였다. 이 시에 미술을 하는 친구가 멋진 그림을 그려주었고 인근 학교 여학생들이 와서 구경하기도 하였다. 후문에 의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의 시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을 지낸 후 교회 청년부에 다니게 되었다.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글을 썼다. 새벽에 글이 잘 나왔다. 꾸준하게 글을 써서 청년부 주보에 게재하였다. 이때는 주로 시와 수필을 썼다. 하지만 고졸인 탓인지 선배들의 힐난(?)을 감내해야 했다. 예쁜 아이를 낳은 어머니의 심정이 이런 것이라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다 20대가 끝나갈 무렵 나는 교도관이라는 공무원이 되었고 일요일에 근무하는 덕분에 교회를 나가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글과 멀어졌다. 공직에 들어온 이후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교도소에서도 글과 조우하는 인연이 숙명처럼 다가왔다. 운동권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읽었다. 수감 중인 기업인이나 CEO를 만나면서 경영학이나 경제학 관련 책들을 접하였다. 독서는 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책을 읽을수록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허나 사회적으로 교도관이라는 직업은 그다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며 근무조건이 열악하여 인터넷으로 직장현안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잃어버렸던 글을 쓰게 되었다. 꾸준한 문제제기로 인하여 나아지는 측면도 있었으나 아직도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는 개선될 사항들이 많다. 이때 법무부 공무원들의 소통공간에서 지식행정부분에서 처음에는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식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소논문 형태의 글을 발표하여, 지식행정활동우수자로 한 번은 2등을 하여 현 자유한국당 대표인 황교안 장관에게 장관표창을 받았다. 그 후 꾸준한 활동을 통하여 1등을 하여 2018년 박상기 장관에게 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인권연대가입을 하여 팔자(?)에 없는 칼럼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니 글이 내 마음 같지 않았다. 멘토 분의 지도를 받으면서 많은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글이 간결하지 않고 장황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 번도 내 글에 대해 스스로 그렇게 평가해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엔 쇼크를 받았다. 하지만 내 글의 현주소를 알았다는 점에서 올해의 수확이기도 하다. 출처 - 사진 표기 올해 글을 쓰면서 청탁받고 쓰는 글은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직업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이 떠오를 때 쓰는 것이 가장 좋은 글이지만 삶이 사람을 한가롭게 두지 않기 때문이다. 바쁜 와중에 쓴 글이지만 오히려 분주함 속에 보이는 글쓴이의 고뇌가 있다. 전엔 세상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았다면 바쁜 사람들, 특히 분주하게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사람들 속 이면의 고뇌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인권연대 회원 칼럼니스트 활동을 통해 글이라는 도(道)를 알게 되었다 생각하니 감사한 해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9-12-03 | hrights | 조회: 1014 | 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