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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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김원진/ 청년 칼럼니스트 * 언어는 현실을 반영한다. “나, 취뽀했어!”의 취뽀는 취업 뽀개기의 줄임말이다. 취업을 뽀갰다는 것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비정규직 내지 계약직으로 취업했다고 취업 뽀개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잠정적 취업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통계는 얼추 현실을 드러낸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20대는 취업(48.3%)에 가장 집착한다. 1998년 300인 이상 기업 취업자 가운데 청년층 비중(15세~29세)은 30.0%였지만 2013년에는 18.0%에 불과하다. 20대 대기업 중 11곳은 매출이 10억 원 늘 때, 고용은 1명도 늘지 않았다. 산업의 파이는 커졌는데 고용현실은 갈수록 악화일로다. 취소, 불투명, 수시채용 대체, 공채 소극적 자세,이공계열로 축소, 채용 축소. 올 상반기 공채 기상도다. 물론 기준은 ‘대기업’이다. 누군가 트위터에 이렇게 표현했다. “2014년 상반기 취업 트렌드: 안 뽑음” *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이 권리는 도시에서 편익을 누릴 권리, 자신들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 권리 등을 포함한다. 허나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현실 속 도시의 주거 문제는 고약하다. 대학가 고시원, 원룸은 한 달에 4, 50만원을 훌쩍 넘는다. 겉만 번드르르할 뿐, 옆방에서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매일 밤 들려오기도 한다. 2012년, 대학생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공공 기숙사 건립사업'이 시작됐다. 그러자 학교 주변 원룸, 하숙집 주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값싼 공공 기숙사가 들어서면 건물 업주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는 말이냐는 하소연이다. 드잡이가 일어난 사이, 서울의 평균 전세가격은 더 올랐다. 서울 25개구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평당 1000만원을 넘어섰다. 도시에서의 삶은 값비싼 사치품이 됐다. 그림 출처 - 경향신문 * 얼마 전, 서울대에선 총학회의가 열렸다. 참가자에겐 5만원 씩 지급됐다. 교통비 명목이었다. 100여명이 참석했으니 500만원이 살짝 넘었다. 논란이 일자 총학생회는 다음의 답변을 내놓았다. “새벽에 회의가 끝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울을 벗어나면 택시비 만해도 엄청나다.” 이번엔 학교 학생회에 오래 몸담았던 선배에게 물었다. “돈이라도 안 주면 참석을 안 하니까.” 선배는 좋지 않은 관행이라고 하면서도, 현실적 어려움을 피력했다. 지난주 서강대에서는 전체학생총회가 있었다. 정족수 미달로 회의를 열지 못했다. 회의 개최에 무려 2000여명이 모자랐다. 회의는 웅성거림으로 어수선했다. 보다 못한 총학생회장의 집중해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 비민주적인 학칙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학생들이 모였다.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각종 행정적인 절차를 들며 교직원이 감시 및 방해에 나섰다. 학생들과 기자들이 신분 확인을 요구하자 끝까지 거절했다고 한다. 2012년 대선 직전, 서강대 페이스북 커뮤티니에선 논쟁이 붙었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주장과 자유로운 공론장에선 어떤 주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섰다. 누군가 소위 ‘정치적’인 게시물을 올리면 곧바로 지워졌다. 익명의 관리자 두, 세 명의 소행이었다. 그 후 정치적인 것의 ‘바깥’이라는 누군가의 기준이 자리 잡았다. 더 이상 ‘정치적’인 얘기는 거의 오가지 않는다. 분실물을 찾아주거나 홍보용으로 쓰인다. 간혹 미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 세대론은 더 이상 화두가 아니다. 다시 20대 문제는 잠잠해졌다. 더 이상 반값등록금은 주목 받지 못한다. 고용창출은 대부분 생색내기다. 인턴과 계약직, 비정규직으로 점철된다. 이것은 현상이다. 어쩌면 다행이다. 세대론의 수명은 다했다. 세대론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세대문제는 사회문제가 되어버렸다. 20대의 문제가 곧 10대와 30대의 문제다. 10년 후 노동시장에 뛰어들 10대에게도 일자리는 넉넉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서 은퇴한 50대가 맞닥뜨린 문제와도 유사하다. 평균 수명 80세 시대에 재취업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고로 20대 문제는 곧 한국사회의 문제다. * 일자리는 줄어들거나 정체한다. 이리저리 매달려도 양질의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쉽지 않다.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고 자동화한다. 기업가 입장에서 사람은 미래이기보다 그 자체로 돈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부모 내지 조부모의 재력 없이 불가능하다. 집값은 점점 더 터무니없어지고, 정부는 터무니없음을 부추긴다. 공론을 나눌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바쁘기도 하거니와 헤쳐모여 식의 온라인 소통에 익숙하다. 의견은 공유하되 파편화된다. 연대의 경험은 없다. 이렇게 안 뽑음, 집 없음, 안 모임이 모이면 결국 ‘입 다물’이 형성된다. * 이상향을 꿈꿨던 플라톤은 ‘정치적’인 것의 범주를 축소하려 했다. 그 방법은 사회에서 갈등을 없애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갈등이 사라지면 이데아에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틀렸다. ‘입 다물’은 갈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은폐한다. ‘입 다물’ 앞에는 대개 괄호가 숨어 있다. (나와 다른 생각 하는 사람들은) ‘입 다물’! 결국 그럴수록 입을 열어야 한다. 말, 말이 필요하다. 지금, 여기서 입을 다물면, 시간 흐른 뒤 입만 뻥긋해도 누군가 검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버릴지도 모른다. * 나는 그런 사회가 두렵다. 김원진씨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언론인권센터 모니터링팀에서 활동 중인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292 | 추천: 0
이현정/ 청년 칼럼니스트 '또로롱'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 날도 평범한 어느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는 여느 때처럼 나에게 속보라며 알림을 하나 보여 주었다. '법원, 쌍용차 해고 노동자 47억 배상 판결'. 지난 해 11월, 나의 평범한 일상에 찬물을 끼얹는 순간이었다. 47억? '해고'된 사람들한테 47억이라고? 나는 물론이거니와, 평범한 노동자라 할지라도 평생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도 보기 힘들 액수였다.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에서 친구들과 여러 말이 오갔다.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들이었다. 그 날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수많은 분노와 한탄의 목소리가 가득 가득 공간을 메웠다. 동시에 이런 살인적인 판결 앞에서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무기력함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시사IN>에 4만7천원이 담긴 편지가 도착했다는 기사를 하나 보았다. 47억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공감한 평범한 노동자의 가족이 보낸 그 편지는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녹여 나가고 있다. '노란봉투' 프로젝트라고 불리게 된 이 사연에 마음이 녹아든 사람들은 다양했다. 해고 노동자의 가족뿐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게 사는 가족들, 청년들, 그리고 나와 함께 시민단체에서 인턴을 했던 친구들도 10명이 4700원씩 갹출해 4만7천원을 만들어 이 노란봉투에 참여했다. 2월 26일,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출범식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자원 활동을 하러간 그 곳에서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가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때문에 분신했다는 것을 알았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말도 안 되는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가 노동자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음을, 이 짐은 무겁다 못해 한 가족을 파괴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고 있음을 더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는 노조를 향한다. 그리고 이 손해배상청구의 근거는 '불법파업'이라는 딱지가 가장 앞에서 총대를 메고 노조에 총질을 해댄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올해 2월, 사측의 해고 조치는 부당하며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물론 사측은 예상대로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를 한 상태다. 이와는 별개로 이들의 '불법'파업 사실은 여전하고 가압류도 여전하다. 사측의 부당한 해고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불법'파업인데도 말이다. 애초에 '불법'파업이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헌법에도 당당하게 보장되어 있다. 지난해 말, 올해 초에도 있었던 철도노조의 파업과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일부 언론과 사측, 정부가 '불법'파업이라는 낙인을 찍어 노조의 단결을 방해 받기도 했다. 이 '불법'파업이라는 단어는 노조의 결사권을 해치는 대표적인 무기다. 합법적인 파업은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만을 위할 때 성립 가능하다. 다른 시민들을 고려하는 이타적인 파업, 가장 가까운 예로 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파업에 나섰던 철도 노조의 파업은 이타적임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불법'이라는 불명예를 입어야만 했다. '불법'파업은 차치하고서라도, 말도 안 되는 손해배상청구액도 문제다. 노동조합법에서 노동자의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판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헌법에서도, 노동조합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파업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경우는 오로지 합법파업일 때에만 가능해 보인다. 손해배상청구의 주체도 사측만이 아니라 경찰까지 합세해서 노동자와 노조의 목을 옭아매고 있다. 특히 청구액은 실질적인 손해액 보다 훨씬 더 높게 책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시사인   위의 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손해배상청구액은 수십억대가 넘는 금액들이다. 노동자들이 평생 벌어 모아도 구경도 못 할 돈을, 무슨 수로 내놓으라는 것일까. 이 표를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죽으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인정하지 않고 또다시 쟁의를 하면 자꾸 불법이라며 괴롭히려 든다. 이럴 때는 정말 '있는 것들이 더 하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불법'파업, 시민 불편 초래 등등의 오명으로 얼룩져 있던 노동자와 노조에게 그동안 잠잠했던 시민들이 하나 둘 손을 내밀고 있다. 가족, 노동자, 해고, 아이.. 이 단어들은 민영화, 공공성, 판결 등의 어떤 단어들보다 사람들의 가까이에서 마음을 토닥였고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와 같은 청년들도 미래의 노동자로서 조금이나마 공감하려고 노력 하고 참여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어둠 속에서 작은 변화가 움트는 것이 보인다. '손잡고' 함께 걸어가고 싶다. '손잡고' 함께 걷고 싶은,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거대 자본과 권력 앞에서 나 한 사람은 무기력해 보이고, 또 나 자신이 무기력함을 느낄지 모른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어제처럼, 그리고 내일처럼 이렇게 함께 하는 마음들이 하나 둘 모인다면, 이렇게 정말 10만 명이 모인다면, 손해배상액만 갚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부당한 손해배상 제도도,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권도, 시민들의 목소리와 함께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란봉투와 함께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모금이 아닌, 분노하고 있던 개인과 사회에 대한 치유가 아닐까. 나도, 우리 가족도, 이웃도, 그리고 손배가압류에 지친 노동자들도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낼 날들을 꿈꿔 본다. 이현정씨는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학과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06 | 추천: 0
한은석/ 청년 칼럼니스트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말이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미 한국 사회에는 안녕이란 무엇이고, 안녕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름의 정치적 입장이 형성되어 있다. 비록 현재에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한때 대통령을 만들어냈던 입장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있으며 안녕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안녕에 대한 기준들은 특유의 세속성과 직관성으로 널리 퍼져 있다. 입장에 따르면, 안녕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주로 건전한 상식으로 불리는 이념들이다. 마치 칸트가 정리한 정언명령처럼, 영화 변호인의 대사처럼 그러면 안 되는 당연한 것들이다.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사심이 없다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들로 이념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우리가 안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런 건전한 상식이 널리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변호인>이 말하지 않은 것들 중에서 - 입장에 따를 때,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변호인과 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그렇다면 안녕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이 건전한 상식과 양심을 갖춘, 마땅한 자격을 가진 시민들이 많아지고, 더 많은 권력을 얻는 것이다. 시민성(civilite)은 더욱 확장되고 수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수호자들은 더욱 강한 권력을 얻어야 한다. 반대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건전한 상식과 시민성을 가지지 못한 이른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집단들은 배제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거룩한 시민성의 수호자들은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운동을 지키기 위해서 자격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분쇄하고자 했다. 쉽게 돈을 버는 범죄자인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운동을 폄하하기 위한 음모였으며, 정치에 대한 생각도 없고 개념이 없는 김치녀들은 계몽되어야 했다. 자격도 없고, 운동의 대의에 도움이 될 수 없는 목소리들에게까지 자리를 내주기에는 운동은 너무 중요한 것이었다. 10년 전, 대통령을 만들어냈던 입장들이지만 이런 입장은 이제 틀렸다. 입장과 생각의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이념은 분명히 틀렸고 명백히 잘못되었고,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말이 가진 중요한 함의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한마디로 민폐다. 문제의 핵심은 자격에 있다. 건전한 상식과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되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진 그 자격 말이다. 자격을 갖춘 나와 너는 결코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시민성의 수호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원래 한국 사회에서 안녕은 평등의 고원 위에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시민성의 수호자들에게 일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치 세력과 성노동자와 김치녀들이 자격이 없었던 것처럼, 주류 이데올로기에 있어 좋은 학벌을 구매하지 못하고 좋은 스펙을 만들지 못한 낙오자들, 학벌을 얻기 위한 노력도 없이 땀을 흘리고 기술로 노동하는 블루칼라들은 당연히 안녕할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퍼져 나간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안녕들 하냐고 묻는 말에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규칙은 단 하나다. 서로가 대등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과연 평등의 고원에 들어갈 충분한 자격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의 안녕을 보듬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서로에 대한 충실성만이 유일한 규칙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라 대자보 자체를 훼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청자와 화자가 대등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이 오가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화자가 무슨 내용을 말하는 지를 따지지 않고, 화자가 고려대학교 학생인지 아닌지, 성노동자냐 김치녀냐 따위를 가지고 화자의 주제와 자격을 따지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획기적인 규칙을 담은 메시지는 즉각 전파되었고, 이는 수많은 대자보로 나타났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러나 안녕들 하십니까? 의 운동이 기존의 시민성을 극복할 어떤 해답이 될 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이제 막 질문은 던져졌을 뿐이고, 또 하나의 과정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들이 어떻게 나아갈지, 그리고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존의 유력했던 정치적 입장이 자신들의 규칙에 따라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의 메시지를 오독한 것처럼, 운동의 메시지에 담긴 핵심을 이해했다고 착각하여 큰 실수를 저지를지 모를 일이며, 오독과 실수를 하기도 전에 당장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 대한 소식에 파묻혀서 사람들의 관심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를 노릇이다. 또 관심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민성의 형태로 받아들여질지도 알 수 없다.   유체이탈' 안철수, 연대는 나쁘고 양보는 좋다? 중에서 - 안녕들 하냐고 묻는 말이 당장 안철수의 새정치를 넘을 수 있을까? 새정치라는 말의 모호함은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사건은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헤겔의 말처럼, 진리는 전체다. 서로의 안녕을 보듬어줄 수 있는 시민성은 역사에서 이전까지의 시민성이 그래왔던 것처럼, 고귀한 계시와 구원의 강림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나긴 과정과 일상을 통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말은 누군가가 해주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듣는 것으로, 이런 일은 존경받는 명망가들이나 고매한 이론에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일이다. 한은석씨는 사회 내 불평등에 관심이 있는 경제학과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296 | 추천: 0
- 기억의 습작 김원진/ 청년 칼럼니스트 때 이른 한파 덕분에 방에 틀어 박혀있기 안성맞춤인 요즘, 알게 모르게 캠퍼스엔 전운이 감돌아요. 남을 수밖에 없는 자와 떠나려는 자 그리고 떠난 자 사이엔 간극이 느껴져요. 1차, 2차, 3차. 술자리가 아니에요. 관문이에요. 좁아요. 몸을 좌우로 잘 비틀어 통과해야 해요.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1차', 그러니까 서류전형도 이젠 제법 까다로운 통과의례가 되었다고들 하네요.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은 승부수를 던져요. 그게 자기소개서예요. 예쁘장한 자기소개서 말이에요. 몇 가지 가이드라인이 있데요. 본인만의 스토리, 제한된 분량 안에서 풍부한 이야기, 원론은 금물, 군대 일화 금지, 경험과 과정, 느낌을 구체적으로, 두괄식, 본인'만'의 생각, 팩트 중심과 논리 그리고 정확한 표현. 헉헉, 숨이 차네요.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거 없어요. 글쓰기 대원칙 따위와 유사하죠. 우리 시대에 가장 절박한 문학의 양식이 있다면? <잉여사회>의 저자 최태섭씨는 자기소개서를 문학에 비유하더라고요. 비유가 아니라 비꼬는 거죠. 영희는 작년 이맘때쯤 처음 자기소개서를 써봤어요. 인턴을 쓰기 위해서였어요. 기억과의 전쟁, 그 서막이었어요. 소크라테스는 그랬다죠. 질문은 망각하고 있던 걸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고. 무던히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영희는 자기서사의 토대를 단단히 구축하려 했어요. 기억을 회고하며 재배치하고, 그리곤 지원하는 부서 담당자들의 입맛에 맞을지 다시 한 번 고민했죠. 이 치열한 분류와 배제의 정치학을 거듭하고 나서야 나쁘지 않은 작품이 나왔어요. 적어도 영희 생각엔 그랬어요. 친구들은 아니라고 했어요. 네가 아무리 기업의 사회공헌(CSR)팀에 지원한다고 해도 기업은 기업이니 몇 개 항목은 갈아엎으라고 했어요. 영희는 치열하게 고민했는데 말이죠. 사실 기억은 어떤 수식어 없이 존재하지 않잖아요. '소중한' 기억, '씁쓸한' 기억, '자질구레한' 기억, '지우고 싶은' 기억. 그때 영희는 '사회공헌팀이 원할 만한' 기억을 나름대로 선별했다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본인의 개성도 드러냈죠. 평소에 인간과 사회의 총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걸 은근슬쩍 티내면서 어필했어요. 틈틈이 메모해놨던 인생의 순간순간들을 자기소개서에 쏟아 부었어요. 왜 이런 말 있잖아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첫사랑이라거나 가장 뜨거웠던 사랑의 기억이 첫사랑이란 말들 하잖아요. 기억은 보험처럼 갱신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영희는 몇 개의 '최초의 기억'을 끄집어낸 거죠. 마치 류현진이 1회와 2회에는 직구 위주의 피칭을 하고, 경기 중반엔 체인지업과 커브를 골고루 섞어 던지는 것처럼 기억의 레퍼토리도 다양하게 짰어요. 때마침 취업시즌을 맞아 학교에서 취업박람회가 열렸어요. 자기소개서 무료 컨섵팅을 하더라고요. 영희는 써놓은 자기소개서를 하나 들고 일단 찾아갔죠. "영희씨는" 2:8 가르마의 신사분이 말씀하셨어요. "아직 기업마인드가 충만하지 않고만." 항변까지는 아니고 변명이랄 것까지도 없는 해명 정도를 했어요. 처음 써본 거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끌어내 쓴 자소서다. 그런데 그렇게 보잘 것 없나? 알아요. 원래 그런 거. 필자(취업준비생)과 독자(인사담당자)사이엔 어마어마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거 잘 알아요. 어디 이뿐이겠어요. 세상의 모든 필자와 독자는 오해로 점철된 관계라죠. 필자에겐 '최초의', '신선한', '깜짝 놀랄만한' 인식론적 충격의 기억이겠지만, 독자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스윽 읽어버리죠. 이건 쓰는 이와 읽는 이의 필연적 갈등이자 비극이라고 영희는 배웠어요. OO씨는 시민단체나 사회복지관으로 가셔야겠어요. 취업컨설턴트라는 명찰을 단 여성분이 영희에게 말을 건넸어요. "이것은" 취업컨설턴트가 말했어요. "에세이가 아니에요. 좀 더 기업과 관련 있게 끌어 당겨 써야 해요." 안데요, 영희도. 마음에 쥐뿔만큼도 없는 소리, 어차피 해봤자 들통날까봐 적지 않은 거라고요. 참, 다들 영희 마음을 몰라주네요. 그래도 영희는 서랍 속에서 일기장(물론 타인을 의식한)을 꺼내놓은 거였는데. 사실 거창한 목표도 있었어요. 발터 벤야민의 에세이 <베를린의 유년시절>은 유년 시절의 개인적 기억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려요. 사회적, 역사적 차원으로 말이죠. 영희도 자기소개서에 본인이 기록해 놓은 '최초의 기억'에 보편성을 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사 담당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싶었죠. 물론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요. 공짜로 컨설팅 한 번 받았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어요. 집으로 돌아와 다시 기억을 쥐어짰고 서사를 마사지했어요. 결국은 왜곡된 사실이 나열되고 떠먹기 좋게 편집됐지요. 기업의 '니즈'에 맞춰서요. 어쩔 수 없었어요. 키워드 하나하나 섬세하게 바꿨어요. '성실하고 근면한'(하기 싫은 건 일단 안하고 봐요), '친구가 많은'(저는 제 결혼식에 과연 몇 명이나 올까 벌써부터 고민합니다), '긍정적이고 밝은'(매사에 삐딱하고요) 따위의 매력적인 수사를 집어넣었어요. 처음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영희는 있는 그대로 말했어요. "인간과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두루 고민하는 사원이 되고 싶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형용사를 동원할 수 있게 됐어요. "근면성실함을 바탕으로 저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기업 가치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 달 뒤에는 문장의 리듬도 탔어요. "부지런합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어려운 이웃 곁에서 OO기업의 마스코트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최종 응모작이 되었어요. 처음에 썼던 자기소개서는 습작쯤이라 해두죠. '내 문서'에 저장되어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습작. 그럼에도 영희는 다 떨어졌어요. 주위에선 지인들이 낙방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기업 친화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지인들의 '다수설'이었어요. 삼성직무적성검사에서 월등한 성적을 기록했다는 선배는 '장광설'을 내놓았어요. 기업 자기소개서에 너무 공을 들여 많은 썰을 늘어놓은 게 아니냐는 거였죠.   사진 출처 - 한겨레21   이렇게 설이 분분한 가운데 변하지 않는 사실은 영희가 넣은 기업에서 떨어졌다는 거겠죠. 이렇게 떨어질 바엔 차라리 습작을 넣는 게 어땠을까요. 하드디스크 한 구석에서 21.4킬로바이트라는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이 녀석이 측은하다고 영희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희는 파일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줬어요. '습작1 자기소개서.hwp' 1. 입사지원 동기를 상세하게 기술하여 주십시오.(본인의 차별화된 장점과 그 동안의 준비 과정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시고 제목을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시각장애인 복지관, 이곳은 저의 대체복무지였습니다. 훈련소를 나온 다음날, 저는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복지관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그 꿈이 깨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이었습니다. 조직은 경직돼 있었고 복지재단의 친인척들은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었으며, 일반 직원들은 업무에 시달렸습니다. 꾸역꾸역 사회의 복지체계를 거들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시발점을 찾았습니다. OO기업의 사회 공헌팀을 만난 건 행운이었습니다. 근무한 지 일 년 정도 지났던 어느 날, OO기업 사회공헌팀은 제가 근무하던 복지관에 찾아왔습니다. 활력이 넘쳤습니다. 물론 기업 활동의 일환이었지만 그래도 진정성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저에겐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모종의 답을 찾았던 셈이죠. 그날 이후 ... (후략) (나쁘지 않으나 조직문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 첫 부분은 고민해봐야 합니다. ...) 2.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도전적이고, 어렵다고 느껴졌던 경험에 대해 기술하여 주십시오.(일의 배경, 그때 느꼈던 감정, 어려웠던 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 일의 결과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시고 제목을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습니다. 사회봉사 동아리의 회장을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음악'이라는 소재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팀원들이 모두 모여 일 주일 정도 생각을 내고 다시 엎고 또 다시 결정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저는 팀원들에게 '혁신', '혁신'을 외쳤습니다. 닦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새로움을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던 동아리 부원이 저에게 술 한 잔 하자고 청해왔습니다.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는 내게 어떤 예술사조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언제나 새로움, 파격만을 추구하던 일군의 예술집단이 있었는데 결국 그들은 어떤 극단에까지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소통이 불가능한 순간까지 갔다는 새드엔딩이 그가 건네준 일화의 결말이었습니다. 뭔가 아차 싶었습니다. 새 것, 혁신적인 것에 집착하느라 그간 놓친 구성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 (후략) (다소 추상적인 비유와 논쟁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다른 표현이나 비유로 대체할 필요가 ... ) 3. 자신의 소신, 원칙이나 기준을 지키려 하지만 상황적으로 지키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런 갈등을 겪었던 경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주십시오.(그때 상황, 느꼈던 생각과 감정, 일의 결과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시고 제목을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친구는 발표를 시작했고 저는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탐사보도 기사를 요약, 정리하고 한국 언론의 동향과 비교하는 발표였습니다. 성범죄라는 선정적이기 십상인 기사를 독자의 시선은 사로잡으면서도 건조한 어조를 잃지 않았다고 평했습니다. 중간 중간에 청중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도 넣고, 친구의 능글맞은 성격 덕에 발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질문과 답변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고갔습니다. 그 때 한 분이 손을 번쩍 드시더니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라고 운을 띄우며 그는 자신은 이 기사가 선정적이지 않다는 데 자신은 동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반인권적이라고 했습니다. 몇몇 정보만 조합해보면 피해자의 지인들은 충분히 기사에 등장하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따라 흔들렸습니다. 비판은 언제나 겸허히 수용한다는 평소 저의 신념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되도 않는 반론을 펼쳤습니다.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저는 '인권'이라는 가치에 집착했습니다. 제가 가진 '인권 감수성'에 대한 근거 없는 자만이 화를 불렀던 것이었습니다. ... (후략) (인권은 참 착하고 좋은 얘기지요.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이런 자기소개서를 원하진 않습니다 ...) 기업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기서사를 갈아치운 영희는, 지금 어딘가에서 드라마를 찍고 있을 피디가 떠올랐어요. 작가에게서 내려온 대본을 받았겠죠. 제작자나 방송국에서는 간접광고를 자연스럽게 넣을 수 있도록 장면을 잘 각색하라고 요구하겠죠. 위에서, 기업이, 자본이 요구하는 걸 어찌 묵살할 수 있겠어요. 영희는 비판을 즐겨 들으려고 해요. 물론 불편하죠. 마음도 아프고, 자신감, 자존감이 동시에 뒤흔들릴 때도 많죠. 그런데 영희가 진한 글씨의 첨삭을 받은 날, 영희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인생에서 가장 불편하고 어딘가 찝찝한 비판을 받은 날로 기억해요. 이 또한 최초의 기억이겠죠. 자본은 속수무책이죠. '기억', '최초의 기억'마저도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무턱대고 비판하려는 건 아니에요. 자가 번식의 최고봉 자본주의에게 '기억' 따위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죠. 다만 기억은 나만의 고유한 것이고, 그래서 세상에 하나뿐인 것이에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기억에 대한 해석이 바뀌기도 하죠. 첫사랑을 여우였다고 비난했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어렸음을 남자들은 깨닫기도 해요. 내년이면 영희는 다시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할 거예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앞, 뒤 맥락 자르고 질문에 알맞은 기억만 쓰겠죠. 누군가의 최초의 기억들은 휘발되어 날아가겠죠. 정확히는 기억이 의미를 잃어버리겠죠. 영희는 '나'를 결코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음에도 마치 제 3자 입장에서 나를 들여다 본 양 서술하겠죠. '자기'이야기를 쓰면서 기억이 왜곡되고 '자아'가 분열되는 아이러니라고 해도 될까요. 의미가 배제된 자리엔 계량화가 들어차 있어요. 대기업 인사개발팀에서 근무는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엑셀로 돌려. 그래서 중요한 키워드 안 들어가 있는 애들은 걸러 버려." 철학자 아리마 미치코는 이렇게 말해요. "시간을 지각하기 위해 특수화된 감각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오감은 '시간'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거예요. 시간에 대한 지각이란 다양한 감각이 지닌 지속-계속-변화의 측면을 추출하고, 이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그때서야 비로소 시간성을 지닌 '기억'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거죠.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가 살아온 시간, 그러니까 자기서사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나'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총체인 '자아' 역시 존립할 수 없는 거죠. 영희는 자기소개서가 무서워요. 다들 꾸역꾸역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것 같지만, '최초의 기억'이라 부를 수 있는 강렬한 기억들은 저 밑으로 밀려나요. '기억' 저편으로 기억이 사라지겠죠. 전자가 자기소개서 아이템이라면 후자는 '최초의 기억'일 거예요. '최초의 기억'으로 구성되는 시간은 '가치 없음'으로 둔갑해 버리는 거겠죠. 영희는 이것을 '자기 서사'없는 자아라고 표현하고 싶대요. 자기서사가 없는 자아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니까 형용모순이지만 영희는 쓴다고 하네요. 그런데, 영희는 누구십니까? 영희는 제 친구입니까? 학교 선배입니까? 아니면 엄마 친구 아들/딸입니까? 마지막으로 영희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저일 수도 있고, 제 친구일 수도 있는 제가 시 한 편 남기고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이력서 쓰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무엇이 필요한가? 신청서를 쓱, 이력서를 첨부해야지. 살아온 세월에 상관없이 이력서는 짧아야 하는 법. 간결함과 적절한 경력 발췌는 이력서의 의무조항. 풍경은 주소로 대체하고, 불완전한 기억은 확고한 날짜로 탈바꿈시킬 것. 결혼으로 맺어진 경우만 사랑으로 취급하고 그 안에서 태어난 아이만 자식으로 인정할 것. 네가 누구를 아느냐보다, 누가 널 아느냐가 더 중요한 법. 여행은 오직 해외여행만 기입할 것. 가입 동기는 생략하고, 무슨 협회 소속인지만 적을 것. 업적은 제외하고, 표창 받은 사실만 기록할 것. 이렇게 쓰는 거야. 마치 자기 자신과 단 한 번도 대화한 적 없고, 언제나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해왔던 것처럼. 개와 고양이, 새, 추억의 기념품들, 친구, 그리고 꿈에 대해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지. 가치보다는 가격이, 내용보다는 제목이 더 중요하고, 네가 행세하는 '너'라는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보다는 네 신발의 치수가 더 중요한 법이야. 게다가 한쪽 귀가 잘 보이도록 찍은 선명한 증명사진은 필수. 그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보다는 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더 중요하지.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 이런, 서류 분쇄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잖아. 김원진씨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언론인권센터 모니터링팀에서 활동 중인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85 | 추천: 0
김지영/ 청년 칼럼니스트 영하를 밑도는 칼날 같은 날씨다. 눈도 심심찮게 내렸다. 추운 겨울 따뜻한 방 안에 앉아보면 이따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강남구청 대로변에서 몇 평짜리 돗자리를 깔고 매서운 바람에 몸을 부대끼며 인스턴트커피로 언 손을 녹인다. 벌써 여섯달 넘게 노숙농성을 했다는 그들은 가끔 가로변을 지나는 사람들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곤 한다. 돗자리 근처에는 ‘엄동설한에 물 끊고 전기 끊고 화장실 막고 인근 세 군데 공중화장실 막고 물과 음식물 반입금지, 감금하고 고립시킨 악랄한 강남구청장은 사죄하고 삶의 터전을 돌려 달라’라는 피켓이 곳곳에 놓여 있다. 열 명 남짓인 이들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개포동 영동 5교 밑에서 넝마를 주우며 자활해오고 있던 넝마공동체 사람들이다. 화려한 도심의 어두운 단면은 이렇게 차디찬 강남구청 대로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27년 전, 빈민운동가 윤팔병 씨를 필두로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은 현재의 영동 5교 교량하부 터에 모여 넝마를 주우며 생계를 꾸려 왔다. 나라가 외면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16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집으로 삼아 공동체를 이뤘던 이들은 어느덧 노숙자가 아닌 자활 공동체가 되었고, 그 후 사업에 실패하거나 곤궁해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27년 간 3천 여명의 노숙인들이 이곳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2년 7월, 넝마공동체는 일방적인 철거통보와 함께 강제 철거를 당하면서 단전, 단수, 세간살이 파괴 등의 고초를 겪으며 다리 밑에서 내쫓겼다. 화재 위험과 불법시설물 설치가 철거단행의 이유였다. 현재 컨테이너 박스들은 뿌옇게 먼지에 쌓인 채 높은 펜스로 둘러싸여 있고 넝마공동체 일원들은 뿔뿔히 흩어져 봉은사 쉼터, 찜질방, 관악구 노숙자 쉼터 등을 오가며 거리를 전전하는 중이다. 넝마공동체 대표 김덕자 씨를 비롯한 열 댓명의 구성원들은 “강남구청을 마주하는 대로변에 돗자리를 깔고 지난해 6월부터 노숙농성을 계속해오고 있지만 강남구청 측은 그저 묵묵부답”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돗자리에 앉아 넝마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얘기할 때, 그들의 눈빛은 필사적으로 거리로 내몰린 열악한 상황을 알리고 싶어 하는 절박한 눈빛이었다. 집값이 천정부지고, 생계가 궁핍하거나 노숙인으로 전전하던 이들은 그저 ‘함께 잘 살기 위해’ 공동체를 꾸려나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27년간 3천여 명 노숙인들의 쉼터가 되고 자활을 장려해온 넝마공동체는 국가에 의해 하루아침에 붕괴됐다. 국가는 마땅한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았고, 구성원들은 다시 강제로 노숙인의 신세가 됐다. 지난 2012년 11월 15일 개포동 영동5교 다리 밑 넝마공동체 거주지를 강제 철거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강남구청 측은 넝마공동체가 불법시설물을 설치했기 때문에 철거 통보를 하고 철거를 시행했을 뿐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넝마공동체는 그러면 강남구 주민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마땅한 대답은 나오지 않은 채, 그렇게 끝이 났다. 순간 “강남구청은 우릴 강남구에 거주하는 인간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그저 부자 동네인 강남의 미관을 해치는 불법 거주자로 인식할 뿐이다”라는 윤팔병 씨의 한숨섞인 목소리가 떠올랐다. 덧붙여, 영동 5교 근처에서 조깅 중이던 한 강남구 주민에게도 넝마공동체에 대해 화두를 건네자마자 “불법인데 당연히 국가에서 철거해야지. 없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학생 집근처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가만히 있겠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정작 “그렇다면 다리 밑에서 철거된 그분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 줄 아는가”라는 질문에는 “모르겠다”며 개의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양재천 근처로 내려오면서 영동 5교 아래, 넝마공동체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흉물스러운 펜스를 보고 가슴이 갑갑해져 옴을 느꼈다. 부유한 강남일대에 자리 잡은 넝마공동체 사람들을 ‘옥의 티’로 여기는 듯한 태도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곤궁한 사람들을 거두고, 주운 넝마로 아름다운 가게나 구룡마을에 기부하며 상생의식을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자활공동체로 소박하게 살아가던 이들은 이제 다시 거리로 내쫓겼다. 넝마공동체가 강남구청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예전처럼 다시 자활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강남구청은 거리미화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넝마공동체를 내쫓았을 뿐만 아니라 넝마공동체가 다시 자활하고자 찾아간 탄천운동장까지 쫓아가 단전, 단수를 해가며 고립시켰다. 이들은 이제 오갈 곳이 없을뿐더러 찬 대로변에 앉아 외롭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유한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두운 단면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김지영씨는 위안부, 쌍용차 노동자 등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00 | 추천: 0
이현정/ 청년 칼럼니스트 12월의 어느 날, 한 대학생이 학교에 대자보 하나를 붙였다. 안녕들 하시냐고 묻던 그 대자보는 그저 안부를 묻는 내용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대들 정말 괜찮겠는가?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의 분노와 먹먹함을 담은 진심이 묻어났던 것이었던 걸까, 이 대자보가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지면서 대학에서 고교를 거쳐 길에도 나붙었다. 청년은 물론 청소년과 기성세대까지도 여기에 응답하고 있다. 초기에 있었던 엄청난 반향은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펴 주었다. 청년 실업, 스펙 쌓기, 학점 경쟁이라는 판옵티콘(원형감옥)에 갇혀 감시받던 청년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반향은 먹고 살기에 바빠서, 취업에 발목이 잡혀서 연예 뉴스나 스포츠 뉴스나 보면서 잠시 사회와 접했던 사람들이 철도 민영화를, 쌍용차 문제를, 밀양의 소식 등을 한 번쯤 들여다보게 했다. 3포 세대, 무한 경쟁 시대에서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세대, 민주주의와 자유를 너무 당연시 하여 그 소중함조차 모른다는 배은망덕한 세대라는 평가를 받아 왔던 우리 청년들. 이 청년들이 응답하기 시작하자 각계각층에서도 응답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단순하고도 꾸밈없는 문장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공감을 이끌어 냈듯이 이 응답도 거창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것이 단순 재생산 되는 것에만 그친다면 그 서운함을 감출 수 없을 것 같다. 무관심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안녕치 못하다던 청년들이 집회 현장에 나타나고, 철도 민영화에 대해 검색해 보고, 포털사이트 메인에서 시사 문제를 먼저 누르는 이 모습은 생소하지만 우리가 바랐던 청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청년들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그들의 언어로,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논한다면 어떨까? 기자회견, 집회 시위 등으로 점철된 사회 운동의 당위성과 효과는 지금도 유효하지만 이제는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집회는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불끈 쥐었던 주먹은 촛불로 변모해 왔다. 그렇다 해도 많은 시민들에게 이 모습은 때로는 공감보다는 무관심으로, 또는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다양한 사회적 상황과 더불어 언론의 보도도 한 몫을 한다. 현대차 희망 버스, 밀양 희망 버스, 농민 대회, 대한문 앞 분향소, 철도 노동자 파업 등 안녕하지 못한 청년들이 말하고 있는 이 문제를 일부 언론은 어떻게 비춰왔던가. 희망 버스는 절망 버스로, 분향소는 시민의 통행권을 침해하는 장애물로, 철도 노동자 파업은 단순히 그들의 밥줄 정도만 걱정하는 것으로 보도했다. YTN 뉴스는 농민 대회가 왜 일어났는지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고, 울산 MBC 라디오는 현대차 희망 버스가 도착하던 그 날, 교통 체증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세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말 안 듣는 불통 시민으로, 밀양의 주민들은 님비주의자 쯤으로 치부했다. 먹고 살기에 지치고 바빴던 사람들은, 그냥 그런 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냥 그런 줄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인다는 것은 이제 이 일이 점점 모두의 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응답하지 못한, 그리고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으랴. 12월 19일, 독재 대통령 당선을 기념하기 위해 시청 광장에 모인 3만 명의 시민들이 단순히 숫자로만 보고 많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하의 추위에, 얼음판 위에 앉아서, 그 자리도 모자라 도로로 밀려 나면서 그래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킨 수많은 시민들은 그냥 3만 명이 아니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마음을 담아 모인 민중이었다. 그러나 이 민중을 다시금 떠나게 하지 않으려면 각자가 응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집회 시위의 방식이나 기자회견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었다. 집회에 참여하지만 자리를 메워 주는 그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대자보를 붙이며 자기 이름을 종이 위에 새기는 것처럼 그 현장에서도 나라는 존재가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지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 출처 - 필자 시민이 주체가 되는 운동이 필요하다. 바로 이 점에서, 나도 주인공이 되고, 나도 당사자가 된다는 점에서 바로 '안녕들 하십니까'가 시민들의 마음 한 구석을 건드린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시민들이 더욱 더 많이 응답할 수 있는 자리나 매체,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필자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캠페인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기는 하다. 바로,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대국민 죄송 쓰레기 줍기' 캠페인이라는 것인데, 국정원, 군 사이버 사령부, 보훈처 등의 복장을 한 채로 매주 길거리에 널린 쓰레기를 주우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댓글만 단 것에 대해 사죄한다는 컨셉이다. 직접 사회 문제에 관해서 행동하고 싶었던 청년들이 모여서 '청연'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첫 캠페인이 이것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열심히 홍보도 하고, 주변에 많이 알려 다 같이 쓰레기를 주우면서 또 주변 사람들이 모이고, 길을 가던 시민들도 함께 한다는 거창한 것을 생각하며 기획했지만 추위를 비롯한 여러 장애물들이 있었다. 그래도 거리에 나가면 먼저 와서 말을 붙이시거나, 직접 와서 유인물을 받아 가는 시민들이 있어서 사회에 대해 시민들이 무관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이 캠페인은 아직 10명 이내로 진행되고 있다.) 감히 말하자면, 이 시대의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제는 직접 행동하기를 바란다. 주체가 되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이미 느껴 보지 않았는가. 이제 안녕하지 못하다고만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움직여야 한다. 응답하라, 안녕하지 못한 그대들이여! 이현정씨는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학과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03 | 추천: 0
박정훈/ 청년 칼럼니스트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대학원에서의 네 번째 학기가 지났다. 학업에 치이고 과제에 치이며, 엄격한 상대평가에 ‘혹시라도 내가 바닥을 깔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또 그렇게 전쟁터 같았던 한 학기를 살아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학기를 보내고 방학을 맞이하면 일주일에서 열흘은 아무 것도 안하고 폐인처럼 지낸다. 몇 개월간 유지하던 긴장의 끈이 한 순간에 풀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제야 조금 ‘안녕’하려는 찰나에 받게 된 이 물음 탓에 마냥 ‘안녕’할 수 없게 됐다.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교수, 회사원, 청소노동자, 성노동자, 대학교수,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대자보 행렬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걸 보니, 나처럼 불편한 사람이 많았나보다. 다들 김남주의 시 <어떤 관료>에 등장하는 관료처럼, ‘내가 맡은 일에만 성실하면 된다’고, ‘나 살기 위해 조그만 마음의 거리낌 정도는 묻어두는 것이 좋다’고 믿고 있다가, ‘그래서 안녕하냐’는 직격탄에 가슴이 뚫린 것이다. 대학 여기저기에 나붙은 대자보엔 도로시 데이의 <고백>처럼, 세상의 고통에 예를 갖추는 글귀들로 채워져 있다. 어릴 적에 이웃에 살던 감리교 집안의 행복한 평화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이제 그 행복은 세상의 고통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내 비록 거리낌 없이 대학이라는 데를 다니고 있지만, 상점과 공장에서 젊음을 바치고 그 후로는 같은 공장에서 노예로 일하는 남자들과 결혼할 수밖에 없는 내 또래의 소녀들을 생각했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 마르크스의 이 구호, 내게 이보다 더 피 끓는 함성은 없는 것 같았다. -도로시 데이, 『고백』 중에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생존에 대한 위협이 시시각각 마음을 조여오기 때문에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극히 개인화된 일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려면 어떤 계기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안녕하냐는 한 학생의 질문은 사람들의 이타적 감수성을 깨우는 촉발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하지만 아직도 진행 중인 “안녕들”의 다양한 변주가 유행처럼 한철에 지나지 않을지 걱정이다. 지난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 파문 때처럼 말이다. 물어보는 사람이 있기에 응답하는 것, 그리고 동조자들이 있기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물론 그 조차도 어려워하는 이들이 다수이지만). 그러나 매순간 스스로에게 ‘안녕’한지 자문하는 것, 그리고 내가 주모자가 되어 행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공적인 사안에 관심이 있고, 사회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눈앞에 성적, 취업 문제가 급하다 보니, 그러한 관심은 7순위 내지는 8순위 정도로 밀려난다. “지금도 제 앞가림 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나중에 무얼 할 수 있겠냐”는 물음엔, “아무 것도 아닌 학생 때 행동하는 것보다 사회적 명성과 지위를 가진 후 행동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금은 닥치고 공부하는 최선”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친구들은 “안녕들”이 이슈화되고, 여기저기 대자보가 나붙는 상황에 공감한다고 한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를 한다. 그렇게 잠깐 스마트폰을 만지작만지작 하고는 다시 공부에 열중한다. 그 정도면 불편한 마음이 ‘안녕’해지는 걸까. 과연 마음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걸까. 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도 답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를 비난할 수도 없다.   지난 12월 28일 오후,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 등은 서울광장에서 ‘1차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는 철도 민영화를 중단하고 민주노총 폭력 침탈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원고를 쓰기 위해 학교 PC실에 앉아있는 순간에도 앞뒤에 앉은 학생들은 동영상 강의를 보고,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과연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문한다. 매 순간의 삶이 이상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하다. 다만 매일매일 소박하게 다짐해본다. 언제이건 ‘스스로’ ‘안녕’한지를 묻고 성찰할만한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견지하겠노라고 말이다. 지난 12월 29일 밤, 여야 대표와 노조지도부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철도파업은 일단락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절정을 이루었던 국민들의 대규모집회 역시, 무엇이 합의되었는지 모를 ‘합의문’의 발표와 함께 시들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여전히 철도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확실하게 매듭되지 않은 상태이고, 파업철회 이후 철도노조 간부에 대한 수사 역시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파업기간 중 투입된 대체인력에 대한 처리문제도 남아있다.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는 오랜 시간을 끌었지만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 후속조치에 대한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최근에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논란도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 어느덧 갑오년 새해가 밝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말과 함께 덕담이 오고간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지만, 해가 바뀌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늦은 새해인사를 해본다. “새해엔 다들 안녕하신가요?” 박정훈씨는 노동과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있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264 | 추천: 0
조아라/ 청년 칼럼니스트 ‘컴퓨터가 인간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은 이 물음에 답하려고 튜링 테스트를 개발했다. 채팅 프로그램에 컴퓨터를 참가시켜 심사위원과 대화를 하게 한다. 심사위원은 대화 상대가 컴퓨터인지 사람인지를 맞춰야 한다. 컴퓨터는 매뉴얼대로 묻고 답하므로 금방 컴퓨터라는 걸 들키고 만다. 가령 “어제 김연아의 스케이팅을 봤어?”라는 질문에 “봤다”고는 할 수 있지만 “정말 예뻤지?”라고 되물을 수 없는 게 컴퓨터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기술과 경제 발전에 치우친 나머지 사람들이 ‘기계’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우려가 든다. 객관적 수치로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세계 237개 나라 가운데 경제규모는 15위권 안에 속한다. 문맹 비율은 1% 미만이고, 대학 입학자는 고교 졸업생의 80%를 웃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넘긴 사우디아라비아를 ‘선진국’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선진국을 평가할 때는 그 나라의 경제적 부유함 뿐 아니라 생활양식과 삶을 대하는 가치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세계인이 존경하는 문화와 생활양식, 철학을 보여줄 때야말로 선진국으로 불릴 수 있다. 우리나라가 점점 더 ‘기계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국민에겐 “왜?”라는 물음이 없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답만 있을 뿐이다. 매뉴얼과 저장된 데이터를 충실히 따르는 컴퓨터처럼, 한국인은 ‘성공하는 법’에 대한 답은 잘 알지만 “왜 사느냐”는 물음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청소년들은 “10억 원을 주면 1년 간 감옥에서 살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묻지 못한다. 대신 ‘엄친아’로 대표되는 성공 표본을 좇아 매뉴얼을 충실히 밟아간다. 19세에 고교를 졸업해 명문대에 입학, 취업한 뒤에는 ‘10억 원 모으기’에 도전하는 등 짜인 코스대로 걸어야 한다. 이탈하면 낙오자가 된다. 모두 뛰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간다. 한 가지 정답만 아는 컴퓨터 같은 사람들에겐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선진국이 되고 싶다면, 미국이나 프랑스 등을 그대로 따라할 게 아니다. 오히려 “왜?” 라는 질문에 여러 대답이 가능한 유연한 사회 분위기가 먼저다.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상품을 ‘러브마크’라고 한다. 이성적 판단을 뛰어넘어 갖고 싶도록 만드는 힘이다. 기계는 완벽에 가까운 물건을 생산할지언정,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는 러브마크를 만들 수는 없다. 근로시간은 경제개발계획(OECD) 국가 중 3위(2012),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 1위라는 지표는 아직 우리나라가 선망의 대상은 못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왜 사는지를 성찰하지 못하는 삶이 계속된다면 무미건조한 연산 처리만 하는 컴퓨터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조아라씨는 교육과 언론에 관심을 갖고 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실 강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09 | 추천: 0
한은석/ 청년 칼럼니스트 소크라테스가 자기 자신을 알라고 말했지만, 사실 철학은 이미 주제 파악할 자기 자신이 있던 사람들이 하던 것이었다. 어떤 철학자도 자신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헤겔의 말처럼 철학은 시대의 아들이기 마련이었고, 철학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권력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 폴리스의 명문가 자제였던 플라톤은 직접 권력을 쟁취하려 했던 경우였다. 그는 진리를 모르는 대중들의 정치인 민주주의를 경멸하고 진리를 따르는 철인들의 통치를 꿈꾸었다. 반면 이방인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에 대해서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야심가였던 스승과 달리 제자는 시대에 묻어가려는 소시민에 가까웠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에 열광했지만, 봉건적이고 억압적인 독일의 학자로서 평생을 살아왔던 칸트와 헤겔은 권력과의 관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칸트가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자 여론은 칸트를 신성모독으로 처형해야 한다는 교회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그러나 칸트는 이미 너무 유명해진 학자였다. 결정적으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며, 프로이센의 국왕은 독일의 자랑을 보호하면서도, 교회를 달랠 능력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프랑스혁명에 열광해 학내 신문을 만들었던 왕년의 운동권 헤겔은 베를린 대학 총장이 되어서도 수많은 논란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헤겔은 약혼녀와 철학적 논쟁을 벌여서 약혼녀를 울린 눈치 없는 학자이면서도, 동시에 사교계에서 카드게임으로 사람을 사귀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후학들을 좌절하게 했던 변증법은 그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사례는 철학이 시대의 아들을 넘어서, 시대 그 자체가 되려고 한 경우들이다. 자기 자신이 권력 그 자체가 되려는 것, 철학이 권력과 결합하는 것이다. 죽은 철학자의 철학을 권력이 오용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철학자가 권력을 위해서 목소리 내는 것이다. 마치 자기 자신이 권력이라도 되는 것 마냥 말이다. 냉전 시기 소련에서 레닌과 스탈린이 남긴 철학적 작업들은 절대 틀릴 수 없는 불변의 진리였다. 맑스-레닌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철학과 그 이름이 붙은 것들은 무엇이든지 옳았고, 또한 옳았어야 했다. 언어학에서부터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맑스-레닌주의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름이 붙은 것은 무엇이든 옳았어야 했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당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절대 틀릴 수 없는 존재여야 했고, 당에 대한 비판은 곧 공산주의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케인즈의 숙적을 자처하던 하이에크가 케인즈의 동료 경제학자인 피에로 스라파와의 논쟁에서 완전히 논파 당한 뒤에도 학계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자본가들이 계속 그를 후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이에크는 더 많은 자본의 자유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로 이에 보답했다. 마찬가지로 록펠러가 시카고 대학을 만들고 후원한 이유가 단순한 사회 환원 때문만은 아니었다. 록펠러 대학은 오랜 시간 동안 미국 보수주의 정치사상의 교두보 역할을 했고, 오늘날에도 신자유주의 정치사상을 옹호하고 보급하는데 시카고대 경제학과 출신 인사들이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현상을 두고, 철학은 지배자의 담화로, 궁정광인의 담화라고 말한다. 지배자의 권위를 위해서, 지배자의 권위를 통해서 이해할 수 없는 미친 말을 늘어놓는 것이 철학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철학은 아무리 체계적이라 한들, 정신착란이며 치료해야 할 존재다. 이렇게 철학이 권력과 결합할 때, 철학은 사람들의 주제와 수준을 구분한다. 철학을 알고 있으며, 동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인 사람이다. 그리고 철학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짜이며, 자기 주제도 모르는 수준 낮은 사람들이 된다. 철학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그것은 무의미하다. 애초에 철학을 모르는 주제도 모르는 사람들이 설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철학은 어휘와 문장은 난해하고 화려할수록 더 가치가 높다. 아무나 논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주제가 되는 자신들만이 논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디에나 적용하고 써먹을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내용 역시 모호해야 한다. 내용은 단지 그럴 듯하게 느껴지기만 하면 된다. 철학을 말하는 사람이 이 모호한 내용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철학의 진리성은 그 내용이 아니라 철학을 말하는 사람들의 권위를 통해서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철학이 요즘 세상 어디에 있냐고?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창조경제가 그러한 사례다. 창조경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 부처의 담당자들은 물론이고, 지난 대선 당시 정책을 내걸었던 정당의 당직자와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왼쪽은 201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석좌교수·서울대 겸임교수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런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화려한 말을 그럴 듯하게 이어 붙어놓은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석학인 토마스 사전트가 한마디로 표현한 것처럼, 그냥 헛소리(bullshit!!) 1) 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뭘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답은 창조경제로 정해져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저 무식하거나 국론을 분열시킬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를 비난하는 것은 민생에 역행하는 것이고, 북한에 동조하는 종북 행위다. 창조경제가 학문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다뤄질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사상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오랜 시간에 걸친 학적 노동과 교류를 통해서 이뤄진다. 즉 토마스 사전트의 말처럼 창조경제를 헛소리(bullshit!!)라고, 딱 한마디로 평가하고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는 창조경제를 권력과 철학이 결합한 가장 적나라한 사례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1) 경향신문, 노벨경제학상 사전트 서울대 교수, 창조경제 설명 듣더니 “불쉿(허튼소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141032531 한은석씨는 사회 내 불평등에 관심이 있는 경제학과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06 | 추천: 0
김원진/ 청년 칼럼니스트 화장실에서부터 기분이 영 아니다. 어차피 반복되는 일이다. 신문을 훑는다. 1면, 2면, 3면... 꼬깃꼬깃 신문을 접는다. 그리곤 아침부터 힘을 내고 있는 환풍기를 바라본다. 뭐가 그리도 신나기에 요란하게 돌아가는 걸까. 신문은 환풍기의 날처럼 뾰족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경질적이다. 갈등과 논란, 첨예함이 지면을 지배한다. 어떤 점에선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예술가다. 이 예술가에겐 천적이 있다. 예상 가능한 바, 대통령 이하 행정부다. 대한민국 행정부는 힘이 세다. 원래 셌다. 그런데 더 세졌다. 대통령도 힘이 세고 공무원도 힘이 막강하다. 흐름이 그렇다. 문제는 ‘문제’가 드러나 곳곳에서 ‘문제제기’가 된다는 데 있다. 상식이 대표적이다. 체제안정에 힘 쏟는 국가교육이 가르쳐준 지식체계인 보수적인 ‘상식’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현실에 어리둥절해한다. 이를테면 법치주의와 삼권분립 같은 것. 법치주의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법치주의란 국가의 행정은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거하여 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여 사법처리하겠다는 어느 정부의 엄포는 엄격히 말해 ‘법치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법치주의’는 고대 정치 사상가들이 말한 군주 시대의 ‘법가’에 가깝다. 법가는 주로 형법과 신상필벌에 의존한, 지금으로 따지면 공안 통치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헌법을 부정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 엄두도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또 의문이 든다. 백번양보해서 정부의 통치를 ‘법치주의’라고 인정하자. 그렇다면 법치주의는 옳은가. 대한민국 헌법은 삼권분립을 규정한다. 견제와 감시, 협력의 매커니즘이 작동(해야만)한다. 행정부가 ‘법치주의’를 들고 나올 때, 행정부는 엄연히 사법부(검찰을 포함한) 위에 군림한다. 법치주의의 작동은 모든 형법조항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의 필요에 의해 호출된 몇 개의 법 조항만이 서슬 퍼렇게 눈을 번쩍인다. 정부는 사법부를 휘두르고 사법부는 다시 법을 주무른다. 정권의 시녀라는 달갑지 않은 호칭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법, 엄벌, 일벌백계, 처벌 따위의 단어가 세상을 부유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법은 무력하다. 대학에서 노동법을 가르치는 젊은 강사는 분노한다. “우리나라는”하고 그가 말했다. “한 번도 68시간이었던 적이 없어요.” 정부와 여당이 주당 최고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데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노동법의 입법취지의 핵심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휴일 그리고 근로시간 외에는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기라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법과 판례는 주당 최고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규정한다. 행정부는 다르게 해석한다. 법과 판례 따위는 우스개다. 행정부는 행정해석을 내린다. 그래서 68시간이다. 그러나 행정해석은 ‘법원’, 그러니까 판결의 근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68시간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 하나, ‘돈’이다. 68시간과 52시간에는 16시간이라는 간극이 있다. 여기서 16은 8과 8의 합이다. 앞의 ‘8’은 토요일의 8시간을, 뒤의 ‘8’은 일요일의 8시간을 의미한다. 16시간이 법적 테두리에 들어오면 기업은 추가,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8시간과 8시간이 정규근로시간에 포함되어 추가근로수당을 노동자에게 줘야할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전경련 산하 기관일지도 모른다. 의문은 이제 얽히고설켜 뫼비우스의 띠가 되었다. 통상임금은 어떻게 됐을까. 법원의 판례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행정부의 수장은 통상임금 문제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결해보겠다고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말했다. 법이 지켜야할 자리는 이렇게 또 하찮아졌다. 통상임금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역시 ‘돈’이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각종 가산임금을 지급해야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의 범위가 넓어지면 자연스레 연장근로에 대해 지급하는 가산임금도 높아진다. 연장근로수당의 산정 기준은 ‘통상임금’이다. 대통령은 노동자가 받을 노동의 대가를 80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의 투자와 맞바꾸려 한다. 투자가 곧 일자리인 시대는 이미 지났거늘, 여전히 투자가 우선이다. 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슬슬 의문을 멈추려 한다. 고용노동부는 전교조를 법외노조라고 통보했다.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법외노조 취소 1심 판결까지는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행정부는 따지고 들었다. 괘씸하다는 듯이. “법에 맞도록 시정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전교조가 고의적으로 법을 무시해 법치주의를 흔들었다는 게 정부 주장이었으나 법원은 다른 고려 없이 법외노조가 됐을 때 객관적 손해 유무에 대해서만 판단한 것으로 이해한다.”(경향신문 11월 14일) 그 놈의 법치주의, 또 등장했다. 행정부는 자타공인 서열 1위다. 4일 오전 서울역 앞에서 열린 '수서발 KTX 분할 반대! 철도민영화 반대! 철도 외자개방 반대! 계 원탁회의'에서 참가자들이 철도 민영화 반대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안타깝게도 매조지어야할 의문은 정치인들에게까지 뻗쳐 나간다. 삼권분립의 한 축, 의회는 무엇을 하고 있나. 행정부와 사법부로 견제하고 있는가.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명목의 국정감사는 제대로 진행됐던 걸까. 정치혐오가 아니다. 분주히 뛰어다녔던 보좌관, 국정감사를 발판삼아 얼굴 한 번 알리려고 노력했던 정치인, 참 수고 많으셨다. 그러나 수고와는 별개다. 행정부의 방종을 제어하지 못한 건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의회 탓이 크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대통령 앞에 일동 차렷이다. 아무도 찍소리 못하고 있다. 여당, 야당 매한가지다. ‘닥치고 정치’의 호기로움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답을 구하지 못한 의문은 길을 잃었다. 아마 영원히 미로 속에 헤맬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비보가 들려온다. 대통령 이하 행정부의 ‘센척’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속보가 도착했다. 국회비준도 없이 정부주도로 철도시장을 외국자본에 개방한다는 안을 기습 의결했다는 소식이다. 더욱 씁쓸한 소식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위축돼 있다. 혹시나 유, 무형의 불이익을 받을까봐서. 정말 힘이 세긴 센가보다. 김원진씨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언론인권센터 모니터링팀에서 활동 중인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28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