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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폭주하는 푸틴을 저지하려면(이재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3-02 15:29
조회
783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우크라이나의 교사이자 엄마인 올레나 쿠릴로. 그녀의 아파트는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으로 파괴됐다. 유리 파편에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그녀는 푸틴에게 의미 없는 전쟁을 멈추라고 호소했다. “전쟁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잃게 만들고 노인, 평범한 사람,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아까운 생명을 잃게 한다.” 그녀는 러시아의 엄마들을 향해 이런 부탁도 했다. “제발 아이들이 전쟁에 나가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이 전쟁은 무의미하다. 이 전쟁으로 행복해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이 전쟁으로 부자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국민 모두에게 비극이고 고통이다. 경제제재로 금리는 20%나 뛰었고 물가도 치솟고 있다. 달러 대비 루블화의 가치는 3분의 1로 떨어졌고 더 떨어질 거라 한다. 구글페이나 애플페이 같은 결재시스템도 러시아중앙은행이 스위프트에서 배제되면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피 흘리는 우크라이나 국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러시아 경제 시스템의 붕괴는 러시아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이번 전쟁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문명의 시대에 이런 의미 없는 전쟁을 목도하니 참담한 마음을 가누기 어렵다.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말들은 많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 신나치즘의 발현을 막겠다.’고 했고 다른 한편에선 젤렌스키 대통령의 무리한 나토가입 추진이 러시아의 무력 침공을 자초했다는 분석도 있다. 수만 가지 이유를 댄다 해도 누구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무고한 생명의 살상, 인권 유린, 일상의 파괴를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전쟁의 원인은 푸틴이다’ 올레나 쿠릴로의 명쾌한 진단이다. 푸틴은 러시아를 다시 소련 시절로 되돌리겠다는 야욕에 사로잡혀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런 푸틴의 제국주의 야망의 시발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프랑코 국립대학교 올레흐 오스타퓨크 교수는 ‘푸틴이 전쟁을 일으켜 러시아 시민을 선동해 독재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셈’이라고 간파했다. 하지만 이런 푸틴의 야욕은 오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아니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KGB 출신의 푸틴은 2000년 이후 대통령과 총리를 번갈아 하면서 20년 넘게 장기집권을 해오고 있다. 투표 때마다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60~70%의 득표율을 보여줬다. 정보기관 출신답게 정적을 제거하거나 정치적 반대집단을 탄압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비판적인 언론인 살해 의혹 등 언론통제도 일삼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 민주화의 바람이 때로는 혁명으로 몰아쳤지만, 러시아만은 무풍지대였다.


 그래도 변화의 기미는 보인다. 전 세계 반전여론이 거센 가운데 러시아에서도 곳곳에서 반전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푸틴의 전쟁을 지지하는 여론이 50% 정도 된다지만 체포와 처벌을 각오하고 ‘조국이 부끄럽다’며 전쟁반대를 외치는 물결이 번지고 있다. ‘사형제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위협에도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를 향한 러시아 시민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있다. 비록 근대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았고 시민사회의 형성도 더디지만 요즘 같이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세상에선 러시아만 외딴 섬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출처 -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 HB가 트위터에 게시한 영상 캡처


 쉽게 함락될 것 같았던 우크라이나는 결연한 항전 의지로 힘겹게 버티고 있다. 이 가운데 내 눈길을 끄는 장면 하나. 돌진하는 러시아의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서는 한 시민이 있었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장갑차도 그를 피하느라 휘청거렸다. 그의 용기가 철갑전차를 흔든 것이다. 철옹성 같은 권력에 균열을 내는 것은 총과 칼만이 아니라 작은 촛불이었고 가녀린 재스민 꽃잎이었다. 푸틴의 손에 권력을 쥐여준 러시아 국민들의 냉철한 판단과 전 세계 평화세력의 연대만이 이 무의미한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