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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힘', 해체적으로 읽기(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3-14 18:26
조회
563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거일 직전 ‘국민의당’과 전격 합당한 뒤 ‘국민통합’을 내세우며 간발의 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선거운동 중에는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내세웠고, 당선 소감으로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오직 국민만 믿고 오직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국립현충원에 참배하면서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방명록에 적었다. 그 뒤 “국민통합”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당선인 직속으로 ‘국민통합특위’도 꾸렸다. 선거 전후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국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일견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해야 할 무난한 말들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 국민’이 무엇인지, ‘그 국민’이라는 말이 누구를 지향하고 있는지, 그 실질을 진정성 있게 고민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모든 언어가 그렇지만, ‘국민의 뜻’ 운운하는 말이 워낙 광범위해서 곰곰 따져보면 아무 뜻도 아니거나, 자기에만 유리한 ‘나의 뜻’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넘쳐나는 곳에 ‘국민’이 없을 수 있다는 역설을 의식하고 있는지, 그 지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는 말에서 ‘위대한 국민’이 자신의 지지자를 지칭하는 것인지, 국민 자체가 위대하다는 말인지 불분명하다. 만일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이 위대하다면 ‘국민통합’이라는 말은 요원한 것일 테고, 국민 자체가 위대하다면 아무 말도 안 한 것이거나 그저 동어반복을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직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지만, 그때 ‘따르겠다는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그 뜻을 어떻게 파악하고 구분한다는 것인지도 마찬가지이다. ‘뜻’만 명백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따르겠다’는 말도 그 범위와 행위의 정도가 애매하다. ‘국민’, ‘뜻’, ‘따르기’ 모두 확정적인 개념들이 아닌 데다, 너무나 원론적이고 거창해서 사실상 아무 뜻도 아닐 수도 있다. 모두가 ‘이현령 비현령’일 수 있는 말들이다.


 “국민과 함께” 통합을 이루겠다지만, 그때의 “함께”가 어느 정도인지도 대단히 추상적이다. “국민통합”도 ‘통합’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국민 전체가 아닌, 일부는 소외시키는 ‘분열’일 수도 있다. 국민을 통합하려면 다양성을 존중하며 비판자까지 껴안을 수 있을 심층적 철학과 모범적 실천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까지 국민 전체를 포용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듯해서 미심쩍다. 행여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버리려 들지는 않을지 의구심도 든다. ‘국민’을 둘러싼 이런 문제의식은 “국민의 힘”이나 “국민의당”이라는,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며 딱히 메시지가 분명치 않은 당명을 정할 때부터 노정된 난제들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느 특정인이나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막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으로서 그 정도의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은 일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국민’만이 아니라 어떤 언어를 쓰든 언어 자체가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운명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선불교에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指月]과 달을 구분하고 있고, 언어학자 소쉬르가 기표(記表)와 기의(記意)를 구분하고 있지 않던가.


 ‘국민’이라는 글자와 그 글자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나 개념은 애당초 다르다. 글자와 개념이 구분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처한 형편에 따라 연상하는 이미지와 떠올리는 개념도 다양하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개념이 서로 다르다. 나아가 말하는 이도 자신의 내적 의도대로 표현하지 못하기도 하고, 표현한다 하더라도 듣는 이에게까지 가는 과정은 더욱이나 멀다. 저마다 기대치가 다르고, 심지어 상반되게 이해하기도 한다. 이 마당에 ‘국민’이 아니라 무슨 언어를 쓴들 본래적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자기 언어의 한계를, 때로는 무의미함까지 의식하고 있는지, 그저 자의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가 관건이다. 그런 반성적 의식 속에서야 가능한 한 명확하고 전체를 살릴 수 있을 방향성도 나온다. 거기서 진정성도 나온다. ‘사랑하는’, ‘위대한’과 같은 멋져 보이는 표현도 그 내용까지 멋지려면 말 속에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진정성이 있으려면, 어떤 언어든 많은 이가 신뢰할 말을 고민해서 구체적이며 정확하게 써야 한다. 정확하게 쓰려면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어디로 가는지, 한 번 더 자신의 언어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기존의 개념을 되묻고, 해체하고, 다시 해체해서 가능한 모든 이에게 분명히 전달될 수 있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간격을 좁혀야 한다.


 사회학자 김홍중이 발터 벤야민의 사상에 힘입어 ‘파상력’(破像力)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파상력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영상들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파괴하는 우상 파괴적 권능을 내포한다... 일체의 가상(Schein)이 가상임을 꿰뚫고 그 가상이 행사하는 환영적 위력을 분쇄함으로써 엄폐되어 있던 진상(眞相)을 간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사용하는 ‘국민’이라는 말이 그저 ‘기호’에 머무는 것은 아닌지, 거기에 허상은 없는지, 가상은 아닌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말에 솔직하고 진지해야 한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국민’이라는 말에 담긴 자기만의 이미지를 분쇄하고 파상해야 한다. 그런 자세를 견지해야만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말에서 국민이 솔직함과 진정성을 느낀다.


 진정성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말이 아니라, 어떤 실천을 어떻게 하는가에서 확보된다. ‘위대한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이 맞으려면, 그렇게 말하는 이는 국민 앞에서 스스로를 낮춰야 한다. 국민이 위대하다거나 국민을 사랑한다는 말은 자신은 낮추고 국민을 높이는 행동으로만 진정성이 입증된다. 자기만의 신민(臣民)이 아닌, 비판적 국민까지 전체를 높이며 살려야 한다. 남한의 국민만이 아닌 한반도 북쪽의 인민도, 한반도만이 아니라 동아시아까지, 심지어 세계의 상황을 읽고 가능한 인류가 상생할 수 있는 길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든 세계 안에서 세계와 엮여 존재하며, 결국 남과 북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처지 아니던가.


 물론 누구든 전체를, 그것도 자기의 비판자까지 포용하며 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대로 다름과 차이 간에 상생을 도모하며 전체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크게[大] 거느리고[統] 다스린다[領]’는 어마어마한 역할을 담은 한국식 호칭을 붙이고 있지 않은가.


 만에 하나 전체를 동시에 살리기 힘들다면, 더 고통받고 더 힘든 이들을 우선 살리고 높여야 한다. 아래로부터 밀어주면서 전체의 평균치를 높여야 한다. 이것이 평화에의 길이고 통합의 기초이다. 평화를 지킨다며 무력을 강화시키는 위압적 행위보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려는 지난한 노력을 전 세계와 함께 진정성 있게 해야 한다. 그런 마음이라야 인류의 축복 속에서 ‘국민의 뜻’을 반영하며 따르는 길에 서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간단하지 않다. 그의 영향력 안에는 너무나 많은 눈과 귀와 입이 있다. 그 어설픈 한 마디에 너무나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저와 제 편만 생각하다 행여 통합이라는 이름의 분열로 가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들만의 국민’은 없다.


 ‘국민의당’과 합당해 대통령으로 당선된 ‘국민의힘’ 당선인이 ‘국민’을 어떻게 대할지, 앞으로 어떤 말과 행동으로 이어갈지, 그 언·행과 일거수·일투족을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이 ‘위대한 국민’이 할 일이다. ‘국민’으로 포장된 가상을 깨고 진상을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진짜 ‘국민의 힘’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