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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술화로서의 근대를 현실로(오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2-23 16:48
조회
840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양에서는 역사의 시간적 흐름을 흔히 고대-중세-근세-현대로 나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는 ‘고전고대’로 일컬어지고,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서로마제국의 멸망(476년)에서 동로마제국=비잔틴 제국의 멸망(1453)까지는 중세사로 여겨진다. 근세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서 1789년 프랑스혁명까지의 초기 근세(early modern)와 프랑스혁명에서 2차 세계대전(학자에 따라서는 1차 세계대전)까지의 후기 근세(late modern)로 더 나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문자(大文字)로서의 근대(the Modern)’란 시기적으로 바로 이 후기 근세 혹은 최근세(recent modern)와 겹친다. 따라서 서양사에서의 시기 구분에서 현대는 바로 지금만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펼쳐진 당대의 역사(contemporary history)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구분은 많은 시대구분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절대적인 게 아니다.)


 우리가 거(居)하는 현재 혹은 현대와 가장 가까운 역사 세계가 근대이다. 알다시피 근대를 빚어낸 주된 힘은 서양에서 나왔다. 근대에 펼쳐진 지리적, 경제적 세계화도 서양이 주도한 것이었다. 우리는 서양이 주도한 전 세계의 근대화에 강제로 편입된 쪽이었다. 자주적으로 근대에 진입할 역량이 모자라서 강제적으로 근대세계에 편입된 탓에, 우리에게는 시간을 두고 성공과 실패를 두루 경험하면서 근대의 전모(全貌)를 찬찬히 체득할 여유를 누릴 수가 없었다.


 현실 세계에서의 부족, 혹은 결여를 메우려 할 때 필요한 게 꿈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충족된 것을 욕망하는 인간은 없다. 누구나 충족된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없는 것)을 꿈꾼다. 목이 마를 때 물을 찾지 갈증이 해소되면 물을 찾지 않는다. 역사 세계에서도 인간은 현실에 없거나 부족한 것을 꿈꾼다. ‘지금 여기’는 꼭 이래야만 하는가? 과연 눈앞에 펼쳐있는 세상과 다른 세상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게 뭔가 부족해 보일 때, 그래서 객관적 ‘현실’ 세계와 그 세계에 대한 주관적 ‘인식’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 그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 서양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하는 얘기지만, 고대 세계에서는 주로 회상이나 이주의 방식으로 현실과 인식 사이의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우선 시간의 차원에서는 회상(recall)의 방식을 취했다. 현실이 빈약하고 초라할수록, 고대의 인간은 풍요롭고 안락했던 과거를 상기함으로써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개인의 차원에서 ‘내가 왕년에는~’, ‘이래 봐도 한때는~’이라며 현실을 부정하듯이. 요순(堯舜)시절이나 ‘실낙원(實樂園) 이전’의 옛날에 대한 회상에 기대어 현실을 부정하는 형식을 취했다.


 현실 이전에 존재했다고 회자(膾炙)되는 ‘황금시대’에 대한 관념의 감상화(感傷化)가 시간의 차원에서 진행된 현실 부정이라면, 공간의 차원에서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의 이주(emigration)라는 형식으로 현실의 부족을 메꾸려 했다. 내 머리에 존재하는 ‘관념의 세계’를 지금 이곳에서 현실로 만드는 게 불가능하므로, 이곳을 벗어나서 관념의 현실화가 이루어진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본 무릉도원(武陵桃源),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율도국, 기회의 나라로의 이산이 바로 그런 예다.


 중세 사회에서 현실과 인식의 차이는 <‘악(惡)’으로, ‘터부 taboo’로 처리되는 방법>과 <종교로 처리되는 방법>이 가능했다. 우선 중세 사회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이미지에 탐닉하는 자는 마귀에 들린 자, 병든 사람(미친 사람)으로 내몰렸고, 그들이 자기 생각을 행동에 옮겼을 때는 처벌되었다. 닫힌 사회에서 (현실) 부정의 정신은 터부시되어 박해를 받았다. 공동체의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그로부터의 박해를 면한 게 종교적 방법이다. 종교는 현실의 차원에서의 부정을 단념하고 현실을 스스로 초월하는 ‘초역사적 부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초월(transcendence)은 “지금 여기”라는 시간과 공간을 아예 벗어나려고 한다. 초월은 참되고 복된 삶은 허망하고 찰나적인 세속세계가 아니라 천상(天上)세계에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의 산물이다. 역사 세계 자체를 뛰어넘음으로써 현실의 초라함을 극복하려는 초역사적인 꿈이 초월이다. 그리스도교는 현실과 인식의 차이를 현실의 차원에서 줄일 수 없다는 세계관의 표현이자 현존하는 현실을 ‘숙명(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현실변혁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사고방식의 표현이다. 이처럼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도 현실(세계) 부정의 계기는 존재하였으나 그것은 소외-억압되었거나 비합리적으로 처리되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서양의 근대란, 현실에 대한 이런 식의 종교적 대응방식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인식의 차이를 (현실) 초월이 아니라 진보(progress)를 통해 줄이려는 게 근대의 특징이다. 합리적 사고와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근대인은 좋았던 옛날은 이미 사라졌고,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으며, 아무나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생산력 증대와 (개혁이나 혁명과 같은) 사회변혁 시도를 통해서 현실과 인식의 격차를 ‘현실의 극복’=발전을 통해서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고대와 중세에는 변수(變數)조차 못되었던 부정적 현실의 타파라는 계기를 아예 상수(常數)로 놓고 계산하려는 행동 양식이 생겨났다.


 서양의 근대를, 회상이나 이주, 그리고 초월의 역사적-현실적 한계를 깨닫고 어제와 저곳의 바람직한 것들은 물론이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이상적인 것들까지도 ‘관념의 형식’인 정보나 지식으로 배우고 익혀서 실현하려는 시대라고 규정한다면, ‘성숙한 근대로서의 현대’를 살려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합리적 사유를 긍정적으로 전유하려는 노력이다. 막스 베버가 근대의 핵심적 특징을 탈주술화=합리화라는 말로 요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보름 남짓 남겨둔 현재, 공동선에 대한 헌신은 고사하고 그에 대해 아무런 개념조차 없는 무속신앙에 사로잡힌 자들이 정권을 쥐어보겠다고 버젓이 나대고 다닌다. 역겹기 짝이 없다. 아무쪼록 이번 대선이 사이비 중세가 아니라 ‘성숙한 근대’=현대로의 이정표로 기록되길 희망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