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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그 중요한 함정 저편으로(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2-16 14:27
조회
538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례 1. 초등학생 세 명이 뚝방 공터에 족구장을 만들기로 했다. 시기가 문제였다. 여름 장마에 쓸려갈지 모르니 9월에 하자는 의견과 지금 만들자는 주장으로 갈렸다.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는데, 결과는 당연히 2:1. 하지만 이들은 족구장을 만들지 못했다. 2:1 중, 1이었던 친구가 삐졌기 때문이다.


 사례 2. 웃말 아랫말 합쳐 100호 가까이 되는 그런대로 규모가 있는 마을이 있었다. 돌아가며 하던 이장을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투표로 뽑기도 했다. 불과 4표 차이로 A씨가 선출되었다. 떨어진 B씨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시했다. A, B씨를 지지했던 동네 사람들은 마음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같이 술을 마시지도 않고 말을 섞는 것도 조심했다.


 사례 3. 언제부턴가 대학 총장도 교수들의 투표로 뽑았다. 대학의 총장 선거 때가 되면 강남의 룸살롱이 들썩인다는 소문이 있었다. 선거가 혼탁 정도를 넘어선 것은 분명해 보였다. 요즘은 주로 재단 이사회에서 대학 총장을 선출하며 교수들의 개별 투표는 드물다. 투표의 부작용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기보다는 대학의 지배 권력이 총장 임면권을 회수한 결과이다.


 바야흐로 후보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른바 대선 국면이다. 당연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가 중요하다. 향후 5년간 선출된 인물에게 이 나라와 사회의 운명 중 얼마를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자질이 있고 훌륭한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하나 마나 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투표가 끝나면 향후 대통령 직무 수행에 관한 한 5년간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 체제’임을 말하는 것이다.


 흔히 ‘민주주의’ 하면 미국을 떠올리지만, 미국의 독립선언서나 헌법 어디에도 민주주의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미국 건국자들은 ‘공화제’를 고대 로마에서 들여왔는데, 로마의 원로(元老)는 선출직이 아니었다. 1776년 메릴랜드 신헌법에 의하면 지사(governor)에 입후보하려면 5,000파운드의 재산을 소유해야 했고 상원의원에 출마하려면 1,000파운드의 재산을 소유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90%의 주민이 관직에서 배제되었다. 이런 미국의 ‘금권 정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정치학자 R. 달, 인류학자 D. 그레이버는 미국에 민주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선거=투표조차도 얼마나 큰 희생과 노력을 통해 얻어졌느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맞다. 1948년 여성참정권이 보장되기까지, 현대 사회에서 거의 유일한 정치 참여의 방식인 투표권=보통선거권마저도 2백 년이 넘는 지난한 싸움 끝에 손에 쥔 소중한 시민의 무기인 것이다.



사진 출처 - freepik


 하지만 내가 앞에 세 사례를 제시하면서 품었던 두 가지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첫째, 이 선거가 나라의 운영책임자를 뽑는 데 적절한가, 계속 이 제도로 가야 하는가? 둘째, 나라의 운영책임자=대통령 외에 다양한 집단과 단체의 리더를 꼭 투표로 뽑아야 하는가?


 생각해보면 현행 선거는 인류가 오랫동안 동의한 덕목을 배반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겸손이라는 덕목이다. 스스로 능력의 한계를 자각하면서 갖게 되는 성숙한 인격의 덕목 말이다. 현재 대선에서 입후보자는 단상에 나가 내가 잘났다고 내 입으로 말을 해야 한다. 그에 비례해서 상대를 헐뜯어야 한다. 거기에 언론과 검찰이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들면 대선 경쟁은 적나라한 ‘물어뜯기와 물어뜯기기’가 된다. 과연 투표로 대변되는 정치 참여방식이 현실이나 규범의 측면에서 달성해야 할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투표는 공공연한 경쟁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등장한 표결 방식이다. 고대 그리스같이 아무 일이나 가지고도 경쟁했던 사회 말이다. 이런 사회에서 회의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은 대부분 무장을 했거나 무기 사용 훈련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스 투표는 군대 안에서 이루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에 따르면 그리스 국가의 구성은 그 군대의 주요 무기 분류에 따라 결정되었다. 기병대라면 귀족정을 예상할 수 있다. 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무장 보병이라면 투표권은 중무장할 무기를 구할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있었다. 가벼운 무장의 보병, 궁수부대, 투석부대, 해군이 있다면 민주주의를 예상할 수 있었다. 로마도 마찬가지였다. 고대의 군대는 다수결을 통해 그들의 지도자를 선출했다.


 투표는 두 가지 전제를 깔고 결정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첫째, 어찌 되든 소수는 자신의 의견을 묵살당해도 감수하고 다수의 견해에 따라야 한다. 투표는 설득의 단절이다. 상호 수용과 집단 결정에 도달하는 협의의 중단이다. 앞서 세 사례에서처럼 투표가 불화를 낳는 이유이다. 둘째, 투표는 투표의 결과를 강제할 수 있는 폭력을 수반하고 있다. 투표는 불화가 물리적인 반박이나 저항으로 바뀔 경우 진압할 수 있는 폭력을 전제로 한다. 어쩌면 투표는 민주주의와 가장 멀고 허술한 의사결정 수단인지 모른다.


 지금 투표에 몰두하고 있다면 돌아볼 일이다. 이 사회가 빈부의 불평등이 심각해서, 또 많은 사람이 정치, 경제, 문화에서 배제되고 있어서. 한번 결정되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강제력이 필요하고 그 강제력에 순응해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투표에 의존하고 있는 게 아닌지 말이다. 이런 사회는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정치체제를 두려워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다시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발명된 것이 아니다. 누가 발명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지적 전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뜻이고, 집단적인 결정은 평등 속에서 유지되어야 하며,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평등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제출했을 때 발휘될 창조성까지 포함한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는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자유로움이어야 한다. 민주화를 기다리고 있는 집안, 동네, 학교, 회사, 작업장 등 곳곳에서.


* 계발성에 가득 찬 글을 남긴 고마웠던 학자이자, 순진하고 유쾌한 웃음을 주었던 동료였던, 그러나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ber)의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정호영 옮김, 이책, 2015),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나현영 옮김, 포도밭출판사, 2016), 《관료제 유토피아》(김영배 옮김, 메디치미디어, 2016) 등에서 많이 베꼈습니다. 다시 한번 그의 명복을 빕니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