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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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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 야권 단일화 후보를 건 당구 시합(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1-26 14:37
조회
861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저는 제대로 할 줄 아는 잡기나 스포츠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전혀 없다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는 몸으로 직접 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열심히 하는 걸 재미있게 구경하는 쪽입니다.
 재주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 저는, 양반은 못 되지만 “뭐 하러 저 힘든 걸 몸소 하누? 아랫것들 시키면 되지!”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하는 편입니다. 며칠 전, 오랫동안 학원에서 일해 왔던 친구 A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오후 5시 OO 당구장으로 와라, B와 오늘 결판낸다.’


 자영업자인 B 역시 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A의 문자 받았지? OO 당구장에서 보자.’


 A와 B의 당구 시합에 저를 부른 것은, 그들이 이미 두 번의 시합을 벌였고 그때마다 제가 참관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남들이 벌이는 게임을 옆에서 지켜보며 굉장히 재미있어하는 속없는 사람이라는 점이 그들의 마음에 들었겠지요.


 올해 들어 1차전은 A가, 2차전은 B가 이겼으니 2022년, 그들의 통산 전적은 1대1. 삼세판 2선승제라 치면 오늘 시합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셈입니다. 특히 오늘의 승부에 A와 B 매우 특별한 것을 내기로 걸었습니다. 그들의 농반진반에 의하면 오늘의 승패가 ‘한국 정치사에 있어 한 획을 긋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었습니다.


 A는 닥치고 국민의힘 쪽 지지자이고 B는 무조건 정권교체 지지자여서, 두 사람은 이번 대선에 있어 대부분의 의견이 같지만 조금은 다른 견해 때문에 투닥이곤 했습니다.


 대선 승리를 위한 야권 단일화에 공감하면서도 A는 윤석열이, B는 안철수가 대선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당구 시합의 이기는 쪽의 의견을 따르기로 합의가 되었고 제가 보기에 평소와는 다른, 좀 더 바보 같은 승부가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예정된 시간, OO 당구장에 저를 포함해 세 사람이 모였습니다. A와 B는 어느 쪽이 지더라도 그 결과를 깨끗이 받아들이기로 하고 페어플레이를 약속했습니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드디어 삼판양승제, 3구 당구의 첫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너 번의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둘의 게임은 팽팽했습니다. A가 점수를 얻으면 B가 따라붙고 B가 치고 나가면 A가 따라붙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렇게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B의 한 수에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B가 본 적도 없는 요상한 기술을 구사, 어처구니없이 점수를 땄습니다. 소위 ‘후로쿠(fluke)’에 당해 화가 난 A의 평정심이 무너졌고 결국 첫 번째 게임은 B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어진 두 번째 게임은 허무할 정도로 일방적인 B의 승리. 첫 번째 게임의 분노를 삭이지 못한 A가 거의 자멸해버린 결과였습니다. 2대0으로 승부가 결정되었고 기세등등한 B가 던진 한마디에 A의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나의 승리, 단일화는 안철수 인정?”
 “무슨... 후로쿠로 이겨놓고!”
 “억울하면 룰을 바꿔줄까? 5판 3승제로... 어때?”


 A는 계속 B를 놀렸습니다. 그쯤에서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밥 먹고 생각합시다!”


 득의만면한 B가 밥값을 내겠다며 당구장에서 가까운 곳에 맛있는 국숫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당구장에서 국숫집으로 가는 동안 A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B는 계속 윤석열이 왜 야권 후보가 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국숫집 가까이에 왔을 때 갑자기 B가 깜짝 놀란 듯 소리쳤습니다.


 “어? 내 차 어디 갔어?”


 당구장 근처 골목에 세워두었던 B의 차가 불법주차로 견인되었습니다. 당구 두 게임에 소요된 시간은 60여 분. B의 차가 주차되어 있던 자리의 노란 스티커 한 장에는 어디로 와서 벌금을 내고, 30분 당 얼마의 벌금이 추가되니 그리 알고 차를 찾아가라는 등등의 친절한 안내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어휴, 씨!”


 B에게는 이제 당구의 승패도, 야권 단일화도, 맛있는 국수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풀 죽어 있던 A가 웃지 않으려 애쓰면서 B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빨리 가봐, 시간 늦으면 그만큼 돈 더 내야 한다고 써 있네...”


 화가 나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B를 부랴부랴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서 A가 씩 웃으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구는 뭐 모르겠고, 오늘 종합적으로는 나의 승리!”


 그 말을 들은 제가 A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너의 승리는 결국 현 정권의 시스템에 힘입은 승리!”


 A와 저는 국수를 먹고 헤어졌습니다. 물론 국숫값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A가 냈습니다.
우습지요? 하지만 무슨 떠벌이 전문가들에다가 법사니 무속인이니 하는 사람들까지 대선을 점치고 있으니, 비록 저는 아무 관심이 없는 그들의 이야기지만 당구로 점을 쳐보는 것도 우습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당구 시합에서도 그랬지만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자칭 애국자들의 이런저런 말들이 요란합니다. 아무튼 ‘잘 돼야 될 텐데...’ 말입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