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이창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7:49
조회
400
지난 23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이 열렸다. 2차 핵실험의 징후가 포착되었다는 뉴스가 소시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은 의외로 차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한반도 남쪽 사람들의 신경이 무뎌진 것일까, 아니면 북한의 도발적인 행태에 그만큼 면역이 되었다는 뜻일까....

여러 여론매체에서는, ‘이제는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거나 ‘그동안 햇볕정책, 포용정책을 하면서 북한에 퍼다준 돈이 북한 인민에게 가지 못하고 핵개발을 앞당기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실패한 대북 포용정책을 이제는 포기해야 한다’ 라는 의견을 퍼뜨리고 있다.

하루하루 환자들과 마주하면 좁은 진료실에서 살아가는 치과의사가 복잡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 뭐 있겠느냐고, 혹 다른 사람들이 북한의 핵실험을 화제로 꺼내더라도 입을 닫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북한 정권을 응징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에서 무언가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걸 느낀다.

 

061024web02.jpg


2004년 9월 체첸 반군 테러범에 의해 인질극이 벌어졌던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 지역 제1소학교에
러시아 특수부대 요원들이 진입해 1천여명의 대규모 사상자를 내고 종결되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서 북한 핵실험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생각한 바는 이렇다.

몇 해 전에 러시아에서 체첸 반군들이 한 학교에 침입하여 학생들을 인질로 삼은 일이 있었다. 러시아 당국은 처음에 협상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군대를 투입하여 인질극을 종료했다. 물론 체첸 반군과 인질, 러시아 군인들의 상당한 희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체첸 반군의 인질극과 북한의 현 상황은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죄없는 러시아 학생들과 죄없는 북한 주민들이 인질처럼 잡혀 있는 것이 비슷하다.

북한은 확실하게 개발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핵무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해외 계좌를 틀어막아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은 대가로 더욱더 어려운 상황을 이끌어 내었다. 리영희 선생의 말씀대로, 북핵사태는 본질적으로 미국의 제네바 협약위반 사태를 오도하는 패러다임이라고 본다.

이라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그렇듯이, 어쩌면 북한과 한반도의 미래도 사실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느냐, 핵실험을 하느냐 보다는 미국이 북한을 어떻게 요리하고자 하느냐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오직 대화와 협상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를 앞세운 강력한 대응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길을 돌아가야 한다.

국내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답답하더라도 돌아 돌아가는 길을 목청껏 외치는 사람들이, 어째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단도직입적인 시원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것일까. 국내 문제에는 기득권이 달려있지만, 북한은 그냥 몰아부치기만 해도 상당수 기성세대의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안타깝다. 정치도, 외교도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일 텐데, 작게는 한반도, 크게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추구하는 일을 반대하며 무작정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 현실이.

 

061024web01.jpg


위성에 바라본 북한 영변 핵 시설단지.
사진 출처 - 2003 몬테레리 연구소
 



이창엽 위원은 현재 치과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