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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안수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7:52
조회
482
“… 이제 노숙자 신세가 된 정씨가 지하철 역 바닥에서 맞이하는 차가운 새벽은 언제나 악몽으로 끝난다. 악몽 속의 그는 시민을 학살한 특전사 3공수특전여단 11대대 4지역대 하사다.”

2001년 5월18일 <한겨레> 사회면 머리기사다. 내가 썼다. 광주항쟁을 기리는 날의 대표 기사를 장식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비장하고도 애잔하게 쓰겠노라, 딴에는 작정하고 달려들었던 기사에 이런 대목도 있다.

“…정씨가 방아쇠를 당기자 2명이 쓰러지고 1명은 달아났다. 내려가 확인한 '폭도'들은 무장하지 않은 와이셔츠 차림의 시민이었다. … 정씨는 피 묻은 손을 숨기고 새 출발을 준비했다. 82년 5월 전역해 그해 10월 9급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했다. … 그러나 부인이 정씨 몰래 빌려 쓴 1억여 원의 빚이 그를 다시 좌절로 몰아넣었다. 빚 독촉에 쫓긴 정씨는 서울 을지로역, 시청역 등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

‘노숙자 정씨’가 신문사를 찾아온 것은 그해, 5월 초였다. 언론사에는 수많은 종류의 ‘기인’들이 찾아와 “내 귀에 도청장치 있다”는 식의 제보를 한다. 처음에 나는 그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다소 건성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대단한 특종까진 아니어도 괜찮은 기사가 충분히 될 듯 했다.

그를 데리고 직접 광주로 내려갔다. 현장을 둘러보며 확신했다. 정씨는 예전의 건물과 거리를 정확히 기억했다. 여러 사실관계들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극적인 인생행로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벌을 받느라 노숙자 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이제라도 양심선언을 하고 고인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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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진입한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5 ·18 문화재단



 


 “… 21년 만에 광주 5.18 묘지를 찾은 정씨는 끝내 통곡을 참지 못했다. 눈물은 80년 5월21일 사망한 광주 시민 임은택씨의 묘비 위로 떨어졌다. 죽은 자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의 숭고한 뜻은 커다란 사랑으로 남아 바른 삶의 지표가 됐습니다. 못다 이룬 한을 훌훌 털고 가소서.'”

모처럼 뿌듯한 기사를 썼다며 제법 자위하고 있었는데,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정씨였다. “기사 나왔다면서요.” “예, 아직 못 보셨습니까.” “아니, 그러면 미리 말을 해야지.” “18일에 쓰겠다고 제가 말씀 드렸었는데.” “그게 아니라, 돈을 줘얄 것 아뇨.” “저희는 인터뷰 대가로 돈을 드리는 일은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일보>는 안 그러던데.” “예?”

순간 머리속이 하얘졌다. 5년차 사회부 경찰기자는 그제야 뭔가 일이 잘못 됐음을 느꼈다. 옛 기사들을 찾아봤다. 그 전 해, 그리고 그 전전 해의 5월, 어느 중앙일간지와 시사주간지에 ‘노숙자 정씨’의 기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연례행사처럼 ‘양심선언’을 반복했던 것이다.

지난 9년 동안 부실하게 양산한 수많은 기사 가운데서도 이 기사는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다. 가장 부끄러운 기사다. 일반적인 뉴스가치의 잣대로 보자면 정씨의 이야기를 다시 다루는 것은 기자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내가 쓴 기사의 틀은 광주사태의 한복판에서 시민을 학살한 군인이 ‘처음으로’ 그 사실을 고해한다는 데 초점이 있었다.

그를 절대로 미워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더 애잔해지긴 했지만, 나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거짓말을 한 셈이 돼버렸다. 그 악업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다. 이젠 해마다 ‘그날이 오면’ 광주 대신 정씨를 떠올린다. 광주를 생각하건 정씨를 기억하건, 옷깃을 여미며 “똑바로 정신 차리고 살자”는 결심을 하는 것은 매 한가지다.

그 때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취재원(news source)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데 있었다. 첫 순간, 행색만 보고 상대를 의심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그걸 극복한답시고 전폭적인 믿음을 걸고 모든 기사를 그에게 내맡긴 것이 더 큰 잘못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취재원을 의심하고 뒤집어보는 일을 생략한 것이다.

이른바 ‘불량기사’의 상당 부분은 기자-취재원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어떤 취재원을 얼마나 만나, 무엇을 물어보고, 그 대답을 제한된 텍스트에 어떻게 담을 지가 기사의 내용을 결정한다. 앞으로는 언론 환경과 취재 관행이 나아지긴 하겠지만, 여전히 기자 노동은 ‘시간 싸움’이다. 5분 안에 기사를 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 30분 안에 기사를 다 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한 시간 안에 취재를 마쳐야 하는 식이다.

그렇게 반나절을 씨름하고 다시 다음 반나절을 준비하는 ‘하루살이’가 기자들이 미쳐 돌아가는 이 바닥의 대강이다. 어떻게 하면,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취재원을 가급적 최소한(최대한이 아니라) 만나 기사가 갖춰야할 그럴듯한 모양새를 꾸며 제 시간에 마감할 수 있을지가 기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한국 언론이 양산하는 기사의 대부분은 그래서 ‘패스트푸드-저널리즘’에 비유할 수 있겠다. 준비된 재료만 들어간다. 모든 재료는 순식간에 요리되거나, 이미 요리돼있다. 그래도 몸에 좋고 맛도 좋다고 선전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그런 음식들을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먹는다. 그래서 또다시 ‘준비된 재료’를 다시 챙겨 내알 장사를 준비한다. 가끔 그 음식에 파리 날개, 쥐꼬리, 바퀴벌레 더듬이 등이 들어가 항의를 받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사람들은 계속 이 식당을 찾을 테고, 나는 계속 음식을 팔아 해치울 것이다….

최근 ‘피디 저널리즘’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역시 한정된 취재원에 대한 무비판적 의존이라는 기자들의 관행과 관련이 있다. 바쁘기로 따지자면 피디 역시 기자 못지않겠지만, 여하튼 그들은 작가 등 스텝을 동원해 다각도로 취재할 인력을 갖추고, 적어도 일주일 이상의 호흡을 갖고 프로그램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여러 취재원을 두루 만나 복잡한 사실관계의 풍부한 이면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기자는 ‘사실’에 목숨을 건다. 이 말은 백번 천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다만 전제가 필요하다. 그 사실이 ‘진실’을 드러낸다는 조건 하에서만 사실은 존귀하다. 사실은 취재원으로부터 나오는데, 이 취재원의 성격과 숫자에 따라 진실은 다른 모습을 띤다. 때로는 ‘명백한 사실’이 ‘진실’을 가리기도 한다.

 

 

061030web02.jpg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사건 과정에서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취재 내용이 취재윤리 위반을 넘어 진실로 드러나면서 ‘피디 저널리즘’은 언론 보도의 한 정점을 보여준 탐사 저널리즘의 또다른 이름이 됐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사회부 경찰기자 시절, 종로경찰서를 출입했다. 시위와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귀찮을 정도로 많았다. 써야할 기사는 쌓여 있는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집회를 모두 추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자들은 이럴 때, 경찰을 활용한다.

“얼마나 와 있어요? 그럴 줄 알았다니까. 몇 명 안 되죠? 근데 언제까지 한대요? 뭐, 굳이 해산시키고 그런 일은 없겠죠? 하하. 그럼요. 경비과장님 고생하시는 거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근데 주로 어떤 구호를 외치던가요? 그 단체 대표 이름이 뭐였더라. 과장님은 알고 계시죠?”

어지간한 경우라면, 현장에 나간 경찰의 정보는 ‘사실’이다. 여기에 중대한 거짓은 없다. 잘못 꾸며 말했다가 기자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싶은 경찰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제공하는 사실에 의존하는 한 그 집회의 ‘진실’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는다.

경찰서 기자실에 앉아 취재한 집회는 귀찮고 시끄럽고 가망 없는 짓거리일 뿐이다. 평일 오후, 지역 주민들이 몰려와 청와대를 항의방문 하겠다고 기를 쓰는 일은 이제 기사 속에서 ‘도심 소음 공해의 하나’로 취급된다.

만일 그 기사의 취재원에 집회 참가자가 추가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고 보니, 미군 사격 훈련 때문에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 지역 농민들의 시위다. 마감에 쫓기느라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면, 그게 불량기사가 된다. 사회의 악성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패스트푸드-저널리즘이다.

이는 다시 출입처 관행과 연결돼 있다. 피디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에는 유난히 ‘현장의 목소리’가 많다. 반면 기자들의 보도에는 ‘고위 관계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자는 힘 있는 기관의 내부자로부터 정보를 구한다. 분명히 출입처는 내부자와 친밀해질 수 있는 강력한 발판이다. 외부적으로 폐쇄적인 권력기관을 감시하기 위해 한국 언론이 부여잡고 있는 코뚜레다.

그러나 이 ‘내부자에 대한 유혹’이 기자들을 망가뜨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기자들은 틈만 나면 고위 관계자, 유력자, 명망가, 권력자들과 친분을 쌓으려 애를 쓴다. 바로 그들이 특종을 건네줄 취재원이기 때문이다.

자꾸 만나면 정든다. 검찰 출입 기자는 검사의 관점에서, 정당 출입 기자는 국회의원의 관점에서, 청와대 출입 기자는 대통령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자신의 뿌리는 시민사회에 있고, 그 구실은 권력기관의 숲에 보내진 감시견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때로는 주인인 시민사회를 향해 외려 사납게 짖기도 한다. 제가 검사고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인줄 안다.

‘권력자의 언어’로 소통하는 기자들에게 익숙해진 권력기관의 내부자들은 뜨내기 같은 피디들을 좀체 만나주지 않는다. 출입기자들의 높은 벽에 가로막힌 피디들은 하는 수 없이 ‘현장’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오히려 그 과정이 피디 저널리즘을 건강하게 살찌우고 있다.

피디 저널리즘에는 넥타이 멘 익명의 관계자 대신, 생생하게 살아 분노하는 실명의 시민들이 있다. 피디 저널리즘에 등장하는 고위 관계자는 시민의 분노 앞에 제대로 변명도 못하는 무능력자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취재원이 기사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하는 동시에, 어느 지점에 이르게 되면 기사의 방향이 어떤 취재원을 선택할지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수습기자 시절, 모든 기자는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 화재, 살인, 성폭행, 재난현장, 시위현장 등을 취재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방식을 전수받는다.

좋게 말하면, 이는 미숙한 사회초년생이 기자노동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과정은 패기만만한 초년기자가 기성의 매체가 쌓아올린 거대한 ‘도그마’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를 통해 매체는 또 하나의 부속품을 복제한다. 기자가 바뀌어도 특정 매체가 생산하는 기사는 모두 닮은꼴이다. 종업원은 바뀌어도 그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은 매양 패스트푸드다.

농민 시위가 일어났다. 사회부 초년 기자는 능숙하고도 당연하게 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취재한다. 몇 명이 어디에 모였는지, 어디로 행진하는지, 전경들은 몇 명이나 동원했는지, 폭력시위는 없었는지, 성명서에선 뭐라고 이야기했는지를 기계적으로, 그러나 빠르게 취재해 원고지 5장의 단신 기사로 쓴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보다 많은 취재 시간을 허락한다 해도 불량기사가 눈에 띠게 줄어들 것이라고 쉽게 예상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층 취재를 위한 시간적, 물질적 환경을 바꾸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 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기자 각자에게 내면화돼 있는 취재 관행, 특히 취재원의 취사선택에 대한 메카니즘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인사이더’에게 의존해 권력관계의 치부를 폭로하는 특종기사가 아니라, ‘아웃사이더’에 눈길을 돌려 소외된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로부터 사회의 혈맥을 찾아가는 심층보도는 하나의 대안이다.

이때 아웃사이더의 대부분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정권을 비판하고 친일파를 저주하고 미국을 고깝게 여기며 가난한 부모를 탓하면서 강남 아파트에 군침 흘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분명하고 명확한 것은 없다. 단정적으로 확실하게 말하는 인사이더들에 비하자면, 아웃사이더는 귀찮고 짜증나는 취재원이다. 아웃사이더를 수없이 만나고 난 다음에야 하나의 흐름을 잡아 기사를 쓸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취재를 위해 기자는 술잔을 기울이는 대신, 책을 펼쳐들고 자료를 찾고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

북핵 사태와 관련해 여러 ‘인사이더’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넘쳐나고 있다. 실명 또는 익명의 ‘관계자’들이 북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 일부는 한국 정부 관료이고 일부는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관료이며, 일부는 한국의 대학 교수이고 일부는 미국, 중국, 일본의 대학 교수다. 그들에 따르면, 지금 한국은 세계사적 위기의 진앙지다.

내가 보기에 그 말에 거짓은 없다. 대부분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예컨대 세계사적 위기의 한복판에 서있는 한국인들은 왜 여전히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그들을 태연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어떤 ‘인사이더’들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북핵과 관련해 지금 한국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해야 할 것은 ‘아웃사이더’인 시민이다. 본래적 의미에서 이번 사태의 진정한 인사이더가 바로 그들이기도 하다. 전쟁이 나면 그들이 죽을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져도 그들이 먼저 굶을 것이다. 아마도 관료와 교수들은 포화를 피해 다닐 것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어서 뭐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북핵 사태의 진실의 상당 부분은 ‘암시랑도 않는’ 시민들에게 있다. 그들에게 귀 기울이는 방법에 대해 한국의 기자들이 낯설어 할 뿐이다.

내가 쓴 ‘노숙자 정씨’의 기사는 불량기사일까. 그렇다. 단수의 취재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괜찮은 기사를 쓰려면 취재원의 숫자가 많아야 하고, 그들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 그러나 ‘노숙자 정씨’의 기사가 치명적으로 악질적인 기사는 아니었다고 감히 변명해 본다. 어떤 면에서 나는 ‘아웃사이더’인 필부들의 이야기를 보다 중요하게 다루고 싶었던 것이다. 시행착오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미숙한 사회부 기자는 노숙자 정씨로부터 한 수 배웠다. 다만 세상의 더 많은 ‘정씨’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무능이 여전히 부끄러울 뿐이다.

 

안수찬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