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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아야 하는 게 있다(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7-25 09:31
조회
285

하지 않아야 하는 게 있다


- 술 좋아 하는 시민이 올리는 충언 -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람에게는 체력이든 시간이든 스스로 감당할 총량이 있으니, 애당초 ‘하면 된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해도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대개 ‘하면 된다’고 말하는 자들은 누구를 부려 먹으려는 자들이거나, 게을러서 전혀 뭔가를 해보지 않은 자들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그래서 철이 좀 든 이후 남들이 ‘〇〇〇을 하자’고 다짐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찾았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알았다. 첫째, 하지 않는 것도 하는 것만큼 힘들면서도 뿌듯하다는 사실이었다. 뭘 하지 않는데 왜 힘이 드는가? 화 안 내고 참는 게 쉬우면 누구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물론 화가 날 때 슬기롭게 살펴 해소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둘째, 할 걸 먼저 하는 것보다 안 할 걸 먼저 안 하고 할 걸 하는 편이 훨씬 안정감과 집중력이 높인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테지만 나는 그렇다.


생각건대, 세상 일에는 나중에 도움 되는 게 있다. 도둑질도, 싸움도, 사기당하는 것도 뭔가 남는 게 있다. 그러나 흡연은 아니다. 백해무익(百害無益)이란 말이 담배처럼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는 없다.


불행하게도 난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친구네 집 사랑방에서 시작된 흡연은 지독하게 나를 따라붙었다. 흡연자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12시간, 하루, 사흘, 1주일, 2주일, 한 달, 두 달, 석 달, 심지어 1년도 끊어보았다. 그러다 다시 피고 말았다. 담배는 요물(妖物)처럼 마음에 틈만 생기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잖아! 다시 피워. 지금 힘들잖아?’라고 유혹하며 나의 여리고 허한 마음을 파고들었다.


물론 담배 끊기는 내 의지의 영역만이 아니다. 당초 담배를 파는 세상이 더 문제다.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담배를 버젓이 편의점, 수퍼에서 팔고 있는 세상이라니! 그걸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흡연공간까지 마련해주는 사회라니! 더더구나 담배를 팔아 거두는 세금 때문에 담배 판매를 합법화하는 국가라니! 나는 국가가 늘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로 담배 판매의 합법화를 든다.


[금연 표지 : 작은아이가 일곱 살 때 그려서 내 서재, 마루, 화초가 있는 마당. 대문에 붙여놓았던 그림이다. 그놈 등쌀에 나는 담배를 끊어야 했다.]


나는 담배를 끊는 데 무려 25년 이상 걸렸다. 2004년 12월, 해골바가지 금연 그림을 그려서 방과 거실은 물론, 마당까지 따라다니던 작은 아이의 사랑스러운 성화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서툰 포스터를 들고 ‘아빠, 담배 피웠지!’하고 심문하던 녀석의 표정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더하여 그때 시작한 마라톤은 흡연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스포츠였다. 그렇게 담배로부터 멀어진 지 20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 담배 피는 꿈을 꾸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을 깬다. 휴~ 꿈이었구나…… 하면서. 군대 다시 가는 꿈은 안 꾼 지 이미 오래인데 말이다.


신혼 시절 안방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웠던 나의 행동에 대해 뒤늦게 진심으로 통렬히 참회한다. 내가 담배 피우던 입으로 아내와 키스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 무슨 야만이란 말인가! 나는 시험을 보면 피드백을 한다. 피드백을 하다 보면 담배 냄새를 풍기는 학생도 있는데, 나는 피드백 이전에 조근조근 왜 담배를 지금 젊을 때 끊지 않으면 안 되는지 설명한다. 그때 꼭 빼놓지 않고 말한다. “키스할 때 너무 더러운 냄새가 나거든! 너는 모르지만…….”


난 뭔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 열심히, 성실히 하는 건 잘하지 못하고 또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냥 이렇게 나는 안 해도 될 일을 먼저 쳐나가는 방식으로 내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뭔가 할 때는 슬렁슬렁한다. 다만 안 해도 되는 건 안 한다.


무슨 일을 열심히 하지 못하니까 예방책으로 안 할 일은 안 하는 전략을 취하는 게다. 내일 산에 가기로 되어 있거나 내일 강의 준비를 채 하지 못했으면, 오늘 저녁에 술을 마시지 않는 거다. 마셔도 컨디션 조절용으로 조금만 마시고. 특히 마라톤 대회가 있으면 적어도 넉 달 동안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실제로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뛸 때 그렇게 했다. 다른 말로 하면, 술을 마시고 칼럼, 논문을 쓰지 못하거나 토론을 포함하여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면 술은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절대 담배처럼 술을 끊을 자신도 없고, 생각도 없다. 그 좋은 술을 왜 끊겠는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만큼 술을 좋아하는 분이 용산에도 계신 듯하다. 주량도 제법 되시는 듯하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랏일을 하고 계시니까, 내가 하는 방법 한 번 써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전제에서 드리는 말이다. 국무회의가 있거나 외국순방이 있거나 안전보장회의가 있거나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 있을 때는 전날 술을 안 하시는 거다. 그런 일이 없을 때가 있느냐고? 그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자리인 줄도 모르고 맡으신 건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나도 할 줄 아는 걸 당신이 못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 외에도 안 할 일을 하다 보니 할 일을 못하시는 건 없는지 두루 살펴보셨으면 한다.


사실 이 전략은 내 발명품이 아니다. 2천 년 전에 이미 맹자(孟子)께서도 말씀하셨다. “사람이란 하지 않는 일이 있어야 뭔가 이룰 수 있다.[人有不爲也而後可以有爲]” 달리 말하면, 하지 않을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겠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