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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의 사유화와 피해의 공유화(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7-12 10:23
조회
581

핵발전소, 방사성 물질, 그리고 자연권에 대하여


 

 

이찬수 / 인권연대 운영위원


 

환경 자체의 권리


지구가 위기에 처했다. 인류와 생명체들의 생존이 경각에 달렸다. 지구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되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 근거인 자연을 수단화하며, 인간의 욕망을 위해 끝없이 지구를 채굴하고 생명을 살상하며 땅을 소비해온 결과이다.


그동안 인간을 위해 환경을 사용할 권리(환경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내세웠다면, 이제는 ‘환경 자체의 권리’(right of the environment)를 확산시켜나가야 할 때다. 자유권과 사회권 같은 인권도 생태적 한계 안에서 조건부로 인정하는 자연 친화적 인권 의식을 확립해가야 한다. 동물들도 “살아있고 지각하는 존재로서 법인격을 가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종에 적합한 환경에서 나서 살고 자라고 죽을 기본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데이비드 보이드, 『자연의 권리』, 93-94)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가야 한다.


 



 

이익의 사유화


물론 현실은 그에 턱없이 못 미친다. 오늘날 지구촌의 문제는 “이익의 사유화에 관해서는 자본주의적이면서 환경 훼손이라는 비용에 관해서는 사회주의적”인 이중성에 있다. “공정한 시장경제라면 환경 비용을 유발한 자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디르크 슈테펜스, 『인간의 종말』, 214), 탄소 배출에 가격을 매기는 ‘탄소가격제’의 적극 도입도 필요한 상황이지만(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293), 현실은 그 비용을 피해자들까지 떠안은 채 오던 대로 직진하고 있다. 소수가 공적 환경을 더 많이 훼손하고 비용은 다수가 부담하는 불공정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정치도 지구를 소비하기만 하는 자본주의적 확장을 지원하고 추구하며, 그 와중에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골몰한다. 인간의 욕망이 양극화되지 않도록 공정하게 관리하려는 정치적 노력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에콰도르 헌법의 자연권


자연을 훼손하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헌법적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헌법에 ‘자연권’을 담아내야 한다. 실제로 남미의 에콰도르가 헌법에 자연권을 명시한 바 있다: “생명이 재창조되고 존재하는 곳인 자연 또는 파차마마(Pachamama, 대지의 여신)는 존재와 생명의 순환과 구조, 기능 및 진화 과정을 유지하고 재생을 존중받을 불가결한 권리를 가진다. 모든 개인과 공동체, 인민과 민족은 당국에 청원을 통해 자연의 권리를 집행할 수 있다.”(제71조)


미국 석유회사인 텍사코가 에콰도르 열대우림에서 유전을 개발하면서 오랫동안 엄청난 환경파괴를 자행했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본 에콰도르 원주민 3만 명이 텍사코를 인수한 쉐브론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과 에콰도르 법원 등을 오가며 결국 승소했다. 그 과정에 환경에 대한 의식이 커졌고, 헌법에 자연권을 담는 성과로 이어졌다. 2011년에는 볼리비아에서도 자연을 법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어머니 대지법’을 제정했다.


출처 - 오미아뉴스


인권의 근간, 자연권


자연권을 지킬 의무는 물론 인간에게 있다. 자연권은 “자연의 관점에서 자연을 대리 또는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의 권리로서, (그런 사람들이) 자연을 훼손하고 착취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하고 자연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는 권리”이다.(오동석 외, 『지구를 위한 법학』, 179) 이 자연권은 기본적인 인권 보호장치로 작용한다. “자연의 권리를 파괴하는 세력은 자연의 권리를 옹호하는 인간도 억압하기 때문”에 자연의 권리를 대리할 의무를 위해서라도 인권이 더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조효제,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211-213) 자연에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의 생존권도 두루 강화된다. 자연권은 생태 위기 시대의 인권을 위한 근간이다. ‘비인간존재’도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내재적 가치와 존재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생태통합성의 원칙이 모든 법규범을 평가하는 최종 심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조효제, 205)


환경권과 민주적인 에너지


다행히도 대한민국헌법에서는 ‘환경권’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5조 1항)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제30조)는 규정도 두고 있다.


타인/타국의 범죄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해 국가가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면 국가를 상대로 헌법을 준수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환경보전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권은 이 환경권 개념의 확장판으로서, 자연 파괴적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법적 근거가 된다. 당연히 자연권은 모든 인간의 생존권도 두루 강화시킨다.


소수가 권력을 독점한 독재정치가 위험하듯이, 소수 기술자에 맡겨져 있는 핵발전 기술은 반자연적이고 반민주적이며, 그만큼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한다. 소수 전문가의 손에 맡겨진 특권은 여차하면 다수에게 원치 않는 피해를 줄 가능성도 크다. 권력도 기술도 여럿이 함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한 한 개인이 통제하고 조율할 수 있는 에너지의 생산, 보급,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핵발전보다는 가령 햇빛발전 같은 더 민주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럿이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파괴적 가능성이 덜해지기 때문이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ALPS가 ‘다핵종제거설비’인가


일본(도쿄전력)이 후쿠시마 바닷가에서 1km 길이의 해저터널을 통해 방사성 물질 132만 톤을 방류하기 일보 직전이다. 나름의 처리를 거쳤다지만, 그 처리를 위한 설비는 일본 기업 도시바가 개발한 장치이다. 이른바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 우리말로 하면 ‘고급액체처리시스템’쯤 되는데, 희한하게도 이 장치를 왜 ‘다핵종제거설비’라고 의역해서 쓰고 있다. 다핵종(多核種), 즉 모든 원자핵들을 다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한 의도적 표기법으로 보인다. ‘알프스’(ALPS)라는 약자도 알프스산맥의 청정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적 조어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조차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방출하는 행위에 별 문제의식을 못느끼는 이들이 많다. 과학자들도 그런 목소리가 내기도 한다. 물론 오염수 방류는 ‘위험하다’는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아 보인다.


그런데 정치가 과학의 언어를 진영논리로 몰아가면서 과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은 그 사이에서 부화뇌동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게 된다. 과학도 어떤 척도에서 주장하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과학도 절대적이지 않다. 과학도 어떤 전제와 입장을 가지고 실험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지고, 어떤 실험이든 특정한 맥락 안에서 진행되고 진술되는 한, 어느 정도 정치성을 띠고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상대적 입장 가운데 하나다.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는 행위가 왜 문제인지는 사실 간단하다. 그것은 인간과 생명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을 ‘증가’시키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위험한 ‘정도’와 ‘농도’를 따지기 이전에, 위험물을 ‘확산’시키는 행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핵발전소를 가진 다른 나라도 방사성 물질을 방출하고 있지 않느냐는 항변은 그저 물타기 수법이다. 대기 중에도 방사능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는 주장도 방사성 물질을 바다로 방출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기존의 방사능 수치보다 ‘더 높이는’ 행위 자체를 엄단해야 한다. 오염의 ‘농도’가 아니라 오염의 ‘총량’으로 판단해야 한다. 오염의 총량을 늘리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다.


이현령비현령, 국제.안전.기준


물론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한다고 해도 바다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오염의 농도가 눈에 띄게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오염수 방류가 마치 정당한 행위라도 되는 양 일본 편을 들며 세계를 향해 의도적 여론몰이를 한다 - 실제로 일본은 IAEA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낸다. 친일적인 한국의 대통령실과 여당은 희한할 정도로 그에 부화뇌동한다. 농도가 살짝 높아진 것이 인간에게 무슨 대수냐는 식이다.


가장 그럴듯한 말은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 ‘안전’ ‘기준’이라는 것이 오염의 농도를 전보다 좀 더 높이는 정도를 허용할 수 있다는 뜻일 뿐, 그것이 옳다거나 바람직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 조금 높은 오염이 계속되면서 지금까지 지구상의 무수한 미생물들을 죽이고, 먹이사슬로 연결된 모든 생명체들에 측정할 수 없을 위해를 끼쳐오지 않았던가. 방사능 측정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어마어마한 생물학적 피해와 미시적 세계에 가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늘 외면하거나 무시했다. 자연권의 제정은 바로 이러한 범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본적인 근간이 된다.



출처 - 환경재단


피해의 공유화라니, 안 된다


개인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듯이, 국가를 위해 쓰이던 핵발전소의 책임은 해당 국가가 져야 한다. 그로 인한 피해는 원칙적으로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 일본이 자기들의 기준을 정당화하며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려는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다. 오염수를 고체화해 보관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처리한 안전한 물이라며 홍보 중인만큼 일본 안에 호수를 만들어 보존하는 것도 논리적이고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일본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 비용이 수십 배 혹은 수백 배 더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비용만의 문제인가. 일본이 핵발전의 이익을 세계와 나눈 적이 있던가. 차라리 자국 내 보관을 할 테니 일본의 당면한 어려움을 도와달라며 세계에 호소하는 편이 더 낳지 않을까. 오염수의 방류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공유화하는 전형적인 경제 및 환경 범죄다. 일본의 위험과 비용을 전 세계와 인류에 전가하는 행위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일본의 로비 탓에 오염수 방류가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뻔한 외교적 발언을 이어가면서도, 정작 종합보고서에는 “IAEA와 그 회원국은 보고서 사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모순된 단서를 달아놓았다. 연구결과 방류는 정당하다고 판단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에는 책임질 수 없다니, 모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IAEA는 유엔 산하 기구이다. IAEA의 입장은 유엔의 이전 입장과 너무나 모순된다. 가령 유엔총회에서는 이미 41년 전에 “세계자연헌장”을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모든 형태의 생명은 독특하고, 인간에게 가치가 있느냐와 관계없이 존중해야 하며, 그런 인식을 다른 유기체에게도 부여하기 위해 인간은 도덕적인 행동 규범으로 인도되어야 한다.”(취지문) 너무나 상반되는 두 목소리를 모두 정당한 듯 내보내고 있으니, 유엔도 우습기 짝이 없는 조직이다.



출처 - 시사인


오염의 총량이 문제다


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데이터에 대한 ‘해석’에 기반한다. 그리고 해석에는 늘 정치, 경제, 이해관계 등이 들어있다. 순수한 과학이라는 것은 없다. 전체 농도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 일부 데이터에 기반한 의도적 해석이 지구를 대멸종의 위기로 몰아오지 않았던가. 오염의 ‘농도’가 아니라 오염의 ‘총량’이 문제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인류와 전체 생명의 근원인 공해상으로 방류하는 것은 거대한 범죄다. 원전의 혜택을 누려온 일본 안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 정말 어려우면 전 세계를 향해 도와달라고 솔직한 고백을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런 것 없이 일방적으로 자행하는 데서 오는 모든 피해에 대해서는 일본이 책임져야 한다. 헌법상 자연권이 확장되면 자연을 조금이라도 더 파괴시키는 행위에 대한 국내외적 여러 처벌들이 가능할 것이다. 기후위기 및 생물종의 급감 같은 오늘의 총체적 위기가 좀 더디 오도록 하는데도 좀 더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