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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검찰과 언론 때문이라는 생각(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6-28 09:21
조회
706

이재성 /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른바 ‘조국 사태’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2019년 겨울이었다. 문화부 학술담당 기자였던 나는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세대 담론’을 주제로 쓴 논문(‘386’ 담론의 계보와 정치적 의미론, 1990-2019)을 보고 기꺼운 마음으로 기사를 썼다. 거칠게 요약하면, 세대론은 마치 인종주의나 섹시즘(성차별주의)처럼 겉으로 드러난 말초적 지표(나이)로 계급 갈등을 비롯한 다른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은폐한다는 내용이었다. 신 교수는 조국 사태를 거치며 386 담론이 일베화했다며(민주화‧평등‧진보에 대한 조롱 및 공격), ‘386 말하지 않기’를 제안했다.



세대 차이는 있다


2021년 늦가을 무렵에는 고 정태인 박사가 생애 마지막 <한겨레> 인터뷰에서 “민주화 세대는 실패했다, 청년에게 자리라도 내주자”고 주장했는데, 그의 충심을 이해하면서도 논지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마치 이 나라의 모든 문제가 민주화 세대 때문인 것처럼 주장하는 <조선일보>류의 프레임을 차용한 듯한 인식에 저항감이 들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나의 정의감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검찰정권이 출범하여,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무능과 독선으로 나라를 망가뜨리는 과정을 괴로운 심정으로 지켜보며, 오히려 세대 담론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세대 담론을 무기로 민주화 세대를 폄훼하는 우파의 정치적 의도와 별개로, 진보 안에서도 역사와 세계에 대한 관점의 ‘세대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이 윤석열 정부의 압도적 실정에도 불구하고 야권에 대한 전폭적 지지가 생기지 않는 이유가 아닌지 따져보게 된 것이다.



국민들이 몰라서 문제일까?


윤석열 정부가 노동혐오와 정적탄압, 불통정치와 편향외교로 일관하며 역대급 무역적자와 세수펑크로 경제 또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데도 주류 언론은 마치 태평성대인 것처럼 윤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최근만 해도 국민의힘 의원 두 명이 공천을 대가로 돈을 받은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는데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나 김남국 코인 투자 논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조용히 넘어가고 있다. 같은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인데도 민주당 돈봉투 사건은 검찰이 직접 수사하며 언론을 통해 혐의가 중계되지만, 경찰이 수사 중인 김현아·황보승희 의원의 공천 대가 금품 수수 의혹은 수사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취재가 빈약하다. 검찰의 편파 수사와 피의 사실 유포, 언론의 선택적 집중 보도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기울어진 정치 지형의 세부 항목은 모두 진실이다.


그러나 그뿐일까? 이게 다 검찰과 언론 때문인데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어서 정권 심판 여론이 미약한 것일까?


출처 - 강원도민일보


 

급격히 노화한 386


한국 정치는 똥 묻은 개(국힘)와 겨 묻은 개(민주)의 싸움이다. 30%가량 되는 국민의힘 콘크리트 지지층을 제외하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보다 더 나쁘고, 1차 개혁 대상이라는 데 동의하는 국민이 훨씬 많다. 검찰이 대통령의 충직한 사냥개로서 수사를 통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많은 국민이 알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류 언론이 보수 지배권력의 일원으로서 매파 이데올로그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다. 그 종합적 결과로서 한국이 보수 헤게모니 사회라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한 번도 변치 않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세 번의 정권 교체를 돌아보면, 두 번은 나라가 망할 지경의 실책(IMF와 국정농단)으로 보수가 자멸한 경우였고, 한 번의 예외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었다. 당시는 이른바 386세대가 30~40대로서 사회의 중추 세력으로 성장하던 때이며, 나라의 미래 또한 이들에게 달려있었다. 나는 이들의 역동성이 한국을 아이티 강국으로 밀어올렸고, 한류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386 출신 정치인은 특별한 업적이나 성취 없이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급격히 노쇠하고 부패했다. 송영길 의원이 연루된 돈봉투 사건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민주당의 국제감각과 시대정신의 노화를 의심하게 하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편을 드는 듯한 이래경씨 혁신위원장 임명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주한중국대사 싱하이밍을 대사관저로 찾아가 선을 넘는 발언에 판을 깔아준 사례, 중국의 티베트 점령 및 인권 탄압에 대한 도종환 의원의 발언(“그건 1951년, 1959년에 있었던 일”)은 민주당이 중국과 러시아에 편향돼 있다는 의심을 불렀다. 윤석열 정부의 미·일 편향만큼이나 위험하고 시대착오적인 편향이다. 이런 낡은 인식이 윤 정부와 국힘을 지지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선뜻 민주당을 지지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전면적 세대교체밖에


세 번이나 집권한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이면서도 젊은 세대의 이반을 보수화라고 손가락질한 것은 아닌지 민주당은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민주화 세대와 함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겪은 지금의 40대는 이게 다 검찰과 언론 때문이라고 같이 분노해 주지만(그마저 돈봉투와 김남국 코인 사태를 지나며 약해졌다), 그 아랫세대는 생각이 다르다. 그런데 미래는 이 아랫세대에게 있다. 이들과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세대 차이를 극복하려면 젊은 세대를 전면에 세우는 수밖에 없다. 인적 혁신만이 늙고 낡은 민주당을 개혁할 수 있는 길이다. 386을 포함한 민주화 세대는 억울할 수 있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어떻게 만든 나란데’)은 태극기 세대의 특징이다. 민주화 세대 역시 계속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진보 태극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억울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세 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검찰과 언론의 편파성은 이미 입증된 상태다. 더 이상 검찰과 언론 탓을 해봐야 확장 변수는 생기지 않는다. 상수를 변수로 놓고 이차방정식을 풀려고 하니 답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재창당 수준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를 젊은 세대의 진보적 시각으로 재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태인 박사의 지적은 절반만 옳다. 민주화 세대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다만 늙었을 뿐이다. 그걸 인정하는 게 혁신의 시작이다. “청년에게 자리라도 내주자.”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