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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그러는 건지, 알고 그러는 건지(오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6-20 10:55
조회
329

오인영 / 인권연대 운영위원



작년 대선에서 1번을 찍은 사람이 내 주위에 별로 없는 탓인지, 어쩌다 모여서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도대체 뭘 알기나 하고 그러는 것인지’ 갑갑하다는 장탄식을 듣게 된다. 심지어 국정 전반에 대해 ‘타블라 로사(tabula rosa, 백지상태)’여서 남이 일러준 대로 하거나 써준 대로 읽거나 아니면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하기 때문에, 그의 말과 글에 괜한 의미를 둘 필요조차 없다는 소리도 그럴싸하게 귀에 걸린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의 안위 및 이익과 직결된 정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의구심과는 달리, 윤 대통령 스스로는 국정 전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듯하다.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대변인을 역임한 이의 전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고 자부하며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웬만한 건 내가 다 알아, 누구 앞에서 주름을 잡아’라며 장광설을 늘어놓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관점이나 입장과 다른 사람들-정권에 비판적인 국민과 야당의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나 주의를 기울일 것 같지는 않다.



출처 - 경향신문


 

윤 대통령의 주변에서도 그를 남다른 식견의 소유자로 믿는 것 같다. 교육 문제를 잘 모르는 대통령이 즉흥 발언으로 교육 현장의 불안감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을 “수능 전문가”라고 치켜세우며 “저도 전문가이지만 (대통령에게) 제가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입시 관련 수사를 한 경험이 있다”며 “(대통령이) 입시에 대해 수도 없이 연구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토로했다. 또한, 경남 진주갑을 지역구로 둔 3선 의원인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인 박대출 의원도 “윤 대통령은 검찰 초년생인 시보 때부터 수십 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면서 입시 비리 사건을 수도 없이 다뤄봤고, 특히 조국(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의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로서 “대학 제도의 사회악적인 부분, 입시 제도 전반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을 거의 ‘최고 존엄’처럼 떠받들었다.



윤 대통령의 말과 행태를 두고서, 적지 않은 국민은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런다고 의구심을 품고 있는 반면에, 본인은 내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고 있는데 ‘검사도 아닌 것들이’ 주제넘게 심통을 부린다고 믿는 것 같다. 국민은 모른다고 하고, 본인은 안다고 하는 이 괴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단, 어쩌다 ‘일국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나라 안팎의 큰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그건 ‘윤핵관(호소인)들’에게 맡기고 나는 그저 대통령 놀음이나 즐기자는 심사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자기가 어지간한 세상사와 나랏일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자부(누구의 눈에게는 자만)하므로, 분명한 생각을 지닌 채 말하고 행동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윤 대통령이 구사하는 말과 행태와 정책은 그가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보아야, 사실에 맞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예컨대 올해 신년사에서의 ‘노사 법치주의’ 발언을 보자. 윤 대통령은 ‘노사 법치주의’가 노동 개혁의 출발점이라면서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집회와 시위를 바로 잡는 게 법치주의인 양 말했다. 그러나 법치주의는 국민이 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게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즉,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때는 반드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로써 해야 하고, 국가 행정도 법률에 근거를 둬야 한다는 원칙이 법치주의다. 그렇다면 법대를 나오고 검사 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람이 법치주의가 뭔지 몰라서 그렇게 말한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강경일변도 대응을 정당화하고 독려하기 위해” 일부러 “우리에게 익숙해 거부할 수 없는 원리인 법치주의로 포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위노동자나 국민에 대한 규범이 아니라 역사발전을 거스르는 ‘퇴행’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는 원리”인 법치주의를 몰라서 오용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악용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법치주의 관련 내용과 인용의 출처는 구창모 대전지법 부장판사, <원래, 법치주의는 ‘권력’을 ‘통제’하는 원리이다>, <<대전일보>>(23.06.12))



윤 대통령은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기는커녕 자기 생각이 확고한 사람이다. 지구사적 문제인 기후 위기, 세계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투쟁,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근대화’를 했다지만 극우적 정치문화가 득세한 일본 모델과 식민지였지만 민주적 시민의 활력이 살아있는 한국 모델의 역사적 경쟁, 그리고 남북의 갈등과 대결 등과 같은 절체절명의 중차대한 문제들에서 그는 자신이 취한 입장과 정책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재생에너지 대신에 핵에너지를,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 미국과 일본 편을 그리고 평화적 대화를 접고 군사적 대결의 위험을 높이는 쪽을 선택했다. 그 선택도 아무렇게나 이루어진 게 아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재생에너지 사업 전체가 비리 덩어리인 양 만들고, 중국과 러시아는 상종 못 할 가치 없는 국가로 몰아가는 반면에 일본은 배워야 할 아름다운 나라로 치켜세우고, 북한은 불구대천의 원수로 낙인찍는 일들이 ‘사용언론들’의 대대적인 협조 속에서 착착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 모르는 무지한 사람도 아니고 무능한 사람도 아니다. 그에게 매우 비판적인 나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정치문화나 경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유능하게 퇴행시킨 사상 초유의 인물이다. (역사적 선을 이루려면 선한 다수의 힘이 필요하지만, 역사적 악을 실행하는 데는 악한 소수의 힘만으로 충분하다는 깨달음이라니, 쓰리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은 알기는 아는데,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나 할까. 지난 1년 동안의 나라 간의 관계나 나라의 운영과 살림은, 여러 방향에서 논의되고 종합적으로 검토되지 못하고 하나의 관점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나라의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제 관계에서조차 미국과 일본은 선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악이라는 ‘가치(?)’의 관점으로만 본다. 집권 세력이 바뀌었어도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식의 실리외교가 30년이 넘게 유지돼왔다는 사실은 보지 않는다. 아예 무시한다. 내정에서도 검사 출신들의 정부 요직 독식, 입법부를 무시한 행정부의 독주, 편파적인 부자 감세 정책, 원전 하나에 ‘올인’하는 에너지 정책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집단과 방향(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문제를 조감하려는 시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평생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한다. 무지보다 편향이 더 문제라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가 두루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문제의 일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일면적이 아니라 다면적(many-sided)일 때 실체에, 진리에 더 근접할 수 있다. 나만이, 한쪽의 이익만이, 한 관점만이 옳다는 독선에 사로잡히면, 문제가 생겼을 때 자성이 아니라 남의 탓만 하게 된다. 몰라서가 아니라 어설픈 자기 생각=확증편향에 빠져 독불장군처럼 독주(아니, 폭주)하면, 국민은 그에게 요구해야 한다. 일부러 제멋대로 하지 말고 법대로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퇴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준엄하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