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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외교와 사대주의, 외교에서도 내로남불인가(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6-13 09:47
조회
248

강국진 /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 때 존경했던 인물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반대로 한 때 꽤나 부정적으로 비치던 인물을 정반대로 재평가하게 되기도 한다. 나로서는 연개소문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연개소문을 빼놓고는 고구려 역사에서도 가장 파란만장했던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그리고 고구려의 멸망사를 얘기하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그는 존재감이 크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리고 평가도 제각각이다.


연개소문과 조선상고사


 

언제나 그렇듯, 첫인상이 절반이다. 나로선 중학교 때 학교도서관에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집어든 ‘조선상고사’가 꽤나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상고사’는 성균관에서 공부했던 청년 유학자에서 근대계몽운동가로, 마지막엔 아니키스트라는 드라마같은 삶을 살았던 꼬장꼬장하기 이를 데 없던 단재 신채호가 저술했다. 물론 단재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제대로 저자의 검토도 거치지 못한 채 연재가 되는 바람에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책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골 중학생은 이 책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특히 이 책에서 영웅으로 묘사하는 연개소문 이야기는 7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규정해 버렸다.


 

조선상고사를 관통하는 건 줄곧 외세라는 ‘타자’에 맞서 독립과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우리’가 아니었나 싶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식민지 노예 상태로 떨어진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이역만리에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로선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 비친 연개소문은 당나라[唐]에 맥없이 항복하려는 사대주의 지배층을 단칼에 쓸어버리고 고구려의 기상을 결집한 끝에 당 태종이 이끄는 침략군을 통쾌하게 몰아내는 민족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심지어 양만춘이 안시성에서 침략군을 저지하는 동안에 배후로 우회해 북경을 타격함으로써 당태종을 포위하는 전략가로서 면모도 보여준다. 단재가 보기에 당 태종이 고구려 침략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군대를 보냈다는 기록은 패배로 인한 정치적 타격을 모면하기 위한 ‘가짜뉴스’일 뿐이다. 심지어 고구려가 당나라 침략군을 무찌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북경 지역까지 정복했다는 설명이 진지하게 등장한다.


 

조선상고사에서 묘사한 연개소문 이야기에 강한 영향을 받은 건 나 뿐만은 아니었다. 1970년대 신문에 연재됐던 소설 연개소문은 조선상고사를 모티브 삼아 적당하게 연개소문에게 박정희 이미지를 덧댔다. 1980년대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소설 단(丹)’ 역시 조선상고사를 차용할 뿐 아니라 당 태종이 북경 근처에서 연개소문에게 포로로 붙잡힐 뻔 했다는 무협소설 ‘영웅문’ 같은 이야기를 추가해놨다. 급기야 1990년대 나온 ‘대쥬신제국사’라는 만화에선 연개소문이 직접 당 태종을 포로로 붙잡아 항복을 받아냈다는 대목까지 등장한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트이고 지식도 조금 더 쌓이고 나서 생각해봤다. 연개소문 이야기는 정반대로 읽어야 할 이야기였다. 연개소문은 고구려를 구한 영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고구려를 위기에 빠트린 존재에 가깝지 않을까. 만약 당나라와 전쟁이 그토록 불가피했다면 굳이 신라를 잠재적 적으로 돌려야 했을까. 수성전을 위주로 한 강력한 방어체계를 무시하고 굳이 대규모 회전이라는 도박을 벌여야 했을까. 동맹관계였던 백제가 무너지면 남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공격당할 수 있다는 게 불을 보듯 뻔한데도 백제를 구원하기 위한 별다른 움직임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연개소문이 665년 죽고 나서 3년도 안돼 아들 3형제가 내전으로 사실상 자멸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패가 아닐까.



출처 - KBS뉴스


 

무엇보다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까지 수십년간 전쟁을 하면서 겪어야 했을 고구려 민초들의 고통은 둘째치고라도, 당나라에 시종일관 강경책으로만 맞섰던 게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까. 신라나 발해처럼 적당한 군사적 승리를 밑천 삼아 명분을 살려주며 평화를 도모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사대주의를 깬 민족자주 영웅’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선인 것일까. 애초에 그 사대주의라는 것 자체가 민족국가와 자주국가의 열망을 고대사에 투사한 우리만의 이미지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500년 뒤 역사가들은 ‘조선은 속방(屬邦)이기 때문에 조선의 국내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던 전근대 한중관계와 ‘전시작전권도 없이 우리 세금으로 주한미군 모시고 사는’ 현대 한미관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사대주의’라고 평가할까.


 

느닷없이 사대주의 논란이 공론장을 뒤덮고 있다. 굳이 밥먹는 자리에서 흰소리를 하는 오지랖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그리 세련돼 보이진 않는다. 가장 황당한 건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운운하는 대목인데, 미국과 일본한테 지난 1년간 어떤 식으로 굽히고 들어갔는지 세상이 다 봤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본한테 하면 가치외교, 중국한테 하면 사대주의라는 발상이야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싶다. 그러고보니 2021년 대선 국면에서 멸치와 콩을 쇼핑하는 유치한 멸공팔이를 할 때 ‘중국대사관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던 것도 떠오른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선은 넘지 말길 바랄 뿐이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