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벌건 대낮에 서성대는 도둑들(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5-24 09:19
조회
405

오항녕/인권연대운영위원


- 국유 재산을 다시 보자 -


“문화재가 국유재산인가요? 법령에 어떻게 되나요?”


“아, 그게, 저희가 논의한 뒤에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며칠 뒤, 담당 사무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책임감이 느껴졌다.)


“문화재도 국유재산입니다. 취득, 관리, 처분에서 국유재산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그럼, 겨울 나고 북쪽으로 날아가는 청둥오리도 국유재산인가요?”


“네? …….”


“청둥오리는 천연기념물이거든요. 무형문화재예요. 근데 그 애들이 철따라 만주나 아산만을 오가는 걸 어떻게 관리하나요? 국유재산 목록에 매번 분실, 취득이라고 적을 수도 없고.”


“…….”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몇 년 전 강의 시간에 문화재 수집과 처분에 대해 논의하다가 내가 관계부처에 문의한 적이 있는데, 위는 기획재정부 담당자와 했던 실화이다. 대화 도중 청둥오리를 떠올린 건 어려서 친구, 형들과 어울려 자주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땐 그게 천연기념물인지, 잡아먹으면 불법인지, 우리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닭 대신 청둥오리였을 뿐이다. 청둥오리나 꿩, 참새, 산비둘기, 뜸북이는 우리의 간식이었다. 붕어, 미꾸라지, 가물치, 메기, 뱀장어, 조개 따위는 개천에서 구하는 간식이었듯이.



[정선의 〈행호에서 고기잡이를 보다[杏湖觀漁]〉. 행호는 고양 행주산성 앞을 흐르는 한강이다. 이맘쯤이면 웅어잡이가 한창이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강과 바다, 산과 들에서 생계수단을 얻었다.]


위 대화는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함축하고 있다. 먼저 국유재산법은 마치 ‘국가 안에 있는 건 사유재산 빼고’ 모두 국가 소유, 즉 국유라는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려청자, 부석사 무량수전 같은 유형문화재 뿐 아니라, 천연기념물이나 승무(僧舞) 같은 무형문화재까지 국유재산법 적용 대상이라고 답변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이데올로기는 국가-정부 입장에서도 곤혹스럽다. 전화 통화 말미에 드러났듯이 ‘국유재산법의 적용을 받는 문화재인 천둥오리’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모순이었다. 모순일 뿐 아니라, 그렇게 주장하는 순간 관련 공무원들은 직무유기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매년 어마어마한 국유재산을 밀반출, 밀반입하도록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억지스러운 상황은 〈청자상감운학문 매병〉이나 정선(鄭敾)의 〈금강전도〉가 각각 사유(私有)로 간송미술관,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음에도 모두 국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데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유재산법’의 논리대로라면 하나의 문화재에 두 개의 소유권이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국유란 용례에 담긴 혼선은 이 개념이 공유(共有)와 사유(私有) 모두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안에 있는 건 사유재산 빼고 모두 국가 소유’라는 의미의 국유 용례를 통해 마치 ‘국유란 국민의 것이란 뜻’이라는 착시 현상을 만들어낸다. 국민들 것이니까 국민에 ‘의해’, 국민을 ‘위해’ 취득되고 사용되고 처분되겠지 하는 착각이다. 말하자면 국유가 공유(共有)를 뜻하나보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더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법률에서 ‘공유(公有)’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다. 이 공유(公有)는 지방정부의 재산이나 국유를 의미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청자상감운학문 매병〉과 정선(鄭敾)의 〈금강전도〉. 이 문화재가 국유일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인천공항, 철도, 항만, 수도, … 인터넷까지 양도할 수 없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자산이다.]


한편 국유는 얼마든지 사유와 마찬가지로 처분될 수 있다. 작년 기획재정부는 ‘매각 제한 대상’인 서울 강남 소재 상업용·임대주택용 국유재산을 매각하려고 했다.(《경향신문》 2022년 8월 16일자, 인터넷판) 당시 정부는 9곳을 매각 대상으로 발표했을 뿐 어디인지 명시하지 않았다. 정부 말로는 ‘유휴·저활용 국유재산 매각·활용 활성화 방안’이었다. 그러나 6곳이 강남 지역에 있고, ‘유휴, 저활용’이 아니라 매각 대상이었던 강남구 신사동 ‘신사 나라키움’ 건물처럼 잘 사용하고 있고 곧 지하철이 들어설 곳으로 부동산업자들도 “저런 노른자위 땅은 그대로 갖고 있는게 가장 큰 이득”이라고 했단다. 이런 땅과 건물을 슬그머니 팔려고 한 것이다. 매각되었으면 누가 샀을까? 보나마나 돈 많은 개인이나 기업이 샀을 것이다.


남미의 독재국가들만 다국적 기업에 도로, 항만, 공항을 매각해서 부정한 정치자금이나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게 아니다. 대한제국 말기에 이씨 왕가가 미국에 넘긴 평안도 운산 금광 채굴권과 일본에 넘긴 경인철도 부설권부터, 대한민국의 고속도로, 교량, 공항, 이동통신 시스템, 인터넷 등이 이미 사기업에 넘어갔거나 자본가들이 탐내는 먹잇감이다. 이런 기반시설에 대한 통제, 관리권을 갖게 되면 경쟁할 필요 없이 독점, 과점 가격을 통해 위험 없이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한국전력은 이미 무늬만 공기업이다.(윤석열 대통령은 전기요금 인상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원전이 줄지도 원전의 발전량이 줄지도 않았다.) 공사(公事)로 정부 지분 18%, 한국산업은행 33%로 명목상 정부 지분 51%를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외국인 등 주주가 차지하고 있다. 공사임에도 첫째, 이윤을 얻는 기업에 공급하는 산업용 전기는 싸고, 국민의 일상 생활과 생존에 필요한 가정용 전기는 비싸며, 둘째, 한전은 적자를 보며 세금으로 충당하는 반면, 사기업이 포함된 자회사들은 흑자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공사인 척하면서 공익성을 사익으로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이런 사기극은 적자 KTX와 흑자 SRT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둑들이 노리는 대표적인 먹잇감, 인천공항. 사유재산을 신성시하는 이데올로기와 법적 장치들 때문에 한 번 사유화된 공유자산은 돌이키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지키는 게 훨씬 중요하다.]


물, 공기, 바다, 강, 산이라는 자연 외에, 우리가 그리고 후손이 누려야 할 공유자산은 의료 설비와 기술, 철도와 도로 같은 교통 시설, 도시의 공원 같은 주거 시설, 인터넷의 플랫폼 등 지천에 널려 있다. 이것이 효율화, 선진화 등의 미명으로 사유화되지 않도록, 정부가 어떤 야합을 시도하는지 어느 때보다 눈 부릅뜨고 살펴야 할 시점이다. 공유자산의 사유화는 대미 대일 굴욕외교보다 훨씬 되돌리기 어렵고, 그만큼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재앙이기 때문이다.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이런 일이 있는지 살펴보고, 보이거나 알고 있다면 인권연대, 참여연대, 경실련 등에 알린다. 언론다운 언론에 제보해도 좋다. 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시민들끼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거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