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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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우여곡절 끝에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쟁이 일단락됐다.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껏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정책이 현실화됐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논쟁이 발생했다. 대체로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광역자치단체장, 총선 전 미래통합당이 논쟁의 한 축이었다. 기획재정부와 총선 뒤 미래통합당이 또 한 축이었다. (청와대는 어느 쪽이었는지 모르겠다. 뭐,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다양하게 벌어진 논쟁은 하나같이 국가운영의 방향에 대한 철학, 더 깊게는 세계관을 바닥에 깔고 있는 주제였다. 특히 재정건전성은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듯 하다. 기획재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도 두고두고 생각할 주제다. 그에 덧붙여 하나 더, 지출구조조정이라는 마술방망이를 거론해보고 싶다.  지출구조조정은 중요하다. 현재 한국 예산운용에는 낭비 요소도 많고 불합리한 점도 많다. 구조조정이란 게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워낙 강해서 그렇지, 필요 없는 거 덜어내고 필요한 거 더하는 과정이다. 구조조정은 언제나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지출구조조정은 긴축과 재정건전성 담론을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점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보다는 1997~98년 벌어졌던 구조조정에 훨씬 더 가까운 게, 정부에서 입만 열면 얘기하는 지출구조조정이다.  지출구조조정이란 사실 역대 정부마다 강조했던 오래된 유행가였다. 그 시작을 열었던 건 물론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1974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소비 절약에는 정부가 앞장을 서야 되겠다. 그래서 정부는 이번에 세출 예산서에 약 500억 원을 절감하여 유보하기로 했다”고 했다. 전두환은 “만성적으로 팽창되어 온 예산구조를 영점 기준에 의하여 재점검하겠다”(1982년 10월 4일)고 했다.  김영삼은 “모두 고통을 분담해 주십시오. 정부가 앞장서겠습니다. 청와대 예산을 먼저 줄이겠습니다. 각종 행사는 물론 청와대의 식탁까지도 낭비요소를 철저히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작고 생산적인 정부가 되겠습니다. 올해는 공무원 봉급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정원도 늘리지 않겠습니다(1993년 3월 19일 신경제 관련 특별담화문)”라고 말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김영삼은 시바스 리갈과 백담사와 외환위기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그들 임기에 정부 지출이 줄었다는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당연한 것 아닌가. 1년에 10%를 바라볼 정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가 급증하고, 인구는 나날이 늘어나는데 정부지출이 줄어든다는 발상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지출구조조정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빠질 수 없다. 이명박은 2010년 제11차 라디오연설에서 “10% 예산 절약을 목표로 정부 조직도 줄이고 씀씀이도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도 취임 초기에는 증세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박근혜는 2013년 2월 27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약재원 마련을 위해) 요즘 증세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국민세금을 거둘 것부터 생각하지 말라. 먼저 최대한 낭비를 줄이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등의 노력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산업화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허리띠 졸라매기’는 국민들한테도 칭찬받기 좋은 소재다. 틈만 나면 보도 자료가 쏟아지는 ‘복지 부정수급 척결’은 저비용 고효율 홍보마케팅의 교과서다. 하지만 복지 부정수급을 막겠다며 심사를 철저히 하고 사용처 하나하나 따지는 동안 시급한 복지혜택이 필요한 이들이 도움을 못 받는 기회비용은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보면 ‘마른 수건 쥐어짜기’ 담론은 돈 쓸 곳은 많은데 세금 인상은 피하려는, 욕먹는 일을 피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는 정신개혁운동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3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속하게 집행하도록 정부는 뼈를 깎는 세출 구조조정으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힌 것부터가 혼란을 부른 첫 단추, 메시지 실패가 아니었나 싶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긴축을 주문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이라는 금송아지 말고 다른 신은 모르는 기획재정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기재부가 지출구조조정을 위해 질병관리본부와 지방 국립병원 소속 공무원들의 연가보상비를 삭감하는 걸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때문에 주말에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욕을 푸짐하게 먹었다. 그러자 기재부는 형평성을 맞춘 후속대책을 내놨다. 4월 21일 해명자료에서 “금번 추경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속한 국회 심사 및 통과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고려해 연가보상비 감액 부처를 최소화하였다”던 기재부는 하루 뒤 해명자료에선 “공공부문의 고통분담 차원에서 올해 모든 부처와 헌법기관의 연가보상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단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어야할 건 2006년 1월 18일 노무현 신년연설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 구조를 바꾸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면, 어디선가 이 재원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아도 세금을 올리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껴 쓰고, 다른 예산을 깎아서 쓰라고 합니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상력에 제한을 두지 말라”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노릇이다. 천재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그래서 책을 읽는다. 대통령에게 <노무현 대통령 연설문집>을 읽고 상상력을 키우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05-06 | hrights | 조회: 1464 | 추천: 4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코로나19 시대의 화두는 ‘새로운 일상’이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했고, 실업이 증가하고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일상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새삼 뼈저리게 느껴지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간절하다. 하, 어쩌랴.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인정하든 안하든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잘 버티고 견디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기대마저 무너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단어가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일상을 규정하는 단어가 됐다. ‘넥스트 노멀’이라고 불리는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소비도 교육도 온라인 중심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비대면 접촉의 시대가 될 거라 한다. 온라인 개강, 재택근무, 화상회의 등 여기저기 혼란은 있지만 이런 ‘넥스트 노멀’한 삶도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넥스트 노멀한 시대에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 될 수 있는 걸까. 최근에 나온 한 책 제목은 가히 충격적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 2050년이면 겨우 30년이고 한 세대 밖에 안 되는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지구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고? 그게 말이 돼?  책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지구온난화는 산업혁명 이후 수 백 년에 걸쳐 배출해온 온실가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기 중 탄소의 절반은 불과 지난 30년 동안에 폭발적으로 배출된 것이다. 30년 전이면 1990년대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는 등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시작되던 시기인데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나서도 문제를 몰랐을 때만큼이나 자연을 파괴해왔다는 지적이다. 97년 교토의정서, 2016년 파리기후협약 등 기후재난을 멈추기 위한 수많은 협약이 있었지만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했고 트럼프 같은 정치인은 이를 노골적으로 폐기했다. 기업들은 공장을 계속 가동했고 우리는 신나게 자동차를 몰았고 맛있는 고기를 마음껏 즐겼다. 이렇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는 동안 기온상승을 2도 안에서 멈춰야 한다는 경고는 잊혀졌다.  만약 기적이 일어나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멈추더라도 이미 배출한 양 때문에 추가적인 기온상승은 피할 수 없다. 호주산불, 미국의 허리케인, 유럽의 폭염, 베네치아의 침수 등 우리가 재난이라고 부르는 기상이변은 앞으로 닥칠 상황에 비한다면 그나마 최선의 상태다. 살인적인 폭염, 치솟는 산불, 갈증과 가뭄, 빈곤과 굶주림, 오염된 공기... 이런 재난은 ‘일상’이 될 것이고 앞으로도 탄소배출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21세기가 끝날 즈음 기온은 4도 이상 오를 것이고 지구상에 사람이 살만한 지역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 사진 출처 - freepik  불과 석 달 전만해도 아무도 코로나19가 가져올 일상의 변화를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그것이 초래할 일상의 위기에 대한 경고는 30년 전부터 있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위기 가능성에 대해 지금도 우린 애써 외면하고 있다. 유엔은 2050년 기후난민이 2억 명에 달하고, 싸움을 벌이거나 도망치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취약한 빈민층이 10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2011년 이후 시리아 난민 1백만 명이 유럽에 가져온 쇼크를 생각하면 2억 명이란 수치는 엄청난 수치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상 자체의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내 살아생전 그럴 일이 있겠어? 평균수명 80세, 100세 시대라고 하니 30년 뒤는 내 살아생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린 사회적 거리두기로 멈췄던 일상으로 돌아가길 오매불망 기다린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선 선수처럼 언제든 튀어나갈 기세로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떼기 전에 어느 방향으로 갈지 깊이 성찰해 볼 일이다. 코로나19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이 일상 자체가 지속가능한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연파괴, 대량소비와 과잉생산으로 점철된 이 사회가 과연 지속가능한 지, 더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멈추고 공존과 생존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소비의 방식만 비대면으로 바뀔 뿐 소비나 욕망 자체는 그대로라면 ‘넥스트 노멀’한 일상이 지속가능한지 묻고 있다.  코로나19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공장을 멈추게 했고, 거미줄처럼 하늘을 누비던 비행기의 운행도 감축시켰다. 한국에선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하늘을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인도에선 대기오염에 가리어있던 에베레스트산맥의 풍광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 세계 지도자들이 하지 못한 일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해낸 것이다. 세계화는 전염병의 세계화를 가능케 했고 전염병의 세계화는 세계화 자체를 불능상태로 되돌리는 역설, 어쩌면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리고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일상을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김호기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준 세 가지 교훈을 이렇게 얘기했다. “하나는 여전히 믿어야 할 것은 과학과 이성이라는 것. 또 하나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간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줬다. 마지막은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자연 파괴, 대량 소비, 기후 위기,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빠른 삶, 이제까지 현대문명이라고 칭했던 것에 대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코로나19 이후에 우리가 조금 더 다른 사람들과 협력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면, 우리가 과거와는 달리 느린 삶을 살려고 한다면,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꼼꼼하게 읽는다면 그것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긍정적인 결과들일 것이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20-04-29 | hrights | 조회: 1454 | 추천: 7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춘천이라고. 이건 오롯이 지난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결과 덕분이다. 지난 8년 동안 나만이 아니라 춘천 출신 지인들도 고향을 밝히는 게 창피했다고 한다. 고향을 밝히면, 대개는 ‘춘천 사람은 도대체 뭔 생각으로 그런 사람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는 거냐’는 힐난이 섞인 질문이 ‘훅’하고 들어왔다. 그때마다 김진태 의원이 안하무인격으로 마구 막말을 내뱉는 데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눅이 들곤 했다.  내가 체험하고 기억하는 한, 춘천의 선거는 보수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행해졌다. 선하고 정의로운 의정활동으로 유명한(famous) 게 아니라 모질고 독한 언행으로 유명한(notorious) 그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 전에도 춘천에서 민주당 계열의 후보자가 당선된 적이 없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3대 총선이후열린 8차례 선거에서 모두 보수(수구) 정당 후보가 승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태 씨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춘천 출신이라는 게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고 말하는 지인은 없었다. 춘천이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곳이지만, 8년 전까지도 춘천 출신의 보수계열 의원이 누군가에게 몹시 부당한 인격적 모멸감을 주거나 인간적 공분을 자아내는 행위를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남달리 빼어난 선량(選良)도 아니었지만 유별난 언행-탄핵반대와 숱한 망언-을 일삼는 ‘아스팔트 우파의 아이콘’도 아니었다.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되어 가지만, 새벽녘까지 내 고향 춘천(엄밀하게는 춘천․철원․화천․양구갑 선거구)의 개표방송을 보면서 느꼈던 불안과 긴장, 흥분과 기쁨은 아직도 남아있다. 춘천의 개표는 전국 어느 선거구의 개표보다도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게 나를 더욱 애달게 했다. 개표 당시에는 몰랐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표 초반에는 민주당 허영 후보의 약세지역부터 개표가 되었기 때문에 새벽 1시까지도 김진태 후보가 앞선 결과가 나왔다. 순간적으로 이번에도 춘천은 안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일반화하자면, 21대 국회에서도 수구세력의 정치적 파워가 유지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살짝 들었다. 그러다가 개표가 45%를 넘어서면서 역전이 이루어지고, 최종적으로는 7.4%, 약 9,600표 차이로 <민주진보 계열 허영 후보의 당선, 통합당 김진태 후보의 패배>가 확정되었다.  사사로울 수 있는 고향의 선거이야기를 하는 것은, 춘천이야말로 이번 21대 총선의 결과와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문자를 쓰자면 ‘구체적 보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춘천에서 진보진영 후보가 당선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춘천의 선거결과는 집권여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집권당의 승리보다는 수구적 야당의 패배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국민은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미래통합당을 버렸다’는 세간의 평가는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왜 미래통합당에게 패배를 안긴 것일까? 춘천의 선거는 그 이유의 일단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춘천의 두 후보의 대결은 ‘공안검사 대 학생운동권’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김진태 후보는 공안검사 출신이고, 허영 당선인은 1991~1992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고 김근태 의원의 비서관을 지냈다. 김진태 후보의 이력은 통합당과 잘 어울린다. 통합당은 70여년 적대적 남북관계를 고수하며 분단구조를 지속시키고 분단을 정략적으로 ‘악용’하기도 한 수구기득권세력이 주축이다. 김진태 후보의 패배는 레드콤플렉스를 부추겨서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세력에게 내려진 퇴장명령인 셈이다. 춘천의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이번에 당선된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시의원, 도의원, 시장, 도지사, 대통령까지 모두 미래통합당 쪽에서 ‘빨갱이’, ‘종북좌파’라고 매도했던 정당 소속이다.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이분법적 냉전사고에 매몰된 정치집단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는 현실과 동떨어진 의식, 즉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세력에게 국정을 맡길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미래통합당과 그 주변의 세력들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자신들에게 마이너스가 된다는 정략적 셈법에 따라 정부의 코로나 방역을 맹비난했다. 그것은 마치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방역에 실패하기를 바라는 열성기도 같았다. 그러나 정부가 시행하는 코로나 방역대책이 무너지면 우리들 생명과 생활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더욱이 외국 정부와 해외 언론을 통해 우리 정부의 방역대책이 전 세계에서 거의 독보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자는 미래통합당의 외침은 ‘아스트랄(astral)한’ 비현실적 메아리가 되어 사라졌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을 심판 대상이 아니라 자부심을 안겨주는 ‘우리의 정부’로 받아들였다. 문재인 정권 타도를 외쳤던 김진태 후보와 같은 부류는 표를 얻기 어려웠다. 격하게 정리하자면, 정부가 잘하면 우리 모두가 살고 정부가 잘못하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그저 정부가 잘못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세력에게 표를 주기보다는, 등을 돌렸다. ‘코로나 사태’ 국면에서 지 잘할 궁리는 하지 않고 그저 남 잘못되기만을 바라는 심보가 들통나는 바람에 저들은 졌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 해도 놀부 편보다 흥부 편드는 사람이 많은 게 세상인심일 것이다. 아흔이 다 된 춘천의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두 이번에는 사전투표를 하셨다고 했다. 자식들이 어디 가서도 내 고향은 춘천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도록 투표하고 싶은 마음에 급하셨단다. 같은 마음이었던 춘천 시민들, 국민들 덕분에 이제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K-방역’에 이어 ‘K-투표’도 모범적으로 했다고!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20-04-22 | hrights | 조회: 1756 | 추천: 16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세계적 공중 보건 및 경제 위기 상황에서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제적 차원의 연대와 협력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세계적 대유행이 되고 있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어렵다. 사회의 취약계층들은 생명과 생존에 대한 치명적 위협에 내몰리고 있다. 과거 1, 2차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우리 세대로서는 처음 겪는 인류의 생명과 안전, 생존을 위협하는 대재앙이다. 현재와 미래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모든 국가와 국민들의 헌신적이고 책임감 있는 대응이 필수적이다.  인류의 대재앙에 맞서 모두가 힘을 모아 분투해야 할 때 미국 주도의 제재에 직면한 개발도상국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다. 그동안 제재로 인하여 민생고를 겪는 상황에 더하여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의료품과 방역 물품조차 시기적절하게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잃은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제때 충분히 제공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미국의 대쿠바 경제제재는 현재 코로나19로 가장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민들에 대한 쿠바의 우수하고 헌신적인 의료진들의 의료봉사 활동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제재는, 제재를 가하는 가해국 국민들의 입장에서나 제재를 당하는 피해국 국민들의 입장에서나 똑같이 생명과 건강, 민생에 파괴적이고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국가 간 효과적인 국제연대와 협력을 저해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한 의료붕괴와 경제 위기는 모든 국가가 직면한 상황이기에 어느 한 국가도 예외 없이 차별 없이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는데 동참할 수 있어야만 이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국제적 차원의 연대와 협력을 방해하여 코로나 19의 퇴치에 장애를 조성하는 것이 강대국 미국이 주도하는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제재인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인류의 대재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천부당만부당한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제재를 즉시 완전히 해제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불법적, 강압적, 일방적 경제제재는 지속되고 있고 이는, 코로나19 확산의 방지를 위한 세계적인 연대와 협력을 저해한다.  특히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가장 강력한 경제재재로써 극심한 고통을 가져단 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유지, 가중시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코로나19 방역에 협력할 의사를 표시하며 북미관계를 개선하려는 듯 한 의사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곧바로 지난 3월 25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논의하는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화상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G7 등 모든 나라가 계속 단합하여 북한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이어가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이어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월 9일 북은 물론 대북거래를 돕는 제3국의 금융기관에 세컨더리 보이콧, 즉 제3자 금융제재를 추가 적용하여 북의 국제 금융망 접근을 광범위하게 차단하는 내용이 포함된 강화된 대북제재 규정 개정안을 발표하는 등 북한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 유지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계적 인도주의의 위기 상황에서도 미국은 유감없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변함없이 내보이며 북한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방역 및 의료 활동을 방해하는 제재를 유지, 강화하며 인류의 대재앙 퇴치에 역행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속내를 알 수 있다. 이 코로나19의 세계적 위기 속에서 미국의 패권적 정책에 순종하지 않고 저항하는 개발도상국들이 방역에 실패하기를 바라며 의료시스템이 붕괴되고 경제가 붕괴되어 반미 성향의 정권이 붕괴되기를 조장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인류는 코로나19라는 공통의 적을 맞아 인류의 생명과 생존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건 투쟁을 진행 중이다. 이 순간에도 지금까지 행해온 패권적 제재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며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훼방을 놓고 있는 미국의 행태는 인류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0-04-16 | hrights | 조회: 1771 | 추천: 9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1. 도시  신석기 시대를 지나며 시작된 농경의 결과 인류는 더 많은 생존노동을 해야 했고, 체력이 약화되었다는 연구는 이제 학계에서 대체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 무렵 노동, 건강과 함께 주목을 받은 것이 전염병이었다. 농업은 어떤 한 곳의 땅에 씨를 뿌리고 거둘 때 노동력 투여가 집중되므로 인류는 자연스럽게 마을을 이루고 정착해서 살았다.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것, 그것은 병원균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했다. 몰려 사는 만큼, 전염병은 드문드문 유목하거나 사냥, 채집하는 사람들의 세계보다 농경사회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18~19세기 자본주의의 만연에 따라 사람들은 농지에서 뿌리가 뽑혀 도시로 나와 노동력을 팔았다. 자본-노동의 생산관계가 일반화 된 것이다. 이렇게 늘어난 도시는 세균에게 속수무책이었다. 현미경을 통해 병원균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에 대한 위생 관념과 조치가 생길 때까지 그러하였다. 침 뱉는 행위가 무례한 행동에서 더러운 행동으로 변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1918년경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때 뉴욕시에서는 유럽에서 오는 배를 검역하였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의 전차 탑승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뉴욕은 그 50년 전만해도 브룩클린을 비롯하여 전염병에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도살장이 많았던 시카고는 내장 등 도살 뒤에 버려진 동물들의 부속물이 떠다니며 썩어서 거품이 이는 강물 곁에 노동자의 거주지가 밀집해있었다. 그나마 식수가 없어 그 물이라도 마셔야 했다. 여전히 현대의 재해 피해는 계급, 계층과 상관이 높다.  과학의 발달은 전염병을 비롯한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를 어느 정도 통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코로나는 그 ‘어느 정도’라는 게 참 허망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통제할 수 없는 재난을 만났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1. 기근  코로나가 세계를 집어삼킬 기세를 보였을 때,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경신대기근이 떠올랐다. 경술년(1670, 현종11), 신해년(1671) 두 해에 걸친 혹심한 기근이라 이렇게 부른다. 지금은 기근이 농산물 다국적기업의 이윤 논리에 따라 저질러진 인재(人災)이지만, 당시 기근은 역시 자연재해였다. 기근은 영양 상태를 악화시켰고 역병(疫病)을 불러들였다.  조선시대에 기근은 흔하지는 않았더라도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조선 사람들은 16세기말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문명의 재해를 겪었다. 그 사이 광해군대 혼정(昏政)이 채 수습되지 못한 1626년(인조4)~1627년에 병정(丙丁) 대기근을 겪었다. 후금과 ‘형제의 맹’을 맺은 정묘호란이 바로 이 기근 와중에 닥쳤던 침략이었다. 효종 때도 1653년(효종4)~1654년 계갑(癸甲) 대기근이 있었는데, 봄에 동해가 얼고 여름에는 제주에서 기르던 말 900여 필이 얼어 죽는 참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병정, 계갑, 경신 식으로 두 해에 걸쳐 기근이 진행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한 해 농사를 망치면 이듬해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1670년(현종11)에는 새해 첫날부터 기상 이변이 있었고, 1월 내내 전국 각지에서 이변 보고가 이어졌다. 전라도, 경상도 거창과 동래, 경기도 통진 등 전국 각지에서 지진도 있었다. 역병도 발생했다. 2월 충청도에서 염병이 창궐해 80여 명이 죽었고, 윤2월 평안도에서는 1,300명이 감염되었으며, 3월 7일 경상도에 1,000명 이상이 감염되었다. 이 틈에 메뚜기 떼가 경기도, 함경도에 기승을 부렸고 딱정벌레들이 물밑으로 들어가 해를 끼쳤으며, 수많은 참새 떼 때문에 곡식은 물론 도토리와 밤도 열리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냉해에 대한 보고도 빠지지 않았다. 윤2월 26일, 서울에 때늦은 눈과 우박이 내렸다. 음력 윤2월이면 일러도 3월말, 대개 4월이다. 3월에는 경상도에도 새알만한 우박이 내렸고, 평안도에 서리가 내렸는데, 4월까지 서리 우박이 내려 곡식의 싹이 죽고 목화와 삼베가 모두 피해를 입었다. 이런 상황은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강원도를 가리지 않았다.  와중에서 가뭄이 계속되었다. 비가 너무 오지 않아 도저히 파종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이후 한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밀과 보리가 모두 말라 죽은 상태였다. 5월 말에 내린 비로 가뭄이 끝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홍수가 찾아왔다. 사진 출처 - EBS 1. 대응  재상급 인물들도 십여 명씩 죽어나갔다. 국방부장관 격인 병조판서 김좌명이 대표적인데, 이 사람은 대동법 확립에 큰 공을 세운 김육(金堉)의 장남이며, 동생이 숙종의 외할아버지 김우명이다. 김좌명의 후임으로 병조판서가 된 서필원도 몇 달 후에 목숨을 잃었다. 대사헌 장선징(張善徵)은 이렇게 상소를 올렸다.  서울 안팎에 굶어 죽은 시체가 도로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모처자가 서로 베고 깔고 함께 죽은 경우도 있고, 혹은 어미는 이미 죽고 아이가 그 곁에서 엎드려 그 젖을 만지며 빨다가 금방 따라 죽기도 합니다. 이렇게 울고불고 신음하는 소리에 지나가는 자도 흐느낍니다. 더욱이 전염병은 날로 치솟아 열풍이 불꽃을 일으키는 듯 한 기세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드문데, 걸렸다 하면 죽어서 곧 성 밖으로 버려집니다. (《현종개수실록》 12년 6월 4일)  서울 안팎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가족이 몰살되기도 하고, 어미가 죽은 줄 모르는 아이는 죽은 어미젖을 빨고 있는 상황이었다. 장선징은 흉년이 시작된 1671년 이전의 각종 부역 및 관청 대출미 미납 등의 항목을 일체 탕감하라고 건의하였다. 백성들이 어려울 때 나라에서 제일 먼저 해줄 일은 세금을 줄이거나 면제해주고, 군대를 포함한 신역 동원을 면제해주어 편안히 모여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조선 정부는 그렇게 했는데, 이를 두고 어떤 학자는 재난의 규모에 비하여 조선 정부의 대응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대기근 두 번째 해인 신해년(1671)에 대제학을 맡았던 김수항(金壽恒)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는 진휼을 맡았다. 봄에 기근이 크게 들자 사방의 굶주린 백성 수십 만 명이 한양으로 모여들었다. 김수항은 김좌명(金佐明 이때 역병으로 사망), 민정중(閔鼎重 현종의 사돈), 조복양(趙復陽)과 함께 진휼하는 일을 나누어 맡고 밤낮으로 쉴 틈 없이 직무를 보았다.  이 해 여름에 또 보리가 흉작이었고 여역(癘疫)이 크게 돌아 사망하는 백성이 더욱 많았는데도 끝내 도적이 되거나 유랑하여 흩어지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현종이 애를 쓴 덕도 있지만, 능력 있는 여러 신하가 좌우에서 부지런히 애쓴 공이기도 하다고 평가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안민(安民) 정책을 펴서 소농인 일반 백성들의 경제생활을 안정시킨 효과도 컸다.  이 점은 중요하다. 도적이 되고 싶은 백성, 유랑하고 싶은 백성은 아무도 없다. 편안히 가족과 모여서 살고 싶다. 이런 재해를 넘기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백성은 도적이 되지도 유랑을 하지도 않는다. 넘기는 방법은 나라 재정을 모두 털어서라도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다. 위정자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 책임감으로 구휼, 격리, 소개(疏開)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망이 없으면 백성은 달라진다. 죽던가 떠나고, 도둑이 되어 약탈한다. 살 수 있다는 전망을 주는 것, 그것이 관료, 정치가의 책임임을 적어도 현종 당시 김수항과 그의 동료들은 알고 있었다. 1. 선거  며칠 전 도쿄와 뉴욕에서 사재기로 상품진열대가 텅 빈 사진을 보았다. 저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약탈이 시작될 지도 모른다. 한국 시민들은 아직 사재기 조짐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차분하기까지 하다. 수구 언론이나 정치배들의 끈질겼던 험담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정부의 대응은 믿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몸이 유달리 약한 대구 시장 같은 사람이나, 종교적 신념과 의학적 처치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꽃놀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조급한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조선의 재난 대응과 지금의 방식이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진화론의 수준에서 변치 않은 것은 전염병 같은 자연재해에 맞서 대응하는 방안에는 왕도가 없다는 점이다. 책임감 있는 위정자들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시민, 인민들은 불안을 극복하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말이다.  불안은 재난의 크기와 별 상관이 없으며, 또 다 같이 당하면 덜 생긴다. 불안은 나만 버려질 수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 현대사회의 유난히 만성화된 불안, 공포는 19세기 산업화 이후 공동체의 도움과 보호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팔아야할 노동력 밖에 없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다시 도움과 보호가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두했고, 그 유력한 방안이 노동조합이고 복지정책이었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 땅의 시민들에게 하나의 지침을 주고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 않을 위정자를 뽑으라고, 노동과 복지가 공약에서 핵심인 위정자를 뽑으라고. 그리고 이 지침은 자본주의가 역사적 수명을 다할 때까지 유효할 것이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0-04-09 | hrights | 조회: 2166 | 추천: 19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북한은 ‘조선노동당’과 ‘공화국’의 창건 이후, 특히 김일성에 의한 유일 지배가 본격화된 이후, 기성 종교를 강력히 규제하고 종교 행위를 처벌했다. 1958년부터는 종교인(특히 기독교인) 색출과 탄압을 대대적으로 감행했다. 종교는 ‘지배계급이 인민을 착취하는 수단이자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도구’이며, 나아가 각자의 주체성을 말살시키는 ‘미신’이라고 간주하고서, 지속적인 반종교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이미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제도로서의 종교는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거의 사라졌다. ‘종교’에 해당하는 ‘교’라는 말을 그것도 사석에서 사용하는 정도로 변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예배’와 같은 공식적인 종교 의례는 물론 ‘신앙’, ‘하느님’, ‘하나님’과 같은 말도 거의 사라졌거나 아예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설령 알더라도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언어이다 보니 그에 대한 개념도 아주 막연해졌다. ‘신부’나 ‘목사’라는 말을 모르거나, 들어봤더라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목사’와 ‘스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종교적 경험’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른바 민간신앙 영역이 대표적이다. 북한에서 ‘미신’이라고 부르는 민간신앙도 억압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형법상의 강력한 처벌 대상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돈만 오가지 않으면 처벌까지는 받지 않았다. 종교적 표현의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은밀한 정도로는 전승되어왔다. 가령 조상 제사 분위기는 좀 더 분명하다. 북한에서도 돌아가신 분의 기일과 생일에 상차림을 한다. 조상을 잘 받들어야 복이 온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비록 신령, 영혼, 하느님과 같은 언어들은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적어도 5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용왕님, 터줏대감, 삼신할머니, 성황당과 같은 언어는 크게 의미화하지 않은 정도로 잔존하고 있다. 지옥, 천당과 같은 언어는 없지만, 황천길, 저승길 정도의 언어는 큰 의미 없이 전승되고 있다. 이러한 언어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북한에서도 오랜 민간신앙적 세계는 지속 전승 중인 것이다.  무엇보다 점보기가 성행하고 있다. 가령 1994년 김일성 사후 초유의 가뭄과 수해로 인한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 미신으로 여기던 각종 오랜 풍습이 다시 성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신격화한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그동안 억압되어 음지에 있던 민간신앙 혹은 토속신앙이 양지로 나오고 있다. 청소년에까지 부적, 점치기, 주패(화투나 트럼프)를 통한 신수 보기 등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 장마당이 등장하면서 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장사를 앞두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점부터 쳐본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한다. 탈북과 같은 ‘거사’를 앞둔 경우라면 점의 중요도와 빈도수는 훨씬 커진다. 거사를 감행할 날짜, 방향, 상황 등을 묻기도 한다. ‘직업적’ 점쟁이는 없고 ‘복채’와 같은 고유 용어도 없지만, 용하다고 소문난 이들은 동네마다 한두 명씩 있다. 전국적으로 수백 명은 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결혼, 장사 등 크고 작은 일들에 앞서서 점쟁이와 먼저 상의하고 결정하는 일이 흔하다. 손금, 관상, 사주 등을 주로 보며, 여기에는 보위부원도 예외가 아니다. 보위부도 이 사실을 알지만, 자신들도 점을 볼 뿐만 아니라, 점쟁이의 영험함으로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올까 봐 점술 행위를 눈감아주곤 한다. 주술적 정서가 제도적 관례보다 더 크게 작동하면서 드러내놓고 공론화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일들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점술, 사주, 팔자, 조상 숭배 등 그동안 ‘미신’처럼 여겨지던 것이 재등장하고 있는 것은 ‘고난의 행군’ 이후 경제적 위기 상황 하에서 은밀하게 전승되던 기층적 생활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당국에서 ‘미신행위 풍습 근절을 위한 비판 토론회’를 열기도 했는데, 이것은 강제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종교성 자체는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이런 현상에서 우리는 북한에 헛된 ‘미신’이 발흥하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정치적 억압으로도 막을 수 없는 민중의 원천적 종교성 혹은 심층적 차원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의 일방적 통제 시스템이 느슨해져가고 있는 증거로 삼을 수도 있겠고, 한반도 구성원들이 견지했던 오랜 종교적 정서는 정치적 억압만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는 증거로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소련이 해체된 이후 오랜 정교회 전통이 다시 부흥하고, 중국에서 유교를 도리어 국민 통합 정책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북한에서 민간신앙은 원칙적으로는 억압의 대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삶의 근원적 동력으로 작용하는 원초적 인간 현상이다. 무엇보다 민간신앙의 발흥 현상에서 북한 주민의 진정한 자발성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비판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민간신앙이 발흥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 주민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이다. 이러한 자발적 선택은 인간에 대한 완전한 통제란 있을 수 없으며, 북한 사회가 오랜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북한 민중의 선택이 남한 민중의 기층적 정서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체제와 제도의 통일도 사람의 문제이며, 그 핵심은 분단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정서에 대한 깊은 교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압과 감시 하에서도 자신의 필요와 형편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주체적 행동이다. 북한에서 진짜 주체가 시작되었다.
2020-04-01 | hrights | 조회: 1842 | 추천: 12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갱스터 무비의 고전 <대부> 시리즈부터 지난해 개봉한 <아이리시맨>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폭 영화에는 지극한 가족주의와 비정한 폭력의 세계가 공존한다.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던 깡패가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아빠가 되고,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차별한 복수의 화신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캐릭터가 동시에 시연하는 극단적인 심리와 행동에 관객들은 모순된 정서를 경험하지만, 위화감을 크게 느끼지는 않는다. 등장인물에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 모순된 정서가 지금 여기서는 ‘내로남불’이라는 진부한 조어로 불린다. 사실 대부분의 관객은 등장인물의 행동에서 모순이나 괴리를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내로남불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인간의 원형질과 관련이 있는, 존재의 숙명 같은 행동양식이기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고, 모든 인간과 인간이 만든 조직은 내로남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 세계의 부조리함은 제도와 시스템으로 줄일 수는 있지만 근절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제도가 상호 견제와 감시를 전제로 짜여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오늘 내로남불에도 질량의 차이가 있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질량의 눈금에 따라 사회적 처분과 평가가 합당하게 이뤄져야 이성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장모 사건의 패턴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가 연루된 것으로 보도된 네 가지 사건은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 모두 단독 사업이 아닌 ‘동업’이며, 동업자와 ‘반드시’ 송사가 생기고, 소송 결과 ‘장모만’ 처벌을 면한다는 것이다. 우연치고는 매우 확률이 높은 우연이다. 엄청난 자산가라고 알려진 윤 총장 부인과 장모의 재산이 예의 동업을 통해서 형성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동업자들이 감옥에 가는 등 만신창이가 되는 동안 윤 총장 식구와 재산은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윤석열과 조국의 내로남불을 직접 비교하는 게 가능하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아직 의혹 수준이고, 후자는 상당 부분 사실이 드러나 있다는 반론 말이다. 내가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은 지점이 바로 그 대목이다. 윤석열 검찰이 ‘아직 의혹 수준’에 불과했던 조국 일가의 스캔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윤석열 내로남불’의 핵심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비판의 대상을 법으로  윤석열 검찰은 법무부 장관 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수사에 뛰어들어 정치적 개입을 했고(국민의 선택권 방해), 사문서위조 공소시효 만료 직전 피의자 소환도 없이 전격 기소를 강행했으며(형사 절차 무시), 전국 70여 곳에 이르는 전방위 압수수색을 통해 한 가족을 탈탈 털었다(수사 비례성·상당성 원칙 위반). 이밖에 무리한 별건 수사와 무차별한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전 등 과도하다고 적시할 수 있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렇게 막대한 수사력을 쏟아 부었는데도 조 전 장관의 권력형 비리는 딱히 드러난 게 없다. 부부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자녀 교육에 이용한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었고, 지탄 받아 마땅했지만, 어디까지나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지 법으로 단죄할 대상은 아니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정도가 아니라, 꺼내지 말아야 할 칼을 꺼낸 것이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개 버릇 남 못 주는 검찰  이에 반해 윤석열 처가 의혹에 대한 검찰의 대응은 어떤가. 최근 상황만 보면, 의정부지검은 350억 원대 잔고증명서 위조 의혹 사건을 지난해 10월 넘겨받고도 뭉개고 있다가 언론보도가 나가자 뒤늦게 수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달 말로 알려진 공소시효가 지나면 ‘공소시효 도과로 공소권 없음’ 처리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잔고증명 위조에 윤 총장 부인 김건희(개명 전 김명신)씨가 직접 관여한 사실은 이미 재판을 통해 밝혀진 상태다. 같은 사문서위조 의혹 사건을 공소시효 직전 피의자 소환도 없이 전격 기소했던 검찰의 패기를 이번에도 볼 수 있을까. 검찰은 또 다른 사건인 서울 송파 스포츠센터 채권 사기 의혹 사건도 서울중앙지검에서 의정부지검으로 최근 이첩했다. 김기현 울산시장 관련 건은 울산에서 서울로 가져와서 청와대까지 압수수색 하더니, 윤 총장 가족이 연루된 사건은 수사 인력도 부족한 의정부에 내려 보냈다. 신물 나게 보아온 검찰의 제 식구 봐주기가 재연되는 것 같은 분위기다. 어떤 내로남불이 더 나쁜가  대충 둘 다 나쁘다는 양비론을 펼치거나, 엘리트들끼리의 정치적 다툼에 불과하며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비겁한 회피라고 생각한다. 질문을 바꿔보자.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검찰이 수사권을 발동해야 할 대상은 둘 중 어느 쪽인가.  만약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검사 사위의 권세를 이용한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전에는 정치권력 자체가 조폭이었고, 군부와 정보기관, 경찰과 검찰은 그 손발에 불과했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이던 시대가 가고, 법이 곧 주먹이 된 사회에서, 법을 집행하는 검찰이 법 위에 존재하게 됐다. 치외법권 지대가 된 검찰은 법을 어겨도 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피의자를 봐주는 대가로 성관계를 하고, 친구에게 수천억 원의 주식도 증여받고, 김광준 검사처럼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로부터 받은 돈으로 주식 투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경찰이 신청한 김광준 검사의 계좌추적 영장을 기각한 게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윤석열이다. 가장 심각한 내로남불 조직은 검찰이다. 검찰은 늘 정치를 해왔다  윤석열 총장 취임 이후 두드러진 현상은 검찰이 수사를 수단으로 정치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검찰 개혁 저지를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조국 수사 당시 검찰이 정치를 하고 있다고 어떤 정치인이 일갈했지만, 사실 검찰은 늘 정치를 해왔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정권(청와대 민정수석실)과 행동을 같이했기 때문에 검찰의 정치 행위가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 초기 수사를 유병언과 구원파 잡기로 변질시켜 청와대를 (물론 일시적이었지만) 구조 책임론에서 자유롭게 해줬고, ‘십상시 문건’이 폭로됐을 때는 문건 유출자 색출 수사로 방향을 틀어 국민의 관심을 문건 내용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이런 프레임 전환이 검찰의 주특기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혼미한 사이, 김학의라는 10년 묵은 검찰의 숙변을 해결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행(특수강간치상)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는 사실이 지난 3월 10일 보도된 것이다. 무혐의 결론은 지난 1월 이미 내려놓았다고 한다. 욕을 덜 먹을 수 있는 때를 기다린 것이다. 검찰이 뒤가 구리거나 뭔가 켕기는 사건을 비 오는 날 폐수 버리듯 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런 식의 여론 조작(이건 조작 축에도 끼지 못할 테지만)은 검찰로선 식은 죽 먹기다. 대검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이 밥 먹고 하는 일이 이런 식의 정무적 판단이다. 이들은 무엇이 검찰 조직에 유리한지, 어떻게 난관을 돌파할 것인지, 혹은 어떻게 프레임을 바꿀 것인지를 토론하고 실행하는 달인들이다. 지금 당장에라도 정치인 누구 하나 날리겠다고 마음먹으면 묵혀뒀던 파일 하나 꺼내 간단히 해치울 수 있다. 뉴스에 목마른 언론이 가세하면 정세나 여론 바꾸는 건 일도 아니다. 개혁 저항하는 검찰은 민주주의의 적  깡패에게 조직은 확장된 가족이다. 미국 갱들의 패밀리, 한국 조폭이 식구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이들은 같이 벌어 같이 먹고 사는 이익공동체이며, 함께 살고 함께 죽는 운명공동체다. 조폭들도 나름의 정의감과 사랑이 있지만, 선한 감정은 패밀리의 담장을 넘지 않는다.  개명한 한국 사회에서 조폭에 비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은 검찰이다. 전국적 조직을 갖고 있으며, 두목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전관예우라는 공통의 먹거리로 연결된 이익공동체이며,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되면 밥그릇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믿는 운명공동체다.  아직 검찰 개혁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검찰에 힘이 쏠린 이유 중 하나인 구속 위주의 사법 관행 혁파, ‘유전무죄’ 사법 불평등의 다른 이름인 전관예우 타파, 검찰 전관예우의 밑바탕인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기소 대배심 도입 등 사법 민주화, 피의자 권리의 대폭 강화 등 중대한 개혁 과제가 남아 있다. 검찰 개혁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과 동의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 저항하는 검찰은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와 총선으로 어지러운 시국에 말을 보태는 이유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03-25 | hrights | 조회: 10439 | 추천: 302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1. 스토우 부인이 쓴, 세 권의 책  고등학교 시절, 교회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교회였습니다. 중학교 동창의 ‘전도’에 감동받아 세례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적당히 즐거운 교회 생활이 1년 넘게 지속되던 어느 날, 새 목사님이 당회장으로 오셨습니다. 그전의 목사님은 연세가 많아 원로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새로 오신 목사님은 40대 중후반의 비교적 젊은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새 목사님은 곧 일요일 대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셨습니다.  제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링컨 대통령과 노예 해방 등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는 미국의 위대함 등등에 관한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씀 중에 스토우 부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스토우 부인이 말이에요, 책을 세 권 썼어요. 이런 건 적어둬야 해요. 알아두면 좋은 거니까. 그 책의 제목은 <엉클>이라는 책과, <톰스>라는 책 그리고 <캐빈>이라는 책입니다!”  그 설교를 들은 몇 주 후, 저는 교회를 그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출판 관련 일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출판된 책들 중 일부에는 영문을 한글로 표기할 때 단어 사이에 중간점을 찍기도 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목사님이 설교에 참고하신 책은 아마도 ‘엉클 • 톰스 • 캐빈’이라고 표기된 오래된 자료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책이란 무엇인가  십 수 년 전, 일본 도서관협회에서 격주로 발행하는 신간안내 자료를 뒤적이다가, 엉뚱하기 짝이 없는 책을 보았습니다. <집 안에서 코끼리를 길러 보자>쯤 되는 제목을 가진 책이었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작은 집을 짓고 사는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코끼리를 기를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니!  목차와 소개 글을 살펴보니 그 책의 내용은 정말 진지하게, 따라 하기만 하면 일반 가정집에서 코끼리를 기를 수 있는 실제 방법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코끼리를 기르기 위해서는 집 안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며, 코끼리의 습성은 이러저러하니까 어떻게 해주어야 하고, 먹이는 어떻게 구해 주어야 한다는 등등. 읽고 나면 코끼리의 생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동시에 정말 집 안에서 코끼리를 기를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 코끼리를 길러 보자>라는 책의 지은이는 실제 집에서 코끼리를 길러 보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책을 썼을까요? 저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마치 집에서 코끼리를 기르고 있는 상상을 하는 즐거움 혹은 자유로움, 그것이 지은이의 집필 의도였겠지요. 그 이후 출판 일을 하면서 저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과연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후, 문득 그 책이 궁금해서 일본 도서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애석하지만 당연하게(!) <집 안에서 코끼리를 길러 보자>는 많이 팔리지 않았으며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책이 되고 말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진 출처 - yes24 #3. 바이러스와 한 권의 책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그야말로 난리북새통입니다. 가끔 들러보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폭발할 지경이고 끊임없이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려댑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만나자는 사람이 거의 없고 전화조차 뜸해졌습니다. 가까운 지역도서관에서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오지 말라는 문자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니 정말 마땅히 할 일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스스로 게으름을 피우며 집에서 뒹굴 거릴 때는 좋았는데,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한다고 하니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어째서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의 정확한 실체가 파악되지 않았으니 여기저기 ‘썰’만 분분합니다. 가장 신난 것은 역시 좌우 양쪽의 애국자들과 언론들입니다. 잠깐 들여다보니 벌써 이쪽에서 죽일 놈과 저쪽에서 죽일 놈들을 지목하며 패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은 멍해지고 짜증이 쌓여갑니다. 그러다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답답한 제 가슴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책의 한 부분을 여기 옮겨 봅니다. ... 각자 자기가 처한 시대적 환경과 조건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나를 짓는 자유를 근본적으로 가로막지 못한다. (...) 나는 나를 짓는 주체면서 내가 짓는 객체다. 주체인 동시에 객체로서 하나인 나, 인간이 본디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외로운 존재인 것은 이 점에서 비롯된다. 자유롭기 때문에 외롭고, 외롭기 때문에 자유롭다. (...) 자기 내면에 이웃에 대한 사랑과 참여, 연대의 의지가 없고 자유의 조건인 외로움과 불안이 버거워지면 자유로부터 스스로 도피할 위험이 있다 ...  <결: 거칢에 대하여>(홍세화 지음, 한겨레출판)를 읽고 있습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놓치고 있었던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문득 사방이 고요해지는 느낌,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함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20-03-18 | hrights | 조회: 1533 | 추천: 15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보슬레~이인 노노사운드 이별 새드 부산 스테~셔어언 너도 굿바이 나도 굿바이 티어스 기적이 빵빵”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 국-콩(글리쉬)혼합 버전으로 신나게 울려 퍼진다. 선술집이 즐비한 어느 골목쯤 되겠다. 젓가락 장단이 경쾌허니 아싸아싸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한바탕 왁자지껄한 박수소리가 들리고 이내 잠잠하다. “아줌마 요기 고갈비 하나 더”를 외치는걸 보면 막걸리가 더 고픈 시간인 모양이다. 꽤나 거나한 목소리가 또 울린다 “연분홍 치이마아가 봄 빠람에에~ 휘나알 리드으~라 꽃이 피며언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이번엔 아예 합창이다. 노래가 끝나면 으레껏 누군가 술잔을 탁자에 “탁”하고 내려놓는 이가 있다 “아~ 씨* 이렇게 또 봄날이 가는 거여” 취한 탄식을 내뱉으면 또 누군가는 “억” 하고 받아 친다. “그렇다 아이가. 뭔 노래를 이따위로 만들어가 사람 속을 이래 뒤집노 말이다”. 음주 가무야 말로 인생 유랑자의 최고 덕목이라고 우겨대는 시 좀 쓰는 이의 넋두리가 뒤따른다. 노래 <봄날은 간다>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사랑하는 노래 1위라는 설문조사 소식을 흘려들은 적은 있다. 그 따위 시인들이라니. 배알도 없는 것들.  트로트의 원조는 엔까다. 演歌의 일본 말이다. 서양의 폭스트로트(fox trot)리듬을 개화기 일본에서 사랑노래로 변화시켰고 일제 강점기 반도에 들여왔다. 1920년대 이후 소위 대중가요라 할 만한 것들은 죄다 엔까였다. 사람들은 그 리듬을 일본식 발음으로는 도롯도. 조선말 식으로는 뽕짝이라 불렀다. 뽕짝은 “황성옛터를” 휘돌며 그리운 고향을 읊기도 하고 “눈물 젖은 두만강”을 건너며 인생의 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해방이후 적어도 60년대까지 뽕짝의 전성시대는 유효하다.  서민들의 애환과 설움을 가장 근접거리에서 표현한 장르라는 평을 하지만 서민들의 눈물이 울분이 되고 분노가 되어 이 구질구질한 세상 한번 바꿔보자는 식의 노래는 한곡도 없었다. 그런 선동 가요는 오히려 일제시대의 군국 가요로 한국전쟁 이후에는 반공 가요, 군가로 더 많이 제작 되었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혈서지원>, <결사대의 안해>. <목단강 편지> 따위의 일제 찬양 가요나 <전선야곡>, <전우야 잘자라>, <가거라 삼팔선> 같은 노래들이다. 근대 대중 예술의 초석이자 근간으로, 대한민국 대중 음악사의 뿌리로 칭송 받는 박시춘의 작품이다. 1급 친일 인사인 그는 다시 1급 반공인사가 되어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1982년엔 대중음악인 최초로 금관 문화훈장도 받았다. 시인들이 너도 나도 주정거리 삼아 읊어댄다는 <봄날은 간다>도 박시춘 작곡이다.  미야코부시는 일본 엔까의 장음계이다. 도, 레, 미, 솔, 라로 구성된다. 잘 모르시겠걸랑 당신이 아시는 뽕짝 중에서 살랑살랑 가볍고 신나는 노래를 생각하면 된다. 그게 미야코부시다.  요나누키는 일본 엔까의 단음계이다. 라, 시, 도, 미, 파로 구성된다. 역시 잘 모르시겠걸랑 뽕짝 중에 가슴을 후벼 파는 애절함이 있는 노래 생각하면 된다. 그게 요나누키다. 그래도 잘 모르시겠걸랑 아직도 추앙받는 대통령 박정희 작사, 작곡의 노래를 생각하면 확실하다. 새벽종을 울렸다고 매일같이 틀어댔던 새마을 노래는 전형적인 미야코부시 음계이다.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땅을 지켜왔네”로 시작하는 <나의 조국>은 전형적인 요나누키 음계이다.  이미자, 하춘화 선생, 남진, 나훈아 선생 이후 전두환 시절 쇼 2000 같은 프로그램의 퇴폐적인 춤사위와 영11같은 젊은이들의 허슬. 대학가요제 등에 밀린 트로트는 대부분 tv를 떠나 밤무대로 자리를 옮겼었다. 가요무대를 비롯해 그나마 몇 개 없었던 트로트 방송은 몇몇의 트로트 스타들이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위상이 안타까웠는지는 모르지만 방송은 트로트장르를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의 이야기다. 사진 출처 - YTN 트로트가 신이 났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 그리 울었던가 싶게 요즘은 그야말로 트로트 대세다. 하루 종일 트로트만 틀어대는 케이블채널이 몇 개며 공중파나 종편 모두 트로트 아니면 노래가 없다는 듯 비스무레한 프로그램들로 도배를 하니 그게 몇 개나 되는지 헤아리기도 힘들다. 눈만 뜨면 트로트고 귀만 열면 트로트다. 가히 트로트 열풍이라 할만하다. 최애하는 개그맨 유재석씨도 류산슬이 되어 트로트 열풍에 직접 칼을 뽑고 나서는 장수가 되어있을 정도다. 그런 류의 프로그램에서 그 옛날 뽕짝의 전사들은 “전통가요”의 수호자가 되었다. 서민들의 설운 삶을 대변하는 존재가 되어 전설, 레전드라 불리우기도하고 국민 음악가가 되기도 한다. 이 열풍을 주도한 곳은 친일과 반공의 최대 수혜자인 조선일보다.  tv조선 “뽕 따러 가세”의 진행자 송가인 씨는 최초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 트롯”의 우승자다. 어머니는 씻김굿의 전수자시고 본인 또한 대학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그가 지켜냈던 판소리는 조선 후기 신재효라는 걸출한 소리꾼에 의해 꽃을 피웠다가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 의해 숨죽였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인간문화재라는 박제화된 시스템 속에서도 꿈틀거림을 잃지 않았던 민중 문화의 보고(寶庫)다. 한국음악(흔히 국악이라 부르는)을 가장 쇠퇴시켰던 일제 강점기 내선일체(内鮮一体)의 시기에 주된 문화적인 무기가 엔까였다. 그 시대 엔까(演歌)라는 칼에 맞아 치명상을 입은 한국음악(국악)은 지금도 병중이다. 엔까가 트로트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 칼은 명기(名器)가 되어 지금도 우리들 가슴을 헤집어 놓고 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벛꽃 잎이”를 흥얼거리면서 환장할 만큼 아름다운 꽃길을 걷다가도 왜 하필 사꾸라 인가를 물어보는 게 나의 버릇이다. 하고 많은 작자들 중에 왜 하필 친일파의 선두주자가 만든 노래를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가를 묻는 게 나의 상식이다. 그러나 신나는 트로트를 아무데서나 틀어놓는 노인에게 “왜 하필 트로트입니까”를 묻는다면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내가 좋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만 찾아서 들으며 눈물 흘쩍거리는 이에게 “왜 하필 트로트 입니까”를 묻는다면 다시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애절하잖아요. 대중의 정서를 이렇게 잘 파고드는 노래가 또 있을까요? 당신도 트로트에 도전해 보세요. 요즘 대세잖아요. 혹시 아나요, 노래 하나 뜰지?”.  내가 뽕짝은 어렸을 때부터 곧잘 했다는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 나의 의견을 내 보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터이다.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뻔 할 것이기에.  “요즘 세상에 그런 얘기하면 욕먹어요. 무슨 고래적 스토리를 지금에 와서 쯧쯧. 그리고 당신은 좀 과격한 경향이 있어.”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20-03-11 | hrights | 조회: 2890 | 추천: 52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혈의 누'라는 영화를 꽤 좋아한다. 사극 느낌이 나는 설정 속에 노무현 정부 당시 한창 논쟁이던 과거사청산 문제에 대한 은유를 잔뜩 집어넣었는데 생각할 거리가 꽤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결말 즈음해서 마을 사람들이 '이게 다 너 때문이야'를 외치며 불행한 사태의 원흉에게 개떼처럼 몰려들던 장면이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마음에 평안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내 눈엔 말 그대로 개탄과 혐오 그 자체였을 뿐이다.  책임을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 에게 떠넘기는 건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들의 오래된 행태다. 갓난아기가 아프다고 애꿎은 책상 모서리를 "찌" 때리는 시늉하는 것부터 시작해 죄 없는 어린 양을 잡아 죽이거나, 심지어 다른 부족을 공격해 희생제물 용도로 부족민들을 납치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특히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는 요즘 같은 재난과 위기 국면에선 이런 못된 버릇이 제대로 도진다.  코로나19 이후 중국인 입국금지 요구가 그칠 줄 모른다. 사실 새누리당의 후신인 어떤 야당만 그런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감염병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가 있었다. 가령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3일 입장문에서 “더 늦기 전에 위험지역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 전방위적인 감염원 차단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2월 하순 31번 환자가 나오고 확진자가 급증한 시점부터는 입국금지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는 쪽으로 대체로 의견이 정리됐다.  물론 의학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중국인 입국금지 같은 이른바 ‘봉쇄전략’이 방역의 1단계로서 의미가 없는건 아니다. 인천국제공항과 국제여객선터미널을 폐쇄하고 모든 국민을 자가격리시켰다면 지역사회 감염을 막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게다가 중국인 입국자를 전면통제해도 중국에서 귀국하는 내국인을 막을 수는 없다. 국가의 존재이유까지 부정하는 조치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코로나19는 중국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주요 원인이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조차 방역대책의 초점을 확산차단(봉쇄전략)에서 조기발견과 조기치료, 인명피해 최소화(완화전략)로 바꿨으니 중국인 입국금지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다문화도시인 경기도 안산시에선 여지껏 확진자가 한 명도 안 나왔다. 국내 확진자 가운데 중국국적인 사람들의 동선을 유심히 보면 대림동은 없다.  좀 더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보자. 조선시대 말기 강력한 쇄국정책을 폈을 때도 콜레라는 국내로 유입됐다. 콜레라가 조선에 처음 들어온 건 1821년(순조 21년)이었다. 원래 인도 풍토병이었다가 1817년 콜카타에서 본격 발병한 콜레라는 조선에서 100만 명 단위의 인명피해를 입혔다. 냉정히 말하면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콜레라가 들어온게 아니다. 국가의 역량과 책임성이 극도로 떨어져 제대로 대응을 못했을 뿐이다.  취재 때문에 인터뷰했던 전문가 가운데 이 문제에 관해 가장 분명한 입장을 밝힌 김창보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는 이렇게 꼬집었다. “입국제한은 북한이나 몽골처럼 방역에 자신 없는 국가가 취하는 수단이다. 외국인이 들어오는 속에서도 코로나19를 막는 게 일 잘하는 정부다. 음주운전을 막는다고 도로를 봉쇄하는 게 음주단속을 잘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는 똑같은 논리가 우리를 입국 금지시키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이 우려는 1주일도 안돼 현실이 됐다. 이제 우리는 한국인 입국금지를 걱정하고 있다.  중국인 입국금지를 외치는 분들은 결국 대한민국을 무균실로 만들자고 외치는 꼴이다. 이건 중환자들에게 쓰는 처방일 뿐이다. 그럼 왜 자꾸 이런 허깨비 같은 얘기가 퍼지는 걸까. 먼저, 선거전략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정부를 비난하는 것 자체가 목표겠다. 이런 분들은 북한을 모범사례로 들며 따라해야 한다고 한다. 평소 종북척결에 나라의 운명이 걸린 것처럼 핏대를 올리던 분들이 종북발언을 서슴지 않는걸 보니 국가보안법 전문가는 다 어디 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봉쇄가 좋다는 분들이 신천지 발본색원은 얘기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기 짝이 없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좀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들'에 대한 경계감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세계사에는 '그들'이 가져온 재앙을 비난하고 '그들'의 음모를 폭로한다는 각종 헛소리가 차고도 넘친다. 1918년 처음 발병한 '스페인 독감'은 원산지였던 미국에서 “독일인 때문에 생겼다”, “동유럽 이민자 때문에 생겼다”, “흑인 때문”이라는 등 각종 소수자 혐오가 종합선물세트로 등장했던 걸로 유명하다. 일제 강점기 관동대지진 뒤엔 '이게 다 조선인들 때문'이란 유언비어가 퍼졌고 결국 집단학살극으로 번졌다. 19세기 콜레라가 한창일 당시 청나라에선 반체제 성향 신흥종교인 백련교도들이 우물에 독약을 뿌렸다는 식으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고 한다.  '이게 다 저들 때문'으로 시작하는 각종 음모론에서 참 재미있는 건, 음모를 꾸미는 주체는 언제나 '그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밀조직'이라는 프리메이슨의 세계정복 음모부터, 유대인의 비밀세계정부, 외계인이 지구인을 납치해 생체실험을 한다는 등등. 구글지도에서 프리메이슨을 검색하면 전 세계 지부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확인할 수 있다거나 외계인 생체실험 피해자는 죄다 미국인이고 UFO는 미국에서만 집중적으로 출몰한다는 등 합리적 의심이 끼어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중국 어느 연구소에서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다 코로나19가 시작됐다는 얘기도 새로울 게 하나 없는 똑같은 레퍼토리일 뿐이다.  이게 다 ㅇㅇ 때문이다라고 책임을 떠넘기긴 쉽다. 10여 년 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은 국민생활체육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입만 열면 '이게 다 미제의 침략책동'이란다. 일부 할배들은 틈만 나면 '이게 다 종북좌파동성애자들 때문'이라고 외친다. 일부 극렬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게 다 적폐기득권세력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그런 짓 한다고 달라질 것도 좋아질 것도 없다는 게 아닐까. 차라리 누구라도 31번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조금은 더 겸손해지고, '그들'에게 되도 않는 비난을 퍼부을 시간에 손이나 더 씻자.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03-04 | hrights | 조회: 1861 | 추천: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