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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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기린이 온다’라는 일본 드라마는 전국시대였던 16세기 중반에 처음 전래된 조총에 대한 꽤 흥미로운 시대상을 보여준다. 비싸고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전쟁으로 밥 먹고 사는 무사들은 “너구리 사냥할 때는 쓸모가 있으려나” 하며 조총에 시큰둥하다. 하지만 불과 한세대도 되기 전에 조총은 일본에서 전쟁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명작 ‘가케무샤’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지휘하는 조총부대가 일제사격으로 적군을 궤멸시켜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배경이 된 나가시노 전투가 1575년 일이었다. 임진왜란 즈음에 이르면 일본군이 보유한 조총이 전 세계 조총의 절반가량이 됐을 정도라고 한다. 당시 일본군은 군사기술 혁신의 최첨단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아깝지 않을 듯하다.  정말 충격적인 건 그다음이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에도막부가 들어선 뒤 조총이라는 첨단무기는 조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개항과 근대화를 두고 혼란이 극심했던 19세기 주력 무기는 칼이었다. ‘바람의 검심’ 주인공들은 죄다 칼싸움만 한다. ‘레이더스’에서 칼 들고 덤비는 상대방을 권총 한 방으로 끝내버리는 다소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이 들어설 틈이 없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을까. 총이란 손가락 움직일 힘만 있어도 쓸 수 있다. 그 말은 비천한 머슴이나 노예라도 고귀한 금수저 사무라이를 죽이는데 1초도 안 걸린다는 의미도 된다. 기술혁신이 기존 사회질서를 흔든다. 일본 에도막부는 기술발달보다 그냥 기득권 질서 수호를 선택해버렸다. ‘가케무샤’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던 농민 출신 조총병들이 설 자리는 더이상 없다. 그 조총병들이 몰살시킨게 지배계급이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18세기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추신구라’에서 사무라이 46명은 자신들이 모시던 영주의 복수를 위해 총이 아니라 칼을 들었다. ‘가케무샤’와 ‘추신구라’를 비교해보면 어느 영화가 더 앞선 시대를 다룬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나는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것처럼 흥분하는 분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기술진보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건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다. <전쟁교본>이라는 시집을 통해 전쟁과 파시즘으로 인한 절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던 브레히트는 1930년 무렵 당시 새로 등장한 신기술을 혁명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고 한다. 그 신기술만 있으면 전 세계 각지의 프롤레타리아들에게 혁명의 대의를 전파할 수 있으니 혁명이 당장 눈앞에 온 것처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33년 브레히트는 그 신기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망명을 해야 했다. 이미 독일에선 정권을 장악한 나치가 그 신기술을 활용해 파시즘의 대의를 세계 각지에 퍼뜨리고 있었다. 그 신기술은 라디오였다. 사진 출처 - pixabay  1990년대 초 이현세 작가가 그린 공상과학 만화를 떠올릴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잿빛 디스토피아를 다룬 그 만화에서 거대한 기득권층에 맞선 쿠데타를 일으키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딱 48시간만 버티면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기득권층이 은폐한 진실을 모조리 폭로해서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쎄 세상이 그리 단순하면 얼마나 좋을까.  쿠데타가 실패한 뒤 저항을 꿈꾸는 이들이 모이는 해방구는, 인터넷이고 가상공간이었다. 만화 속 가상공간에선 아바타로 자신을 표현하며 토론하고 거짓이 아닌 진실된 정보를 공유하고 자유롭게 발언한다. 요즘 떠오르는 메타버스와 무척이나 닮았다. 2021년 현재 인터넷이야말로 저항과 해방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10년쯤 전에는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나 UCC가 민주주의의 미래인양 떠드는 분들이 넘쳐났었다. 그리고 나서 1년도 안돼 우리가 목격한건 국정원 정규직들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선거운동하는 꼬라지였다.  기술? 중요하다. 기술혁신? 말해 뭐하랴. 기술은 전쟁의 문법을 바꾸고, 권력의 작동방식을 변화시키고 의사소통의 문법을 전복한다. 하지만 기술이 요술 램프는 아니다. 최첨단 기술 역시 현실을 구성하는 여러 공식·비공식 제도라는 제약 속에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기술에 취하다 보면 감염내과 전문의가 부족한 현실을 ‘감염내과 전문의를 확충하겠다’가 아니라 ‘감염내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전문의가 없는 병원과 디지털로 협진하겠다’는 한국판 뉴딜이라는 블랙코미디가 튀어나온다.  기후위기가 화두다. 탄소 중립이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자꾸 기술발전을 통한 해법에 쏠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술발전 이전에 삶의 방식과 제도를 바꾸는 게 먼저 아닐까. 기술이 발전한들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탄소 중립이 가당키나 할까.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1-10-21 | hrights | 조회: 1262 | 추천: 5
최낙영/인권연대 운영위원 #1. 사오정과 오징어 사오정이 편의점에 들어갔다 사오정 : 아줌마, 햄버거 하나하고 콜라 주세요. 아줌마 : 햄버거 없어. 사오정 : 그러면 햄버거하고 사이다 주세요. 아줌마 : 햄버거가 없다니까! 사오정 : 아, 그러면 햄버거하고 생수 주세요. 아줌마 : 이 사람이 정말, 햄버거 없다니까 자꾸 왜 그래? 사오정 : 이 가게에는 없는 게 왜 그렇게 많아요. 그럼 햄버거만 주세요.  오랫동안 적막강산 같았던 사무실에 어느 새부터인가 지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한, 소위 ‘투명인간’ 지위를 득한 사람들입니다.  며칠 전, 옛 동료 두 사람이 점심을 같이하자고 왔습니다. 식사 후 차를 한잔하면서 그동안 어떻게들 지냈나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서로 별 볼일 없이 지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요즘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여야 대선 후보들의 이야기가 주가 되었습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은 A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어느 당의 대선 주자들을 욕하기 시작했고, 평소에도 가급적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던 B는 A를 무시하고 ‘오징어 게임’ 분석에 열을 올렸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A의 대선정국 열변-잠시 휴식-B의 오징어 게임에 대한 분석-잠시 휴식-또다시 A의 대선정국-휴식-B의 오징어게 임…. 식의 이야기가 경쟁하듯 이어지다가 결국 B가 A의 이야기에 말려들었습니다. 이제 대화는 A의 정치적 견해-B의 정치적 견해-A의 정치-B의 정치-A의...-B의... 식으로 이어지다가 논리적으로 약간 밀리기 시작한 A가 B에게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야 이, 사오정 같은 B놈아!” B도 똑같이 응수했습니다. “사오정은 네가 사오정이지, A놈아!” 그렇게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어 가고 있을 때, 제가 킬킬대며 한마디를 거들었습니다. “너희 두 놈들이나, 대선 경쟁하는 그놈들이나 다 사오정들인 건 마찬가지!” 그러자 A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네 놈은 간신 같은 사오정!” B 역시 기가 막힌다는 듯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너 잘났다. 너는 사오정 말고 오징어 해라, 오징어!” #2. 오징어의 손바닥  두 사오정이 돌아가고 나서 퇴근 무렵, 또 다른 사오정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서울 근교의 개인 작업실에서 서각을 하는 그는 하루의 작업을 마친 후 작업실 근처 술집에서 한잔하고 퇴근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알고 있는 사오정입니다. 이런저런 문자로 이야기가 오가던 중 그가 이만 퇴근해야겠다며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제 정리하고 오랜만에 집에서 가볍게 한잔하려고 함.’ 집에서 술상을 보겠다는 그에게 저는 부럽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부럽네. 나는 마나님 눈치 보느라 말도 못 꺼냄. ㅜㅜ’ 얼마 후, 그는 집 식탁에 먹음직스러운 안주와 술병이 올려진 사진과 함께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부러우면 손바닥에 酒라고 써서 슬그머니 아내에게 보여줘 보든가. ㅎㅎ’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에 재직 중입니다.
2021-10-06 | hrights | 조회: 1284 | 추천: 0
오인영/인권연대 운영위원  ‘1일 1논란’이라는 조어가 나올 정도로 언행(言行)이 문제인 사람이 있다. 고개를 연신 좌우로 돌리는 행동은 버릇이거니 하고 넘어간다고 척하니 다리를 벌리고 앉은 자세는 그냥 봐주기 어렵다.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쩍벌남’ 자세 그대로다. 국민의 선택(/심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공중 앞에서 몸가짐을 단정히 하거나 행동거지를 조심할 법도 한데, 내 사전에 그런 법 따위는 없다는 식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민폐가 될 수 있는 행동을 공개석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 안하무인. 사석에서 우연히라도 상종하고 싶지 않다.  언행 가운데 볼썽사납기로는 ‘언(言)’이 더하다.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주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쉴 수도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를 막는다”, “사람이 이렇게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 가지곤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이제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 등등, 그가 내뱉은 해괴한 주장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가 9월 13일 경상북도 소재 국립안동대에서 대학생들을 만나서 했다는, ‘인문학이라는 것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좀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천학비재(淺學菲材)이지만 그래도 근 30년 인문학 서당에서 풍월을 읊으며 살아온 처지에서 ‘인문학 부수론’을 그냥 실언이나 망언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찜찜했다. 그래서 일단 발언의 전체 맥락을 살펴보려고 당시 영상을 찾아봤다.  문제의 발언은, 대학의 존재 이유가 “실제 기업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라는 주장 다음에 나온다. “인문학의 중요성이라는 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립서비스’(왜냐면,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까!)를 한 뒤 “그러나 인문학을, 여러분이 무슨 지금 세상에서는 공학이라든가 이런 자연과학 분야가 취업하기 좋고 일자리를 찾는 데 굉장히 필요한데, 기업이 그걸 원하니까, 그러면 인문학이라는 거는, 그런 걸 공부하면서 병행해도 되는 것이지, 그렇게 많은 학생을 갖다가, 4년 뭐 대학원 과정까지 그렇게, 그건 소수면 되는 거지 그럴 필요가 과연 있느냐, 그래서 그런, 기업 필요에 따라서 학과의 재조정도 있어야 되는데, 그것도 현실적으로 교육 당국이 추진하려고 그러면 반발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생각의 두서도, 마침표도 없는 그의 말을 분절하면 이렇다. 1) 대학의 역할은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에 유용한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다. 2) 기업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3) 인문학은 취업에 유용한 공부를 하다가 짬이 날 때 부차적으로 하면 된다. 4) 그러므로 인문학 공부라는 건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할 필요가 없다. 5) 인문학은 소수의 전공자만으로도 충분하다. 6) 기존의 인문 분야 학과들은 기업의 요구에 맞춰 통폐합해야 한다. 7) 그러나 내부 반발로 그렇지 못하고 있다. 아, 이렇게 쪼개놓고 보니 그의 ‘인문학 부수론’ 발언을 접했을 때의 찜찜함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겠다. 그가 인문학을 슬렁슬렁해도 되는 취미-교양이나 어쩌다 짬 나면 접하는 특강쯤으로 경시하는 이유는,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라고 영역하고도 무탈하게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가까이서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9년 동안 인문학 관련 책 따위와는 아예 담을 쌓고 고시 낭인으로 지낸 세월 때문도 아니었겠다. 인문학을 오로지 경제적 유용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비단 인문학만이 아니다. 대학과 학문 일반의 존재 이유까지도 “기업의 필요”에서 찾는다.  이런 사람에게, 이런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의 범주가 얼마나 넓은지 잘 알려주면 그네들 생각이 바뀔까? 인문학(Humanities)은 종교, 문학, 예술, 철학, 역사학, 고고학, 고전학, 인류학 등의 분야로 구성된다.(법학도 광의의 인문학으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이토록 광활한 인문학의 세계를 많은 사람이 따로, 더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것은 인문학에 무지한 사람의 생각인 동시에 편견을 지닌 사람의 생각이다. 무지하면,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바로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범하기 쉽다. 자기기만과 편견은 아예 알지 못하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마녀사냥은 마녀로 인해 생겨난 사건이 아니라 마녀를 식별할 줄 안다고 과신한 자들이 저지른 범죄였다.  기만이나 착각과 같은 잘못된 생각-앎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한 대표적인 인문학의 철인(哲人)이 ‘테스 형’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통해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것은 ‘없는 지식 채우기’가 아니라 ‘잘못된 지식 비우기’였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이 실제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칠 때, 비로소 거짓된 앎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런 자유를 경험한 사람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이런 사실을 깨닫도록 도왔다. 그렇다! 올바른 생각(앎-지식)은 ‘깨달은 사람’이 안겨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철부지(哲不知)임을 깨닫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런 깨달음의 과정을 교습(敎習)하는 게 인문학인데, 이런 게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다가 잠시 들려서 엿본다고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 경제적 효용가치로 보면 인문학은 정치적 출세, 경제적 성공,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은 바로 그 쓸모없음을 써먹는다. 고(故) 김현 선생의 사유에 기생하여 말하자면, 통속적으로 유용한 것들-돈, 권력, 힘 등은 인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인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세계에는 인간을 억누르는 것이 있고, 그것들은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적 유용성의 눈으로만 사람과 사물과 세계를 재단할 때의 위험성을 일깨워준다. 물화(物化)된 의식에 사로잡힌 시장 전체주의자(market totalitarian)의 무지와 편견을 깨닫게 해준다. 남이야 피눈물을 흘리건 말건 끝없이 권세와 부를 쫓는 삶이 과연 가치 있는 삶일 수 있는지 자문하게 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21-09-29 | hrights | 조회: 1302 | 추천: 5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바야흐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를 대대적으로 추진한 적이 있었다. 집권 여당의 과반수 의석 달성이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하마터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뻔했다며 못내 그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지금도 부지기수다. 아마도 당시의 여당이 소위 사문화된 국가보안법을 국회에서 쉽게 폐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였기 때문이리라. 국가보안법이 작동하는 분단 냉전체제의 한국 사회의 현실을 몰라서라기보다는, 강고한 국가보안법 체제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한 나머지 하루라도 빨리 해방되고 싶은 열망이 낳은 착각 때문이다.  지금도 한국 사회는 민주화가 되었고 북보다 우월한 체제를 가진 체제 우위의 사회이며 이제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사문화되었고, 일부 친북세력이 존재하지만 더 이상 한국 사회가 이들에게 위협받을 일이 없다며 포용력을 발휘하여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아마도 과거의 한국 사회는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야만적 파시즘 사회였을지라도 정권교체를 겪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국가보안법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국가보안법에 무방비로 신음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몰라서라기보다는 강고한 국가보안법 지배체제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한 나머지 국가보안법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기를 회피하며 자기합리화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된 법이고 국회의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 쉽게 폐지할 수 있는 법이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지금도 부지기수다. 매우 잘못된 인식이다.  국가보안법은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의 주된 장애물이기에 국가보안법 폐지는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동시에 해결되어야 할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금기와 억압 아래 숨죽이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이래 국가보안법에 맞선 민중의 거세찬 저항이 야만적 국가폭력에 의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탄압당하며 민중의 저항력은 철저히 거세당한 야만적 파시즘 사회로 전락하였다.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하던 중앙정보부가 사라지고 국가정보원이 합신센터에서 감금 상태의 탈북자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1950년대 진보당 조봉암 선생이 간첩 조작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통한의 역사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총선에서 13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원내 3당인 통합진보당이 단지 통일을 지향하며 외세의 내정간섭에 반대하고 반미를 주장하며 연공 연북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종북몰이를 당하며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었고,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이석기 의원은 8년째 감옥에 있다.  국가보안법을 산생시킨 친미사대 동족 대결의 분단 냉전체제의 가공할 위력이 그대로 압도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빨갱이 사냥’, ‘색깔론’, ‘종북몰이’가 시도 때도 없이 자행되며 한국 사회를 숨죽이게 만드는 금기와 억압의 본질이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국 민중들은 극심한 반북 대결에 내몰리며 1950년 한국전쟁 이래 주한미군의 주둔으로 인하여 괴뢰의 적화 무력통일로부터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지킬 수 있었다는 허구적 인식에 세뇌당해 왔고 여전히 그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군사적,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악마와 같은 사회주의 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졌고, 굶주림과 1인 독재의 지옥 같은 북한체제가 아닌 자유와 인권이 넘치고 경제적으로도 세계 7대 선진국으로 성장한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는 허구의 체제 우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과 같은 주장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괴뢰의 적화통일 야욕을 숨긴 공산주의자들의 위장 평화공세에 불과하고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그 어떠한 개인과 단체도 한국 사회에서 죽임을 당해왔고 여전히 사회적으로 생매장될 수 있다.  야만적 공포사회다. 국가보안법에 무방비 사회다. 친미반북 사고로 세뇌당한 한국 사회. 국가보안법에 맞서 국가보안법의 만행을 제압할 민중의 힘을 키워야 한다. 스스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역량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다. 한국 민중 스스로 반미연북을 금기하고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에 맞서 거세된 저항력을 회복하고 단결해 싸울 때 국가보안법은 한반도 분단 냉전체제의 청산과정에서 폐지될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투쟁이고, 미국의 패권과 내정간섭에서 벗어나 한반도 평화협정을 쟁취하고 미군을 철수시키는 반전 평화투쟁이다.  현재 국회를 향한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촉구 운동은 한국 민중의 분단 냉전체제 청산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과정의 한 국면에서 국회의 역할을 촉구하며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동북아시아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연대투쟁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핵심 투쟁이다.  한국 민중은 국가보안법에 무방비로 병들어 신음하는 야만적 파시즘 사회의 본질을 직시하고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간첩 소동과 종북몰이에 맞서 그 근간이 되는 국가보안법 체제를 완전히 허무는 그날까지 중도반단 없는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을 단결된 힘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1-09-15 | hrights | 조회: 1780 | 추천: 2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몇 년 전 학생들과 대만 답사를 갔다. 고궁박물관도 가고 국립정치대에서 강의도 들었는데, 한 학생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다. 그 학생은 수업시간에 너무 조용하고 간단하게 묻는 말에도 대답을 못 해서 어디가 아픈지 의심될 정도로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답사에서 그가 벗들 사이에서 웃고 이야기 나누면서 참으로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보았던 느낌과 너무 달랐다. 그 학생이 늦게 일어난 친구들의 아침밥을 자상하게 챙겨주는 모습도 보았다.  역시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 또는 나와 같이 있는 상황은 그의 자상한 행동이나 따뜻한 눈길을 만들어내기에 적합하지 못했던 셈이다. 내 수업이 그의 활기를 드러내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 사태를 역사학도답게 접근해보자. 1.  어떤 관계냐에 따라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은 다르다. 이런 현상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는 건 우리에게 익숙하다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는 건 사회의 산물이고 역사적이라는 뜻이다. 흔히 누구더러 왜 앞뒤가 다르냐는 핀잔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앞뒤가 다른 것이 꼭 인간성 문제, 도덕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선생님이나 교수, 군대 상관이나 상급자에게 행동을 조심하려고 애를 썼고, 말도 조절하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네가? 행여!’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이다. 누구나 행동 특히 말씨에는 관계의 압박이 배게 마련이다. 쭈삣거림에서 존경심까지 질적 편차는 크겠지만, 압박과 조절은 상존한다. “연기(演技) 없는 행동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자발적인 예의와 강요된 연기를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도 사실이다. 학생들이 선물로 준 롤페이퍼. 이 말을 다 믿어도 될까^^ 사진 출처 - 필자  어떤 학자는 앞에서 드러나게 하는 행동을 공개된 대본(臺本), 드러나지 않는 속내를 숨겨진 대본이라고 부른다. 회식자리에서 사장에게 술 따르며 사원이 한 말과, 자기들끼리 불만을 토로하는 행위 사이의 괴리, 그것이다. 통상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권력 차이가 크면 클수록, 또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될수록 피해자 집단의 공개 대본은 정형화되고 의례화된 모습을 띠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권력이 위협적일수록 가면은 두꺼워지고 연기는 빛을 발한다. 1.  ①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십수 년 동안에 가뭄과 장마의 피해와 바람과 벼락, 그리고 서리와 우박의 재앙과 별들의 이변과 기후의 이상과 요사스러운 인물들이 해마다 겹쳐서 나타나 천이나 백으로 헤아릴 정도입니다. 그러한 이변을 당할 때마다 성상은 놀라셔서 죄책하고 직언을 구하셨으며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근심하시는 말씀을 한해에도 여러 차례 내리셨으니, 이미 두려워하시는 뜻과 애통해하시는 말씀이 지극하였습니다.  ② 옛말에 ‘사람은 속일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만, 신은 ‘하늘이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사람도 속일 수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근래 애절한 하교가 내렸을 적에 안팎에서 이를 예사롭게 보고 반응이 없는 것은 전하에게 애당초 성심(誠心)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심정이 이와 같으니 하늘의 뜻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단순히 말과 글로 하늘에 대응하고 사람을 감동시키려고 하지 마시고, 근본의 절실한 처지에 깊이 유념하십시오.(숙종실록 12년 9월 13일)  ①은 숙종 초반에 가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가 무척 많았는데, 숙종이 늘 자책하면서 반성하는 태도가 지극하였다고 짐짓 치켜 주는 말을 하였다. 반면 ②는 숙종의 하교, 즉 신하나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 성의가 없었기 때문에 하늘이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이 감동하지 않았으니 사람이 감동하겠냐고 거의 면박을 주고 있다.  만일 ①과 ②가 별개의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나는 쉽게 ①은 공개 대본, ②는 숨겨진 대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①과 ②는 같은 사람이 같은 상소에서 한 말이었다. 요즘 감사원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사헌부 장관을 맡고 있던 김창협(金昌協)의 상소였다. ①은 ②를 위해 한 말이다. 그는 아예 숨겨진 대본을 공개해버린 것이다. 사이다 발언은 듣는 사람들에게 시원하지만, 공포를 내재하는 경우가 많다. 김창엽도 그랬을 것이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공포를 넘어서며 의연함을 보여준다. 1.  왕정이란, 이렇게 한 나라의 조정을 무대로 펼쳐지는 정치제도이다. 한편 권력의 세습이란 점에서 가족이 왕정이고, 요즘 한국엔 재벌이 왕정을 구현하고 있다. 왕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봐야(의식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 절대성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던 부모에 비견된다. 부모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내 부모는 평생 죽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뒤로 없던 적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국왕이 백성의 어버이로 비유되는 건 웃을 일이 아니다.  또한 국왕은 권력과 기득권에서 최상위 포식자이기도 하다. 그가 10년을 재위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장년의 국왕은 거의 절대자가 된다. 2, 30년이 지나면 새로 들어온 신하는 다 아들 같다. 숙종이나 영조처럼 4, 50년을 재위하면 손자뻘이 된다. 그래서 임금이자 스승이라는 군사(君師)란 말이 생긴다. 사상과 정치권력을 한꺼번에 잡는 것. 내가 ‘학자 군주 정조’를 위험하게 보는 이유다. 실제로 그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시험문제를 내며 가르쳤다. 그렇지 않아도 군주 앞에서 떨고 있는 유생들에게 지적 우위까지 과시하면서. 1.  김창협이 상소를 올렸던 숙종 12년(1686) 9월, 숙종은 연인 장씨(후일의 장희빈)를 위해 몰래 별당을 지어주었다. 사헌부에서 중지할 것을 청했지만, 숙종은 잘못 전해 들은 것이라고 둘러대며 공사를 중지하지 않았다. 이어 12월에는 장씨를 종4품 숙원(淑媛)으로 삼았다. 궁녀로 들어와 왕자나 공주를 낳지도 않은 사람이 숙원이 되는 것은 특별한 조치였다. 또 며칠 뒤 장씨의 궁방인 숙원방(淑媛房)에 노비 100명을 내려주었다. 위법이었다.  숙종의 행동은 스스로 했던 말과 달랐다. 이럴 수 있는 게 왕정이다. 연인에 대한 숙종의 과도한 집착을 둘러싸고 신하들과 숙종 사이에 긴장이 흐르기 시작한 초엽, 대사헌에서 성균관 대사성으로 옮겼던 김창협이 말했다.  신은 근래 실제로 별당을 지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만 하시고는 안으로 급하지 않은 공사를 일으키고 밖으로 신하의 말을 막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또 남을 속이는 일입니다.(숙종실록 12년 12월 10일)  그의 발언은 국왕 숙종을 흔들었을 것이다. 숙종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냥 ‘억측이 지나치다’고만 답변했다. 실록에서 김창협의 말을 읽었을 때, 이 ‘숨겨진 대본’이 햇볕으로 나오는 통쾌한 순간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런 말을 위언(危言)이라고 한다. 위험한 말이라는 뜻인데, 어떤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비판을 말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나라에 도리나 상식이 통하면 말과 행실을 높게 하고, 나라에 도리가 도리나 상식이 없을 때에는 행실은 높게 하되 말은 겸손하게 하여야 한다[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라고 한 데서 나왔다.  자존심은 강하나 성숙하지 못하여 꽁했던 숙종의 화는 3년 뒤에 터졌다. 장희빈의 아들을 책봉하면서 인현왕후를 폐위한 뒤, 김수항 등을 유배 보내 사사하고 숱한 인재를 귀양 보내거나 고문해서 죽였던 기사사화(1689)였다. 사관은 이렇게 적었다.  영돈녕부사 김수항이 사약을 받고 죽은 것을 두고 혹자는 그의 아들 김창협의 직언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창협이 상소를 올려 후궁을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매우 절실하였다. 이 때문에 임금의 마음에 불평이 생겨 그의 아비에게 화풀이하게 된 것이라고, 숨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  숨어서 말하는 말, ’숨겨진 대본‘이다. 숨겨진 대본이 없을 수 없으나 가능한 적은 게 열린사회, 편안한 관계일 것이다. 나는 다행히 대단한 권력을 가지지 않았으니 불편할 일은 적다. 하지만 나이도 그렇고 가르치는 처지에 있으면서 내가 조장한 숨겨진 대본은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운이 좋아 당신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도 받아주시던 어른들과 선생님들 밑에서 자라고 배웠거늘 말이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1-09-01 | hrights | 조회: 1908 | 추천: 18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낳은 역사적 현상이다. 정치적 쟁점을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과 사법부에 떠넘겨온 과정에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검찰권력이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의 정치화라는 불행한 결말로 이어졌다. 레거시가 망해버린 보수세력은 정권교체 의지와 더불어 정치보복(이명박·박근혜처럼 문재인도 구속해달라!)의 염원을 담아 윤석열에 매달리고 있다. 각종 사회적 현안과 갈등 해결의 비전도 없고, 낡은 인식과 잦은 말실수에도 지지율이 버티는 배경이다. 윤석열 현상은 정치 불신과 혐오라는 반정치적 성향을 바탕으로 보복의 악순환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고 퇴행적이다. 정치검사의 시대에서 검사정치의 시대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대선 후보로 밀어 올린 계기는 정치권력에 대한 두 번의 항명이었다. 언뜻 보기에 비슷한 사건인 듯하지만 둘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박근혜 정부 때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검찰 수뇌부가 방해한 것이 문제였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수사를 시작한 게 문제였다. 하나는 수사를 못 하게 방해한 것이고, 하나는 수사를 무리하게 착수한 것이다. 특히 조국 일가 수사는 국민의 선택권과 대통령의 인사권에 검찰이 개입한 사건이다. 검찰이 수사를 무기로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권위주의 정부는 정치검사 전성시대였다. 정치권력은 검찰의 조직과 이익을 보호해주고 검찰은 정권이 원하는 수사만 했다. 윤석열 본인도 정치검사였다. 이명박의 비비케이(BBK) 관련 면죄부에 일조한 뒤 출세가도를 걸었다. 윤석열이 이명박 때가 제일 쿨했다고 한 것은 그래서다. 하지만 윤석열은 박근혜 정부 들어 정치검사의 길을 거부했다.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검찰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윤석열의 항명은 검사정치 개막의 전주곡이었다. 윤석열의 편파적 정의감  물론 검찰출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이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군대가 정치를 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을 자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야당에 입당함으로써 총장 임기 중 벌인 일련의 수사가 반정부적 활동의 일환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이를 우려한 검찰 안팎의 많은 인사가 반대했으나 그는 결국 자기 욕심을 이기지 못했다. 검찰은 윤석열이 당선돼도 문제, 안돼도 문제일 것이다. 윤석열이 당선된다면 정적을 처단하는 칼이 될 것이고(촛불항쟁 이후 국민적 염원이었던 적폐청산과 비교하지 마시길!), 당선되지 못한다면 수사-기소 분리는 물론이고, 해체에 가까운 대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정의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정의감이 이기적이고 편파적으로 작동해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윤석열의 세계는 피아로 나뉜다. 나를 기준으로 동심원을 넓히듯 내 식구, 내 조직(검찰), 내 계급(또는 진영)의 눈으로 선악을 판단한다. 윤석열의 이기주의에는 ‘내로남불’이라는 낡은 조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퇴행성과 잔혹성이 있다. 아무리 보수주의가 인간의 이기심에 터잡은 이데올로기라 할지라도 윤석열처럼 역지사지가 통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는 이명박 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편협한 자기확신으로 세상을 일도양단해서 자기 나름의 정의를 실행한 역사가 끔찍한 결말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윤석열과 검찰의 이기주의  윤석열의 이기주의는 ‘제식구 봐주기’라고 비판받는 검찰의 조직이기주의와 뿌리를 공유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윤석열은 검찰이라는 조직의 이기주의를 만들어온 핵심 당사자이자 수혜자로서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윤석열 자신이 책임자였을 때 언론에 보도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제식구 봐주기 사례만 해도 부지기수다. 한동훈의 검언유착 사건 감찰을 막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라임펀드 술접대 검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99만원 불기소 세트’, 스폰서 검사로 유명했던 김광준 검사에 대한 영장 반려 등 얼른 생각나는 것만 열거해도 이 정도다. 유검무죄 무검유죄인 셈이다. 그중 백미는 동생처럼 아끼는 윤대진의 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 혐의 사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최근 <시사인>의 고제규 기자가 쓴 기사 ‘윤석열의 아킬레스건, 윤우진 전성시대’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358에 정리가 잘 돼 있다) 윤우진은 해외로 도피했다가 국내로 송환됐지만 검찰의 무혐의 처분 덕분에 명예롭게 공직을 마친 뒤 잘살고 있다. 내로남불은 검찰의 학습된 정체성  윤석열의 박애주의가 검찰 후배만이 아니라 후배의 식구한테까지 적용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검찰 전관비리(예우)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식구끼리 서로 봐주고 챙겨주는 문화는 퇴직 이후에도 이어지며, 변호사로 변신한 선배가 수임한 사건은 내 식구의 사건이 된다. 현직일 때 선배 사건을 잘 챙겨줘야 내가 퇴직했을 때 후배도 내 사건을 챙겨준다. 검찰은 대를 이어 먹고 사는 밥그릇 공동체다. 검찰의 내로남불은 오랜 기간 학습된 조직적 정체성이다.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전근대적 규정 아래 강요된 조폭적 질서에서 윤석열처럼 내 식구를 보호하고 챙기는 데 능력을 발휘하는 검사들이 조직의 인정을 받고 출세했다. 임은정 검사처럼 주류 논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애’ 취급받으며 왕따당하는 조직이 검찰이다. 그 주류 중의 주류가 윤석열이다.  검사의 수사와 기소 업무는 판사의 재판 업무와 달라서 일정한 양형 기준도 매뉴얼도 없다. 말 그대로 검사의 양심과 검찰조직의 상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 대중이 보기에 명백히 죄가 있는데도 검찰이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하면 반박이 불가능하다. 죄에 비해 과도한 강제수사를 벌이거나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해도 제어할 방법이 없다. (법무부가 제도를 바꾼다는 데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자의성이 쌓인 결과 지금 우리나라 검찰과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밑바닥이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모범택시>와 <빈센조>에서 주인공이 검찰을 믿지 못하고, 직접 나서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은 이런 국민의 인식을 반영하는 설정이다. 김건희 모녀의 패밀리 비즈니스에 관한 의혹  윤석열 처가와 관련한 의혹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에는 검찰을 비롯한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장모 최은순씨가 연루된 소송에서는 최씨가 모종의 특혜를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쌍방으로 송사가 붙으면 백전백승의 승률을 보였고, 공동범죄(ex: 요양병원 건강보험금 편취 사건)일 경우엔 혼자만 처벌을 면했다. 그 숱한 소송에도 불구하고 홀로 건재하던 최씨가 건강보험금 편취 사건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 이후 법정구속 됐다. 그동안 누군가 최씨를 비호하고 있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대택씨를 비롯한 소송 당사자들은 양재택과 윤석열이라는 두 명의 검사가 뒷배 노릇을 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양재택 전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와 김건희씨의 특별한 관계는 가족이나 주변 친인척들의 육성으로 확인된다. 함께 해외여행을 간 것이나 양 검사 쪽에 큰돈이 건네진 사실도 확인된 상태다. 양 검사와 김씨의 불륜 의혹은 단순한 사생활이 아니라 검사의 권력형 비리 혐의와 관련이 있는 핵심 사안으로서 그 실체가 남김없이 밝혀져야 마땅하다. 공권력을 사적으로 부려 사익을 취했다면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범죄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장차 퍼스트레이디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할 공적 의제라고 생각한다. 이기주의자 윤석열의 예상된 반응  <뉴스타파> http://newstapa.org/article/_qx4L와 <뉴스버스>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180 등의 취재에 따르면, 김건희씨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달라고(상대방은 이를 위증교사라고 주장한다) 증인에게 1억 원을 건네려고 하는 등 어머니의 사업에 꽤 깊은 관여를 했다고 한다. 이른바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에서도 김건희씨 이름이 등장한다. 그런데 역시 윤석열은 예상대로 아무것도 몰랐다는 태도다. 장모 관련 의혹들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처음 알았다고 한다. 내 식구 챙기기의 달인답다.  만약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전에 부인 정경심씨의 ‘회원유지(member Yuji)’ 논문이 발견됐다면, 이력서에서 한림성심대를 한림대로 표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민정수석 재직 시절 부인 소유의 회사에 대기업들이 줄줄이 협찬을 했다면(코바나컨텐츠 협찬) 어떻게 됐을까? 주가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면(도이치모터스) 지금처럼 언론이 조용할까? 한동훈의 표현처럼 “일개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을 뽑는 선거다. 나는 이 거대한 침묵이 의아할 따름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1-08-26 | hrights | 조회: 2532 | 추천: 27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한민국 헌법에는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민주공화국’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두 표현이 등장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조 1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한다/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다.”(전문, 4조) 전자는 한국의 정치적 정체성 규정이고, 후자는 그 정체성의 구현 자세이다. 이 둘은 대립하는 언어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주권자가 되어 자신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선출된 자와 국민 모두 동일한 법적 통제를 받으며 국민이 스스로를 지배하는 정치형태이다. 국민이든 선출된 정치인이든 원칙적으로 동일한 법적 통제 아래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자유와 평등을 해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지닌다. 그래서 독재에 의한 억압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선택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결합해 ‘자유민주주의’라는 복합어도 생겨났다.  자유민주주의라지만 개인의 자유가 무한히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흔히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북한식 사회주의에 반대하고, 자유를 부각시키며 신자유주의적 자유 경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도 결국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을 국민에게 두면서, 국민주권을 위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적 통제 장치를 두고 있는 정치 체제이다.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는 방임이 아니고 가치 중립적이지도 않다. 자유민주주의도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에 의해 제한되는 민주주의이다. 자유 지상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라고 해도 상관없을 그런 민주주의이다. (이효원, 『평화와 법』, 137-139)  이것 딱히 새로운 해석이나 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도자 백범 김구도 진작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국가 생활을 하는 인류에게 무조건의 자유는 없다. 왜 그런고 하면, 국가란 일종의 규범의 속박이기 때문이다. 국가 생활을 하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법이다. 개인의 생활이 국법에 속박되는 것은 자유 있는 나라나 자유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느 일개인, 또는 일계급에서 온다.”(김구, 양윤모 옮김, 『백범일지』, 더스토리, 498쪽)  모든 국민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지만,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제한적이나마 법적 통제 하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도 민주공화적 질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둘은 순환 관계에 있는, 사실상 동의어다. 자유민주주의든 민주공화국이든 ‘민주’에서 만나 상호 순환하는 가치들이다. 이러한 공통의 민주 영역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구체화하는 근간이다.  그 공통 지점은 상생(相生) 적이어야 한다. 누가 누구를 죽이는 방식은 민주주의라고 말하기 힘들다. 양자의 상위에 있으면서 양자를 살려주고 포섭하는 더 보편의 영역을 합의해가는 일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지속적인 대화로 양자 긍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상위의 가치를 합의해내야 한다. 단순한 상대주의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다. 충돌하는 지점을 포섭하면서 공통의 가치로 상승시켜주는 상위 혹은 심층적 가치 지향적인 행위이다. 상위의 상생적 가치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지난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일종의 ‘메타 정치’이다. 가능한 모두를 살리는 상위의 가치에 입각해 합의점을 확보할 줄 아는 행위가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역량을 보여준다.  백범은 1947년도에 이런 비유를 남긴 바 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애쓰는 자유가 아니다.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백범일지』, 505쪽) 사진 출처 - 구글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란 각자도생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전체 상생을 위한 자유다. 저만의 눈요기를 위해 꽃을 꺾지 않고 모두를 위해 꽃을 심을 자유이다. 더 큰 자유를 위한 자기 조절과 제한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는 그런 자유(여야 한)다. 헌법적 통제조차 각자도생의 자유 경쟁으로 내모는 협의의 자유가 아니다.  자기중심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충돌하는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갈등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서로의 입장을 긍정하며 대화에 임해야 한다. 이 대화는 고민 없는 무조건적인 승인이 아닌, 더 넓은 상생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지난한 가치 지향적 행위이다. 하위의 대립적 범주들을 포섭하는 상생적 가치를 합의해내고 그 길로 수렴시켜야 한다.  우파 민족주의자였던 백범이 좌파 민족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던 김원봉과도 손잡았던 것은 같은 민족의 이름으로 모든 이가 함께 사는 해방 세상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것은 더 큰 자유를 위한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좌·우가 합작’하면서 비로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통합정부의 기초를 다졌다. 자기만을 위해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가 아니다. 자유는 스스로를 제한하면서 서로를 살리고자 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자유민주주라지만 사회민주주의와 대립해야 할 이유도 없다. 자유도 모두를 위해 꽃을 심는 그런 자유이기 때문이다. 자유 지상주의는 결국 자신의 자유도 침식시킨다. 심지어 법학을 공부했다면서 자유라는 말을 앞세워 더 큰 자유를 억압하며 결국 각자도생의 길로 내모는 얄팍한 정치인의 행동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2021-07-28 | hrights | 조회: 1616 | 추천: 11
임아연/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구 17만 명이 살고 있는 충남 당진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위치해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송전선로를 타고 서울과 수도권 등 대도시로 보내진다. 이를 위한 고압송전탑이 526기가 설치돼 있고, 15만4000V(154kV), 34만5000(345kV), 76만5000(765kV) 등 고압의 전기를 전선을 통해 흘려보내는 송전선로의 길이가 무려 199km에 달한다.  세 가지 종류의 고압 송전선로가 모두 지나는 석문면 교로리에서는 발전소가 들어선 이후 최근 30년 동안 암환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해왔다. 대규모 변전소가 있어 송전선로가 거미줄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는 정미면 사관리에서도 주민들의 암 발생이 증가했고, 가축이 기형인 새끼를 낳거나 유산하는 피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어디에서 비롯된 문제인지 밝혀내지 않았다. 발전소와 한전 모두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고압송전선로 아래에서 형광등을 들고 서 있기만 해도 불이 켜지는 현상이 여러 차례 뉴스를 통해 보도됐고,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전자파를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역주민들은 전자레인지 속에 사는 것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2013년 무렵 밀양에서 송전선로 반대 투쟁이 전국적인 이슈가 됐던 당시에 당진에서도 주민들의 송전선로 반대 투쟁이 있었고, 그 지난한 싸움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석문면 교로리의 고압 송전선로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7월 12일, 신평면을 지나는 송전선로 구간의 마지막 송전탑이 건설되는 현장에서 공사 강행을 반대하던 우강면 주민 6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신평면 마지막 구간인 신당리에 송전탑이 건설되면 곧이어 우강지역으로 송전선로가 이어져 내려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송전선로를 지중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강지역 주민들이 소들섬에 철탑을 꽂는 가공송전선로(철탑을 이용해 공중으로 연결한 송전선로)를 반대하는 이유는 밀양이나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자파로 인한 주민 건강에 대한 염려, 지가 하락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등도 포함되지만, 무엇보다도 소들섬을 지키기 위해서다.  소들섬은 삽교천 하구에 위치한 5만 평 정도 되는 작은 섬이다. 유속의 흐름과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삽교천 하구에 자연스럽게 모래가 쌓이면서 생긴 하중도다.  오랜 세월 동안 이름도 없어 ‘무명섬’으로 불리다가 송전철탑이 섬에 꽂힐 위기에 놓이면서 주민들은 지난 2016년에 토론회를 열고 ‘소들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강지역의 너른 평야를 예로부터 조상들은 소들강문 또는 소들평야라고 불렀는데,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들섬은 지역주민들의 오랜 삶터였다. 삽교호방조제가 막히기 전만 해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어서 그야말로 황금어장이었다. 썰물 때는 소들섬까지 이어지는 갯벌이 드러나 이곳에서 각종 조개와 민물장어 등이 잡혔다. 삽교호방조제가 건설된 이후에는 최근 몇 년 전까지 농민들이 소들섬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이제 호수가 된 이곳 주변에는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찾아온 낚시꾼과 캠핑족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가을이면 우거진 갈대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겨울이면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가 군무를 추는 곳이다.  생태적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높은 이곳에 철탑을 꽂겠다는 한전은 두어 달 뒤 수확을 앞둔 벼를 굴삭기로 깔아뭉개고 공사를 강행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주민들이 맨몸으로 굴삭기를 막아섰지만, 경찰에서는 업무방해라며 주민들을 끌어내 연행했다. 주민들은 물이 첨벙대는 논에 빠져 홀딱 젖은 채로 사지가 붙들린 채 질질 끌려 나왔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 농민은 윗옷이 가슴까지 올라가 신체 일부가 노출되기도 했다. 한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던 평범한 농민들이 순식간에 악성 시위꾼, 범법자가 되어 경찰에 끌려갔다.  그리고 해당 뉴스를 전한 어느 기사에 “그냥 돈 더 달라고 하는 것”, “보상금 더 받으려고 그러는 것”, “사람 몇 명 안 사는 동네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지중화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는 댓글이 달렸다.  해당 댓글을 단 사람들은 전기가 어디에서 생산돼서, 어디를 거쳐, 자신이 사는 곳까지 와서, 자신이 편리하게 전기를 쓰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감수돼야 하는지 아마도 모를 것이다.  당진은 소비 대비 전기 생산량이 500% 이상이다. 당진에서 생산해 당진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불과 1/5도 되지 않는다. 당진지역에서 생산하는 전기 중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서 도시민들의 삶을 밝히고 있다.  작은 시골 지역엔 몇 사람 살지 않으니까 해당 주민들은 국가를 위해, 또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는 절대다수의 소비자인 서울과 수도권, 대도시 주민들을 위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전기는 당진시민들의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적힌 어느 현수막의 문구가 지역주민들의 피눈물 맺힌 절규라는 것을 도시민들은 알고 있을까.
2021-07-20 | hrights | 조회: 1428 | 추천: 10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학창시절, 나로선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직업이 2개 있었다. 판사와 목사다. 둘 다 다른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일을 한다. 누군가의 죄를 묻고 단죄하고 교화시키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뭐라고 사람을 치유하고 생명의 길로 인도한단 말인가. 더구나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고? 엄청난 사명감과 소명의식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두 직업의 분들을 경외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치를 하겠다 나선다면 좀 생각이 달라진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숙고하겠다”며 임기 6개월을 남겨두고 사표를 냈다. 엄격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사정기관의 수장이 본분을 저버렸다는 비난이 일었고 대통령도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사퇴 전부터 대선후보로 거론됐고 그 자체로서 중립성이 무너진 거나 다름없으니 ‘감사원장 수행이 부적절하다’는 그의 말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궁금한 건, 어떤 지점에서 최 전 원장이 직접 정치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감사원장으로 지명되었을 때, 사법연수원 시절 몸이 불편한 동료를 업어 등원시켰다거나 두 아들을 입양하는 등의 인간적 면모로 대중에 알려졌지만, 그는 판사 출신으로 감사원장을 지낸 것 외에 다른 정치적 경력이랄 건 없었고 굳이 정치판에 나설 이유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최 전 원장의 존재감이 드러난 건 월성원전 1호기 감사 때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립각을 세웠을 때다. 감사원 내부의 반발도 있었고 정부 부처의 비협조도 강했다. 최 전 원장은 ‘감사원장이 되고 이렇게 저항이 심한 것은 처음 봤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소신이 벽에 부딪히면 보통 끝까지 버티거나 미련 없이 물러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판을 갈아엎겠다는 결심까지 한 것 같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의 집권 연장을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문제의식과도 닿아 보인다. 여하튼 검찰총장에 이어 감사원장까지 임명권자에게 등을 돌리고 야권의 대선후보로 출마하는 어색한, 정권으로선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헌법기관과 권력기관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이란 단어는 그 의미를 갖지 못한 지 오래다. 사법부는 권위주의 군사정권 아래에선 권력의 시녀로 불렸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엔 정권과 거래하는 사법농단이 일어났다. 지금도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란 단어는 심하게 말하면 조직 이기주의와 보신주의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최재형 원장더러 당신만은 끝까지 임기를 지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라 말하는 건 코미디에 가깝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선거에 나설 수 있다. 정치가 정치인의 전유물도 아니다. 판검사 출신도 당연히 할 수 있다. 부족한 정치 경험이야 과외도 받고 대권 수업을 하면 된다. 머리 좋은 분들이니 습득도 빠를 것이다. 주위에 돕겠다는 인재들도 줄을 설 것이다. 여기에 강력한 정치적 동기까지 있으니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원장이 대통령에 도전 못 할 이유는 없다. 야당 후보로 나서든 여당 후보로 나서든 따질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왜 대통령을 하겠다는 건지,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법관, 법조인은 평생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 원칙과 질서,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이를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소명의식도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원장도 이런 법과 양심의 발로에서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대단히 소중하고 값진 문제의식이지만 나는 그 출발점이 위태로워 보인다. 법과 양심, 원칙은 가치로선 소중하지만 그걸 적용할 때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원칙과 법과 상식, 공정, 정의가 얼마나 공허하고 내용이 없는 단어인가. 이 단어들이 의미를 갖고 가치를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토론과 숙고와 합의와 절충과 양보와 이해와 에너지가 필요한가. 그런 노력을 생략한 채 단기속성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면 말리고 싶다. 집권자가 이런 가치를 섣불리 들이대면서 권력을 휘두르는 순간 민주주의는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두 법조인이 정치를 하려는 이유를 안티테제가 아닌 자신만의 비전과 생각을 좀 더 고민하고 다듬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그랜토리노’가 생각난다. 한국전쟁 참전의 상처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고집불통의 노인 월트에게 새파랗게 젊은 신부가 찾아와 아내의 유언이라며 고해성사를 하라고 설득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주인공에게 애송이 신부의 설교는 가당치도 않았다. 이 옹고집 노인의 마음을 연 것은 사명감과 소명으로 충만한 신부의 설교가 아니라 평소에는 안중에도 없던 아시아 소수 민족 타오 남매의 삶과 고통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었다. 어려움에 빠진 타오 남매를 돕고 그들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월트는 자신의 무시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과 타오 남매를 돕는 젊은 신부를 다시 보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을 이웃 남매를 위해 내놓는 월트의 용기와 희생으로 이 영화는 끝난다.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개입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행동의 이유가 된다. 말씀만으로는 이 세상을 구할 수도 없고 한 인간의 마음을 열 수도 없다. 정치나 권력은 타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니만큼 그 힘을 가지고 싶은 이들은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개입의 책임 그리고 행동의 이유를 스스로 명백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21-06-30 | hrights | 조회: 2187 | 추천: 16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이를 먹는다는 건 뭔가 덜 행복해지고 더 기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말처럼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이가 들수록 더 고집스러워지고 바뀐 현실에 덜 귀 기울이는 이를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늙은이는 곧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도 옛날 논농사 짓던 시절에나 통하던 얘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자주 든다. 오늘 만난 한 지인한테서 “아버지와 사이가 꽤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이유는 “원래부터 가부장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나라에는 ‘어른’이라고 할만한 분들이 많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인다. 문익환, 리영희, 김대중 같은 이들은 더이상 없다. 종족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영훈은 말할 것도 없고 김종인 같은 이들도 능력 있는 건 알겠는데 존경심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한편에선 사회원로라는 말 자체도 인플레이션이다. ‘이코노미조선’이 올해 신년기획으로 사회원로 7명의 조언을 들었다는데 등장인물들이 총리나 장관 등 한 자리씩 차지하며 잘나갔던 분들인 건 알겠는데 나이 많은 것 말고 원로라고 할 수 있는지는 도대체 모르겠다. 물론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처럼 특별교부세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물건인지 장관 자리를 걸고 국민들에게 알려주신 게 업적이라면 업적인 분도 있겠다.  “나 때는 말이야”는 말은 농담이나 단순한 경험담으로는 들어줄 수 있을지 몰라도 조금만 궁서체 느낌이 나는 순간 듣는 것 자체가 곤욕이다. 50~60년대생은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려고 해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고, 게다가 극장 구경도 제대로 못 해본 사람이 태반이었던 후진국에서 자랐다. 반대로 80~90년대생은 성장기에도 선진국 문턱이었고 지금은 말 그대로 선진국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는 건 평생 벼를 키운 중국인 농부와 평생 말을 키운 몽골인 유목민만큼이나 아득하게 먼 느낌일 것이다. 하긴 1970년대에는 공무원들이 필리핀으로 해외 우수사례 견학을 갔고 2021년에는 해외 각지에 있는 공무원들이 한국으로 견학을 오는 마당이니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대화를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신기한 해외여행 얘기도 아닌 바에야 ‘라떼’ 시리즈를 교훈으로 쓰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일 테니까.  그렇다고 나이 든 사람은 그냥 조용히 입 닥치고 지낼 일도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가 될 수도 있겠다. 연륜은 언제나 힘이 있다. 통찰력과 선견지명으로 오래 잘 묵힌 김치로 끓인 김치찌개만큼이나 사람을 잡아끄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나 때는 말이야’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보여주는 방대한 데이터 저장소 같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가 내 부실한 뇌세포와 실시간으로 동기화되는 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영화 ‘인턴’은 그런 모습을 꽤나 실감 나게 묘사했던 걸로 기억한다. 전화번호부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70세 노인이 하필이면 그 전화번호부 회사가 있던 사무실에 입주한 온라인 여성 의류 판매 기업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남들이 노트북을 켜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일할 때 007가방에서 전자계산기 같은 오래된 물건을 꺼낸다. 주인공 벤이 ‘나때는 말이야’라면서 정장과 가방 얘길 했다면 회사 직원들은 그저 70년을 살았고 이제 자기들 눈앞에서 빨리 사라져주면 좋은 사람으로 여겼을 것 같다. 하지만 벤이 풍부한 경험과 연륜으로 동료들과 어울리고 헌신적이고도 사려깊은 자세로 경영자의 신뢰를 얻자 그의 오래된 물건들은 ‘클래식하다’는 소리를 듣고 그의 정장 복장은 믿음직한 사람의 표식처럼 비친다. ‘경험이란 결코 늙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요새 젊은것들’ 소리가 조선시대와 고대 그리스, 심지어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적혀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실 세상 모든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특별하게 느끼고, 윗세대와는 다른 좀 더 진화한 생명체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특히나 ‘저런 꼰대와 우린 다르다’는, 구별을 짓고 싶은 마음은 이러저러한 세대론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게다가 나이가 곧 계급이고 신분인 한국 문화에선 나이로 사람들을 구별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기도 하겠다.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이광수도 공자왈 맹자왈 하던 윗세대와 신학문을 배운 자기 세대는 질적으로 다른 ‘세대’라고 강조했다고 하고, 해방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심지어 지금 40대도 한때는 ‘새 세대’라며 언론의 주목을 한껏 받았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자신들이야말로 ‘낀 세대’이고 그 때문에 윗세대보다 손해를 더 본다고 인식하는 것도 오랜 역사가 있다. 1993년 한겨레, 1995년 동아일보, 1997년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30대를 ‘감각적인 신세대와 옛 세대 사이에 낀, 활자와 비디오 사이에 낀 세대’로 묘사하는데 당시 “샌드위치 세대”라는 30대가 바로 지금은 꼰대의 대표주자처럼 놀림받는 86세대다. 1997년 동아일보에는 “이기적이고 타인과 현실정치에는 무관심한 신세대”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그 신세대가 지금 가장 정치참여에 적극적이라는 40대다. 2005년 경향신문과 노컷뉴스,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효를 하는 마지막 세대’라며 당시 50대를 낀 세대로 표현하는데 이들이 지금은 60대다. 2005년 동아일보에는 58년 개띠를 낀 세대로 분석한 기사도 있다. 이쯤 되면 ‘끼여서 손해 보는 세대’가 아닌 세대가 고대 이집트 이래로 한 번이라도 있었나 싶어진다.  요즘 MZ세대 얘기가 한참이다. 세대론이란 언제나 뭔가 새로운, 그래서 이러니저러니 갖다 붙이기 좋은 존재를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세대론을 확산시키고 이러저러한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건 언제나 세대론을 통해 ‘옛 세대’로 규정되는 세대라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386세대”도 그랬고 “X세대”도 그랬다. ‘모래시계 세대’니 ‘신세대’니 ‘Z세대’니 각종 세대론이 쉴 틈 없이 이어지며 약을 파는 모양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정체불명인 “새정치”가 울고 갈 정도다. 과연 요즘 한참 잘나가는 ‘MZ세대 담론’은 과거와 얼마나 다를까.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1-06-23 | hrights | 조회: 1386 | 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