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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와 공무원 재산등록(이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4-07 11:36
조회
344

이윤/ 경찰관


 나는 간이 콩알만 하다. 그래서 크게 한탕보다는 가늘고 길게 가는 걸 선호한다. ‘고’보다 ‘스톱’을, ‘레이스’보다 ‘콜’을 선택하기에 고스톱이나 포카 판에서는 잘해야 본전이라 웬만하면 끼지 않는다. 10년여 전 친구 권유로 주식을 샀었는데, 가격 등락이 계속 신경 쓰여서 그냥 조금 손해보고 다 팔아버렸다.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3배 이상 올랐을 텐데...


 빚을 내기보다는 얼마 안 되는 공무원 봉급 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왔다. 그런 이유로 19년째 무주택자다. 평생 무주택자가 아닌 이유는 IMF 경제위기 때 전세 살던 신혼집이 경매에 넘어가 세입자인 내가 울며 겨자 먹기로 경락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 집도 3년 후에 팔았고, 이후 쭉 전세를 살고 있다. 지금 나는 집도 없고 빚도 없는 쌍무자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관점에서 보면 나는 무능력의 표상이다.


 나 같은 성격이 공무원에 어울린다고 스스로 위안을 해 왔다. 특히 경찰관은 약소한 금품 유혹이 잦은 직종이다. 겨우 몇십만 원에 퇴직금과 연금을 포기하기엔 내 간에 오는 부담의 크기가 우루사 한 통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지금까지는 가늘고 길게 잘 살아왔다.


 그런데 모든 공무원이 나와 같지는 않은가보다. 몇억씩 대출받아 개발 계획이 나오기도 전에 토지, 특히 농지를 사다니. 그건 상위 0.1%에 속하는 그릇의 간을 가지고 있거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인생 역전의 통 큰 베팅을 한 사람들을 보면 그 호연지기에 괜스레 내 가슴이 벅차오른다. 자신의 직무와 지위를 이용하여 큰 돈을 도모하는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옛날 공무원들이 뜯어먹은 삥 쯤은 그들의 농지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묘목 한 두 뿌리 값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정부는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모든 공직자에게 재산등록을 하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공무원들의 불만이 많다는 기사들을 보았다. 재산등록 제도가 처음 시행된 1993년부터 무려 28년간 재산을 등록해왔고, 등록할 재산이라야 전셋집과 자동차 한 대, 은행예금뿐인 나로서는 그저 무덤덤하다.


 경찰은 처음부터 경사 계급 이상이 재산등록 대상이었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연말정산과 함께 매년 초에 찾아오는 상당히 번거롭고 짜증나는 행사였다. 전세 계약서, 통장, 보험금 납입 영수증 등을 모두 사본을 첨부하여 수기로 신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는데, 할 때마다 나 같은 하위직까지 매번 이렇게 가난을 신고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분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간편하게 클릭 몇 번으로 내 재산변동 사항을 체크할 수 있고 신고서를 제출할 수 있다. 쉬워진 만큼 그다지 불만은 없고 1년에 한 번 내 재산변동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간이 작은 만큼 조직에 순종적이고 적응도 잘 하니 천생 공무원이다. 나에겐 어차피 큰 돈 생길 일은 없지만, 어쩌다 하늘에서 돈벼락 맞는 상상을 하다가도 재산등록 할 때 그 돈의 출처를 뭐라고 적어야 하나 하는 쓸데없는 고민이 자동으로 생기는 걸 보면 이 제도가 가진 부패 예방 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겠다.


 재산등록 제도가 공무원들의 모든 부패를 걸러내지는 못할 것이다. 벤츠 여검사나 스폰서 검사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차명 은닉한 재산이나 친구가 대납해준 오피스텔 임대료 등은 재산등록 시스템이 미리 밝혀내지 못한다. 96만 원짜리 불기소 세트도 당연히 찾아낼 수 없다. 마시고 논 것까지 등록하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일반적 수준 이상 재산 증감이 있을 때 그 사유를 소명해야 하는 찝찝함만으로도 수억 원씩 하는 부동산 투기는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인천일보


 논어 위정편의 ‘錄在其中’이라는 어구를 나는 다음과 같이 멋대로 해석한다. ‘굳이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재테크를 하지 않더라도 공직자로서 직무에 충실하고 가치 있는 일에 주력하면 재물은 저절로 따라서 온다’라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경쟁과 배금주의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공무원까지 이해충돌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면 그 즐거움의 노랫소리에 맞춰 원망의 소리도 높아질 것이다(歌聲高處 怨聲高).


 나에겐 감히 도로시 데이처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줄 용기는 없다. 그래도 그녀의 “우리 모두 조금씩 더 가난해지도록 노력합시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서 기꺼이 벼락 거지의 길을 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