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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혁명의 완성(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1-29 15:18
조회
98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말 그대로 피땀 흘려 나라를 일구었다. 과학기술에서도 여러 선진국에 못지않은 수준을 달성했고, 1인당 GDP가 3만 2천 달러에 육박한다.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재외동포의 수가 750만 명에 달하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250만 명에 달한다. 대학에 강의하러 가면 외국인 유학생들을 너무나 쉽게 만난다. 무엇보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민주주의를 올곧게 실현하려는 많은 투쟁을 거쳐 왔다. 그리고 현재에는 이른바 ‘촛불 혁명 정권’을 일구었다. 그런데 미완의 ‘촛불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촛불 혁명의 완성은 과연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일까? 여러 견해와 그에 따른 담론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되도록 실제에 근거한 견해를 확립하고 그에 따른 담론들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2018년 벽두부터 전대미문의 사건들을 연이어서 경험했다. 남북의 최고 지도자들이 원한과 복수의 투쟁을 상징하는 휴전선을 넘나들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했다. 그리고 비록 실패의 길을 걷긴 했지만 북쪽 지역의 비핵화 또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정상회담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남북 평화 체제가 조만간 구축되리라 기대했고 자유로운 남북 왕래라는 꿈에 부풀기도 했다.


 남북 간에 평화 체제를 앞당기기 위해 남북 정상은 비무장지대(DMZ)를 평화 지대로 바꾸어 나가고, 서해 5도를 중심으로 NLL 주변 구역을 평화수역으로 지정해 비무장 공동순찰대를 형성해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런가 하면, 군사 당국자들 간의 회담을 정례적으로 개최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이에 휴전선 비무장지대인 DMZ를 실질적인 비무장지대로 만들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남북 쌍방 최전방 초소인 GP의 병력과 화기를 일부 시범적으로 폐기하고 철수했다. 모두 2018년의 일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 평화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국제적인 동조와 협력을 곳곳에서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최근 한반도의 역사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기적 같은 일이다. 남북 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 사업을 일방적으로 순식간에 철폐하다시피 중지시켜 버린 지난 정권의 수장을 촛불 혁명을 통해 탄핵하고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촛불 혁명’을 이른바 혁명이라 일컬을 수 있으려면 그야말로 기존의 체제를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그저 정권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혁명이라 일컬을 수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가장 무서운 체제는 바로 적대적인 분단 체제다. 이를 극복하고 분쇄하는 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촛불 혁명’은 명실상부 혁명다운 혁명이 된다. 새로운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협력과 함께 그 징조가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
 문제는 한반도 분단 체제를 만드는 데 주역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크게 격돌한 미국과 중국의 관계, 무엇보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다. 그리고 이 관계들과 연동된 한국과 미국의 관계다. 우리의 ‘촛불 혁명’이 제대로 된 혁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강대한 주변국들, 특히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규정력을 극복해야 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이른바 자유 진영의 예외적인 경찰국가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전후 한반도에서 남북 분단 체제를 형성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뒤, 소련을 위시한 공산 진영과의 극단적인 대립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을 기화로 남북 분단 체제를 더없이 공고히 하면서, 남쪽의 한국의 역대 정권들을 동북아 지역의 패권을 위한 대리자로 내세워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급성장한 중국과의 세계 체제적인 다방면의 경쟁을 거듭하면서 여전히 한국 정권을 방패 역할을 하는 대리자로 삼아 활용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한반도의 근본 구도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남북 분단 체제와 그에 따른 적대적 관계다.


 그런데 2018년을 기화로 분단된 한반도에 오랜 세월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관계를 정착시킴으로써 분단 체제의 성격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갑자기 강화된 것이다. 이를 위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안이 북미 관계의 정상화였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해 있기 때문이다.


 남북 간에 평화 프로세스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짐과 더불어 북미 간에도 여러 차례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서 비핵화를 의제로 한 화해를 향한 바람이 급물살을 탔다. 남북미의 정치 지도자들이 다각적으로 만나 의사를 타진하고 제대로 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급하게 움직였다. 남북 인민들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가 흥분하면서 환호했다. 그 과정에서 북에서는 핵실험과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의 발사 실험을 멈추었고, 몇몇 핵 관련 시설들을 폭파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미 간 각종 연합훈련이 연기되거나 축소되기도 했다. 꿈에 부풀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물론 오랜 세월에 걸친 불신과 반목, 그에 따른 여러 무력적인 도발이 있었기에 바라마지 않는 평화 체제의 구축이 쉽게 실현될 것은 아니었다. 2018년 해빙 분위기가 도래하기 직전만 해도 한반도는 세계 전체에서 가장 위험한 전쟁 후보지로 꼽혔다. 북한의 ‘호전적인’ 핵무장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과 실험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거론케 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국가 안위를 위한 궁여지책이었으나, 이를 두고 미국은 국제적으로 관리 불가능한 핵 지대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미국은 유엔을 기반으로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했고, 북한을 경제적으로 최대한 압박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더욱 불안해진 북한은 핵무장과 미사일 능력을 더욱 강화했다. 치킨 게임을 연상케 하는 완전한 악순환이었다. 양국의 정치 지도자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없거니와 나선다고 해도 이를 일거에 해결한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여러 번의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원하는 미국 주도의 국제적인 제재는 단 하나도 풀리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려는 추세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2020년 신년 벽두 현재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관계는 교착 상태에 빠져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2년에 걸친 희망의 시간은 과연 막을 내리는가 하는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


 2017년 전쟁 이야기가 무르익어 불안감을 증폭시킬 때였다.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선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은 “저의 모든 것을 걸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막겠습니다”라고 했다. 그의 생명마저 걸겠다는 이야기다. 그의 이 말은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그해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반복되었다.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 ―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 이후 그는 한반도의 민족 평화 체제의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 나름 최대한으로 노력했다. 지금에 와서 볼 때, 그 결과 이룬 가장 중요한 성과는 무엇일까?


 우리 국민이 미국에 대한 의식 · 무의식적인 두려움에서 상당 정도 벗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작금에 미국이 우리 한국이 담당해야 할 주한미군 주둔비를 다섯 배씩이나 한꺼번에 인상할 것을 강압하고 있다. 이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우리 국민은 거의 드물지 싶다. ‘미국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트럼프라는 대통령이 비상식적인 이상한 행보를 보인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란 봉쇄를 위한 호르무즈 해협의 파병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궁여지책의 타협책을 구사했다고 할지라도 그 결정에서 우리 국민이 특별히 격렬한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독자적으로 남북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북한 개별 관광’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요컨대, 이제 우리는 대미 관계에서 우리의 당연한 국가 주권과 그에 따른 자주권을 주장하는 셈이고, 그에 따라 일방적인 미국의 규정력을 의식 · 무의식적으로 벗어나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 힘의 기반은 무엇보다 지난 2년간 남북 평화 체제의 중요성을 직접 목격하면서 학습한 데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한 2017년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는 한국 및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규정력이 강력하다는 것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고백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의 그 고백의 심중에 어떤 느낌이 들어 있을까? ‘전략적인 자괴감’이라는 모순 어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느낌이 들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전략적인’이라는 말에 ‘자괴감’을 자신감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작동할 것이다.


 역사는 현실과 소망의 두 축으로 움직인다. 두 축이 일치하면 다행이겠으나, 예사로 어긋나기에 최대한 전략적인 절충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절충이 그저 중간이어서는 안 되고, 그렇게 그저 중간일 수도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덕목으로 제시된 중용의 덕과 지혜를 정치 외교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실천적인 현명함을 대통령과 남북 평화 체제를 위한 입안자들에게 한껏 기대하게 되는 까닭이다. 우리의 주권이 최대한 발휘되어 남북 평화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는 길을 더 활짝 열어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그리하여 명실상부한 촛불 혁명을 완성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