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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좌파와 우파(이 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7-16 11:08
조회
1716


이 윤/ 경찰관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탱자나무 가시는 보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억세고 촘촘해서 근처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시골집에서 담장 대신 많이 사용되었다. 그 나무에도 열매가 달렸다. 다만 여름방학에 본 탱자는 매우 단단하면서도 쭈글거려서 일단 식재료의 외관이 아니었고, 냄새도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억센 가시로 인한 접근 불가능성, 단단한 과육과 떫고 시큼한 냄새는 번식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진화 사례로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만했다. 탱자는 내게 ‘너, 나 먹을 용기 있어?’라고 묻는 것 같았다. 탱자야, 미안해!! 나에겐 그 정도 용기가 없었어. 그래서 동생에게 먹어보라고 했어.


 뉴스를 보면서 ‘좌파/우파’라는 단어가 들리면 귤화위지의 고사가 떠오른다. 유럽에서 건너 온 좌파라는 말이 때로 종북이라는 말과 함께 패키지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탱자가 된 것 같다. 처음에 좌익/우익이 사용된 것은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 의회에서다. 의회 의장이 볼 때 왼쪽에 공화파가 앉아서 ‘좌익’,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아서 ‘우익’이라고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이후 공화파들이 장악한 1792년의 국민공회에서도 급진적인 자코뱅파가 왼쪽에 앉고, 보수적인 지롱드파가 오른쪽에 앉았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보수적이거나 혁명 진행에 소극적이고 온건한 세력은 우익으로, 상대적으로 급진적이고 과격한 세력은 좌익으로 나누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좌익과 우익은 상대적인 개념인 것이다. 1815년 이후 극우, 극좌, 중도 우파, 중도 좌파 등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졌지만 좌/우라는 용어가 특정한 정치적 이념 그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좌익은 ‘자유, 평등, 조합, 권리, 진전, 개혁, 국제주의’를 특징으로 하고, 우익은 ‘권위, 위계, 질서, 의무, 전통, 국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위키피디아 참조). 요즘 ‘좌파’라는 말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이런 특징을 알고 사용하시는지 상당히 궁금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좌우파의 기원이 된 국민공회(국회)의 자리 배치.
의장석을
기준으로 급진적인 자코뱅파는 왼쪽에 앉았고, 보수적인 지롱드파는는 오른쪽에 앉았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이렇듯 좌파/우파가 귤일 때에는 특정 이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대적으로 급진적 개혁을 선호하면 좌파, 과거의 질서를 유지하거나 조금씩 개선하는 것을 선호하면 우파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한국으로 건너와 탱자가 되면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해방 직후인 1945년 말 발표된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1946년 1월 신탁통치 찬성 편에 가담한 공산주의자들과 그 주변세력을 좌익, 반대편에 가담한 이승만·한민당 세력을 우익으로 호칭하였다. 그 후로 다른 내용들은 증발하고 ‘좌익=공산주의’와 ‘우익=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라는 등식만 남은 것으로 여겨진다. 용어의 역사적 맥락은 무시하고 당시의 시대적 특징을 대변하는 내용만을 반복하여 사용한 결과일 것이다. 낮은 문맹률이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한국에서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라는 등식이 아직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미스터리이긴 하다.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여기는 사람은 좌파일까, 우파일까? 민주주의를 주권재민으로 해석한다면 권리의 평등, 결정에의 공정한 참여가 그 핵심적인 요소인데, 여기에 자유를 합하면 자유롭고 평등하게 권리를 향유하고, 공동체의 결정에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참여함을 의미하는 것이니, 자유민주주의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할 뿐 방향성과 속도를 내포하지 않으므로 좌파/우파로 구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의 상태로부터 혁신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려 하면 좌파일 것이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느리게 변화하고자 한다면 우파일 것이다. 굳이 억지로 구분한다면 위키피디아에 의할 때 자유, 평등이 좌파의 특징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자유민주주의자는 좌파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좌파일까, 우파일까? 나는 경찰관으로서 권한이 집중된 국가경찰제도보다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완전한 형태의 자치경찰제를 선호한다. 경찰기관이 정책이나 의사를 결정할 때 주민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사구조의 문제에 있어서 한국 검사의 직접수사권, 수사지휘권, 기소재량권 및 독점권, 독점적 영장청구권이 없어지기를 원한다. 아마도 권한이 한 곳에 집중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이끌려가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 때문인 듯하다. 어릴 적 군인이 되고 싶기도 했는데, 아찔하다. 따라서 경찰 권력구조와 수사구조 문제에 있어서 나는 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 체제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라서 급진적인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회경제체제에 대해서라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자유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도 공평한 기회, 공정한 경쟁, 성과에 대한 합리적 분배, 노력과 근로에 대한 합당한 보상,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원한다. 사회 내의 불공평, 불공정, 불합리, 부당함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갑자기 뒤집어져 혼란해지는 것은 싫다. 경찰관에게 혼란과 무질서는 곧 바빠지는 업무와 위험을 의미하기에 싫기도 하지만, 그런 혼란 자체가 초래하는 불안함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 연금제도나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경제체제 문제에서 나는 우파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를 퉁쳐서 좌파 또는 우파라고 규정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나 스스로도 내가 좌파인지 우파인지 알 수 없고, 또 원래 그런 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책과 환경에 따라 좌파일 수도 있고 우파일 수도 있다. 이제는 좀 ‘좌파=진보=공산(사회)주의자’, ‘우파=보수=자유민주주의자’라는 잘못된 프레임을 그만 듣고 싶다. 들을 때마다 탱자의 떨떠름한 시큼함이 느껴진다. 나는 잘못된 말을 들으면 지적질을 하고 싶은 고약한 성격인데, 방송에서 그런 발언을 들으면 지적질 못하는 것이 매우 큰 스트레스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허리가 자주 아프다.


 한 번 탱자가 된 귤은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다. 역진화가 가능할까? 도대체 이 탱자가 된 ‘좌파/우파’를 어떻게 귤로 되돌릴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