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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국으로 이는 감정들(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2-12 17:50
조회
298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갑갑하다.


 최근 들어 왠지 갑갑하다. 정국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원인이지 싶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벌려놓고 수습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촛불시민항쟁의 위력으로 수십 년 간의 징역형이 예상될 정도로 무능과 부패를 저지른 두 명의 역대 대통령을 수감시켜 놓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옛날 같으면 이들의 수하에서 이른바 호가호위한 자들은 아예 척살되거나 어딘가에 숨어 숨죽이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적반하장 격으로 정가에서는 물론이고 백주대낮에 목소리를 높일 뿐만 아니라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자기네들이 정의요 진리라고 억지를 부린다. 그 뒤에서 법적으로 작동하리라 여겨지는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사회의 덕목이 어른거리고, 이를 저들에 의해 어떻게 악용되는가를 느껴야 하는 심사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최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고 뭐고 아예 그 싹을 자르듯이 하면서 수없이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던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등의 독재자들이 그들의 정치사회적인 아버지였고 뿌리라는 생각이 겹치면서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허약성의 일면을 떠올리게 되니 어찌 심사가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민주적인 법 절차에 따라 이른바 적폐청산을 과감하고도 순조롭게 수행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 동안, 여당의 차기 대선 주자 운운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일찍부터 나돌아 다니더니 급기야 현 여당에서 길러내어 두 번씩이나 도지사를 지낸 인물이 성폭행 혐의로 기소가 되고, 역시 여당에서 길러낸 두 명의 도지사가 범죄 혐의를 받고서 검찰을 오가는 일이 벌어졌다. 도대체 이 무슨 황당한 짓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수고대하던 적폐청산, 그 깃발이 찢어진 채 허공에서 나부끼는 형국이다.


 게다가 적폐청산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경제 난국’이 발목을 잡는다. 과연 경제 난국인가? 경제가 어떻게 어려운지 그 원리는 물론이고 실상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이 교체되었다. 그럼으로써 정치적으로 일단 백기를 든 셈이다. 반대 야당에서는 적폐청산에 몰두하느라 경제를 망쳐버렸고 남북 평화에만 정신이 팔려 경제를 망쳐버렸다고 주장한다. 근거도 없을뿐더러 앞뒤 논리도 맞지 않는 억지인데도 짐짓 또는 진심으로 그렇게 주장한다. 이를 통해 저들이 적폐청산은 말할 것도 없고 분단극복 · 남북평화와 같은 민족의 역사적인 숙원마저도 정치적인 술책의 재제에 불과하다고 여김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불리하게 만든다면 그 어떤 정의나 진정한 가치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북평화세력과 적폐청산을 외치는 자들이야말로 적폐청산의 대상이라고 떠든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극을 달린다. 그런데 마치 그네들이 ‘턱도 없이’ 내뱉는 이러한 말들이 적중이라도 한 것처럼 청와대 최고의 권력기관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비위’가 터져 나왔다. 수사 개입 운운하기도 하고 근무시간에 한가하게 골프를 쳤다는 소식이 전국을 강타했다. 전면교체가 결정되었다. 꿀 먹은 벙어리 신세,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 ‘민주독재’라는 팻말을 들고서 민주노총에서 일보삼배까지 해 가면서 현 정권의 노동 정책을 전격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광주형 일자리 운운하더니 현대자동차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밀실야합의 예산심사 결과 각종 복지예산액은 현저히 거부되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이름과 면면이 소개되면서 마치 승전고를 울리듯이 지역개발을 위한 예산액이 증폭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여당이 거부한 탓에 두 정당 대표가 단식 중이다. 이와 더불어 물론 쉽다고 여긴 것은 결코 아니지만, 연초부터 불어 닥친 민족을 위한 큰 소식에 이어 여러모로 힘써 성과를 올려온 끝에 아직도 충분히 기대해마지 않는 분단극복 · 남북평화의 염원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비롯한 북미간의 대 협상도 그렇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조차 아직은 오리무중 말만 무성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니 어찌 갑갑하지 않겠는가. 나 같은 필부마저 이렇듯 갑갑한데 목숨을 걸기까지 하면서 민주와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워 온 많은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대통령이 과연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예전에는 당시 대통령 박근혜 씨가 밤이 되면 청와대에서 과연 무슨 일을 할까 하고 그저 궁금해 했다. 그런데 지금의 대통령은 해결되지 않은 채 산적한 현안들을 붙들고서 씨름하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2. 분하다


 그래서 분한 마음이 일어난다. 어떻게 만든 절호의 기회였던가,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어떻게 또 다시 날려버리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들이 갑갑한 마음과 겹쳐 분한 마음이 이는 것이다. 심지어 어디선가 누군가가 그것도 몰랐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더욱 분하다. 정치란 본래 그런 것 아니겠어, 권력을 손에 쥐면 다들 그렇게 변심하기 마련임을 몰랐어, 그동안 억눌려 살아온 사람들이 이때가 기회다 하고서 잇속을 챙기려는 마음이 더 강하지 않겠어, 기회가 왔는데도 초심으로 돌아가 일신의 영달을 버리고 모두를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어, ‘내로남불’이라고 하지 않던가, 등등. 누군가가 지껄일 것 같은 온갖 ‘무서운’ 말들이 뇌리 속에서 맴돌면서 갑갑하고 분한 마음에 이어 자괴감마저 이는 것이다. 각종 가짜 뉴스들이 모든 일들을 희석시켜 전후좌우를 분간치 못하게 하고 그런 와중에 부패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온갖 간사한 술책을 부리는 자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이 마음들이 뭉쳐져 원통하다는 마음마저 이는 것이다.


3. 차분한 마음으로


 철학자 하이데거는 감정이 존재를 표현하고 일러준다고 했다. 갑갑하고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어찌 나 한 사람에게서만 일 것인가. 추운 겨울에 수시로 나가 촛불을 들고서 수십 년 갑갑하고 분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래도 차분하게 질서정연하게 대업을 이루어낸 그 수많은 인물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다시 갑갑하고 분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민주 세력의 집단적인 감정은 그들의 존재를 표현하고 일러줄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국가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촛불의 위력으로 집권을 하게 된 세력들은 그야말로 현명하면서도 성실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마땅히 그래야 하고, 또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아직도 순진하게 믿고 싶고 사실은 믿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권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에 의거해 위임받은 일시적인 권한임을 명명백백하게 마음에 아로새겨야 한다. 자신이 잘나서 그 자리에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면면을 보건대, 당신들이 맡은 일을 당신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을 위해 국민들을 대신해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또 그 일은 얼마나 중차대한가. 그런 어렵고 엄중한 일을 맡은 자들은 함부로 웃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슬퍼해서도 안 된다. 마치 권력을 누리니 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가 하는 심사를 지닌 양 만면에 미소를 띠고서 서로 악수를 나누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그런가 하면, 앞뒤 안 가리고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모습을 보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격조 없이 비난해대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처참한가. 서로를 오로지 권력을 탐하는 자들로만 여기게 되면 상대를 무조건 내 권력을 위협하는 적으로 여겨 그처럼 후안무치한 방식으로 비난의 공격을 퍼부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후안무치한 정치꾼들을 몰아내어 발본색원할 수 있을지 차분하고도 현명하게 그리고 빈틈없이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인물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해서라도 그 뜻과 지혜를 모아 실천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처럼 민주 시민들의 힘으로 맡게 된 국민주권의 국가 권력을 한낱 정치꾼들의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