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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권력에 대한 도전-탈 코르셋” - 대상에서 주체로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8-30 16:19
조회
279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올 초부터 1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여성화를 강요하는 ‘꾸밈노동’ 일체를 거부하는 ‘탈 코르셋’ 운동이 일고 있다. 이들은 머리를 자르거나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인증샷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남학생 교복을 입고, 화장품을 버리는 등의 행동들을 sns를 통해 공유하면서 이 운동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빠르면 초등학교 4학년, 느려도 6학년쯤에는 다들 화장을 시작한다.", "결막염 걸려서 눈이 빨간색이어도 렌즈를 낀다. ... 안 끼면 안 되냐고 물어봤더니 그럼 ... 못생겨진다...", "무슨 행사가 있을 때는 화장을 해야 한다는 ... 학교는 엄청난 코르셋 집단이 됐다."(BBC. 2018. 6.1)


 초등학생부터 화장을 하고, 학교는 화장을 강요한다. 언젠가부터 길에서, 학교에서 마주치는 여학생들은 모두가 ‘실제로’ 화장한 차림이다. 빨간 입술, 하얀 얼굴, 긴 머리, 달라붙는 교복 등. 화장이 처벌의 대상이었던 세대인 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낯설어 왜 처벌하지 않느냐고 딸에게 물었다가 오히려 몰상식한 구시대 유물 취급받았다. 나의 학창시절은 교복치마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카락, 손톱길이 마저 규격화하고 통제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화장으로 대표되는 ‘여학생 되기’라는 담론과 실천은 통제와는 다른 자유이고 선택일까?


 푸코는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통치방식이 위계와 폭력에 기반한 신체형벌사회에서 규율, 감옥 등이 대신하는 규율사회로 변모하면서 어떻게 흩어진 개인들이 규율에 복종하고 살아가는지를 규명한다. 근대사회는 커다란 ‘판옵티콘’ 사회이다. 이는 감옥으로, 간수 한 사람이 모든 재소자들을 감시할 수 있는 체계로 설계되어 있다. 때문에 재소자들은 간수의 감시를 일상화, 내면화하여 스스로 감옥의 규율에 복종하는 데 이것이 ‘규율사회’이다. 나아가 보이지 않지만 일상화된 감시의 존재를 내면화하고 복종하는 것을 주체적 선택이라 여기게 만드는 것 또한 규율사회의 특징이다. 그리고 여기서 규율권력은 각 개인의 몸을 통해 구현된다. 스스로 몸과 행동을 통제하면서 작동한다. 내면화는 이렇게 스스로 규제에 복종하도록 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구조적인 이데올로기, 담론, 규율 등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나의 세대가 체벌이라는 형태가 몸에 행해졌다면, 현재는 ‘화장’=‘여성’이라는 담론을 ‘소비’와 ‘노력’을 통해 행해지고 있을 뿐이다. 몸은 또한 권력을 행사하는 장이기도 하다. 지하철에서 여자와 남자가 앉는 모습은 단적으로 누가 권력의 주체인지 드러낸다. 남자는 주체이고 여성은 대상이다. 여아=분홍색, 남아=파랑색으로 출산준비물이 구분되고 장난감도 여아와 남아가 구분되는 젠더화가 점점 더 고착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여성성이 남성성에 비해 열등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인식된다는 데 있다. 호주에서는 2013년 바이크갱단을 효과적으로 처벌하기 위해 분홍색 죄수복을 입혔다. 굴욕감을 주기 위해서다. 여자들은 분홍색=무력함이라는 정치적 함의에 무지한채로 분홍 옷을 입도록 기대되고 있다.


 코르셋은 과거 여성들이 잘록한 허리와 불룩한 가슴 및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해 착용하던 체형보정물이다. 그것이 현재에는 날씬한 몸, 화장, 하이힐, 성형수술 등 온갖 꾸밈노동으로 남아있다. 남자들은 전문성으로 평가받지만 여자들은 언론에 의해 어떤 옷, 신발, 가방-코르셋-을 들었는지 외모에 주목한다. 혹자는 ‘몸’, ‘외모’는 ‘선택’이고 ‘주체성의 발현’ 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푸코의 권력형태의 변화와 그에 적응하는 인간/몸을 보면 사회적으로 권력담론에 의해 몸/신체가 구성됨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제 권력구조에서 몸은 철저히 여성화, 남성화 담론에 의해 구성된다. 남성성, 여성성은 일종의 정치적 산물이며 권력집단인 남성들에 의해 구성된, 사실은 강제이다. 모든 지배체제에서 지배계층은 인위적인 분리를 자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당화한다. 노예제도가 자연스러운 인종적 우열의 결과라고 주장했듯이. 여성의 외모 가꾸기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주장은 꾸밈이 사실은 여성임을 한눈에 드러내고, 나아가 성적흥분을 느끼기 위한 남자들의 각본이자 요구라는 사실. 남성성은 지배를, 여성성은 굴종을 의미-여성해방을 통해 사라질 의미체계-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구글


 최근 국내 출간된 『탈 코르셋』에서 페미니즘 심리학자 디 그레이엄은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 증후군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인질들이 보이는 행동인데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폭력으로 위협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친절을 내보인다면 두 집단 사이에는 애착이 형성”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한 마디로 여자와 남자 간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화장, 성형수술, 제모 및 왁싱, 하이힐, 갑갑한 복장’ 등 해로운 미용관습을 제시한다. 즉 “여성성이란 적의 마음을 사로잡아 적과 잘 지내기 위한 청사진”인 것이고 여성적인 행동들인 ‘지력, 조심성, 눈치, 대인관계 능력, 매력, 섹슈얼리티, 속임수, 회피’등은 전형적인 피지배계층의 행동들이 된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은 꾸밈행위가 강요된 코르셋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는가? 여자들의 꾸밈노동이 남자의 물리력과 위협 대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두렵고 너무나 정교하게 이데올로기/담론/규율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이데올로기적 규율을 수용함으로써 ‘내면의 식민화-가부장적 질서의 체화-’를 통해 ‘여성성’=‘성적대상화’=‘꾸미기’라는 신화에 갇혀버리게 된다.


 원래 화장은 성매매업의 여성들에서 나타났다. 붉은 립스틱은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고 남자들을 유혹하는 매개였다. 그러던 것이 1920-30년대 여성들의 공적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미용 산업이 등장하고 화장이 일반여성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아랍의 예로 보면 아랍 여성들이 서구식 복장과 화장에서 다시 베일을 쓴 것은 1980-90년대 들어서인데 이는 이곳 여성들이 사회활동이 활발해진 때이기도 하다. 전통적 여성영역이던 가정 밖에서 외부남성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였던 것으로, 자신이 아랍의 전통과 종교-그 사회 남성들의 가치관-를 존중하고 그에 복종함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화장도 마찬가지다. 베일도 화장도 감춘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가지며, 화장 역시도 성적대상, 성적흥분을 느끼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역할-가부장적 전통이자 종교-을 수용/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는 감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만큼 뻔뻔하지 않음–피지배자로서의 예의-을 보일 때에야 안전할 수 있고 그래서 공적진출 후에도 인간으로보다는 성적대상임을 드러내야 하는 화장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 이데올로기/규율/담론의 재생산에는 권력의 연결고리들이 존재한다. 성매매산업과 대부업, 미용 산업(의료계포함)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성매매를 통해 축적된 자본이 대부업체로, 화장품과 옷을 사기위해 여자들이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고, 다시 빚을 갚기 위해 성매매 하는-은 여성과 화장, 성매매와 자본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드러낸다. 


 ‘탈 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여성의 성적대상화인 꾸밈노동에 더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을 것을 부추기며 남성 성애화의 소비대상으로 존재하길 거부하는 실천운동이다. 나아가 이 운동의 일환인 “소비 총파업”은 매월 첫 주 일요일에 일체의 소비를 금하고 38-3·8여성의 날-이 포함된 액수만큼 저축해 자신과 여성해방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탈 코르셋’은 개인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선택’으로 보이는 여자들의 꾸미기가 사실은 강요 및 강제된 규율로서 구조적 억압이었음을 각성하고 고발하는 운동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즘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최근 홍대 남자모델 영상 유포자인 여성에게 ‘실형’이 선고되고, 워마드 운영자에게 국제적인 수배령이 내려지고, 성폭력으로 기소된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여기서도 여전한 ‘코르셋’을 발견한다. 남자와 여자의 ‘놀이’의 범주에 대한 코르셋, 성폭력피해자가 내면화해야하는 규율로 작동하는 코르셋이다. 남성지배체제로서의 가부장 권력의 공공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권력은 언젠가는 대체된다. 여성들이 현재의 분노를 힘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애써 흥분하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탈 코르셋’은 부정의하고 불평등하며, 전제적인 남성규율에 대한 저항이자 해방운동이다.


 “모든 여자가 화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화장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예뻐 보이기 위해 한다는 것”,  “예쁜 것만이 정답인 사회가 아니라 모든 얼굴이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사회를 원한다.”(경향신문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