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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범죄와 살해라는 사회구조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1-24 16:23
조회
481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 네트워크 ‘젠더고물상’


 13일에 ‘제천화재사건’이 ‘여성학살’이라는 여성들의 시위가 홍대 앞에서 있었다. 인터넷 카페 ‘여초연합’ 회원들은 남성 건물주와 소방당국, 여성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게시글을 올린 누리꾼들에 대한 진상규명 및 처벌을, 여성목욕탕 화재 피해자들의 신고전화 녹취록 요구 및 여성안전권 확보를 위한 제도마련을 주장했다(헤럴드경제. 1. 15). 제천화재사건 이후 이 사태가 여성혐오로 인한 구조적 참사라는 글들이 SNS에 올라오자, “그렇게 꼬우면 대신 죽어주든가” 라는 댓글을 비롯해서, ‘김치국’ 등의 사망자들을 폄하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그 수준은 말하면 무엇 하랴. 그 때문에 사건에 직접 연루된 이들에 대한 처벌 뿐 아니라 비하성 댓글을 올린 누리꾼들에 대한 처벌 또한 요구하는 것이다.


 제천화재가 여성학살이라는 위 집회가 있은 다음날인 14일, 인천의 부평역 근처 여자화장실에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성이 남성에게 망치로 머리를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수술을 받았고 겨우 의식을 되찾은 상태지만 재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한다. 당시 바로 옆 남자화장실에 있던 이는 여자화장실 문을 열고 핏자국을 보고, 가해남성도 봤지만 도망을 쳤다. 결국 이 여성은 상해를 입은 상태로 스스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다.


 “2년 전 강남역 노래방 화장실에서 벌어진 20대 여성 살해 사건처럼 심야 시간대의 묻지마 폭행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SBS 1. 15 저녁 8시뉴스)


 2년 전 강남역 살해사건은 ‘여성혐오 살해’라고 여성주의자들이 명명한 바 있으나 여전히 ‘묻지마 범죄’로 불리우고 있다. 그 ‘묻지마 범죄’는 왜 항상 여성을 향해 있는가? 왜?


 제천화재의 경우, 총 29명의 피해자 중 23명이 여성이고, 2층 여탕에 있던 여성은 전원 사망했다. 여탕은 소방안전점검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비상구가 막혀있었으며, 안전요원이 배치되어있지 않았다. 여탕에 있던 피해자들의 긴급구조 요청에도 소방당국은 신속히 대처하지 않았다. 2층 유리창을 깨라는 거물 밖 시민들의 요구도 즉각 이루어지지 않았다. 긴박한 순간에 20여명이 대피할 수 있었던 비상구를 집중공략 했다면, 어차피 나중에 깨고 말 2층 유리창을 일찍 깼더라면, 안전요원이 있었더라면, 여탕 비상구가 막히지 않았더라면. 아니 소방당국이 비상구를 집중공략 했더라면. 이런 ‘그랬더라면......’은 결코 사실을 되돌릴 수 없는 하나마나한 아쉬움 혹은 미련이다. 그러나 여성들만 유독 대량 사망한 이번 사건에선 결코 하나마나한 미련이 아니라 짙은 의혹과 질문이 된다. 왜?,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밖에 안 되었을까?, 여성들만 왜?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기혼 여성들은 종종 친정어머니와 목욕탕에 간다. 특히 깔끔한 노인엄마를 모시는 경우 더욱 그렇다. 딸이 따라가야 몸을 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천이 친정인 나도 어쩌면 피해자가 될 수 있었을 일이다. ‘운이 좋았다!’ 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현 거주지가 부평인 나로 인해 나와 함께 사는 내 딸에게도 역시나 그런 ‘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사건을 ‘구조적인 여성혐오로 인한 살해’라고 명명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넘어 불쾌해 한다. “죽이고 싶던 것도 아니고 구조를 진행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긴 문제”라면서 “여성혐오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 “이번 참사는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인데, 모금운동이나 소방관에 대한 위로가 진행되는 게 맞지 않냐”. “여성이 많이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이런 식으로 접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라고 ‘비판’ 하거나 ‘일갈’했다고 ‘보도’ 한다. 너무 ‘여성혐오에 짜 맞추는 억지’라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어떤 계층에서만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으로 봐야 할까?


 아주대의료원 권역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는 오래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 대부분이 저소득층 이며 이는 이들이 몸 노동을 주로 하는, 사고발생 위험이 높은 직종에 근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라고 했다. 사회적 저소득층인 노동계급이 소득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노동, 즉 몸을 파는 업종이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무직이나 관리직에 있는 고소득층에 비해 위험에 노출되는 비율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응급의료기관이 더 많아져야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비용에 비해 효용(수입)이 낮은 응급의료기관이 축소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었다. ‘재난에도 계급성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다. 저소득층이 왜 응급실에 많이 오는가를 사회구조적 측면, 특히 자본주의적 경제구조에서 잘 파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성들이 왜 ‘표적’ - 묻지마 가 아닌 - 범죄의 희생자가 되고 한 사태나 사건에서도 더 많이 죽어나가는가에 대해서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여성들이 주장하는 여성혐오 범죄라는 명명이 함의하는 바이다. ‘재난에도 성별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소방관 개개인들에게 책임을 묻자는 것도, 남성들을 대상으로 시비를 걸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성별화된 범죄나 사회악이 지속적으로 재생산 된다면 그것에 대해 왜 그런지를 고민해보고, 연구해보고, 대안을 논의해보자는 것이다. 모든 인권사안은 그렇게 발전 혹은 발견되어 왔다. 권력을 쥔 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 보이지 않는 집단의 항의와 저항을 통해 드러나고, 속성이 까발려지고, 드디어 인정받게 되는 과정을 거쳐서 인권의 대열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위 두 사례는 분명히 가부장제 사회구조가 만들어 낸 그러나 비가시화 된 ‘외면’ 혹은 ‘무시’ 나아가 ‘멸시’가 만들어낸 집단적, 구조적, 체계적인 범죄이다. 그것을 까발리는 것은 이 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재생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자 시민성, 책임이다. 지금은 시민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시민성을 발현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