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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몇 살이야!?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45
조회
392

이광조/ CBS PD


 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있다. 장유유서로 대표되는 뿌리 깊은 유교문화에 위계를 강조하는 군사문화가 겹쳐져 어디를 가나 나이를 따진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한참 열을 내며 싸우다 나이를 따지는 모습은 우리의 흔한 일상이다. ‘너 몇 살이야!?’ 쌍욕을 하며 싸우던 마당에 ‘민증’을 깐들 뾰족한 수가 있을까만, 우리는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끼리도 ‘빠른 몇 년 생’, ‘늦은 몇 년 생’을 따질 정도로 나이에 민감하다.


 나이를 따져 서열이 정해지고 나면 자연스레 호칭이 정리된다. 형, 형님, 언니...


 하루라도 세상을 더 산 사람의 경륜을 존중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배려하고 보살피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말만 놓으면 좋으련만 나이를 따져 서열을 정하는 우리의 미풍양속은 너무도 쉽게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1년 일찍 들어왔다고 신입생들을 이리 저리 굴리며 군인 흉내를 내는 대학생들을 보라.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젊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쌍욕을 내뱉거나 심할 경우 손찌검까지 하는 노인들은 또 어떤가. 극소수의 사례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경우 그 ‘싸가지 없는 젊은 것’이 임신부든 아니면 몸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던 길이든 개인적인 사정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리는 소통의 기본은 사라지고 일방적인 폭력만이 남을 뿐이다.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따른 서열화에는 큰 장점도 있다. 학력, 재력,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회가 나이에 따라 서열화 된다면 그만큼 평등한 질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나이는 가장 미약한 권력 자원일 뿐이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나이 같은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새파란 검사들이 ‘영감’으로 불리던 게 먼 옛날의 일이 아니다. 돈이든 지위든 사회적으로 희소한 무언가가 부가되어야 나이는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도 저도 없으면 하다못해 완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성이 자리 양보를 안 한다는 이유로 쌍욕을 듣는 광경을 보기는 힘들다. 결국 핵심은 권력관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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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김승련의 뉴스10’가 지난 4일 보도한 영상.
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얼마 전 여당 대표가 “너는 뭐 쓸 데 없는 소리를 하고 앉아 있어”라고 말하며 기자를 타박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기사를 꼼꼼히 읽기 전에는 두 사람이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는 친밀한 관계인 줄 알았다. 정치인이든 기자든 행세 꽤나 한다는 엘리트들이 지연, 학연으로 모두가 선후배로 연결되는 사회에서 친한 사이라면 그 정도 얘기도 못하겠는가. 한데 기사를 끝까지 읽고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기자는 여당 대표의 비공식 수행 비서를 지냈던 사람이 구속된 것에 관해 여당 대표의 입장을 물어본 것이었는데, 여당 대표가 기분이 팍 상해버린 것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기자들을 ‘야 이 놈들아’라고 격의 없이 부르며, “기사 잘 써야 돼. 기사 엉터리로 쓰면 나한테 두들겨 맞는다”는 발언도 스스럼없이 한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이런 ‘호탕한’ 언행을 부러워하는 분위기도 있는듯하다. 당사자는 젊은 기자들이 다 ‘아들 , 딸’ 같아서 그러는 거란다. 하지만 언론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기자들이 정치인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 모습이 참 불편하다. 기자들에게 ‘니는 어디 소속이고?’라고 묻는 말이 ‘너그 아부지 머 하시노?'라는 말과 겹쳐진다. 학교 다닐 때 많이 듣던 말 아닌가. 이런 관계에서 권력과 언론의 긴장이나 언론의 파수꾼 역할 같은 얘기는 공허할 따름이다. 둘 중 하나다. 하대를 받아들이고 친숙해져서 ‘선배, 선배’ 부르며 권위에 복종하든가 돌아서서 욕하며 이를 갈든가. 어떤 선택을 하든 제대로 된 비판과 소통은 불가능하다. 마음에 안 든다고 기자들에게 ‘아군이냐 적군이냐’를 강요해서야 되겠는가. 우선 반말부터 그만뒀으면 좋겠다.


이 글은 2015년 11월 1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