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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인간박물관’에 가다(염운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8-11 11:48
조회
1004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올해 7월의 어느 날, 드디어 파리 ‘인간박물관(Musée de l'Homme)’에 다녀왔다. 지구 온난화로 매년 더워지고 있는 유럽 날씨. 에어컨 없이도 쾌적한 유럽의 여름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그날 파리는 섭씨 40도에 가까운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메트로 트로카데로 역에 내리면 인간박물관이 있는 팔레드샤요(Palais de Chaillot)와 에펠탑이 바로 보인다. 팔레드샤요는 1937년 파리박람회장으로 세운 건물로 인간박물관은 양 날개처럼 펼쳐진 반원형 건물의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바깥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유물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박물관이건만 그날은 어찌나 더운지 냉방을 하는데도 실내가 더웠다. 인간박물관 전시실을 옮겨 다닐 때면 통창 너머로 에펠탑의 멋진 전경이 각도를 달리해 시야에 자꾸 들어왔다. 한여름 한낮 데워진 지면에서 열기가 피어올라 에펠탑이 아래로부터 녹아내리는 것 같은 착시마저 들었다.

출처 - 저자 촬영 (인간박물관<Musée de l'Homme>)


 인간박물관은 가장 가보고 싶었던 인류학 박물관이었다. 인간박물관은 영광과 오욕을 동시에 지닌 박물관이다. 초대 관장 인류학자 폴 리베(Paul Rivet)는 반파시즘과 반인종주의의 정신에 충실했고, 이본 오동(Yvonne Oddon)을 비롯한 박물관 소속 학자들은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에 저항하는 최초의 레지스탕스 조직을 결성했다. 리베와 오동에게 바치는 레지스탕스의 영광된 기억은 이 박물관의 ‘폴 리베 아트리움’과 ‘이본 오동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새겨져 있다. 한편, 인간박물관은 사르키 바트만(Saartjie Baartman)의 유해가 있던 곳이다. 해부되고 분해된 바트만의 몸이 유리병에 담기고 박제 표본이 되어 1970년대까지 전시되었던 곳이 바로 인간박물관이다. 바트만의 유해는 2002년 고향 남아프리카로 귀환했지만, 인간박물관이 식민박물관으로서 식민지 타자의 유해, 유골, 유물을 소장하고 있었고, 지금도 일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박물관의 기원은 1882년에 문을 연 트로카데로인류학박물관(Musee d’Ethnographie du Trocadero)에 있다. 트로카데로인류학박물관은 식민지에서 가져온 유물과 아르 네그르(Art nègre)라 불리는 아프리카 미술을 모아둔 식민박물관이자 인류학 박물관이었다. 1937년 인간박물관이란 이름을 걸고 개관할 때는 인종주의 극복과 보편적 인류애를 내세웠다. 그러나 식민박물관의 유산을 탈피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더구나 2006년에는 소장 인류학 유물의 대부분을 새로 개관한 자크 시락-케브랑리미술관(Musée du quai Branly-Jacques Chirac)에 넘겨주게 되면서 인간박물관은 새로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박물관은 6년 동안 문을 닫고, 상설전시 개편을 단행해 2015년 10월 재개관하는 길을 택했다. 현재 보고 있는 전시는 대규모 리뉴얼의 산물이다.

 리뉴얼 기간과 코로나19 폐관 동안 기다리며 기대도 부풀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개편 이후 벌써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상설전시가 낡은 것이 되었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와 우려는 절반씩만 맞았다. 먼저 인간박물관은 전혀 낡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박물관은 실체가 모호한 ‘인류’라는 허구의 개념에 매달리는 대신, 피와 살을 지닌 구체적인 ‘인간’에서 출발한다. 그 때문에 이 박물관의 우리말 번역어도 ‘인류박물관’이 아니라 ‘인간박물관’이 되어야 옳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 전시실은 각기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하며, 인간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조망한다. 혹자는 이 박물관이 지나치게 생물학에 치우쳐 있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형질인류학과 문화인류학을 통합적으로 적용해 생물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모순되지 않게 설명하고 전시한 것이 장점으로 보였다.

 인간의 미래 전시실 마지막 케이스에는 안경, 얼굴 부상 성형, 임플란트, 미용 성형, 인공보철 팔과 다리 등 다양한 인공보철이 걸려 있었다. 인공보철이라고 하면 SF에 나오는 수퍼 히어로나 사이보그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시가 보여주듯이 손상으로 해를 입은 육체를 보완하는 보철은 인간 역사 이래 계속 존재해 왔다. 보철은 질병과 장애에 인간이 대처해온 긴 역사와 함께 공존해왔다. 보철은 미래를 말하는 동시에 미래를 장밋빛 판타지로 상상하는 오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생각거리다. 인간 육체의 한계를 한방에 극복할 ‘마법의 알약’ 같은 건 존재할 리 없고, 우리는 아프고 다치고 부러진 데를 어루만지고 꿰매고 덧대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미래를 보철로써 말하는 전시는 인간 존재의 한계와 존엄을 동시에 일깨우는 울림을 전했다.

출처 - 저자 촬영 (인공적 세계의 확장-보철/부분확대)


 인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인류학 박물관으로서 인간박물관의 또 다른 미덕은 고인류학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인류 아프리카 기원설을 구체적 유물로 전시하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답으로 아프리카를 인류의 요람으로 정확히 자리매김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종적 다양성에 관한 전시는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피부색과 안면 골격이 다양한 인간의 흉상을 1층과 2층을 연결해 수직적으로 배치해 놓은 전시는 언뜻 보았을 때 피부색 차이를 정면으로 드러내며 인간 다양성을 찬미하는 전시로 보였다. 하지만 설명문을 읽어보고는 긍정적 평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인 흉상은 이름 없이 ‘전형’으로 전시된 반면 눈을 감고 있는 비유럽인 흉상에는 구체적인 이름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유럽인 흉상은 인간전시를 위해 프랑스에 왔던 아메리카 인디언, 애보리진, 태즈메이니아인, 그린란드인, 무어인, 아랍인, 수단인의 실제 얼굴을 본떠 제작됐기 때문이다. 전시 설명문에 비유럽인 흉상의 주인공 이름을 밝히고, 그들이 프랑스에 오게 된 연유를 적고, 그들을 부당하게 ‘열등한’ 인종으로 낙인찍는데 동원된 도구인 두개계측기(cephalic index)를 나란히 놓고 과거 골상학과 인종주의를 반성한다고 해서 이 전시를 타당하고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평자가 혹평하듯이, 과거 ‘호기심의 방’에 놓였을 유물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재활용한 것에 불과한 것 1) 은 아닐까? 인간 다양성을 전시하는 대안적 방식은 무엇일까?

출처 - 저자 촬영 (인간유형흉상전시와 두 개계측기)


 젠더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박물관 전시의 문제점은 더 눈에 들어온다. ‘여성은 육체, 남성은 정신’이라는 낡은 이분법을 무심코 드러내고 있는 곳이 여럿 보였다. 첫 전시실 ‘우리는 누구인가’의 시작점에는 젊은 여성과 노인 남성의 두상이 있고, 그 옆의 버튼을 누르면 오디오 설명이 나오는 장치가 있었다. 인간의 육체적 형질과 특성에 대한 설명은 여성이 하는 반면, 생각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는 남성 노인이 “자, 내 주름을 만져보렴”이라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21세기 전시로서 너무 낡은 사고방식이라 지적하면 속 좁은 반응인가? 또한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전시하면서 출생과 양육에서 여성의 역할을 전통적 생물학적 성별분업에 고정해 제시한 것, 미래의 사이보그 인간을 굳이 임신한 여성으로 재현한 것도 상식에 기댄 게으른 설정이었다. 이외에도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인간의 현재와 미래의 당면한 현실이자 지향으로 제시하면서도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결코 평등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거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교류 증대를 식민주의의 극복과 안이하게 연결 짓는 점도 취약한 부분이었다.

출처 - 저자 촬영 (인공적 세계의 확장: 오디오 전시 임신한 여성)


 반인종주의와 탈식민주의를 완벽하게 구현한 박물관과는 거리가 있지만, 인간박물관은 적어도 내가 본 인류학 박물관 가운데는 앞줄에 놓일만한 박물관이다. 프랑스의 박물관들은 대체로 프랑스어에 능숙하지 않은 관람자에게 불친절하다. 영어 가이드가 소략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인간박물관은 영어와 스페인어 오디오 가이드를 잘 갖춰놓았고, 설명 내용도 깊이 있고 훌륭하다. 관람 시에는 오디오 가이드 앱 다운로드를 추천한다.

1) Herman Lebovics and Gilles Boëtsch, “Biology and Culture at the reinvented Musée de l'Homme,” French Cultural Studies, Vol. 29(2), 2018, p.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