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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과잉확신 편향과 위험관리(이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1-16 10:02
조회
356

이윤 / 경찰관


□ 사후과잉확신 편향


이 글을 쓰는 지금, 키움과 SSG 사이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열리고 있다. 어제까지 시리즈 전적은 2:3. 아마 오늘이나 내일 밤이면 최종 승자가 가려질 것이다. 엊저녁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한 SSG를 보면서 ‘아무래도 SSG가 한 방이 있고 근성있게 승부하니 최후의 승자가 되겠구나.’라는 생각과 ‘그래도 키움에는 바람의 손자가 있고 선발진이 좋으니 최종 우승을 할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지금 내기를 한다면 키움에 천 원 정도 걸어볼 생각은 있다. 만 원까지 걸 확신은 없다.


이틀 후 점심시간을 상상해 보자. 야구 이야기를 화제로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아마도 밥알을 튕기며 이렇게 떠들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5차전을 봤는데, 키움은 수비가 약해. 실책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더라구. 그때 확신했지. 이번 우승은 SSG가 할 것이라고.’


출처 : Pixabay


이렇게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비해 더 예측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사후과잉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심리적 편향은 왜곡된 기억에 의한 잘못된 의사결정을 조장한다. 과거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나 세월호 참사 직후, 언론에 등장한 전문가가 ‘예견된 인재’라며 몇 가지 사고 원인을 제시하면서 ‘그것만 미리 조치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것도 사후과잉확신 편향이 발동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사고 원인 및 예방 조치 필요사항에 대한 진단도 사후과잉확신 편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 조사가 불충분하여 정보가 제한적임에도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사실만으로 벌써 책임지울 사람을 찾기 바쁘다. 이번 참사로 인한 전국민적 슬픔과 분노의 배출구도 필요하겠지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대비책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책임자 몇 명 처벌하고 파면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면 중대한 사회적 참사의 원인을 몇몇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끝나게 될 것이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된다. 지금 특수본이 수사를 하고 있지만, 수사는 범죄 사건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조사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와 별도로 독립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장기간 모든 자료와 증거를 면밀히 검토한 후, 새로 만들어야 할 것과 기존 체제 중 고쳐야 할 것을 파악하여 정비해야 한다.


 

□ 위험관리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위험관리 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험관리(risk management)와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는 다르다. 위험관리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고의 위험에 대해 식별, 평가, 대응방안 수립 등을 하는 사전적 개념이고, 위기관리는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할 때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운용하는 사후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위험발생의 방지 등)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1조(재난예방을 위한 안전조치)에서 위기인 ‘생명, 신체, 재산에 중대한 손해’와 ‘재난 발생’을 예방하기 위하여 ‘극도의 혼잡’과 ‘재난 발생의 위험이 높다고 인정되는 지역’이라는 위험 식별 및 평가 지표를 규정하였으므로 이 조항들은 위험 관리 영역에 속한다. 소방기본법 제16조의3(생활안전활동)에서 ‘방치하면 급박해질 우려있는 위험’도 마찬가지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 다중이 운집하여 위험하다는 신고가 있을 때 혼잡 정도를 평가하고 대응하는 것은 위험관리고, 참사 발생 후 현장 통제 및 사상자 응급조치, 후송은 위기관리다.


그런데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극도의 혼잡’을 단계별로 식별하고 평가하는 척도나 방법, 그리고 위험 인지 후 위기 발생 전까지의 구체적 행동요령이 제시된 지침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위험관리는 오로지 경찰관이나 공무원 개인의 판단과 재량에 맡겨져 있다. 위험관리에 실패한 책임을 물으려면 정해진 식별/평가 기준은 있는지, 징후가 있었음에도 인지 및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일 것이 예상되었는데 왜 인력을 더 배치하지 않았나’라며 비난하는 것은 사후과잉확신 편향일 수 있다.


참사 이후 언론과 행정 기관은 책임자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실무자든 관리자든 직책에 주어진 권한과 임무를 방기하거나 부적절하게 행사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만 몇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도로 종결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관리되지 않는 위험 속에서 불안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34조 제6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