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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상품권이 될 뻔했던 지역화폐(이재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0-19 10:01
조회
278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지역화폐 또는 지역사랑상품권은 원래 ‘고향’사랑상품권이 될 뻔했다.


 지난 2018년 즈음 정부의 지역화폐, 지역사랑상품권(명칭은 다르지만 하나의 정책이며 법적으로 두 명칭 다 써도 된다) 활성화를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면서 초기 관련 문서에 고향사랑상품권이란 명칭이 나타났다.


 이전부터 지역화폐 또는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불렸던 것을 갑자기 고향사랑상품권이란 명칭으로 대체하려니 적이 당황스러웠다.


 고향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지역=지방=고향’이라고 인식이 되니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슨 이유이건 중앙 중심적 사고가 깊숙이 자리 잡은 명칭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결국 지역사랑상품권이 관련 법률(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법)에 정식 명칭으로 올라갔다. 만일 고향사랑상품권으로 결정됐다면 현재 수많은 지자체에서 ‘왜 내 고향은 다른 곳인데 지금 사는 이곳에서 고향사랑상품권을 사용해야 하는가’라거나, ‘고향사랑상품권이라면 진짜 내 고향에서 사용해야하는가’라는 원성과 의문이 속출했을 것이다.


 


 출처-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이 소극을 기억에서 다시 꺼낸 이유는 최근 동향의 데자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론에 따르면, 내년부터 지역화폐 정부지원 예산은 전면 삭감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전통시장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은 올해 3조5,000억원인 발행규모를 4조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지역화폐는 원래 지자체가 각자 시행하던 고유 사업인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역경제 지원 차원에서 중앙정부가 지원을 해준 것’으로 ‘지자체가 지역경제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자체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적으로 통용되므로 내년에 증액해서 시행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지역화폐는 현재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0여 곳을 제외하고 모두 통용되고 있다.


 이 같은 방침의 배경에는 언론과 학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지역화폐 대체재=온누리상품권’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은 비슷해보여도 완전히 다르다.


 우선 사용범위와 사용처가 다르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범위) 전통시장 및 등록 상점가(사용처)에서 쓰인다. 지역화폐는 해당 지자체(범위)의 전통시장과 등록 상점가를 포함한 다양한 골목상권(사용처)에서 쓰인다. 이게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실 사례에서 보자.


 내가 만일 친절 공무원으로 선정돼 부상으로 온누리상품권을 받았다. 이 상품권은 시흥시 전통시장에서도 쓸 수 있지만 서울 광장시장에서도 쓸 수 있다. 만일 시흥화폐 시루로 받았다. 시루는 시흥시에서만 써야 하지만 전통시장 뿐 아니라 미장원, 식당, 동네마트 등에서 쓸 수 있다.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지난 2006년부터 중기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운영 중인 정책이다. 지역화폐는 지난 1996년부터 충북 괴산에서 시작해 대략 지난 2016~2018년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확산의 핵심계기는 ‘소비의 부가 지역에 남지 않고 밖으로 너무 빠져 나간다’(소비의 역외유출)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2018년 발표한 '지역소득 역외유출의 결정요인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경기·부산·대구·대전·광주·인천 등 7개 광역시도를 제외한 모든 지자체에서 소득이 역외로 유출되었다. 특히 전체 유출된 소득의 과반수 가까이는 서울로 유입 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의 역외유출률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였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소득유출 완화를 위해 지역화폐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렇게 두 정책은 핵심 목적이 다르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 전통시장 소상공인 활성화’이고 지역화폐는 ‘지역 내 전통시장을 포함한 골목상권 소상공인 활성화와 지역 소비의 역외유출 방지’이다.


 이렇다보니 지역화폐의 핵심 특성인 ‘역외유출 방지’와 ‘지역성’을 간과한 채 온누리상품권이 지역화폐의 대체재로 떠오른 것은 대체로 뜬금이 없다.


 역할이 이렇게 다름에도 대체재 논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고향사랑상품권 소극이 떠올려졌다. 그 때 느꼈던 중앙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결과물은 아닌가 하는. 앞서 산업연구원의 보고서에도 나타난 ‘집중’ 현상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10월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광의통화(유동성 현금)는 2,874조 원이다. 올해 유통될 지역화폐는 약 25조 원이다. 고작 한 모금의 지역화폐가 중앙으로 몰리는 소비의 길목을 지역으로 돌리며 목마른 지역경제에 숨통을 틔우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지역화폐의 시작은 소박했다. 지역의 자금은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지자지소'(地資地消)의 정신을 실천해보자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도구로 지역화폐는 역할을 다할 것이다.


 한편 지난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국감자료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전통시장의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비율은 61.6%에 머물렀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은 대체재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경북 포항시의 경우 포항사랑상품권이 도입되면 온누리상품권의 유통량이 하락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실제로는 유통량이 동반 상승한 결과를 나타냈다. 결국 소상공인 활성화와 역외유출 방지를 동시에 해결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