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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최정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1 09:47
조회
104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또 터졌다. 이번에는 민간인에 대한 사찰이다. 탄생 때부터 이 정권의 도덕성에 어떠한 기대도 걸기는 어려웠지만, 이렇게 실정법은 물론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본적인 가치까지 침해하는 이 정도 사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찰이 문제되었던 것은 이미 1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고, 그 내용은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충분히 알려졌으니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그 이후 정권의 대응이다. 증거인멸, 그리고 그 지시가 폭로되자 관련자에 대한 회유와 협박, 검찰을 동원한 사건의 축소․은폐, 이마저도 드러나자 이젠 민간인 사찰은 전 정권에서도 있었던 일이라고 강변하고 나선다. 가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이런 일들이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서글픈 것은 청와대의 이런 정치적 전술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총선을 앞두고 더 이상 여론의 악화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역공으로 보이는 청와대의 폭로 이후,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해 일반 국민들의 반감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여론 조사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러면 그렇지, 누구나 다 하는 일이었구만,’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지. 힘없는 사람들이 조심해야지, 뭐.’ 이런 식의 반응이랄까.

총선은 이제 며칠 앞이고, 아무리 몇몇 언론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가지고 있었다는 이전 정권에서 작성된 80%의 문건은 정상적인 경찰의 감찰활동에 의한 것이었다고 해명을 해도 이런 인상을 다시 지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총선 결과를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까지 청와대의 전략은 멋지게 들어맞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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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가면 쓴 시민들, 민간인 불법사찰 규탄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하지만, 선거의 결과와 현 정권의 불법행위는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사안이다. 물론 선거결과에 따라서 이 문제를 조사할 국회의 청문회가 열릴 수 있는지, 또 특검은 진행될 수 있는지, 나아가 설령 어떤 식의 조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얼마나 충실하게 될 것인지 하는 문제들이 크게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만 조사의 방법론일 뿐, 이와 같이 중요한 사안을 반드시 조사해야 하고 책임을 밝혀야 하며 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국회에서 하지 못한다면, 다음 정권에서, 아니면 그 다음 국회에서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감시는 권력의 한 속성이다. 권력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내고 그의 생각과 행적을 밝혀내며, 나아가 혹 있을 수 있는 그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은 대단히 달콤한 유혹일 것이다. 이런 모든 정보를 통해 정치적 비판의사를 통제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시를 당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자 공포이다. 보통 누군가가 얼마 전에 내가 한 일을 알고 있을 때에도 뭔가 묘한 불쾌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하물며 그 주체가 권력이라면 심정이 어떨까. 언제 어디서 불쑥 내 앞에 나타나, 혹은 내 뒤에서 갑자기 뒤통수라도 후려칠지 모르는 일이다. ‘당신, 언제 어디서 감히 어떤 분에 대해 이런 말을 했지’ 하면서 말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했다는 동향보고 사례를 보면 이런 일이 전혀 있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불법 사찰이 정치적인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를 엄격히 금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학생도 알 것같은 명백한 불법행위를 해 놓고도 이 정부는 ‘사죄’는 커녕 ‘사과’ 한 마디 없다. 오히려 이것은 지난 정권에서도 있었던 일이라고 큰 소리를 친다. 하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자신들도 ‘불법’사찰임을 알았다는 것 아닌가. 하기는 그랬으니 그렇게 대포폰까지 동원해서 증거를 인멸하고 관련자에 대한 입막음을 위해 현금과 직장까지 제공하려 했을 것이다.

원전에서 사고가 나도 담당자는 우선 사건을 은폐시키려 한다. 경찰이 초동 수사를 잘못해도 상급자에게 보고는 며칠이 지나 이루어진다. 아무리 현대가 ‘위험 사회’라지만, 이 정도면 가히 ‘위험 은폐 공화국’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이렇게 위험과 잘못을 은폐하고 슬쩍 넘어가는 것이 자기 몸보신에 좋다는 것은 그 동안의 권력자들에게서 배운 것일까.

여당의 한 비대위원은 “이 사안을 대통령이 몰랐다면 사과 정도로 끝날 수 있겠지만, 만약 알고 있었다면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 이 비대위원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것이 다만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몰랐다면, 대통령은 자신의 무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과 ‘동향’인 몇몇 탐관들이 조직의 기강도 무시하고 상급 수석실을 넘어 누군가에게 ‘직보’를 해댔으니 말이다. 만에 하나 알고 있었다면,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시민을 감시하는, 나아가 범죄행위를 은폐하고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