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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전략'과 맞아 떨어질 수 있는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최정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1 11:39
조회
12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지난 3월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 근절대책의 하나로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앞으로는 폭력학생에 대한 징계사항을 학생생활 기록부에 기재하고, 이를 졸업 후 5년 동안 보관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부의 방침에 대해 몇몇 일선 교육청은 이것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처분이거나 혹은 ‘이중처벌’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8월 초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의 교육부 지침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으며, 따라서 졸업 이전이라도 이러한 기록이 삭제될 수 있도록 하는 ‘중간삭제제도’와 같은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학교 내의 폭력을 방지 내지 감소시켜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것이 가해 학생에 대한 일방적인 처벌의 강화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아직 나이가 어린 탓도 있지만, 과도한 입시경쟁을 비롯한 학업의 부담이나 또래들과의 집단생활에서 오는 불가피한 갈등 등을 고려해보면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모든 책임이 가해 학생에게만 있다고 볼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어느 정도의 징계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것이 해당 학생의 장래 기회를 박탈하는 과도하고 ‘비교육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교육부의 방침은 다소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문제가 된 사건이 징계되었음이 당연히 전제로 되어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이 기록을 통하여 또 다른 징계가 될 수 있는 가능성, 곧 ‘이중처벌’의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기록 자체는 (이것이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한) 형벌의 성격을 갖지 않으므로, 처벌이 중복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침에서 드러나는 교육부의 의도는 학생부의 기재를 통하여 이것이 입시에 영향을 미치게 함으로써 폭력행위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부의 한 관료는 “입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으므로 이러한 기재는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높일 수 있고, 따라서 예방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스스로 이러한 기재가 본래의 징계와는 별도로 또 하나의 불이익한 (형벌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중처벌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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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배라 지적한 학생 생활도움카드.
사진은 교과부가 전국 학교에 보낸 것이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이러한 기재가 이른바 ‘문제학생’들을 원천적으로 교육 대상에서 제외하는 ‘배제전략’과 맞아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공식적인 형벌이 갖는 부정적인 영향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국가의 이러한 개입부터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낙인이론’에 의하면, 형벌과 같은 공적인 제재의 효과는 이러한 제재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리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 제재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안도하면서 피제재자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게 되고, 혹여나 그러한 범주에 들지 않도록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갖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형벌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앞으로 범죄행위를 하지 않게 되는 동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제재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외부의 평가가 달라지게 됨에 따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놓치게 되고, 더 나아가 이것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생각, 즉 ‘자기 정체성’을 달라지게 하여 ‘경력 범죄인’, 즉 상습범이 되는 길로 들어서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전과의 기록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낙인이란 사실, 바로 범죄기록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른 지위나 평가들을 압도해 버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가 제재를 기준으로 하여 사람들을 분리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형벌이 필요한 이유라고도 볼 수 있는 이 까닭은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것이 제재대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의 결속을 통해 그 사회의 (범죄)통제에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생겨난다. 이러한 범죄의 통제내지 감소전략은 ‘직업범죄인’으로 분류되는 소수의 정상사회로부터의 배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적어도 일정한 사람들의 범죄는 반복된다. 범죄통제 당국은 굳이 이것을 막으려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당연히 이것이 전체 범죄의 관리에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수의 범죄자들은 당국의 특별관리 대상이 된다. 이를 위해 다시 범죄기록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사실 전과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제도는 이와 같이 상습범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위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교육부가 이러한 정도의 배제전략까지 염두에 두고 생활부의 기재를 도입하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기재가 되기 시작하면 부분적으로라도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많은 학생들은 기재를 두려워하거나 꺼려하여 폭력행위에 가담하려 하지 않겠지만, 소수는 한 번 혹은 반복된 기재로 인해 진학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문제학생’, ‘폭력학생’, 나아가 ‘전과자’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기비하는 적어도 몇 년간은 기록에 의해 객관화될 것이고, 당사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족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낙인효과는 오직 극소수에 대한 것일 뿐이며, 심각한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법질서는 전체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어떠한 잘못을 했더라도 그에 합당한 범위에서 처벌을 받을 수 있을 뿐, 이를 넘어서는 과도한 제재는 책임주의와 비례의 원칙에 벗어나는 위법한 것이 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