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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논밭 다 없앨까?(이광조 CBS PD)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5:16
조회
33

이광조/ CBS PD



‘에이,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짓든지 해야지.’ 대도시에 사는 직장인이면 누구나 한번쯤 중얼거렸을 법한 말이다.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가는 ‘농사는 아무나 짓나’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지만 농사를 깔보는 것 같은 이런 푸념 속에는 그래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농촌이 아닐까’라는 원초적인 귀소본능이 깔려 있는 듯하다.

도시 사람들 중에는 홧김에 한번 내뱉는 정도가 아니라 진지하게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개중에는 농업을 벤처사업으로 생각해 대박의 꿈을 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생명을 좀먹는 우리시대의 천박한 시장주의와 도시문명을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소박한 삶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농촌에 자리를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족들끼리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자녀가 있는 경우 마음이 있더라도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포기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이럴 때 여윳돈이 있으면 우선 농촌에 땅이라도 사두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 싶다. 당장 농사를 짓진 못해도 노후에 기댈 곳을 마련하기 위해 농지도 좀 사고 아담한 전원주택을 지을 대지도 좀 사두고, 형편이 된다면 당장 그곳에 별장이라도 짓고 주말마다 내려가고 싶을 것 같다.

혹자는 이런 걸 두고 부자놀음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농촌이 갈수록 고령화되고 공동화되는 현실에서 이렇게라도 도시 사람들이 농촌과 인연을 맺고 수시로 다니게 된다면 그나마 농촌에 활력이 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과적으로 도시를 떠나지 못하더라도 전원생활에 대한 욕구를 갖고 그것을 위해 형편이 될 때 땅을 사두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혹시 개발이 진행되어 농지가격이 급등하면 개발이익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면 그만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지법은 이런 정신을 정확히 담고 있다.

물론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농지를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타인의 명의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법 수단을 동원해 투기를 일삼는 사람들이야 염치라고는 모르는 몇몇 투기꾼들일 테고 공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사회적 위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자들이라면 법을 어기면서까지 농촌에서 부동산 투기를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순진한 아니 한심한 현실인식이었던가.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정을 주고받는 일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농촌의 유기농가와 도시민들이 직거래를 하는 생활협동조합도 있고 요즘 지자체마다 유행이 된 농촌관광, 도시와 농촌 학교 사이의 학생 교환 프로그램, 주말농장 등등. 그 중에서도 도농교류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도시민들이 농촌이 우리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기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쌀 소득보전 직불제는 바로 우리사회의 이런 공감대가 제도적으로 표현된 것에 다름 아니다. 마음으로만 고맙다고 하기에는 산업과 도시 중심의 무역자유화로 인해 발생하는 농촌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쌀 소득보전 직불제에서 사단이 생겼다. ‘땅을 사랑하고 농촌을 사랑하는’ 고위공직자와 변호사, 교수,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들이 ‘귀농을 위해’, 혹은 ‘은퇴 후 전원생활을 위해’ 농지를 사는데 그치지 않고 땀 흘려 농사짓는 사람들이 받아야할 지원금을 가로챈 것이다. 논에서 피 하나 뽑지 않은 사람이 능청스럽게도 국민들로부터 ‘농사짓느라 고생 많았습니다’라는 인사를 받아온 것이다. 그것도 현금과 함께 말이다. 참 염치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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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역 농민과 한-미 에프티에이저지 대전충남 운동본부 등 사회단체 소속 회원 50여명이
지난 28일 오전 대전 중구 충남도청 정문 앞에 벼 500포대를 실은 7대의 트럭을 몰고와
쌀 직불금을 불법 수령한 공무원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사건이 터지자마자 언론에서는 부동산 투기가 주범이라는 분석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일정 기간 직불금을 받으면 실경작자로 인정되어 양도세를 면제받기 때문에 그까짓 몇 십만 원쯤은 아무것도 아닌 높으신 양반들이 악착같이 직불금을 받아왔다는 얘기다. 당연히 정치권에서는 뜨거운 책임공방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제도의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성도 나왔고 여야가 사이좋게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 시켰을 만큼 의도는 좋았는데 예기치 못했던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정치권의 평가가 뒤따랐다. 진상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도 하기로 했고 불법이 발견될 경우 엄정히 처리하겠다는 다짐도 들린다.

그런데 말이다. 취지는 좋았는데 미처 제도 운영상의 허점을 예견하지 못해 이런 부작용이 생긴 걸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관련자들을 엄하게 꾸짖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글쎄, 나는 우선 법안을 만든 정치인들의 그 선의부터가 미덥지가 않다. 왜냐고? 투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방안은 제쳐두고 도시민의 농지 구입을 광범위하게 허용한 채 거기에다 그들이 손쉽게 직불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애시 당초 도시 사람들, 그 중에서도 농촌에 땅을 살만한 사람들의 편의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어렵다.

‘돈 있는 사람들이 농지를 많이 사서 좋은 조건에 소작을 주면 그게 농촌을 위하는 것 아닌가.’ 그 분들 머릿속에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제도를 만든 사람들이나 농지를 산 사람들이나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제도를 만들고 농지를 산 사람들이 개발계획을 만들 수도 있고 그 정보를 먼저 알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도 이 분들에게는 별다른 고민거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들에게 농촌은 어쩌면 뜨거운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어르고 달래야 하는 골치 아픈 시혜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임자 없는 돈 퍼주는데 나도 주머니 하나 꽤 차는 게 뭐 그리 나쁜 일이라고...’

농촌과 농업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땅을 사랑하고 농촌을 사랑하는’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동평리에서 ‘골프장’이라는 공익시설을 만들기 위해 대대로 그곳에서 농사짓던 농민들에게 땅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른바 토지 강제수용제도다. 민주당이건 한나라당이건 참여정부건 실용정부건 이 어이없는 토지 강제수용 제도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대한민국의 엘리트로 대접받는 그들에게 농지는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사서 농민들에게 싸게 소작을 주거나 필요에 따라 빼앗아도 무방한 그런 대상인가? 여기서 농촌에 대한 고마움이나 존중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어쩌면 쌀 소득보전 직불제는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성가시기만한 농촌, 세금만 축내는 농촌, 이참에 아예 확 없애버리면 어떨까. 농지 사고파는데 괜한 규제 받지 않게 절대농지니 뭐니 하는 규제 다 풀어버리고 농민들도 땅 장사 좀 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