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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대한민국인가?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09
조회
160

이광조/ CBS PD



살면서 이렇게 참담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또 겪을까 싶다.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형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는데,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는 승무원들의 지시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 해경이 현장에 출동해서 구조 활동을 벌이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접하고 이렇게 빨리 구조가 이뤄졌나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이렇게 허술하고 허망하게 배가 가라앉는 걸 방관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탓이다. ‘숨쉬기조차 미안한 4월’이라는 시인의 흐느낌에 속절없이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참사의 새로운 진상이 드러날 때마다 눈물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쌓이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분노는 커져 간다.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원인으로 지적되는 안전 불감증과 책임자들의 직업윤리 부재는 이번에도 고스란히 되풀이되었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역대 최악이라고 할만하다. 노후 선박의 선령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한 정부의 안이한 규제완화, 같은 패거리들끼리 적당히 눈 감고 지나친 안전검사, 승객들의 생명을 팽개치고 자신들의 목숨만 건사한 승무원들, 허둥대다 승객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책임 모면에만 급급한 해경,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구조 활동을 격려한답시고 현장에 내려가 구조활동에 차질만 빚은 고위공무원들, 사과에는 인색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대통령까지. 사고의 배경과 원인, 대처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구석에서도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곳을 발견할 수가 없다.

신생국가도 아니고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오늘이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국가의 존재 이유 자체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대책은 과연 무엇일까? 선장을 살인자로 규정해 처벌하고 안전과 관련된 직종의 직업윤리를 강조한다고 해서, 혹은 청와대나 국무총리실에 재난컨트롤타워를 설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답답하고 무기력하기만 한 상태에서 국가정보원이 지난 대선 당시 국군사이버 사령부에 지원한 예산이 인터넷 댓글작업을 벌인 사이버심리전단 요원들에게 정보활동비 명목으로 전달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월호 참사를 낳은 원인들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건 결국 공권력의 사유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국가안보를 위해 복무해야할 국가정보원이 특정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이른바 ‘심리전’을 벌이고 댓글작업에 세금을 펑펑 써댔다. 국정원만으로는 모자라 국군사이버사령부까지 여기에 동원됐고 심리전단 요원들에게는 그 대가로 수당을 지급했다. 이뿐인가.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리고 여기저기에 낙하산을 투하했고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단체들에게 보조금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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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 위치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떠난 후 조화는 합동분향소 밖으로 내보내 졌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국가공권력과 공조직이 이렇게 특정 정치세력의 사유물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직업윤리에 투철한 인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공권력을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움직일 때 공조직에서는 위만 바라보는 풍토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생떼 같은 자식들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는 부모들이 있는 자리에서 ‘장관님 오셨다’며 의전을 먼저 챙기고 잠수사들의 구조작업을 지연시킨 공무원들을 보라.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제 1의 원칙이 되면 직업윤리 같은 건 세상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의 외침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자들과 해바라기들이 장악한 공조직에서 연고주의와 이너서클이 번성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해경과 해양구조협회의 유착 의혹, 선박의 안전검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선급과 해운업체들 사이의 유착 의혹은 특수한 분야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권력이 사유화된 상황에서 예산의 효율적인 배분과 집행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계에서 열 번째로 많은 국방비를 사용하면서도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일에는 이처럼 무능한 게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 아닌가. 안보가 별 건가? 안보위협은 북한으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다.

사유화된 권력은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아래로 전가한다. 이윤만을 앞세운 해운업체의 탐욕과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의 직업의식 부재, 해경의 부실한 초동대응. 모두 비판 받고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통제되고 개선되지 않은 건 누구의 책임인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시장의 탐욕을 제어하기는커녕 규제완화라는 선동적인 구호로 욕망의 족쇄를 풀어준 건 누구 책임인가? 선박 안전검사를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은 건 누구 책임인가? 해난사고 발생 시 해경과 해군이 신속하게 대처해 소중한 인명을 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은 건 또 누구 책임인가? 모든 게 한꺼번에 개선될 수는 없겠지만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던,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던 숱한 계기들이 모두 허망하게 지나가버린 건 누구의 책임인가? 그러고서 하는 일이 비판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해 언론대응지침을 만들고 분향소 설치를 축소하고 대통령의 이미지 연출에 매달린다. 그렇게 해서 여론의 비판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국민을 계도와 조종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공직사회의 대처를 보면서 지금이 70년대인지 헛갈릴 지경이다.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