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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 논란 (최정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19
조회
261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여야가 합의하여 개정하기로 한 법률안에 대해서 대통령이 못마땅해 하며 거부권 행사까지 언급했는데, 여당 내부에서 다시 재의결 가능성이 거론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여당이 대통령에 맞서기로 결심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잘 알다시피, 사안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에 관한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는 아직도 그 활동을 개시조차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구의 장관급인 위원장이 길거리에서 농성을 한 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정부는 자신의 의지가 관철된 시행령을 그대로 제정하였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타개를 시도한 야당이 이참에 아예 정부의 과도한 행정입법 관행을 제어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여당의 동의를 얻어낸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치적 꼼수가 있기는 했다. 청와대와 여당으로서는 다급한 공무원 연금 개혁법안에 합의해 주는 대신 앞으로 법률의 취지에 맞지 않는 행정입법에 대해서는 국회가 수정요구를 할 수 있다는 반대급부를 얻어낸 셈인데, 그러나 사안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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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뉴시스


법률에서는 ‘법정주의(法定主義)’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형식적 법률, 그러니까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통해서만 이를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하는데, 이를 반대로 보면 행정부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과 같은 행정입법을 통해서는 이를 다룰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죄형법정주의’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범죄와 형벌은 국민의 권리를 직접 침해하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논의를 통해서만 만들어지거나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이고, 여기에 집행부의 의사가 개입하는 것은 권력의 남용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설령 법률에서 범죄규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명령에 위임했다 하더라도 그 범위를 넘어서는 하위입법의 규정은 죄형법정주의 위반으로 위헌무효가 된다.

또 굳이 법정주의까지 이르지 않는 경우라도 일반적인 위임입법의 한계, 즉 상위법의 위임을 받은 하위법은 그 모법의 취지와 목적을 벗어날 수 없다는 원칙이 당연히 작동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이미 당연한 내용을 다만 국회의 권한을 좀 더 분명히 하는 형태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즉 현재의 국회법이 제98조의2 제3항에서 “상임위원회는 위원회 또는 상설소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회하여 그 소관중앙행정기관이 제출한 대통령령·총리령 및 부령에 대하여 법률에의 위반여부 등을 검토하여 당해 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관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것을 대통령령 등이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관련 상임위원회가 그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고 개정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처럼, 입법권은 국회의 고유한 권한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행정부의 막대한 권력을 견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이 요청하는 권력분립의 원칙이다. 아무리 현대사회에서 정부가 법률을 직접 제안하는 정부입법이 그 양과 질 면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고, 특히 거의 언제나 여소야대라는 일방적 정치지형의 지원을 받아 견제받지 않은 권력을 행사해온 우리 행정부라 하더라도, 국회가 나름대로 합의해 제정한 법률의 내용을 시행령의 명목으로 왜곡하려는 발상 또는 그러한 관행은 그야말로 초법적, 위헌적인 것이다. 국회가 대표하고 있는 국민 또는 인민은 다양한 정치세력과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이 일정한 합의에 이르려면 서로를 설득하려는 부단한 노력과 이를 위한 얼마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사회개혁 정책만이 옳고, 왜 국회는 이러한 합리적인 정책을 입법적 지원을 통해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주지 않느냐는 식의 대통령의 인식은 그래서 위험해 보인다. 일부의 국민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개혁방향을 지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상당수의 국민은 이를 우려섞인 눈으로 혹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대통령은 귀찮아 할 것이 아니라, 겸허한 마음으로 새겨들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국회를 통한 국민의 주권행사이며, 제대로 된 ‘비정상의 정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