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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사태’, 정치인의 인권을 생각해 본다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25
조회
21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흔히 정치인이라고 하면 ‘여의도 정치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입법을 책임지고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을 지칭한다. 그런데 최근 이른바 ‘유승민 사태’를 보면서, 정치인의 인권은 과연 성립하는가, 성립한다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띠게 되는가, 하는 다소 생뚱맞다고 생각될 수 있는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최근 국회의 입법권과 대통령의 시행령 간의 ‘헌법적 지위’를 다툰다는 빌미로 터무니없게도 여당의 원내대표를 희생양으로 하는 여당과 청와대 간에 이전투구의 권력다툼이 한창이다. 상식으로는 당연히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이 대통령의 시행령보다 상위의 권위를 지닌 것 같은데, 그게 아닌가? 그래서 헌법을 챙겨보게 되었다.


헌법 제75조에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헌법 제76조의 제①항과 ②항에 전시를 비롯한 아주 긴급한 재난 등의 경우에 대통령이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해 놓고서는, 제③항에 “대통령은 제1항과 제2항의 처분 또는 명령을 한 때에는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하여 그 승인을 얻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고, 제④항에는 “만약 제3항의 승인을 얻지 못한 때에는 그 처분 또는 명령은 그때부터 효력을 상실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헌법의 내용을 보면, 적어도 입법권의 권한은 철저하게 그리고 최종적으로 국회에 속한 것이고, 따라서 입법권에 준하는 대통령령을 발하는 대통령의 권한마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이라는 단서에 따라 행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의 행정권을 발휘하기 위한 시행령을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의 “구체적인 범위”를 넘어서서 발하여 시행한 것이 예사였던 모양이다. 이야말로 위헌이 아닌가, 그래서 그 위헌의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시행령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한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새로운 법률을 여야가 합의하여 제정했다.


그런데 그 법률이 현직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전에 그가 국회의원 시절에 발의한 적이 있는데도, 심지어 대통령의 입장에서 긴급하게 요구된다고 하는 공무원연금법을 포기해도 좋으니 그 법률만은 안 된다는 취지의 내용을 여당 지도부에게 알렸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여야가 합의하여 이른바 ‘대통령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그래서 대통령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되지도 않는 법률’을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그와 같은 여야 합의에 원내사령탑인 유승민 국회의원이 앞장섰으니 여당에 속한 대통령으로서 그런 ‘배신’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온 국민이 지켜보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내놓고 한 것이다.


AKR20150707096651001_02_i.jpg사진 출처 - 연합뉴스


헌법재판소 판관들이 어떤 견해들을 가졌는지, 그리고 헌법학 교수들이 어떤 견해들을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수십 년간 철학에 종사해 온 본인으로서는 이번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이 어째서 위헌인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거니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그 유명한 말은 이런 경우에 쓰라고 만들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적반하장의 반(反)헌법적인 대통령의 입장이 우선 문제거니와 그런 반(反)헌법적인 자신의 입장을 거슬렀다고 해서 엄연히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한에 따라 오히려 헌법을 제대로 준수하도록 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데 ‘앞장섰다’고 해서 자신의 권력을 추종하는 자들을 내세워 원내대표를 압박하여 ‘꼬리를 내리고’ 자진 사퇴를 하도록 강요하는 ‘몽니’를 부리고 있으니, 양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어찌 일단 개탄할 일이 아닌가.


그래서 이건 정치인의 인권을 짓밟는 짓이라고 여겨졌던 것이고, ‘엉뚱하게도’ 과연 정치인의 인권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여겨지는 <유엔인권선언>의 내용을 들춰 보게 된다. 살펴보니 정치인의 인권에 관련된다 싶은 다음과 같은 조항들이 눈에 띈다.



제5조, “어느 누구도 고문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혹은 수치심을 주는 처분 혹은 처벌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제21조 3항, “인민의 의지는 정부가 갖는 권위의 기초다. 이는 보편 평등한 투표에 의해 행해지는 그리고 비밀 투표 혹은 그에 준하는 자유로운 투표 절차에 의해 실시되는 주기적이고 성실한 선거로 표출되어야 할 것이다.”
제29조 1항,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고 충분하게 발달시키는 것이 가능한 공동체에 대해 의무를 갖는다.”

제5조에 따르면, 정치인이라고 해서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혹은 수치심을 주는 처분 혹은 처벌”을 그 어떤 권력인 또는 권력집단에 의해 강요받아서는 그 인권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만약 이를 무시하는 정치집단이 있다면, 그 정치집단은 반(反)인권적인 집단으로서, 흔히 말하는 조폭 집단이나 파쇼 집단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제29조 1항에 따르면, 정치인이라고 해서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고 충분하게 발달시키는 것이 가능한 공동체에 대해 의무”를 함부로 저버려서는 안 된다. 아니, 정치인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바로 이러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최종 최선의 삶의 의미로 삼아야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만약 자신의 자유롭고 충분한 인격의 발달을 전제로 하지 않는 공동체, 즉 그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유롭고 충분한 인격의 발달을 포기해야 하는 그런 공동체라면 그 공동체는 특히 정치인의 입장에 선 경우 의무 처음부터 아예 의무 준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들 조항에 따른 정치인의 인권에 대해 토대가 되는 것은 제21조 3항이다. 정부가 갖는 권위, 따라서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갖는 권위는 오로지 인민의 의지에 입각할 경우에만 성립한다. 그런데 그 인민의 의지는 정부나 대통령의 권위뿐만 아니라 국회와 국회의원의 권위에 대해서도 기초가 된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정치인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인민의 의지가 대표적으로 표출된 결과이다. 정치인에 대한 부당한 억압과 탄압은 당연히 인민의 의지에 대한 부당한 억압이고 탄압이다. 자신을 통해 표출되는 인민의 의지를 부당하게 억압당하는 한에 있어서 정치인의 인권은 제대로 설립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인권을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인간인 한에서 기본적으로 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각종 권리라 생각한다. 그런 우리의 생각은 당연히 옳은 것이고 실천적으로 더욱 굳건하게 발휘되어야 한다. 하지만, 각자는 자신이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그 나름의 존재가치를 특수하게 구체적으로 형성하게 된다. 각자가 추구하여 형성해 온 존재가치가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여 형성한 특수한 존재가치들을 훼손하거나 저해하지 않는 한, 각자의 특수한 존재가치는 보호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욱 진작시켜 나갈 수 있도록 사회나 국가가 앞장서야 한다.


하물며 정치인이 지닌 특수한 존재가치는 원칙상 더욱 더 그러하다. 정치인은 자기 자신보다는 국가 공동체의 가치와 국가 공동체에 속한 국민들의 가치를 더욱 더 높이기 위해 헌신하는 인물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가치는 근본적으로 국가 공동체의 존재가치를 향상시키고 발달시키는 데서 성립한다. 그러한 정치인의 특수한 존재가치를 그 해당 정치인이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헌법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렇게 노력했다는 이유로 강압적으로 억압한다거나 자신의 공공을 위한 신념을 버리고 왜곡된 정치권력에 영합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함으로써 인격적인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의 인권을 근본적으로 짓밟는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정치인에게도 인권이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특수한 인권이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특수한 인권이야말로 국가 공동체를 위한 헌신에 의거한 인권이다. 따라서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의 인권을 내세우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그 어떤 정치집단의 논리로써도 정치인의 인권을 억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차제에 제발 ‘정치공학’ 운운하는, 반(反)인권적인 정치놀음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이 글은 2015년 7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