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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설마 백범을 건드리지는 않겠지요(박록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1-13 11:33
조회
285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최근 중앙경찰학교와 경찰대학을 둘러볼 일이 생겼습니다. 경찰에 정식으로 입직하기 전 교육을 받는 경찰교육기관들입니다. 학교 본관 1층에 백범 김구 선생의 흉상이 놓여 있습니다. 경찰대학 도서관의 이름은 아예 ‘김구 도서관’이기도 합니다. 공부하며 생활하는 예비경찰들로서는 물처럼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지요.


출처:KNPU


백범은 1919년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을 맡았으니 대한민국 경찰의 시작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1923년에 내무총장에 취임한 뒤 임시정부 산하 상해 교민단에 교민사회 치안유지와 일제 밀정 색출 등의 임무를 맡은 의경대를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1925년 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직 탄핵 이후 임시정부의 혼란기인 1932년 스스로 의경대장을 직접 맡기까지 했습니다. 해방 이후인 1947년에는 경찰교양지 ‘민주경찰’ 창간호에 ‘국민의 경찰이 되소서’라는 휘호를 남겼고 ‘자주독립과 민주경찰’이라는 제목의 축사를 직접 쓰기도 했습니다.


<경찰청에 설치된 백범 김구 선생 흉상> 출처: 연합뉴스


실제 일제에서 해방된 이후 경찰의 현실은 많이 달랐습니다. 미군정 기간 전체 2만 5천명의 경찰관 중 일제의 경찰 출신이 5천여 명으로 전체 20%를 차지했습니다. 독립투사를 붙잡고 고문하던 악명 높은 노덕술도 일제 경찰 출신이었죠. 이들이 일제에 이어 미군정에서, 또 이승만 정부 이후에 이르기까지 경찰 업무를 해온 셈입니다.


백범을 소환하고 강조해서라도 경찰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인 민생, 민주, 인권 경찰의 정신을 일깨워야 할 이유가 명백합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중 우리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 첫 손에 꼽히는 백범을 일컬어 경찰은 ‘제1호 민주경찰’이라는 표현도 종종 쓰곤 하지요.


그런데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미 이영훈 교수 등 ‘반일종족주의’라는 민족주의를 폄훼하는 일제 식민사관을 닮은 주장을 일컫는 극우 학자들을 중심으로 ‘김구는 테러리스트’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해왔습니다. 이 교수는 ‘김구의 유령이 이 나라 상공을 배회하고 있다’고 하면서 ‘몰(沒)역사와 반(反)근대의 저(低)지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해방 이후 테러의 배후라고 얘기했습니다.


출처: 제주일보


육사에 놓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치워지는 세상이고, 대한민국 군대의 시작이 독립군을 양성한 신흥무관학교가 아니라 독립군을 탄압하던 친일 인사와 일본육사 출신 등을 중심으로 꾸려진 조선국방경비대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세상입니다. 경찰에서 백범을 끄집어내 효창동 백범기념관으로 돌려보내는 등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백범이야 어느 누구보다 반공에 철저한 보수적 정치인의 상징과도 같은 이이기에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좀 걸리는 부분은 백범은 민족주의에 대한 철저한 신념이 있었기에 미국과 일본, 소련 그 어떤 외세의 지배 역시 견결히 반대한, 즉 현재적 관점에서 보기에 따라 ‘반미주의자’로 매도할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국가의 이익, 국민의 이익보다 미국의 입장과 이해에 철저히 발맞추는 과정에서, 또 뉴라이트 세력들이 원체 득세하는 정부에서 홍범도를 버리듯, 백범을 버리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기우에 가까운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겨울을 향해 가는 계절, 쓸데없는 걱정까지 함께 깊어지는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