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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표류하는 헌법 가치…언론자유지수, 불명예 신기록 경신할까(박록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9-25 12:03
조회
115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출처 - 위키백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각 부처 차관 임명자들에게 “나한테 충성하지 말고, 헌법 정신에 충성하라”고 한 말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진의와 배경을 다 떠나서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헌법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 울림은 조금 달랐다. 10년 전 검사 시절 국회 국감장에서 던져 그를 스타로 만들었던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란 말을 떠올리게 했기에 더욱 귀에 쏙 들어왔다.


주권재민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통한 질서의 확립은 헌법적 가치의 요체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모여 조화롭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근거는 모두 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 제21조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제21조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 한다’고 더 구체적으로 규정했음은 물론이다. 윤 대통령이 고위 공무원들에게 강조했던 그 헌법정신은 아마도 윤 대통령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기도 했을 테다. 그 헌법 가치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



출처 - 아트인사이트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 가장 공신력 있는 지표는 세계 언론자유지수다. 국경없는기자회가 2002년 조사, 발표를 시작했다. 세계 180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 명칭 그대로 각 국가들의 언론 및 표현의 자유 정도를 드러내는 대표적 지수로 통용된다. 특히 언론 자유의 중요성 자체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등수 매기는 데 익숙한 한국사회에서 더더욱 주목을 받는다. 매년 4월말 또는 5월 초순 발표되는 언론자유지수 순위 변동은 늘 그맘때 우리 언론에서 단골 뉴스로 다뤄져왔음은 물론이다.


올해 언론자유지수는 지난해 43위보다 4계단 하락한 47위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출근길 약식 문답, ‘도어스테핑’을 도입하며 언론과 소통을 꾀하긴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사실상 영구 중단됐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과 대면하는 일은 사실상 없어진 것과 다름없게 됐고, 신년 기자회견 역시 전체 기자들을 만나는 대신 특정 언론과 인터뷰로 대체되고 말았다.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 이후 언론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언론자유지수 하락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에 대한 필연적 결과로 해석된다.


출처 - 미디어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문제는 2024년 언론자유지수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69위,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70위가 최하위 기록이었다. 불명예 신기록을 경신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최근 불과 두세 달 사이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서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강행했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KBS 이사회 의장 등을 모두 해임시켰다. 현역 기자들 85%의 반대 의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명된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은 가짜뉴스 생산 언론사의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주장하면서 폐간시킬 수 있다는 일성을 내놓았다. 나아가 대장동 관련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녹취록 관련해서는 "가짜뉴스에 그치는 게 아니라 중대범죄 행위, 즉 국기문란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여당은 관련 내용을 보도한 기자 6명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에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서울시 역시 뉴스타파 제재 검토에 들어갔다. 국민의힘도 8일 ‘대선 공작 게이트 진상조사단’을 발족했다. 그리고 검찰은 15일 뉴스타파와 JTBC 및 기자의 집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출처 - 민플러스


차마 대명한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일들이 숨쉴 틈 없이 몰아치고 있다. 무엇보다 직접적 탄압을 받는 언론으로서는 공포와 두려움을 충분히 느낄 만하기에 위축 효과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 한다. 차라리 1980년대였다면, 군사독재정권이었다면 국민이 맞서 싸우는 식으로 대응하기라도 할 텐데 내년 총선을 앞둔 야당은 정치적 셈법에만 바쁘고, 시민들은 몇 년 전 정치적 혼란을 겪었던 탄핵 등을 요구하기에 부담스러워만 하고 있다.


제 목소리를 내는 이는 없고 낼 수 없는 환경은 커져가니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의 급전직하는 불을 보듯 뻔하게 됐다. 하지만 언론자유지수 등수는 그저 현상과 결과가 되는 숫자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 헌법가치의 붕괴에 있다는 사실이다. 1년 뒤건 4년 뒤건 나중에 이를 복원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사회적 에너지를 들여야 할까 그것이 진짜 우려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