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석미화(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경찰관들은 왜 수갑을 반납하는가?(이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9-22 15:43
조회
126

이윤/ 경찰관


 20. 9. 11. 경찰 수사관들이 ‘수갑반납 퍼포먼스’를 했다. 8. 7. 입법 예고된 개정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대통령령 안에 반발하는 무언의 의사표시다. 속어로 은팔찌라고도 하는 수갑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형사들이 범인을 검거한 후 한 손으로 멋지게 팔목에 채우며 ‘당신은 변호인 선임권이 있고 어쩌구’하는 경찰 장구다. 명절날 어린 조카들이나 중학교 진로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묵직하고 반짝이는 팔찌를 한 번씩 채워주면 참 좋아한다.


 수갑은 형사의 상징이다. 수갑을 반납하겠다는 것은 형사를 그만두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퍼포먼스가 실제 수사업무를 보이콧하는 것과 연결될 가능성은 없다. 9년 전 형소법 개정 상황에서 수갑반납 퍼포먼스가 있은 후에도 몇몇 수사 부서를 떠난 분들 외에는 수사관들의 대대적인 업무 거부는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퍼포먼스에 동참하지 못한 나로서는 감히 수갑 반납하는 분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대통령령 제정안을 접하고 들었던 생각과 연결시키자면, 우리는 이제 이렇게는 수사업무를 못하겠으니 그냥 검사들이 수사할 사건 다 가져가서 하라는 심정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대통령령 안을 들여다보면 개정 형소법과 검찰청법의 취지가 무색하게 ①형소법 대통령령 주관기관을 법무부 단독으로 하여 해석과 변경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였고, ②검사 직접수사 범위를 매우 넓게 인정하였으며, ③경찰 불기소 결정 사건에 대해 검사는 재수사 요청 기간인 90일이 지난 후에도 언제든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하였다. 검찰개혁 중 수사권조정의 핵심은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사가, 재판은 판사가’로 요약할 수 있다. ②와 ③은 검찰개혁의 취지에 반한다. ②는 검사가 앞으로도 계속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모든 사건으로 직접수사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하며, ③은 경찰에 대한 검사의 지휘권과 통제권을 유지하려는 내용 중 일부다. ①은 ②와 ③이 가능하도록 조문을 해석해주는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검사는 직접수사 뿐만 아니라 경찰 수사도 지휘해왔다. 그런데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휘권만 누렸을 뿐 그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책임지지 않았다. 가령 익산 약촌 오거리 사건이나 이춘재 사건 등에서 초기 수사가 잘못되어 무고한 사람이 옥살이를 한 책임은 수사를 지휘한 검사에게 있다. 법적으로 경찰은 검사가 지휘한 대로 했을 뿐이다. 지휘를 실질적으로는 하지 않았으니 책임이 없다고 변명한다면 직무유기를 인정하는 셈이다. 그런데 항상 경찰만이 ‘얼빠진’, ‘넋 나간’ 등의 모욕적인 비난을 오롯이 받아내며 책임을 진다.


 검사들이 앞으로도 계속 경찰 수사를 지휘해야 하는 이유로 경찰 수사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70년간 자신들이 지휘를 제대로 하지 못해 수사역량이 향상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제 얼굴에 침 뱉기다. 이제부터는 경찰이 좀 더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독립적인 권한을 주고, 그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데, 그렇게도 경찰의 손을 놓기 싫은 것일까? 짝사랑이 심하면 스토킹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차라리 경찰에서 수사업무를 떼어 모두 검사에게 주는 것은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고소/고발사건은 모두 검찰청에서 접수받아 수사하면 되니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112신고 사건은 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관이 현장에서 급박한 위험요소만 제거한 후 만일 범죄가 있었거나 진행 중이라고 판단되면 그 사건을 관할 검찰청에 연락하여 인계하면 된다. 늦게 도착한 책임은 고스란히 검찰 몫이다. 지명수배나 검거된 수배자 호송업무도 당연히 검찰 업무다. 시켜먹을 사법경찰관리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을 검찰이 하게 되니 인력구조를 변화시켜 13만 경찰 중 수사 인력 정원 2만5천 명을 검찰에 주어 현재 1만 명 정도인 검찰을 3만5천 명의 조직으로 확대시켜 준다. 검찰은 거대 조직이 되어 친히 수사부터 기소까지 담당하는 막강 파워를 유지함으로써 정치인부터 주취자까지 누구라도 범죄를 저지르면 법망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정의사회를 구현한다.


 평생 경찰에서 수사 쪽 일만 하던 사람이 이런 상상한다면 욕먹을 일이긴 하지만 오죽 답답하면 이럴까. 그렇게까지 수사를 하고 싶으면 차라리 시켜먹을 생각하지 말고 모두 가져가 버리라는 마음을 경찰관들이 수갑 반납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형소법 개정 이후 7개월 이상 법무부와 행정안전부가 협의를 계속하여 대통령령에 반영하였음에도 그 결과가 실망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면 검찰조직의 힘이 역시 대단함을 느낀다. 추미애 장관은 제정안에 깊이 신경 쓰지 못했을 것이다. 검찰개혁 추진자인 추 장관이지만 자식문제로 야당과 언론에 의해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조국 전 장관과 추 장관의 공통점은 공수처 설치, 수사권 조정, 검찰인사제도 정비, 법무부 탈 검찰화를 내용으로 하는 검찰개혁 추진자라는 점이다. 이 두 사람을 낙마시켜 검찰개혁을 원점으로 되돌리거나, 정권이 교체될 때까지 최대한 개혁을 지연시키려는 사람들이 배후에 있지 않을까 하는 몹쓸 음모론적 상상까지 하게 된다. 상상이 현실화 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마지막으로 수갑 반납하신 분들에게, 마음 부담이 컸을 텐데도 행동으로 옮긴 그 용기에 감사드리고, 동참하지 못한 미안함을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