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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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잡기, 정권 의지에 달렸다 (경향신문, 2017.08.2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3:04
조회
710

사인은 질식사였다. 폭발이 있었지만 한동안 숨을 쉴 수 있었다. 안전장구만 제대로 갖췄거나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피할 곳을 찾을 수 있었다면 노동자들은 그렇게 어이없게 죽지 않았을 게다. 지난 일요일, 경남 창원 진해의 STX조선해양에서 건조 중인 화물운반선에서 도장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비정규 노동자 네 명의 죽음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인명은 재천이란다. 가끔 허망한 죽음을 보면 그리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다는 말은 반쯤만 맞는 말이다. 요즘 평균 수명은 남성 79세, 여성 85세지만, 1980년 평균 수명은 남성 62세, 여성 70세였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은 하늘이 아닌 사람의 몫이었다. 의학의 발전, 양질의 영양공급, 결국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하는 데 쓸 수 있는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이 평균 수명의 증가로 이어졌다. 목숨은 그저 하늘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의 참사는 원통하다. 꽉 막힌 실내 공간에서 도장 작업을 한다는 건 애초부터 위험한 일이다. 그러니 하청업체는 작업 전에 ‘위험작업신청서’를 작성했고, STX 안전요원의 허가를 받은 다음에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작업을 진행할 때, STX 안전요원과 하청업체 현장책임자는 모두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이어선지, 원래 그리 하는지는 모르겠다. 밀폐 된 공간이니 환기가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환기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관에는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고, 심지어 끊어져 있기도 했다. 산소 부족에 따른 질식 우려가 큰데도 마스크 자체에 공기가 주입되는 송기마스크는 지급조차 하지 않았다. 폭발 위험을 막는 정전기 방지 의류나 신발도 지급하지 않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미리 폭발사고를 막는 게 최선이겠지만, 폭발사고가 났더라도 안전장구만 갖췄다면 사람들이 질식해서 죽는 일은 없었다. 전형적인 인재이며, 보태고 뺄 것도 없는 STX의 책임이다. STX가 하청, 재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숨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뻔한 위험 속에 노동자들이 방치된 건, 그들이 하청노동자였기 때문일 거다. 말은 번듯해서 ‘협력’이라 부르지만, 단가를 후려치고 위험부담까지 떠넘기는 건 대기업의 악질적 관행이다.


일요일에도 위험한 작업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원청업체가 저렴한 입찰가만 보고 하청업체를 정하기 때문이다. 가격을 줄이고 공사기간을 맞추는 게 급선무니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이번 참사는 일요일, 지난 5월 삼성중공업 참사는 노동절, 지난해 구의역 사망사건은 토요일 저녁에 일어났다.


원청과 달리 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개 미조직 노동자들이고 언제 일감이 끊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처지이니 원칙대로 안전을 챙기는 건 쉽지 않다. 원청업체 입장에서는 뭔가를 요구하는 하청업체나 하청업체 노동자들과는 더 이상 ‘협력’하고 싶지 않을 테니 말이다. 목숨이 달려 있으니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마저,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곧잘 무시되고 있다. 천박한 자본의 탐욕과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치 않겠다는 파렴치가 노동자 네 명을 죽였다. 남들은 다 쉬는 날, 그냥 서 있기도 힘든 폭염에 밀폐 된 공간에서 페인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겪을 고초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탐욕이 부른 참사다.


조선업 현장에서 산재로 숨진 노동자의 열에 아홉이 하청 노동자이고, 건설업은 거의 전부가 하청 노동자다.


산업은행 등의 공적 관리를 받는 기업도 이 정도니,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사영기업에 노동자들의 안전을 제대로 챙겨 달라는 요청은 어쩌면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영기업의 탐욕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사고 직후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하고, 이런 사고가 나면 원청의 책임을 묻겠다고 못 박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결국 한 푼이라도 더 줄이고, 한 푼이라도 더 벌자는 사영기업을 단속할 방법은 제대로 책임을 묻는 것밖에는 없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오히려 돈을 버는 일이라는 걸 체감시키는 방법밖엔 없다. 대기업이라도 이런 식의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산업재해가 적은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채택하는 가장 일반적인 정책이기도 하다. 산업재해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실행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통해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한 게 지난 17일, 이번 참사는 예방대책 발표 사흘 만에 일어났다. 이에 앞서 지난달 3일 열린 ‘산업안전보건의 날’에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의 최우선 가치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으로,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 될 수 없다”면서 산업현장의 위험을 유발하는 원청과 발주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틀림없는 말이다. 그러나 현장은 대통령이나 장관의 말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대통령이 직접 확인한 것처럼, 국가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무거운 책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거다. 군대나 경찰, 또는 소방처럼 당장의 성과만 보면 얼핏 낭비적 요소가 많아 보이는 기관을 운영하는 까닭도, 아니, 그 이전에 국가라는 체제를 만든 까닭도 우리의 목숨을 어떻게 하면 잘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비롯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무엇보다 사람의 목숨에 민감한 정부여야 한다. 산업재해 사망자 숫자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살률도 교통사고 사망률도 낮춰야 한다. 그 무거운 책무가 바로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 말은 충분하다. 이젠 구체적인 실행을 보여 달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242057025&code=990100#csidxd7218b05856430cb1165b0aa78eea6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