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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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휴가도 쓰지 못하는 경찰관 (경향신문, 2017.07.2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3:03
조회
202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노무현 정권 때의 경찰혁신위원회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엔 경찰개혁 작업을 꼭 이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아무리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쳤다 해도, 그래도 십여 년이 지났으니 경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막연한 기대와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발족식에는 경찰청장을 비롯해 40여명의 경찰관들이 참석했는데, 전부 남성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경찰의 별’이라는 경무관 이상은 물론, 실무자들 중에도 여성은 없었다. 그래도 여성 경찰관 숫자가 꾸준히 늘어서 전체 경찰관의 10%가 되었다지만, 경찰청의 주요 행사에선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장관도 30% 이상은 여성이 맡는 세상인데, 경찰청은 요지부동이었다. 경찰은 여전히 남성만의 조직이었다.


개혁적 경찰관들의 의견 그룹 ‘폴네티앙’과의 간담회 때는 더 충격적인 현실과 만날 수 있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딱 한 명의 여성 경찰관. 13년차 경찰관인 그는 생리휴가를 한 번밖에 쓰지 못했다고 했다. 상급자와 동료들 눈치 보느라 쓸 수 없었단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73조)고 규정하고 있다. 생리휴가를 주지 않는 건 형사처벌을 해야 하는 범죄다.


그래서일까, 아예 여성 경찰관들이 생리휴가를 청구하지 못하게 분위기를 조성한단다. 몸이 너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생리휴가를 청구하면, 정 쉬고 싶으면 생리휴가 말고 병가를 내라고 한단다. 어떻든 생리휴가로 쉬는 일은 막겠다는 거다.


여성 경찰관들이 생리휴가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생리휴가가 당연시될 텐데 그게 싫다는 거다.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이기에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저 법조문으로만 멈추지 않고 진짜로 당연한 권리가 되는 건 싫다는 거다. 여성 경찰관들은 물론, 경찰 조직 안에서 홀대받는 일반직 공무원이나 무기계약직까지 생리휴가를 쓰는 게 싫다는 거다.


그는 자기 신세가 남자고등학교에 다니는 여고생 처지와 비슷하다고 했다. 지구대, 파출소의 화장실이 온통 남성 위주로만 되어 있는 것도 힘들지만, 온갖 차별을 감내해야 하고 일상적으로 들어야 할 핀잔도 보통 이상이라고 했다.


간담회가 있던 날 저녁, 마침 CBS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경찰개혁 과제를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했다. 생리휴가조차 쓰지 못하는 경찰관이, 곧 자신의 기본적 인권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시민의 인권을 지켜주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가 기사로 나가자 금세 숱한 댓글이 달렸다. 내용으로 짐작건대 남성 경찰관들이 쓴 글이 많았는데, 놀랍게도 일베 수준의 막말이 넘쳐났다.


아예 여경을 뽑지 말자, 남자의 영역이 따로 있는데 왜 여자들이 경찰에 들어와서는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법률이 보장하는 구체적 권리를 요구하는 게 엉뚱한 소리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이건 그래도 점잖은 편이었다. 어떤 사람은 대놓고 자기 이름까지 밝히며, “여경들, 개혁이 필요해. 불친절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범인 하나 제대로 제압도 못하고, 그렇다고 용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직업 중의 하나임.” 여성은 그저 남성이 원하는 제한된 성 역할만 하면 그만이라는 거다. 경찰은 범인 검거 등 신체적 능력이 필요한 일이니 여성이 할 일이 아니란 거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생리휴가, 출산휴가, 육아휴가, 월차휴가, 연차휴가…. 도대체 언제 일할래?”라고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너무 힘든 출산율 꼴찌 국가는 하루아침에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여성이 생리휴가를 보장받는 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응도 많았다.


대통령을 뽑는 일이든, 스스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일이든, 경찰관이나 다른 어떤 직업을 갖는 일이든 대개의 일들은 여성에게는 금지된 영역이었다. 남성은 일정한 나이만 되면 참정권을 보장받았지만, 여성이 똑같은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미국의 경우 50년, 프랑스의 경우 10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지난달 타계한 서윤복 선생 덕분에 우리에게도 친숙한 보스턴 마라톤도 그랬다. 겉으로는 아무런 차별적 조건도 내세우지 않았지만 마라톤은 여성에겐 금지된 영역이었다. 여성이 800m 이상 뛰면 자궁이 떨어진다는 해괴한 소리까지 해대며 여성 출전을 막았다.


1967년 스무살 대학생 카트린 스위처는 말도 안 되는 벽을 깨기 위해 보스턴 마라톤에 나섰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경기감독관이 그를 덮쳤다. 당장 꺼지라며 등에 붙인 번호를 내놓으라고 소리 질렀다. 주변 도움으로 겨우 그 자리를 피하고서는 4시간20분의 기록으로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렇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실격 처리되었다. 지난 4월17일, 이제 70세가 된 스위처가 50년 전과 똑같은 등번호 261번을 달고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했다. 4시간44분의 기록으로 이번에도 완주했고, 실격 처리 같은 일은 없었다. 보스턴 마라톤 측은 스위처의 번호 261번을 영구결번하기로 했다. 스위처의 도전이 있었기에 여성 마라톤은 1984년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올해 보스턴 마라톤의 참가 선수 중 여성은 46%였다.


여성에겐 마라톤처럼 경찰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50년 전의 카트린 스위처처럼 여성들은 여전히 금지된 것을 깨기 위해 뛰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법률로 정해둔 일이 사영기업도 아닌, 법집행을 하는 국가기관에서까지 외면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찰청의 이런 반모성적 태도가 바로 개혁대상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271033001&code=990100#csidxd9f469d7efd57ada840007b25139571